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마침내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이 출간되었다. 1989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현재까지 일본 추리소설 사상 최고 걸작 중 한 편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199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가 뽑은 과거 10년간 베스트 1위, 1988-2008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는 2위(1위는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도쿄 쇼겐샤 선정 본격 추리소설 100선에서도 당당 1위를 기록, 타이틀 만으로는 국가대표급 추리소설이라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의 출간에 약간 관여한 바가 있어, 과연 어떠한 작품일까 엄청 큰 기대를 하며 읽었다. 670쪽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의 책이라 며칠 시간은 걸렸지만, 다행히 만족스런 기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고 명성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기분 좋은 결론을 내렸다.

 

무대는 미국 뉴잉글랜드 시골 마을이다. 일본 작가가 쓴 작품이지만 주인공이자 탐정역, 그리고 시체역을 맡은 그린이 일본인 혼혈아일 뿐 등장인물은 전원 미국인. 이름만 들어도 으스스한 '툼스빌' 마을의 스마일 공동묘지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거대 공동묘지의 소유주이자 대를 이은 장의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발리콘 가문의 수장 스마일리는 병에 걸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두 번의 결혼으로 얻은 자식들은 모두 여섯 명. 이들 중 사고나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사망한 자식들을 제외하면 유산의 상속권자는 총 다섯 명이고, 스마일리 발리콘의 손자인 펑크족 청년 그린에게도 권리가 있다. 이제 추리소설의 필수 공식 중 하나인 유산을 둘러싼 반목과 유언장 공개 등이 수순대로 일어나는데, 홍차를 마시는 다과회 자리에서 스마일리는 자신에게 선물로 들어온 초콜릿을 먹기 싫다며 그린에게 준다. 자기 방에 누워 빈둥대다 초콜릿을 먹은 그린은 아뿔싸, 죽음에 이르게 된다. 초콜릿에 맹독인 비소가 들어 있던 것이다!

 

주인공이 죽었으니 이야기가 끝이 나나? 생각하겠지만 남은 페이지는 아직도 500쪽.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하고 분개하지 마시라. 본인이 한 가지 중요한 설명을 빠뜨렸으니까. 이 작품의 프롤로그에 나온 대로, 최근 미국에서는 시체가 되살아나는 기이한 일들이 연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린은 미국 사회를 충격에 던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 부활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등장인물 중 하나인 사학(死學) 전문가 허스 박사의 입을 통해 다양한 가설이 소개되긴 하지만 누구도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린을 보면 알 수 있듯 분명 호흡도, 맥박도, 땀도 흘리지 않는 시체가 되살아나는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린은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된 억울함과 분노를 풀기 위해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려 한다. 일체의 생명 활동을 하지 못하므로 피나 살이 곧 썩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는 혈액을 방부제로 교체하고, 변색되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해 '시체'라는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고 탐정 활동에 돌입한다. 그러나 발리콘 일족들에게 제2, 제3의 죽음이 연속되면서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마냥 모든 진실은 아리송해질 따름이다.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제목 자체가 통째로 아이러니다. 시체가 살아 있다니, 거기다 그 살아 있는 시체가 또 죽다니 하고 의아해지는 게 당연한 제목이지만 책을 다 읽으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일종의 좀비가 나오는 소설이라 혹시 호러소설이나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추리소설, 그것도 독자와의 치열한 두뇌싸움과 아귀가 딱딱 맞는 논리로 충만한 본격 추리소설이다. 비록 비현실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기묘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지만 어디에도 반칙은 없다. 세세한 설정 하나까지 전부 사전에 설명되고, 도처에 복선이 가득해 반드시 꼼꼼이 읽어야 한다. 끝까지 읽고, '작가에게 당했다!'는 말은 나올지언정 결코 '작가에게 속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맨 나중에 '살아 있는 시체'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범행 현장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다는 게 밝혀지거나 하는 식이 절대 아니다. 주인공 그린이 '살아 있는 시체'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린의 경우를 통해 '살아 있는 시체'의 능력이나 심정, 행동 원리 등을 철저히 분석할 수 있다. 작가가 손에 쥔 카드를 완전히 공개하는 셈인데, 여기 어디에 반칙이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규칙만 확실하고 공정하게 지정해주면 가령 절대 죽지 않는 그리스 신들의 살신(殺神) 사건 같은 것도 충분히 추리소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량의 압박이 제법 있지만, 넘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이나 언어유희, 재기 넘치는 그린과 여주인공 체셔의 대거리 등의 유머가 풍부해 지루하지 않고 술술 잘도 넘어간다. 본격 추리소설답게 탐정이 모든 용의자들을 모아놓고 '폭로쇼'를 벌이는 장면도 두 번이나 나온다(민완경감이 탐정이 되어 진행한 첫 번째 폭로쇼는 대참패로 끝나지만).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결말도 너 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현실에 치중하는 영미권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진행하는 작품이 많은 현재 일본 추리소설의 개성을 확립한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다. 특히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역시 교고쿠의 작품들처럼 분량도 제법 되고, 개성 강한 등장인물이 나오며, 은근한 유머는 물론 사학, 미국식 장례식, 엠바밍 등의 잡지식으로 넘쳐나는 걸 보고 그리 생각해보았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나라에 소개된 타이밍이 조금 늦은 감이 있어, 오히려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 할 후배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만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1989년작이라는 출간 시기를 감안해보면 작품의 크리에이티브가 얼마나 뛰어났는지에 대해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시체가 되살아나는 불가해한 '매직'을 철저한 '로직'으로 풀어내는 본격 추리소설의 명편,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일본 추리소설의 한 경향을 만든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의 진면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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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1-2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요? 몰랐네요 함 읽어봐야겠어요

jedai2000 2009-11-28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그냥 제 생각일 뿐이예요ㅠ.ㅠ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는데, 좀 길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는 확실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