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인데, 10월 걸 쓰고 있다니...그때그때 써야지 한번 밀리니까 대책이 없네요ㅠ.ㅠ

 

 




<39계단 - 존 버컨>

무척 오래된 고전이 출간되었다. '쫓기는 사나이' 공식을 거의 최초로 확립시킨 알프레드 히치콕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 스파이 스릴러의 원조격인 작품이다. 아주 예전에 삼중당이나 하서에서 세로줄로 우리나라에서도 출간이 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삼중당 판을 소장하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읽기 편한 가로줄과 참신한 새 번역으로 보게 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작품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프리카에서 탄광 사업으로 재미를 본 영국인 리차드 해니. 그는 사교나 파티로 일관하는 따분한 런던 생활이 지겹기만 하다. 일주일 동안 기다려봐도 별 볼일이 없으면 다시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심한 해니에게 낯선 미국인 기자가 접근한다. 기자는 블랙스톤이라는 비밀 조직이 세계 정계를 막후에서 조종하며, 그들이 영국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들려준다. 해니는 이 기자가 제대로 미쳤구나, 생각하며 무시하지만 며칠후 기자는 해니의 집에서 살해당하고 블랙스톤은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는 기자 살해의 누명을 벗고, 블랙스톤의 암살자들을 피하면서 영국 정부에 이 음모를 알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1915년에 첫 출간된 작품이지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오늘날 무척 유행하는 스릴러의 A부터 Z까지 모든 게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모험을 꿈꾸는 쾌활한 신사, 끝없는 도피와 추격, 납치와 탈출, 비밀 조직의 음모, 최후의 역전...여전히 셜록 홈스풍의 명탐정 추리소설이 인기 있던 그 시대에 이런 별종이 난데없이 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출간 당시 세계를 뒤흔들었던 1차대전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돈이나 명예를 위해 이웃 한두 명을 죽이는 시대가 아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는 미증유의 전쟁을 목도한 작가 존 버컨에게 기존의 추리소설이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오락물에 불과했을 터. 존 버컨은 암울한 시대에 국제 음모를 밝혀내는 한 사나이의 모험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데 성공했으며, 주인공 리처드 해니는 제임스 본드, 리차드 킴블(<도망자>), 제이슨 본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무래도 지금 보기엔 지나치게 고색창연하고 전개도 느리지만, 역사적 가치로 판단할 작품이다.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 - 사쿠라바 가즈키>


<내 남자>로 나오키상, <아카쿠치바 전설>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쿠라바 가즈키는 라이트노벨에서 출발해 오늘의 위치에 오른 입지전적인 작가다. 라이트노벨 초기작인 <고식> 시리즈가 가상의 유럽 왕국에서 펼쳐지는 소년소녀의 청소년용 모험담에 가깝다면,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는 비록 라이트노벨이지만 작가의 개성과 주제의식이 오롯해 오늘날 일류 작가로 부상한 사쿠라바 가즈키의 원형이 될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등교거부에 히키코모리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여중생 나기사는 삶이 너무도 힘겹다. 그나마 엄마가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적은 돈을 책이나 애니메이션 DVD 등으로 펑펑 써버리는 오빠는 한마디로 집안의 원수. 나기사가 보기에 오빠가 심취해 있는 가상의 세계는 삶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무엇도 꿰뚫을 수 없는) '사탕과자 탄환'에 불과하다. 나기사는 얼른 성장해 돈을 벌어 현재의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실탄'을 얻고 싶어한다. 이 와중에 같은 반으로 전학온 유명 가수의 딸 모쿠즈는 자신을 인어라 생각하며 역시나 가상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나기사가 보기엔 모쿠즈 또한 사탕과자 탄환. 나기사는 모쿠즈와 전혀 가까워질 마음이 없지만 가정 학대를 당하는 모쿠즈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녀를 도울 결심을 한다. 어울리지 않는 두 소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며 범죄와 맞닥뜨리는다는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과 거의 흡사한 내용이다. 어린 소녀에 불과한 주인공들은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현실적, 사회적 제약이 너무도 많다. 그들을 잡아끄는 현재의 암흑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어둡고 슬픈 이야기.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악몽 속에서 밤새도록 헤매는 기분이 소름 끼치도록 오래 남았다.

 

 



       
<살인방관자의 심리 - 요코야마 히데오>


일본 추리소설계 보증수표 중 한 명인 요코야마 히데오의 2003년 단편집. 원제는 수록작 중 한 편의 제목을 그대로 담은 '진상'이다. 추리소설을 추리소설답게 만들어주는 트릭이나 반전도 빼어나지만 결말에 항상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그의 단편들은 무엇 하나 뺄 것 없이 모조리 뛰어나다. 기자 출신이라는 경력에 걸맞게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소재로 취하는 그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두 마쓰모토 세이초의 직계 제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실력가. 먼 훗날 마쓰모토 세이초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들을 확률이 가장 높은 작가라 생각한다(그러려면 지금 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써야겠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한 사건이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과연 다섯 편의 수록작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 사건 뒤에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며 둔중한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듯한 감동과 씁쓸함이 가슴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지방의 실권을 좌지우지하는 면장 선거에 출마한 주인공이 선거라는 지옥을 겪으며 스스로 파멸해가는 '마음의 지옥', 명예퇴직을 당하고 삶의 희망을 잃은 중년남자가 살인 용의자의 목격자가 된다는 '살생부'를 꼭 추천하고 싶다. 대표작이라 불리는 2000년 단편집 <동기>만은 못하지만 어느 작품 하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단편들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역량이 그저 부러울 따름.

 






<고백 - 미나토 가나에>

 

2008년 일본 서점계를 휩쓸었던 작품. 판매만큼이나 비평적으로도 호평을 받아 신인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 한 편으로 그야말로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어느 중학교에서 벌어진 몇 건의 살인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이 각자의 시점에서 정말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인가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연작 단편집으로, 작가가 원래 공모전에 출품해 호평받은 첫 번째 단편 '성직자'의 뒷이야기를 이어서 쓴 것이라 한다. 비록 철없는 장난이었다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딸을 잃은 여교사가 범인인 중학생 제자들에게 사적인 응징을 가한다는 강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 국내에서는 찬반 양론도 제법 일고 있는 것 같다. 또 아무리 머리가 좋기로소니 중학생들이 학교를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의 폭탄을 만든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하는 리얼리티 부족을 지적하는 독자도 있는 걸로 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소년범 문제를 지적하는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일종의 우화라 생각한다. 차디찬 복수가 더 끔찍한 복수를 낳는 끝없는 악순환의 연쇄와 '당신이 지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옥 역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식의, 한 번 범죄에 발을 담구면 그 범죄의 동기가 아무리 고상해도 결국 똑같은 범죄자에 다름 아니라는 걸 말하는 그런 우화가 아닐까. 우화니까 어느 정도 리얼리티의 부족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내 눈에는 응징자인 여교사가 아무리 본인의 행동을 포장하려 해도 사실은 그녀 역시 자신의 비뚤어진 제자들과 똑같이 악의로 충만한 괴물로만 보였다. 이런 복수와 악의로 가득찬 암흑 세계의 한 폭 지옥도를 기리노 나쓰오 식으로 그려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제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떠나서 일단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어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적 관점으로만 봐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언제나 차돌처럼 단단한 요코야마 히데오의 뛰어난 단편집이지만, 자주 봐왔던 스타일이고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들이 뛰어나다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라서 더 논쟁적인 구석이 있는 <고백>을 이 달의 미스터리로 추천한다. 이런 논쟁이 더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추리소설 애호 풍토가 훨씬 조성될 테니까...

 

 

 

2009년 10월의 미스터리: <고백 - 미나토 가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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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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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 끝나가는 이맘때, 올해는 어떤 일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좋은 소식, 기쁜 일들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유감스럽게도 2009년은 늘 우리 곁에서 밝게 빛나고 길잡이가 되어주던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를 아주 떠나간 슬픈 기억이 유달리 많은 것 같다. 고통받는 서민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노무현 대통령이나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김대중 대통령, 신의 영역과 맞닿은 음악으로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우리 지구와 어린이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심은 마이클 잭슨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비록 지금 언급한 위인들만큼 유명하거나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아니지만, 평생을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하게 하지만 끊임없이 희망과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삶과 죽음도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듯하다.

 

전쟁통인 1952년에 태어나 올해 5월 9일 별세한 장영희 교수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다(과거형으로 써야 하는 게 못내 가슴 아프다). 하지만 헌신적인 부모님의 보살핌 덕에 국내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서강대 영문과를 무사히 졸업했다. 지금도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 불편한 구석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이거늘 하물며 아직 전혀 사회 전반이 정비되지 않았던 1970년대에 그런 성취를 얻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뉴욕 주립대와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영문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곧 귀국해 모교에서 교편을 잡아 수많은 학생들을 길러냈다. 그러는 틈틈이 장미같이 화려하진 않아도 들꽃처럼 은은한 문장과, 장애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유쾌하고 진솔한 필치의 수필을 잡지에 기고해 당대의 문장가 중 한 명이라는 친사도 받았다. 하지만 좋지 않은 운명이 이대로 포기한 건 아닌 모양인지, 유방암으로 3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했고, 겨우 이겨냈다 싶더니 이번엔 척추암으로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내 탓, 네 탓, 심지어 부모 탓까지 하며 현재의 암울한 현실에 그저 좌절만 하기 일쑤인 요즘의 나약한 사람들 속에서 장영희 교수는 희망과 용기의 전도사로 칭송받아 마땅한 '슈퍼 히어로'인 것 같다. 남들이 천형이라 부르며 안타까워 하는 온갖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재주가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고,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써내려간 글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데 자신이 왜 불행한 사람이냐고 되물었던 장영희 교수. 매일매일 바다 냄새를 닮은 아침 냄새를 맡고, 하트 모양 비슷한 푸르른 나뭇잎과 꽃을 볼 수 있어 자신은 천형이 아닌 천혜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었다고 진심을 담아 토로하는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온 천지를 순식간에 밝게 비추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유성처럼 짧아서 더 아름다웠던 사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이런 장영희 교수의 유고 수필집이다. 어제까지 있던 건물이 오늘 사라지고, 어제 인사했던 친구를 오늘 볼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풍파가 많은 세상을 그동안 무사히 살아낸 게 이미 기적이니, 앞으로도 그 기적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암투병 동안에 쓴 글들이라지만 어느 한군데도 어두운 구석을 찾을 수 없고, 한 사람의 선생님으로서, 누군가의 이모나 딸로서, 그리고 수필가로서 평소에 겪고 느꼈던 소소하고 정겨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이미 높은 성취를 이룬 문인인데도, 약속에 잘 늦고, 가끔 퉁명스럽게 구는 게 고민인 그녀의 이야기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만큼 아, 나도 그러는데 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고 마는 이런 평범한 이야기들의 끝에는 힘든 삶을 이겨낸 그녀만의 깊은 지혜와 통찰, 용기와 희망 등이 오롯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흥을 준다.

 

수필가로서 장영희 교수의 글은 수필을 쓰고 싶어하는 분들께 꼭 추천드리고 싶은 미덕으로 가득하다. 일단 쉽게 쓴다는 것. 영미 문학의 권위자면서도 전혀 어려운 비유나 비비 꽈서 멋부리는 문장 등을 쓰지 않는다. 물리, 수학 등 모르는 게 없는 석학부터, 힘든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뭐 읽을거리가 없나 찾는 주부, 삶이 힘들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죄수까지 누가 읽어도 이해가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누구나 알지만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가 바로 알기 쉽게 쓰는 게 난해한 문장 쓰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거다. 장영희 교수는 이 진리를 알고 쓰는 글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미덕으로 그녀의 솔직함을 꼽고 싶다. 대학 교수로서의 체면이나 사회적 명사의 위치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은 쪼잔하고 때로는 뒤틀린 자신의 감추고 싶은 마음까지도 가감없이 종이 위에 담아, 보다 넓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솜씨에 감탄하고 말았다. 먼저 자기가 속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어차피 그저 그런 교훈담을 늘어놓을 거잖아" 하며 굳게 닫힌 불량독자들의 마음까지 단숨에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 외에는 잘 읽지 않지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분이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았다는 게 바로 기적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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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6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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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침내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이 출간되었다. 1989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현재까지 일본 추리소설 사상 최고 걸작 중 한 편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199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가 뽑은 과거 10년간 베스트 1위, 1988-2008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는 2위(1위는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도쿄 쇼겐샤 선정 본격 추리소설 100선에서도 당당 1위를 기록, 타이틀 만으로는 국가대표급 추리소설이라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의 출간에 약간 관여한 바가 있어, 과연 어떠한 작품일까 엄청 큰 기대를 하며 읽었다. 670쪽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의 책이라 며칠 시간은 걸렸지만, 다행히 만족스런 기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고 명성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기분 좋은 결론을 내렸다.

 

무대는 미국 뉴잉글랜드 시골 마을이다. 일본 작가가 쓴 작품이지만 주인공이자 탐정역, 그리고 시체역을 맡은 그린이 일본인 혼혈아일 뿐 등장인물은 전원 미국인. 이름만 들어도 으스스한 '툼스빌' 마을의 스마일 공동묘지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거대 공동묘지의 소유주이자 대를 이은 장의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발리콘 가문의 수장 스마일리는 병에 걸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두 번의 결혼으로 얻은 자식들은 모두 여섯 명. 이들 중 사고나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사망한 자식들을 제외하면 유산의 상속권자는 총 다섯 명이고, 스마일리 발리콘의 손자인 펑크족 청년 그린에게도 권리가 있다. 이제 추리소설의 필수 공식 중 하나인 유산을 둘러싼 반목과 유언장 공개 등이 수순대로 일어나는데, 홍차를 마시는 다과회 자리에서 스마일리는 자신에게 선물로 들어온 초콜릿을 먹기 싫다며 그린에게 준다. 자기 방에 누워 빈둥대다 초콜릿을 먹은 그린은 아뿔싸, 죽음에 이르게 된다. 초콜릿에 맹독인 비소가 들어 있던 것이다!

 

주인공이 죽었으니 이야기가 끝이 나나? 생각하겠지만 남은 페이지는 아직도 500쪽.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하고 분개하지 마시라. 본인이 한 가지 중요한 설명을 빠뜨렸으니까.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 나온 대로, 최근 미국에서는 시체가 되살아나는 기이한 일들이 연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린은 미국 사회를 충격에 던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 부활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등장인물 중 하나인 사학(死學) 전문가 허스 박사의 입을 통해 다양한 가설이 소개되긴 하지만 누구도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린을 보면 알 수 있듯 분명 호흡도, 맥박도, 땀도 흘리지 않는 시체가 되살아나는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린은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된 억울함과 분노를 풀기 위해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려 한다. 일체의 생명 활동을 하지 못하므로 피나 살이 곧 썩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는 혈액을 방부제로 교체하고, 변색되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해 '시체'라는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고 탐정 활동에 돌입한다. 그러나 발리콘 일족들에게 제2, 제3의 죽음이 연속되면서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마냥 모든 진실은 아리송해질 따름이다.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제목 자체가 통째로 아이러니다. 시체가 살아 있다니, 거기다 그 살아 있는 시체가 또 죽다니 하고 의아해지는 게 당연한 제목이지만 책을 다 읽으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일종의 좀비가 나오는 소설이라 혹시 호러소설이나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추리소설, 그것도 독자와의 치열한 두뇌싸움과 아귀가 딱딱 맞는 논리로 충만한 본격 추리소설이다. 비록 비현실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기묘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지만 어디에도 반칙은 없다. 세세한 설정 하나까지 전부 사전에 설명되고, 도처에 복선이 가득해 반드시 꼼꼼이 읽어야 한다. 끝까지 읽고, '작가에게 당했다!'는 말은 나올지언정 결코 '작가에게 속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맨 나중에 '살아 있는 시체'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범행 현장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다는 게 밝혀지거나 하는 식이 절대 아니다. 주인공 그린이 '살아 있는 시체'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린의 경우를 통해 '살아 있는 시체'의 능력이나 심정, 행동 원리 등을 철저히 분석할 수 있다. 작가가 손에 쥔 카드를 완전히 공개하는 셈인데, 여기 어디에 반칙이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규칙만 확실하고 공정하게 지정해주면 가령 절대 죽지 않는 그리스 신들의 살신(殺神) 사건 같은 것도 충분히 추리소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량의 압박이 제법 있지만,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이나 언어유희, 재기 넘치는 그린과 여주인공 체셔의 대거리 등의 유머가 풍부해 지루하지 않고 술술 잘도 넘어간다. 본격 추리소설답게 탐정이 모든 용의자들을 모아놓고 '폭로쇼'를 벌이는 장면도 두 번이나 나온다(민완경감이 탐정이 되어 진행한 첫 번째 폭로쇼는 대참패로 끝나지만).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결말도 너 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현실에 치중하는 영미권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진행하는 작품이 많은 현재 일본 추리소설의 개성을 확립한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다. 특히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역시 교고쿠의 작품들처럼 분량도 제법 되고, 개성 강한 등장인물이 나오며, 은근한 유머는 물론 사학, 미국식 장례식, 엠바밍 등의 잡지식으로 넘쳐나는 걸 보고 그리 생각해보았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나라에 소개된 타이밍이 조금 늦은 감이 있어, 오히려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 할 후배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만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1989년작이라는 출간 시기를 감안해보면 작품의 크리에이티브가 얼마나 뛰어났는지에 대해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시체가 되살아나는 불가해한 '매직'을 철저한 '로직'으로 풀어내는 본격 추리소설의 명편,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일본 추리소설의 한 경향을 만든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의 진면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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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1-2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요? 몰랐네요 함 읽어봐야겠어요

jedai2000 2009-11-2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그냥 제 생각일 뿐이예요ㅠ.ㅠ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는데, 좀 길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는 확실한 것 같아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일본 다카라지마 사에서 나오는 잡지로 전년도에 출간된 자국(일본)과 해외의 베스트 미스터리 10을 정하는 일종의 랭킹 매거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창간 이래, 2009년까지 20년 넘게 계속된 이 랭킹은 매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가운데 무엇이 읽을 만한가를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출간작 및 절판작, 출간 예정작은 제가 아는 대로 표기합니다. 이번에는 순위에 관한 제 나름의 코멘트도 짧게 넣어보겠습니다.


●1988年 (창간)

1. 전설없는 땅 / 후나도 요이치 (출간)
2.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하라 료 (출간)
3. 황혼의 베를린 / 렌죠 미키히코
4. 베를린 비행 지령 / 사사키 조
5. 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출간 예정)
6. 그리고 문이 닫혔다 / 오카지마 후타리
7. 미로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절판)
8. 밀폐 교실 / 노리츠키 린타로
9. 방황하는 뇌수 / 오사카 고
9. 더블 스틸 / 후지타 요시나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원년. 무려 20여 년 전이라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1위의 <전설없는 땅>이나 2위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모두 뛰어난 작품이라 순위에 불만은 없다. 미타라이 시리즈 <이방의 기사>는 조만간 출간될 예정. 3, 4위가 다 제목에 베를린이 들어가 있어 흥미롭다. 소개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 꼭 보고 싶은 건 8위를 차지한 <밀폐 교실>!

●1989年  

1. 내가 죽인 소녀 / 하라 료 (출간)
2. 하늘 나는 말 / 기타무라 카오루
3. 기발한 생각, 하늘을 움직인다 / 시마다 소지 (출간 예정)
4. 에토로후발 긴급전 / 사사키 조 (출간)
5. 클라인의 항아리 / 오카지마 후타리
6. 남자들은 북쪽으로 / 가자키 잇키
6. 깊은 밤, 다시 / 시미즈 타츠오
8.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출간)
9. 카게무샤 도쿠가와 이에야스 / 류 케이이치로
10. 도착의 론도 / 오리하라 이치 (출간)

4편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1위 <내가 죽인 소녀>는 일본 하드보일드에서 손꼽히는 명작.  8위의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은 비록 하위권이지만 갈수록 평가가 높아져 지금은 일본 미스터리 사상 최고작이라는 영광스런 평가까지 받고 있다. 당시에 8위로 뽑은 사람들은 지금 약간 부끄러울 듯. 일상 미스터리의 효시로 알려진 2위의 <하늘 나는 말>이 가장 보고 싶다.  

●1991年 (1990년 작품)

1. 신주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출간)
2. 밤의 매미 / 기타무라 카오루
3. 불길 흐르는 저 쪽 / 후나도 요이치
4. 아득한 신들의 자리 / 타니 코우슈
5. 천사들의 탐정 / 하라 료
6. 자, 돌아가자 / 시미즈 타츠오
7.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 아야쓰지 유키토 (출간)
8. 돌아오지 않는 사하라 / 후지타 요시나가
9. 마술은 속삭인다 / 미야베 미유키 (출간)
10. 어두운 언덕의 식인 나무 / 시마다 소지

총3편이 소개되었다. 경찰소설, 하드보일드의 쾌작 <신주쿠 상어>가 1위를 차지했는데, 유독 일본에서 평가가 아주 높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7위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은 직접 편집한 책이라 괜히 반갑다. <밤의 매미>와 <천사들의 탐정>이 나왔으면 좋겠다.

●1992年 (1991년 작품)

1. 지나가는 길의 마을 / 시미즈 다쓰오
2. 독 원숭이 - 신주쿠 상어 (2) / 오사와 아리마사 (절판)
3. 다크・콜 / 이나미 이츠라
4. 용은 잠들다 / 미야베 미유키 (출간)
5. 수정 피라미드 / 시마다 소지
6.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출간)
7. 비스듬히 비친 그림자 아득한 나라 / 오사카 고
8. 신의 불 / 다카무라 카오루
9. 황금을 안고 튀어라 / 다카무라 카오루 (출간)
10. 우로보로스의 위서 / 다케모토 켄지 (출간 예정)

1991년 작품도 역시 3편이 출간. 1위 <지나가는 길의 마을>의 시미즈 다쓰오의 작품은 국내에 딱 한 편이 소개되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해 어떤 작가인지 모르겠다. 2위를 차지한 <독 원숭이(신주쿠 상어2)>는 액션 하드보일드의 명편으로 박진감이 하늘을 꿰뚫을 지경. 절판된 게 너무 아쉽다. <다크 콜>의 이나미 이츠라도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데 국내에서는 만나볼 수 없어 아쉽다. <다크 콜> 내줄 출판사 어디 없나요?  

●1993年 (1992년 작품)

1. 모래의 크로니클 / 후나도 요이치
2. 화차 / 미야베 미유키 (출간)
3. 철학자의 밀실 / 가사이 기요시
4. 블루스 / 하나무라 만게츠
5. 리비에라를 쏴라 / 다카무라 카오루
6. 쌍두의 악마 / 아리스가와 아리스 (출간 예정)
6. 누군가가 안에 있다・・・ / 이노우에 유메히토
8. 키드 피스톨즈의 모독 / 야마구치 마사야
9. 세번째 해협 / 하하키기 호세이
10. 내 손에 권총을 / 다카무라 카오루

이 해에는 웬일인지 <화차> 한 편만 출간되었군. 그러나 <화차>는 카드 대출을 소재로 오늘날 일본 사회의 명암을 파헤치는 현대적 사회파 미스터리의 걸작이니 너무 아쉬워 하지 마시길. 모험소설의 제왕 후나도 요이치의 1위작 <모래의 크로니클>, 우리나라에서는 출간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섭섭한 가사이 기요시의 <철학자의 밀실>을 보고 싶다. '학생 아리스' 제3작이자 본격 미스터리의 수작으로 평가가 높은 <쌍두의 악마>는 조만간 나올 예정.

●1994年 (1993년 작품)

1. 마크스의 산 / 다카무라 카오루 (재출간 예정)
2. 키드 피스톨즈의 망상 / 야마구치 마사야
3. 센트 메리의 리본 / 이나미 이츠라
4. B・D・T [규칙의 거리] / 오사와 아리마사
5.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출간 예정)
6. 마법 비행 / 카노 토모코
6. 겨울의 오페라 / 기타무라 카오루
8. 환상의 제전 / 오사카 고
9. 이방인들의 관 / 오리하라 이치
10. 진원 / 신포 유이치

으헉. 구할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다. 하지만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 다카무라 카오루의 대작 <마크스의 산>이 조만간 재출간된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미스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역작이니 무조건 읽으시길. 그밖에 기상천외한 작품세계를 자랑하는 나카지마 라모의 <가다라의 돼지>도 곧 출간된다니 기쁘기 한량없다.  

●1995年 (1994년 작품)

1. 미스터리즈 / 야마구치 마사야
2. 스톡홀름의 밀사 / 사사키 조
3. 석양에 빛나는 감 / 다카무라 카오루 (재출간 예정)
4. 웃는 야마자키 / 하나무라 만게츠
5. 사냥개 탐정 / 이나미 이츠라
5. 남자는 깃발 / 이나미 이츠라
7. 프리즌 호텔 가을 / 아사다 지로 (출간)
7. 우부메의 여름 / 교고쿠 나츠히코 (출간)
9. 유성들의 연회 / 시라카와 토오루
10. 2의 비극 / 노리츠키 린타로

2권 소개. <프리즌 호텔 가을> 같은 경우 추리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공동 7위라니. 일본은 웬만하면 다 미스터리로 보는 경향이 있으니 주의할지어다. 교고쿠도가 첫 등장하는 <우부메의 여름>도 기묘한 맛이 살아 있는 골 때리는 미스터리다.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야마구치 마사야의 <미스터리즈>.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때는 박하게 평가하더니 이번엔 알아서 조심한 걸까? 2위 <스톡홀름의 밀사>는 <에토로후발 긴급전>에 이어지는 사사키 조 '전쟁 3부작'의 마지막 작품.

●1996年 (1995년 작품)

1. 화이트 아웃 / 신포 유이치 (출간)
2. 강철의 기사 / 후지타 요시나가
3. 에조치 별건 / 후나도 요이치
4. 망량의 상자 / 코고쿠 나츠히코 (출간)
5. 안녕, 긴 잠이여 / 하라 료
6.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 후지와라 이오리 (절판)
7. 스킵 / 기타무라 카오루 (출간)
8. 솔리톤의 악마 / 우메하라 카츠후미
9. 광골의 꿈 / 쿄고쿠 나츠히코 (출간)
10. 패러사이트 이브 / 세나 히데아키 (절판)
10. 천사의 송곳니 / 오사와 아리마사

4편을 우리말로 만나볼 수 있다. 1위 <화이트 아웃>은 영화가 이미지를 버려놨지만, 책은 엄청난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실거리는 모험물의 걸작이다. 그러나 4위에 랭크된 <망량의 상자>만은 못한 작품인 듯한데, 순위가 좀 높은 듯. 9위 <광골의 꿈>까지 교고쿠 나츠히코 작품이라 당시 불었던 교고쿠 신드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두꺼운 책들을 1년에 2권 썼다니 거참...

●1997年 (1996년 작품)

1. 불야성 / 하세 세이슈 (절판)
2. 탈취 / 신포 유이치 (출간 예정)
3. 명탐정의 규칙 / 히가시노 게이고
4. 가모우 저택 사건 / 미야베 미유키 (출간)
5. 바다는 말라 있었다 / 시라카와 토오루
6. 창궁의 묘성 / 아사다 지로 (출간)
7. 텟소의 우리 / 쿄고쿠 나츠히코 (출간 예정)
8. 가족 사냥 / 텐도 아라타 (출간)
9. 눈반딧불이 / 오사와 아리마사
10. 인격 전이 살인 / 니시자와 야스히코

3편을 구할 수 있다. 1위 <불야성>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소설 중 한 권인데, 현재는 구할 수가 없다.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불야성>의 세계는 모든 남자들이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 싶다. 6위 <창궁의 묘성>은 청나라 말기 서태후가 정권을 장악하던 시대를 그리는 역사소설인데 왜 미스터리 랭킹에...읽다가 곁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를 정도로 재미난 소설이니 꼭 읽어보시라.  

●1998年 (1997년 작품)

1. 아웃 / 기리노 나츠오 (출간)
2. 검은 집 / 기시 유스케 (출간)
3. 죽음의 샘 / 미나가와 히로코 (출간)
4. 무당거미의 이유 / 쿄고쿠 나츠히코
5. 진혼가 (레퀴엠) - 불야성2 / 하세 세이슈
6. 신들의 산봉우리 / 유메바쿠라 바쿠 (출간 예정)
7. 웃는 이에몬 / 쿄고쿠 나츠히쿄
8. 도망 / 하키기 호세이
9. 삼월은 붉은 구렁을 / 온다 리쿠 (출간)
10. 빙무 - 신주쿠 상어 (6) / 오사와 아리마사

4권을 만날 수 있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이야 뭐 말하면 입 아픈 걸작이고, 2위 <검은 집>은 책장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듯한 호러소설.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든 적이 있어 많이들 기억하실 듯. 3위 <죽음의 샘>이 또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인데, 안타깝게도 아직 읽지 못했다. 올해 출간된 따끈따끈한 새책이니 많은 관심 부탁. 5위를 차지한 <진혼가(불야성2)>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가 고른 과거 10년 베스트 10 (1998년 10주년 기념)

1.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출간)
2. 화차 / 미야베 미유키 (출간)
3. 다크・콜 / 이나미 이츠라
4. 내가 죽인 소녀 / 하라 료 (출간)
5. 망량의 상자 / 쿄고쿠 나츠히코 (출간)
6. 카게무샤 도쿠가와 이에야스 / 류 케이이치로
7. 하늘 나는 말 / 기타무라 카오루
7. 철학자의 밀실 / 가사이 기요시
9. 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출간 예정)
10. 신주쿠 상어 / 오사와 아리마사 (출간)

과거 베스트 10에서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이 1위다. 출간된 해는 8위 줬으면서ㅎㅎ 이중 읽어본 작품들에서 베스트를 꼽으라면 역시 <화차>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1999年 (1998년 작품)


1. 레이디 조커 / 다카무라 카오루
2. 불타는 땅의 끝에 / 오사카 고
3. 이유 / 미야베 미유키 (출간)
4. 시귀 / 오노 후유미 (절판)
5. 천사의 속삭임 / 기시 유스케 (출간)
6. 환상의 여자 / 카노 료이치
7. 그랜드 미스터리 / 오쿠이즈미 히카루
8. 야마타이코쿠는 어디입니까? / 쿠지라 토이치로
9. 비밀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9. 인랑성의 공포 제4부 완결편 / 니카이도 레이토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히가시노 게이고 비교적 한국 독서계에 뿌리를 내린 세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5위 <천사의 속삭임>은 호러에 가깝고, 9위 <비밀>도 판타지적인 설정이 강하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하다. 요즘은 뜸하지만 이 리스트에서 썼다 하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가 오사카 고, 오사와 아리마사, 후나도 요이치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전부 남성적인 필치의 하드보일드 작가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순위 선정하는 사람들이 남자가 많아서 그런가? 1위에 오른 <레이디 조커>는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으로 이어지는 '고다 형사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역시 죽기 전에 보는 게 소원이다.  

●2000年 (1999년 작품)

1. 영원의 아이 / 텐도 아라타 (재출간 예정)
2. 백야행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3. 망국의 이지스 / 후쿠이 하루토시
4. 배틀 로얄 / 타카미 코슌 (절판)
5. 부드러운 볼 / 기리노 나츠오 (재출간 예정)
6. 보더 라인 / 신포 유이치
7. 최악 / 오쿠타 히데오 (출간)
8. 반상의 적 / 기타무라 카오루
9. 가위남 / 슈노 마사유키 (출간)
10. MISSING / 혼다 타카요시 (출간)

4권 출간. 1위 <영원의 아이>는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이고, <부드러운 볼>이나 <배틀 로얄> <백야행>을 더 높이 평가한다. 2위 <백야행>은 손예진 주연의 영화로 조만간 개봉 예정. 2000년대 들어 일본 추리소설계 제왕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히트작이다. 하위권의 두 작품 <가위남>과 <미싱>은 왜 이 정도밖에 못 올랐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나니 꼭 읽어보시길.

●2001年 (2000년 작품)

1. 기이한 능력의 탐정 소가 카죠 전집 / 아와사카 쓰마오
2. 동기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3. 독수리의 밤 / 오사카 고
4. 올팩트그램 / 이노우에 유메히토
5. 시조새 기(記) / 이지마 카즈이치
6. 코끼리와 귀울음  / 온다 리쿠 (출간)
6. 무지개 골짜기의 5월 / 후네도 요이치 (출간)
8. 의존 / 니시자와 야스히코
9. 증거 A / 타지마 토시유키
10. 강의 깊이는 / 후쿠이 하루토시  

3권 출간. 1위에 등극한 아와사카 쓰마오는 1970년대부터 활동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작년에 별세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가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2위 <동기>는 본인이 미래의 거장(아니, 이미 거장이다)으로 꼽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명단편집으로 그는 먼 훗날 마쓰모토 세이초 못지않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작품을 써야 하겠지만). 공동 6위 <코끼리의 귀울음>과 <무지개 골짜기의 5월> 모두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수준은 아니다.

●2002年 (2001년 작품)

1. 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출간)
2. 방해자 / 오쿠다 히데오 (출간)
3. 미스터리 오페라 / 야마다 마사키 (출간 예정)
4. 스팀 타이거의 죽음의 질주 / 카스미 류이치
5. 초・살인 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6. 어둠 속 안내인 / 오사와 아리마사
7. 텐구미사키 살인 사건 / 야마다 후타로
8. 13계단 / 타카노 카즈아키 (출간)
8. 연기, 흙, 혹은 먹이 / 마이조 오타로 (출간)
10. 파트너를 조심하라 / 오사카 고

4편 출간. 1위와 2위가 바뀌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도 대단하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가 더 압도적이고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시덥잖은 중소기업의 방화 사건이 어떻게 확대되는지 묘사하는 <방해자>는 모든 페이지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공동 8위를 차지한 <13계단>과 <연기, 흙, 혹은 먹이>. 국내에서 꽤 인기를 모은 <13계단>도 상당히 잘 썼지만, 마이조 오타로의 현기증 날 정도로 도발적이고 강렬한 <연기, 흙, 혹은 먹이>를 더 좋아한다.  

●2003年 (2002년 작품)

1. 사라진 이틀 (*한오치)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2. GOTH / 오츠 이치 (출간)
3. 기이한 만남 / 야마구치 마사야
4. 모래의 사냥꾼 / 오사와 아리마사
5. 하얼빈·카페 / 우치우미 분조
6. 열여덟의 여름 / 미츠하라 유리 (출간)
7. 인간 동물원 / 렌죠 미키히코
8. 론도 / 카라사와 히토시
8. 그랑기뇰 성 / 아시베 타쿠
10. 오이디푸스 증후군 / 카사이 키요시  

3편 출간. 웬만해서는 남의 순위 같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만, <사라진 이틀>은 1위감이 아니다.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건 알지만, 억지 감동이 너무 심한 작품이라 읽고 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2위에 그친 <고쓰>가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 믿는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고쓰>는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지 원...6위 <열여덟의 여름>은 렌조 미키히코의 걸작 단편집 <연문>의 분위기나 작법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참고한 듯해 좋아하지 않는다.  

●2004年 (2003년 작품)

1.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출간)
2. 종전의 로렐라이 / 후쿠이 하루토시
3. 중력 삐에로 / 이사카 코타로 (출간)
4. 제3의 시효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5. 그로테스크 / 키리노 나츠오 (출간)
6.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이사카 코타로 (출간)
7. 클라이머즈 하이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8. 달의 문 / 이시모치 아사미 (출간)
9. 별똥별과 놀던 무렵 / 렌죠 미키히코
10. 와일드 소울 / 카키네 료스케 (출간)

이 해에는 무슨 일이...8편이나 출간되었다. 깜찍한 서술 트릭이 인상 깊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1위다. 처음 만나본 서술 트릭이라 얼마나 무릎을 치며 웃었는지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3위 <중력 삐에로>는 이사카 코타로의 방방 뛰는 재기가 느껴지고, 4위 <제3의 시효>도 요코야마 히데오 경찰소설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알게 해주는 수작. 5위 <그로테스크>는 요사스런 분위기와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보고 나서 한 달간은 찝찝해지는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다. 최근 출간된 8위 <달의 문>도 두 손가락을 전부 치켜들 순 없지만 볼 만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많아 괜히 반갑군.

●2005年 (2004년 작품)

1. 방금 베어낸 목에게 물어봐 / 노리츠키 린타로 (출간 예정)
2.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이사카 코타로 (출간)
3. 아마기 하지메의 밀실 범죄학 과정 / 아마기 하지메
4. THE WRONG GODDBYE / 하야기 토시히코
5. 은륜의 패자 / 사이토 쥰
6. 유리 망치 / 기시 유스케 (출간)
7. 암흑관의 살인 / 아야쓰지 유키토 (출간)
8. 범인에게 고한다 / 시즈쿠이 슈스케 (출간)
9. 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출간)
10. 홍루몽 살인사건 / 아시베 타쿠 (출간)

6권 출간. 1위에 오른 노리즈키 린타로 작품은 바로 다음 달에 만나볼 수 있으니 패스. 6위와 7위, <유리 망치>와 <암흑관의 살인>이 죄다 아쉬운 구석들이 많은 작품들이라 2004년은 좀 흉작이었던 것 같다. 고전 <홍루몽>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10위 <홍루몽 살인사건>은 즐거웠으나 패러디에 가까워 이 책 자체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 차라리 8위 <범인에게 고한다>가 시원한 맛과 더불어 집중력이 있었던 것 같다.

●2006年 (2005년 작품)

1.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2.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출간)
3. 진도0 / 요코야마 히데오
4. 어리석은 놈은 죽어야 한다 / 하라 료
5. 신 게임 / 마야 유타카
6. 시리우스의 길 / 후지와라 이오리
7. 벨카, 짖지 않는가 / 후루카와 히데오 (출간)
8. 개는 어디야 / 요네자와 호노부
8. 시마자키 경부의 알리바이 사건부 / 아마기 하지메
10. 노래하는 경관 / 사사키 죠
10. 마지막 소원 / 미츠하라 유리  

3권 출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슈퍼 베스트셀러 <용의자 X의 헌신>이 1위다. 게이고 본인으로서는 나오키 상도 타고, 영화화 되면서 판권 수익도 쏠쏠하게 벌어준 잊지 못할 작품이 될 터. 2위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비슷하게 한 천재가 살인 사건을 은폐하면 다른 천재가 그걸 파헤치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솔직히 말해 1, 2위 작품 둘다 아쉬운 구석이 제법 있다.  

●2007年 (2006년 작품)

1.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히라야마 유메아키 (출간)
2. 제복수사 / 사사키 조
3. 섀도우 / 미치오 슈스케 (출간)
4. 낭화 - 신주쿠 상어 (9) - 오사와 아리마사
5. 총과 초콜릿 / 오츠 이치
6. 이름없는 독 / 미야베 미유키 (출간)
7. 제물의 야회 / 가노 료이치 (출간)
8. 괴도 그리핀 절체절명 / 노리즈키 린타로
9. 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출간)
10.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출간)
10. 데드 라인 / 타데쿠라 케이스케

6권 출간. 내가 진짜 웬만하면 남의 순위 가지고 시비 안 걸지만 2007년이 최악인 것 같다. 1위를 차지한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과대평가 중에서도 최고를 달린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은 아니고, 엽기 잔혹동화에 가까운데 뭐가 뛰어난지 아무리 봐도 도통 모르겠다. 작품의 수위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이 책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그보다는 뒤가 뻔히 짐작되는 기계적인 진행과 평범한 상상력이 문제다. 이 작가에게서는 전혀 반짝이는 걸 찾을 수 없다. 미치오 슈스케의 3위 <섀도우>보다는 최근 읽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더 좋은 작품인 듯하고, <제물의 야회>도 그저 그랬다. 10위에 턱걸이한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을 가장 재미나게 읽은 내가 이상한가...

●2008年 (2007년 작품)

1. 경관의 피 / 사사키 조 (출간)
2. 아카쿠치바 전설 / 사쿠라바 가즈키 (출간)
3. 여왕국의 성 / 아리스가와 아리스
4. 과단 / 곤노 빈
5. 잘린 머리와 같은 재앙 / 미쓰다 신조 (출간 예정)
6. 떠나간 집 / 야마자와 하루오
7. 새크리파이스 / 곤도 후미에 (출간)
8. 낙원 / 미야베 미유키 (출간)
9. 석양은 돌아온다 / 가스미 류이치
10.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출간)
10. X교 부근 / 高城 高

5권 출간. 1위 <경관의 피>는 장쾌하게 시작한 데 비해 뒤로 갈수록 흥이 떨어진다. 1940년대부터 현대까지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줄거리가 일본인들에게 먹혔을 뿐, 우리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은 아니다. 추리소설은 아니라지만 만장일치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2위 <아카쿠치바 전설>은 아직 못 봤다. 어서 읽어야 할 텐데...3위에 오른 '학생 아리스 시리즈' 제4작 <여왕국의 성>과 4위 <과단>이 가장 궁금하다. <과단>의 전편 <은폐수사>는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7위 <새크리파이스>와 공동 10위 중 한 작품인 <인사이트 밀>도 재미 보장한다.

●2009年 (2008년 작품)

1. 골든 슬럼버 / 이사카 고타로 (출간)
2. 조커 게임 / 야나기 코지
3. 완전연애 / 마키 사츠지
4. 고백 / 미나토 가나에 (출간)
5. 신세계에서 / 기시 유스케 (출간)
6. 까마귀의 엄지손가락 / 미치오 슈스케
7. 흑백합 / 다지마 도시유키 (출간 예정)
8. 산마와 같이 비웃는 것 / 미쓰다 신조
9. 디스코 탐정 수요일 / 마이조 오타로
10. 래트맨 / 미치오 슈스케

3권 출간. 작년에 평이 대대적으로 좋았던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가 1위다. 아직 안 읽은 게 원통할 뿐이다. 4위 <고백>이 최근 국내 서점가에서 돌풍을 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탁월한 재미를 높이 산다. 메시지나 사회파적 장치 운운하면서 굳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려 하는 의견에는 반대다. 철저한 장르소설로서 '단지' 재미만 있었다. 3위 <완전 연애>가 꼭 보고 싶고, 은근히 편애하는 마이조 오타로의 작품도 마찬가지. 두 작품이나 랭크시킨 미치오 슈스케도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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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1-2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주쿠 상어'를 작년말 일미문 모임에 책나누기 하러 가져갔는데, 표지가 그래서인지, 아무도 안 가져가더라는;; 마지막에 떨이로 누가 마지못해 가져갔지 말입니다. ㅎ

jedai2000 2009-11-2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새로 나온 책 말씀이세요? 아니면 구판? 둘다 표지가 선뜻 손에 잡기에는 초큼 그렇죠ㅎㅎ 비록 떨이로 가져가셨지만 분명 재미있게 보셨을 겁니다^^

카스피 2009-11-21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료내요^^ 감사합니다.

jedai2000 2009-11-2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피님...조만간 해외편도 올릴 거랍니다^^
 

오늘 날짜는 10월 30일인데 9월달 걸 쓰고 있네요. 저번 달의 미스터리로 제목을 바꿔야 할까요-_-;;

  




 

 

 

 

 

 <몽키스 레인코트 - 로버트 크레이스>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의 사립탐정 콤비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유쾌한 재담꾼 엘비스의 자잘한 유머와 과묵하지만 속정 깊은 조의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이 어우러지며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실패한 할리우드 에이전트 남편의 실종을 조사해달라는 아내의 평범한 의뢰의 배후에 지하 세계의 거물이 있다는 플롯은 닳고 닳은 감이 있을 정도로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1987년에 나온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던 미국 미스터리 스릴러들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주인공이 베트남전 경험자가 많고, 가라테나 태극권, 태권도 등 동양무술을 제법 할 줄 안다는 것도 그렇다. 이렇다 보니 필연적으로 당시의 탐정은 범인을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부 적들을 직접 때려눕히는 액션의 대가들이다. 폭력적인 탐정을 등장시켜 큰 성공을 거둔 미키 스필레인을 벤치마킹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영화판에서 거액의 판권을 얻어내기 위해서? 흥행 영화는 아무래도 액션을 중시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몽키스 레인코트>가 <람보>풍의 무뇌아 액션 스릴러에 그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리쎌 웨폰> 1편을 떠올리게 하는 화끈한 액션이 있지만 탐정 엘비스 콜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사건을 술술 풀어가는 재미도 충분하다. 볼 만한 작품.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쓰하라 야스미>

사립 루피너스 학원에 재학중인 4명의 남녀 학생이 난해한 살인사건을 잇달아 해결하는 <루피너스 탐정단의 당혹>의 속편이다. 전편을 처음 읽어 내려갈 때 등장인물의 면면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마치 순정만화나 소녀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갈수록 아, 이거 장난이 아닌데 했다. 생각보다 기발한 트릭과 독특한 맛이 있는 뛰어난 단편 추리소설집이었던 것이다. 비범한 추리력으로 경찰 언니를 도와(대부분 자의는 아니지만) 많은 사건을 해결한 아오우 사이코, 짧은 머리에 선머슴 같은 성격의 키리에, 요즘 말로 하면 된장녀라 할 만한 미소녀 마야, 그리고 아오우가 짝사랑하는 화석 마니아 샌님 시지마가 루피너스 탐정단으로 뭉쳐 3개의 사건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는 건 무척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 같은 독자가 많아서일까. 작가는 전편 출간 이후 10년도 더 지난 2007년에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라는 속편을 써냈다. 놀랍게도 시작부터 루피너스 탐정단의 멤버 한 명이 사망한다. 졸업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던 탐정단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장례식에 모여, 그가 남긴 마지막 비밀을 풀기로 한다. 모두 네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전편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다만 영원할 것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풋풋한 루피너스 탐정단이 모두 성인이 되어 느끼는 소회, 그리고 그중 한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 등이 아프게 그려져 잊을 수 없는 감흥을 준다. 루피너스 탐정단의 졸업식이 거행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숫제 펑펑 울었다. 루피너스 시리즈에서는 순정만화 같은 작풍을 선보였지만 실제로 작가 쓰하라 야스미는 징그러운 남자고, 특유의 탐미주의 스타일이 인상 깊은 환상소설, 호러소설 계열의 1인자다. 루피너스 시리즈도 꼭 만나보시길.
 



 

 

 

 

 

 

<항설백물어 - 교고쿠 나츠히코>

'교고쿠도 시리즈'로 유명한 교고쿠 나츠히코의 연작 단편집이다. <항설백물어>라는 다소 어려운 원제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풀어보면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고 한다. 시리즈화를 즐기는 작가답게 <항설백물어>도 <속 항설백물어>, <후 항설백물어>라는 속편들이 나왔고, 이중 <후 항설백물어>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교고쿠 나츠히코는 일본 전통 요괴를 소재로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과연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무수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다만 이 작품의 주제는 '이 세상에 진정 이상한 일은 없다'는 것이기에, 진짜 요괴는 나오지 않고 요괴보다 더 무섭고 어두운 인간의 마음에 포커스를 맞췄다. 스님으로 둔갑해 50년 동안 사람을 속인 여우, 주인에게 잡아먹히고 매일같이 집을 찾는 말의 영혼 등 예부터 일본에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을 재해석하고 현대적인 맛을 가미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이 모든 기묘한 사건의 뒤에 늘 에도시대판 해결사들이 숨어 있고, 그들이 가짜 요괴를 동원해 진짜 악인을 파멸시킨다는 대강의 내용이 대동소이해 읽다 보면 금방 질리는 단점이 있다. 적어도 교고쿠 나츠히코 풍 추리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수상한 사람들 - 히가시노 게이고>

매달 쏟아져 나오지만 안 보면 왠지 섭섭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게이고는 25년 경력의 작가생활 동안 거의 70편에 달하는 소설을 쓴 책공장이라 작품의 편차가 제법 있는 편이다.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후로는 어느 정도 진지한 작가 이미지도 굳히고 퀄리티 관리도 좀 하는 모양인지, 특별히 수준 미달의 작품은 없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그의 작풍이 완성되기 전인 초년병 시절의 작품들은 이미 게이고의 손을 떠난 화살. 그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이다. 일본처럼 그의 작품을 데뷔작부터 순차적으로 감상한 경우라면, 이 작가가 점점 성장하는구나 하며 기쁜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읽어나가겠지만, 1980년대부터 2009년까지의 작품이 순서없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의 실정은 온전한 게이고 읽기에 약간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초기에 쓴 몇몇 졸작을 읽고 현재의 작품까지 무시하거나 하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작가는 언제나 가장 최근에 쓴 소설로 평가받는 직업이다. 예전에 좋은 작품을 썼다고 지금의 형편없는 작품도 옹호해줘서는 곤란하듯이, 과거에 쓴 몇몇 졸작 때문에 더 발전한 현재의 수작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감이지만 <수상한 사람들>은 초기의 형편없는 작품군에 들어간다. 

 


 

 

 

 

 

 

 

<12인 12색 - 신재형 外>

함부로 평가하기 난감한 한국 추리소설가들의 작품집이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기획에 참여해 한국 추리소설의 질적 저하에 기여한 전과가 있기에 특히 그렇다.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참여한 단편집의 판매 수치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것. 우리 독자들은 여전히 우리 작가가 쓴 추리소설을 기다리고 있구나, 수준 높은 작품만 나오면 언제든 책을 사줄 용의가 있구나 하는 기분 좋은 확신을 얻었다. 감히 <12인 12색>의 작가들도 이러한 독자들의 욕구를 기억하고 더 정진해 좋은 작품으로 두루 사랑받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굳이 말해 이 작품집에서 읽기 괜찮았던 작품들은, '마지막 장난', '안락사', '글월비자', '반지하', '의식은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도를 꼽고 싶다. 그렇지 않은 작품들까지 거론해 열심히 노력한 작가분들을 신경질나게 하는 건 원치 않는다. '마지막 장난'은 장난에 목숨거는 세 대학생이 끔찍한 결과에 맞닥뜨린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운데 비해 세세한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점(잠겨 있을 게 분명한 시체 보관실과 별장가의 빈집은 어떻게 들어갔는가 하는 등의 설명이 없다)에서 머리로만 쓴 느낌을 받았고, '안락사'는 무난하지만 쉽게 짐작 가능한 결말이 아쉽다. '글월비자'의 산뜻한 결말은 높이 평가할 만한데,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단순하다. '반지하'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잘쓴 환상소설에 가깝고, 알프레드 베스터의 초능력 SF를 연상케 하는 '의식은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문장을 좀더 다듬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자기 머리도 못 깎으면서 남의 머리를 지나치게 지적한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렇다. 참여한 모든 작가분들의 건필을 기원하며 이만 마무리하는 수밖에.
 



 

 

 

 

 

 

<졸업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가가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뛰어난 추리력 못지않게 인간적인 성품이 매력적인 가가 형사 시리즈는 현재까지 총 7편이 나왔고, 올해 국내에서도 모두 완간되어 추리소설 팬에겐 큰 기쁨이 되고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대학 졸업반인 가가 교이치로가 단짝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졸업>부터,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민완 형사로 활약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최신작 <붉은 손가락>까지 작가와 함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게이고의 대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포와로, 코넌 도일에게 홈스라면,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는 가가 교이치로라는 말이다. <방과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타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듬해 내놓은 작품이니 게이고도 '소포모어 징크스'를 어느 정도는 걱정했을 텐데, 전작보다 훨씬 뛰어난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기에 괜한 걱정에 불과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초기 스타일인 학원물+물리트릭의 공식을 아예 극한까지 밀어붙여 대성공을 이룬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작품의 핵심 미스터리는 잠긴 문의 열쇠 트릭과 '설월화'라는 복잡한 일본 다도의 법칙을 이용한 독살 트릭 두 가지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첨단 신소재에 대한 지식에 어두운 사람이라면 알 길이 없는데다, 좀 황당하다. 그러나 20장 가까운 설명 그림까지 동원하는 두 번째 독살 트릭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냈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니 꼭 직접 확인해보시길. 트릭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수많은 그림을 비롯해 상황 설명이 끝없이 계속되지만 꼼꼼하게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코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남겨진 자들 - 제프리 디버>

스릴러의 장인, 제프리 디버가 오랜만에 시리즈 외의 작품으로 돌아왔다. 최근 몇 년 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법과학자 링컨 라임 시리즈와, 용의자가 무심코 한 동작을 읽어내 그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채는 심리분석 전문가 캐서린 댄스 시리즈만을 번갈아 집필하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시리즈물은 매력적인 주인공을 계속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앞으로 계속될 시리즈를 위해 주인공이 어떠한 위기에 빠져도 결코 죽을 리 없으니 그만큼 긴장감이 덜하다는 단점도 아울러 있는 것 같다. 디버도 이 함정을 생각하고 간만에 새로운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써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한 게 아닐까. 끝간 데 없이 광활한 숲이 계속되는 위스콘신의 별장지대. 어느 부부가 주말을 보내기 위해 자신들의 별장을 찾는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총을 든 두 명의 킬러가 별장에 찾아왔고 부부는 킬러들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그러나 부부는 죽기 전에 911에 신고 전화를 걸어둔 상태. 확인 차원에서 별장을 방문한 지역의 여경 브린은 끔찍한 살해 현장을 목도하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킬러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본 브린을 살려둘 수 없었으니, 이리하여 생사를 건 추적 게임이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두 킬러와, 브린 그리고 킬러들의 손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부부의 친구가 2대2로 편을 이뤄 거대한 숲속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펼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킬러들이 머리를 짜내 브린 일행을 잡으려는 시도를 하는 챕터가 끝나면, 바로 다음 장에서 기발한 방법으로 반격을 가하는 브린 일행의 모습이 이어지는 식이다. 체스 게임처럼 온 힘을 다해 서로의 지략을 겨루는 흥미로운 협동 플레이라고 할까. 이번엔 디버가 전형적인 Cat & Mouse Game을 썼구나, 생각할 때쯤, 전매특허인 반전이 등장한다. 아아, 이번에도 당했구나, 무릎을 칠 새도 없이 연속으로 터지는 반전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페이지의 끝이었다. 이번 핵심 반전의 특징은 'how'나 'what'이 아닌 'why'라는 것을 힌트로 염두해두시길. 핵심 반전이 나오고도 페이지가 150쪽 이상 이어져 힘이 떨어지지 않겠나 싶었지만, 악한인 줄 알았던 인물이 사실은 선인이었다는 식의 디버가 자주 구사하는 자잘한 반전들과 함께 이 범행을 왜(why) 했나를 밝혀나가는 과정이 이어져 끝까지 흥미진진했다. 제프리 디버, 이쯤 되면 진짜 신들린 반전 제조기라고 불러주고 싶다.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의 샘을 자랑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스릴러 마스터의 작품을 9월의 미스터리로 선정한다.  




20009년 9월의 미스터리: <남겨진 자들 - 제프리 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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