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 추리소설의 전설 <옥문도>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1986년 문예춘추가 선정한 일본 미스터리 100선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걸작입니다. 아마 2006년에 다시 선정해도 1위는 변함이 없을 것 같네요. 우리에게는 만화 <김전일>에 등장하는 소년 탐정 김전일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명탐정이신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의 바로 그 할아버지로 익숙한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작품이구요.

 

저주받은 조손 긴다이치 코스케와 김전일...두 사람이 살면서 만난 시체만 합쳐도 옥문도의 주민 수 이상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ㅋㅋ

야심차게 출발한 만화 김전일이 1940년대에 첫 등장한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라는 설정을 사용한 것만 봐도 일본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케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민탐정 쯤 되겠네요..^^;;

 

데뷔작인 <혼징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낸 긴다이치 코스케...그런 그도 2차 대전을 피해갈 수는 없었는지 참전을 합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는 귀국선에서 죽어가는 전우에게 부탁을 받습니다. 전우의 고향인 옥문도로 돌아가 그의 세 여동생을 구해달라는 거죠. 옥문도에 도착한 코스케는 20세기에도 전통적인 봉건 세력의 지배를 받을 정도로 시간을 잊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우는 옥문도의 지배 세력인 선주의 손자였습니다. 어촌 마을이다 보니 배를 가진 선주가 거의 왕인거죠...그러나 지배자인 선주는 죽었고, 그의 아들인 요사마츠는 미치광이가 되어 갇혀 지냅니다. 손자가 유일한 희망이나 어떡합니까...그는 긴다이치 품에서 죽었는데. 이제 남은 사람은 전우의 여동생인 세 명의 손녀딸뿐...그런데 이 손녀딸들이 걸작입니다. 묘하게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세 명 다 대단한 미인들이지만 나사가 풀렸다고나 할까요..-_-;; 뭔가 이상합니다. 자신들의 아버지인 미치광이를 나무로 쿡쿡 찌르며 키득거리며 즐기기 일쑵니다. 바보들이라기 보다는 감정을 느끼는 뇌의 한 부분이 고장난 듯한 여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가문의 후계자인 세 명의 여자들입니다. 그런데 긴다이치가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막내 동생을 필두로 하루에 한 명씩 죽어나갑니다. 옥문도를 지배하는 선주 본가에 도전하는 선주 분가의 짓일까요? 옥문도의 참극은 결국 세 명의 여동생들이 모두 죽으면서 끝이 납니다. 그런데 그 개개의 살인들이 또한 기묘합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막내, 거대한 범종 속에 들어가 죽어 있는 둘째, 기도소에서 무녀 복장을 한 채 교살당한 첫째 딸들이 그것입니다.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각각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놀랍게도 탐미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의 특징은 <혼징살인사건>에서도 보여지듯이 서양에서 시작된 퍼즐 미스터리에 일본의 전통 문화를 잘 녹여내고, 일본적인 탐미주의를 결합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조차도 아름답게 느끼게 만드는 그로테스크할 정도의 탐미주의에 저는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전술한 대로 작품에 일본의 문화를 잘 섞어 넣습니다. <혼징 살인사건>이 일본의 전통 가옥을 이용한 트릭과 해결을 취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일본의 전통 단가 '하이쿠'를 비벼 넣었습니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돋우는 장치로서는 흥미롭게 기능합니다.

 

세 번의 살인에는 각각 다른 트릭들이 사용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특히 흥미롭습니다. 저는 두 번째에서 무릎을 쳤지요. 다만 세 번째 살인에는 특별한 트릭보다는 범인의 정체를 헷갈리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순수하게 퍼즐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범죄의 동기에 관해서는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군요. 작가도 그런 점을 우려해서인지, 작품의 배경을 너무도 봉건적인 곳으로 설정해 놓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점은 긴다이치 역시 김전일처럼 뛰어난 추리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우가 부탁한 세 여동생 중 단 한 명을 못 구하고 퍼펙트하게 실패한 긴다이치. 범인만 맞추면 뭐합니까...사람을 구해야지..ㅋㅋ

신은 긴다이치와 김전일에게 뛰어난 추리력을 주셨지만 아쉽게도 빨리 푸는 능력은 주지 않으신 듯 합니다..^^;;;

 

대단히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올해 많은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오기는 하지만 순수한 퍼즐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황금기 작품들의 출간이 적어 아쉬웠는데 시원하게 해갈을 해주네요. 모쪼록 <옥문도>가 잘되서 다른 긴다이치 시리즈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판형 및 표지 디자인이 대단히 좋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고급스러운 느낌이라 어디를 가던지 들고 다녔답니다..ㅋㅋ 꼼꼼한 역주도 만족스러웠구요. 기획, 편집하신 분의 해설도 멋졌답니다. 이래저래 잘 만든 추리소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nj002 2005-10-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제 마음에 꼭..저도 얼마전에 재밌게 읽었어요..정통 추리소설이 역시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책도 예쁘게 디자인되어 역주에 나온 다른 작품들과 함께 책장에 진열되었으면 좋겠어요..

jedai2000 2005-10-2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두 작품이 더 나올 예정입니다. 담당 편집자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니 확실합니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 <8개의 묘가 있는 마을>이 나온답니다. <옥문도> 못지 않은 걸작들이랍니다.

panda78 2005-11-0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두 개 더 나온다구요?! 기대기대됩니다! ^^ 특히 8개의 묘가 있는 마을은 이야기만 많이 들었던지라 더욱 기대가... 두 권 다 얼른 나오면 좋겠네요. 내년 여름에 맞춰서 나오려나요? ^^a

jedai2000 2005-11-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 여름에 맞추시려고 노력하시겠죠..^^;; 작업하시는 편집자 분께서 국내에 내노라하는 추리소설 마니아시라 많이 준비하고 계세요.

윌리엄 아이리쉬 단편집, 유명한 논픽션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이 올 겨울에,
내년에는 일본의 크리스티, 니키 에츠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를 하신다네요. 내년에도 추리소설 풍년이죠? ^^;;

panda78 2005-11-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트루먼 카포티의 냉혈! 아이리쉬의 단편집! 이 올 겨울에! @ㅁ@)/ 만쉐이!
정말 올해도 내년도 추리소설 풍년이네요. 기쁩니다.^ㅡㅡㅡ^

jedai2000 2005-11-0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외에도 아직 밝히기 뭐하지만 여러 곳에서 많이들 준비하고 계시니 안심하세요. ^^;;
 
천사의 속삭임 1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바야흐로 여름이 모두 끝나간다. 그런데 곱게는 못 물러가겠다는 듯이 막바지 무더위가 거세다. 이럴 때는 역시 등골이 서늘한 무서운 이야기가 딱이다. 개인적으로 국적 불문하고 책으로 읽은 것 중에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역시 스즈키 코지의 <링>과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다. 스즈키 코지가 <링>의 비참한 동어반복으로 스러져 갔다면 기시 유스케는 요즘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제4회 일본호러대상을 받았다는 <검은 집>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무섭기로 소문난 작품이다. 나도 한동안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할 정도로 공포에 질린 적이 있다. 원래 내가 기가 약하기로 둘 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인지라...쿨럭..

 

<검은 집> 이외에도 그의 작품은 <푸른 불꽃>과 오늘 소개할 <천사의 속삭임>이라는 작품이 국내 출간되어 있다. <푸른 불꽃>은 보지 못했다. <천사의 속삭임>을 다 읽고는 이렇게 잘쓴 작품이 잘도 묻혀 있구나 하는 분노를 느껴 몇 자 적는다.

 

<검은 집>만큼 압도적인 공포는 없지만 상당히 무섭고 재미있는 작품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작품은 다카나시라는 작가가 아마존 오지에서, 말기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 애인 사나에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시작한다. 원래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다카나시 작가는 아마존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자 이상하게 죽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그는 자살을 해버린다.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 하던 사람이... 또한, 탐험대 중에 한 교수는 고양이과의 동물을 극도로 무서워했는데 일부러 호랑이 우리에 들어가 자살한다.

 

다섯 명의 탐험대원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속출한다. 애인 다카나시 작가를 잃고 슬픔에 잠긴 사나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과연 아마존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건은 점입가경으로 확대되고, 클라이막스에서는 <검은 집>에서 선보인 예의 그 지옥도가 다시 한번 펼쳐 지는데 그야말로 압권이다.

 

대강의 줄거리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데, <검은 집>에서는 볼 수 없던 잔재미까지 상당 부분 늘어났다. 취재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기시 유스케답게 그리스/로마 신화, 기생충(선충)학, 의학, 증권, 환경 오염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전문 지식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전문 지식들이 단순한 지식 자랑이 아닌 작품 속에 상당히 잘 녹아들어가 있어 만족스럽다.

 

기시 유스케를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미래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하다. 단 두편 <검은 집>과 <천사의 속삭임> 밖에는 접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재능이 대단한 것 같다. <푸른 불꽃>이나 <크림존의 미궁>같은 작품들의 소개를 보면 장르도 다양하고 소재도 다채로워 <검은 집>의 성공에 부화뇌동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재기가 엿보인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기시는 작품 말미 클라이막스에 그야말로 공포의 오르가즘을 안겨주는 능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절정 부분에서는 정말 책을 넘기기 힘들 정도였다...물론 내가 남들보다 겁이 더 많다는 사실은 감안하시라..^^;;

 

작품 해설을 보니까 시나 히데아키 (<패러사이트 이브>)가 추천사를 썼는데, 그도 질투가 났을 정도라고 고백을 했더라.. 그런데 <천사의 속삭임>이 나왔을 시점에는 메디컬 호러 내지는 바이오 호러 장르가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었다고 한다. <천사의 속삭임>도 일종의 바이오 호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므로, 정말 오싹한 사람이 등장하는 <검은 집>만큼 강력한 공포는 없지만 시종일관 흥미로운 이야기에 적당한 공포를 제공해주는 <천사의 속삭임>은 추천할만한 읽을거리임을 자신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10-2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시나 히데아키와 비슷한 감도 없지않아 있었어요^^

jedai2000 2005-10-2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런지 시나 히데아키가 추천사를 썼더군요. 개인적으로 기시 유스케 관심 많습니다. 뛰어난 엔터테인먼트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양한 장르를 잘 소화해내죠. 기회가 되면 내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panda78 2005-10-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불꽃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라구요. 검은 집과 비슷한 느낌일 거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의외였어요. ^^

jedai2000 2005-10-2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푸른 불꽃>을 읽었는데 아주 좋더군요. 작가에게 반했어요. 창해출판사에서 더 내줄 생각은 없는지 모르겠네요. 기대하고 있는데..
 



 
미스테리 소설계의 여왕!!


소설가 다카무라 카오루(高村薰). 계기는 보너스로 PC를 산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퇴근 후 한가한 틈에 시작한 소설 쓰기. 치밀한 구성력과 극명한 정경 묘사, 남성적인 필체, 사회에 대한 냉철한 시선, 그리고 보편성이 프로를 능가해 데뷔 후 불과 3년만에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했다. 작풍을 보면 과묵하고 무서운 사람일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나 보면 평범한 아줌마였다.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는 담담하고 규칙적인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설은 매일 페인트를 칠하는 일!"

그녀는 오사카 시내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깔끔한 서재가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네마리 고양이와 살고 있다.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고 독신이다. 일본 최고의 사회파 작가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생활은 평범하기 그지 없다. 작가라고 하면 불규칙한 생활, 한 밤이 되어서야 글을 쓰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그녀의 생활을 샐러리맨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고 청소와 세탁을 합니다. 오전 9시부터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해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설겆이를 한 후 다시 책상에 앉죠. 오후에는 쇼핑을 갔다와서 저녁을 먹어요. 그 후 5시간 정도 글을 쓰는데 야근에 해당하는 셈이죠."

2층 서재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위스키를 삼키면서 워드프로세서를 두드린다. 밤 12시가 되면 집필을 중단한다. "내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감정이 서서히 고조되어 어느새 아침이 되어 버리는 것 같은 게 아닙니다. 매우 이성적인 일이죠. 사무적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페인트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매일 벽을 칠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게 중요하다"

이런 일상 틈틈히 대사건과 정치 문제 등에 대해 논평을 해달라는 요청을 신문사와 출판사로부터 받는다. 영화화된 <레이디 조커(レディ ジョ-カ-)>는 글리코모리나가사건(グリコ森永事件)을 참고로 했다. 취재를 위해 여러차례 신문사를 찾았다. 전화로 전문가들에게 논평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모습도 자주 봤다. 그녀가 신문사에 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소설가라고 하면 여관에 쳐박혀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결되기 위해서는 내가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소설만 쓰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서민적인 일상도 역시 사회나 현실과의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그런 평범한 생활이 복잡해지는 시대의 핵심을 찔러 사회와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이끌어내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밤의 여가가 준 선물"

원래부터 소설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녀는 도쿄의 국제기독교대를 졸업한 후 다시 오사카로 돌아와 외자계 상사로 들어왔다. 비서도 겸한 일로 폭넓은 업무를 담당했다. 서른 살이 지나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지도 몰랐다. 결혼할 상대도 없다. 입사한 지 9년째되던 해였다. 퇴근 후 회사에서 다하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보너스 70만 엔으로 PC를 샀다.

거품경제기였기 때문에 보너스가 꽤 많았다. 집에 사들고 오자마자 PC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특별히 쓰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뭔가 1줄이라고 써보자. 사무적인 문서가 아닌 문장을 써보고 싶었다"는 것이 소설가 다카무라의 시작이었다. 전부터 기계를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PC를 사용하는 느낌이 좋았다. 매일 밤 쓰고 지우는 일을 반복했다. 이렇게 해서 처녀작 [리비에라를 쏴라(リヴィエラを擊て)]가 탄생되었다.

다 쓰고 나니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보이기는 부끄러웠다. 그 때 발견한 것이 잡지 구석에 있던 공모광고였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괜찮겠다 싶어서 응모했다. 그러나 곧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응모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경황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제2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최종후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출판관계자들의 권유로 다시 글을 쓰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3년만에 나오키상 수상"

두번째 작품은 은행강도를 다룬 소설 [황금을 안고 날아라(黃金を抱いて翔べ)]. 지난 해에 자신을 빗겨간 대상을 거머줬다. 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한 작품을 더 써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다. 두가지 일을 다 할 수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형사를 경찰조직의 하나로 그린 [막스의 산(マ-クスの山)]으로 마침내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평범한 직장여성이 퇴근 후 틈틈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불과 3년만의 일이었다. 대형 작가의 탄생이라고 떠들썩했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자신이 읽고 싶은 소설이 아니라는 게 걸렸다. 바로 그 때 한신대지진이 일어났다. 몇개월 후에 시작할 연재소설에 대한 구상을 끝낸 상태였지만 다시 백지 상태로 돌아왔다. 40대의 아줌마로서 생각해 봐도 모든 게 변하는 시기였다. "우리들의 세대는 21세기가 장미빛 미래라고 생각하고 자란 '철완 아톰' 세대입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들어 대지진, 그리고 지하철 사린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큰 전환점을 맡았습니다. 이제까지 쓰여지지 않은 사회적인 소재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현실과 정면에서 맞서는 사회파 소설가, 미스테리 소설계의 여왕이 탄생했다.

 

 

참고로 이 자료는 <일본으로 가는 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현재 제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작가 자신은 비록 마음에 든다고 하지 않지만 <마크스의 산>은 90년대 최고의 일본소설입니다.

집요할 정도의 꼼꼼함과 완벽한 리서치, 비록 펜을 들었지만, 마치 칼을 든 사무라이 같은 결기로 글을 쓰는 작가랍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다카무라 카오루의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작가는 이래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10-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디 조커를 출판할 계획을 세우세요~ 여기저기 찌르는데 참...

jedai2000 2005-10-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디 조커>가 국내에 나오면 아마 5권 빡빡하게 내면 4권 분량이랍니다. 장편 대하 추리소설이 얼마나 팔릴까요.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이 <고다3부작>인데 아마 어렵겠죠. 쩝.

BRINY 2005-10-2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다3부작! 추진해 보세요~

jedai2000 2005-10-2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曾孫女)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토요일이었다.

개울가에 이르니,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건너편 가에 앉아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참외 그루에 심은 무우밭으로 들어가, 무우 두 밑을 뽑아 왔다. 아직 밑이 덜 들어 있었다. 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 개 건넨다. 소녀는 먼저 대강이를 한입 베물어 낸 다음, 손톱으로 한 돌이 껍질을 벗겨 우쩍 깨문다.

그러나, 세 입도 못 먹고, "아, 맵고 지려." 하며 집어던지고 만다.

"참, 맛없어 못 먹겠다."

그 때, 거웃한 수염의 농부가 지나가며 말한다.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참,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 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오들오들 떨던 소년과 소녀는 비가 그치자 원두막을 나섰다. 시냇가에 도착하자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며칠 후,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 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 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재산만 많으면 뭘 하나.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曾孫)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아무리 비싼 약을 써도 별무 소용이었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 초 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 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소년의 말이 모두 끝났다. 허름한 초가집 마루에는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정운산 형사가 앉아 있었다. 정운산이 입을 열었다.

"그게 전부니?"

"네."

"정말 더 할 말 없어?"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정운산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잘 들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구나.

그 소녀를 왜 죽였니?"

소년과 그의 부모들의 얼굴에 놀란 빛이 역력했다. 그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정운산은 입을 열었다.

"지금은 9월이란다. 가을 무 철이지. 가을 무는 맛이 올라 달디 달지.

그런데 네가 뽑아준 무를 먹은 소녀는 왜 맵고 지려 했을까? 네가 무언가를

발랐던 거야. 바로 양잿물이지. 네 어머니의 빨래통에서 양잿물을 훔쳐 무에다 바른 후 소녀에게 갖다 준 거지. 당연히 소녀는 맵고 지려 할 수 밖에 없었고..."

소년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소년의 아버지, 어머니는 직감으로 정운산의 말이 사실인 걸 깨달았다. 어머니는 소년의 등짝을 내지르며

"아이고! 이놈아.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어!"  연신 소리지른다.

사실, 정운산도 소년의 범행 동기가 궁금했다.

"아부지가 맨날 윤초시한테 빌빌거리는 게 보기 싫었단 말예요. 걔도 미웠어요. 서울에서 왔다고 잘난 체만 하고...아부지가 만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힘들게 일해도, 우리 집은 가난하기만 한데, 윤초시네는 아무 것도 안 하면서도 우리가 일한 거 다 가져 가는 게 싫었어요."

소년의 아버지가 힘없이 뇌까린다.

"이놈아. 그마나 우리가 먹고 사는 게 다 누구 덕인데. 윤초시님 아니면 우린 다 굶어 죽었어. 인석아."

마침내 정운산이 입을 열었다.

"꼬마야. 소녀가 왜 자기 옷을 같이 묻어달라고 했는 지 알겠니? 소녀는 네 등 뒤에 업혔을 때, 네 등 위에 침을 비롯해 토사물을 흘렸어. 소녀 옷에도 물론 묻었겠지. 나중에 소녀는 병석에 누워 자기가 먹은 무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지. 혹시 옷을 조사해 너의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워 한 소녀는 옷을 같이 묻어달라고 했던거야. 그 옷을 영원히 세상에서 없애려고 했던 거지. 소녀는 죽으면서도 너를 지켜주려 했단다..."

소년은 오열했다.

정운산은 한창 아름다울 나이의 소년이 소녀를 죽여야만 했던 불평등의 고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가난과 세습화된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이 소년으로 하여금 무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이다.

또한 죽어가면서도 소년만을 생각한 소녀의 가슴아픈 사랑도 그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연한 감상만을 남긴 채, 얄궂은 소나기가 초가집 안마당을 때리기 시작했다.

1953년 거문도에서 있었던 일...

2005년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드디어 네 번째로 편집한 신작 <코핀 댄서-암살자의 문신>이 출간되었다. 여태껏 작업한 책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이다. 정말 정말 재미있다..^^;;

 

국내 개봉된 영화 <본 컬렉터>의 원작 소설을 쓴 제프리 디버는 영화 속에서는 댄젤 워싱턴이 맡았던 전신마비 법과학자 링컨 라임과 미모의 파트너 아멜리아 색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6편 썼다. 시리즈 첫 작품이 <본 컬렉터>, 후속작이 <코핀 댄서-암살자의 문신>이다.

 

'코핀 댄서'는 전설적인 킬러의 이름이다. 이 넘은 어찌나 사람을 잘 죽이는지, 누구도 정체를 본 적이 없고 성공률 100%다. 심지어 한번 의뢰하면 의뢰자도 취소 못한다. '코핀 댄서'는 중요한 사건의 증인 3명을 45시간 동안 모두 암살해야 하고, 우리의 링컨 라임은 침대에 누워 '코핀 댄서'와 대결해야 한다는 줄거리이다.

 

죽이는 게 빠를까, 지키는 게 먼저일까...창과 방패의 대결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런데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코핀 댄서'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야말로 반전의 반전...단언컨대 책을 무지 꼼꼼하게 보시는 분도 '코핀 댄서'의 정체를 맞출 수 없을 것이다.

 

작가 제프리 디버는 변호사 출신으로 머리가 무지 좋은 사람이다. 20편 남짓한 스릴러 소설을 썼는데 모두 반전으로 유명하다. 반전이라고 해서 전쟁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고, 방심하고 있던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그 반전 말하는 거다.

 

깊어가는 가을 밤, 심심한 솔로들은 이 책을 보시길...이 책의 재미는 그간의 외로움, 설움, 질투, 분노, 원한, 공복감...등을 일순간에 날려줄 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p.s/ 표지 이미지는 사신이 여자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암살자 '코핀 댄서'에 대해 유일하게 알려진 건 팔뚝에 저 문신이 있다는 것이다. 춤이 끝나면 여자를 관에 넣겠다는 소름끼치는 암시를 담고 있다. 저 표지 이미지 일러스트레이터 써서 비싼 돈주고 한거다...-_-;;

 

 

 회사 내부에서 책에 사진 빼자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웬지 인상이 맘에 안 드는 작가다.

그런데 글 쓰는 걸 보면 거의 천재다. 그 독창적인 반전과 플롯들을 어케 다 만드는지 궁금하다...

 

 

 

 

 

 

 

 

 

작가: 제프리 디버 사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야클 2005-10-2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 나길 바랍니다. ^^

jedai2000 2005-10-2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야클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대박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