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크라임스
조지프 파인더 지음, 이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유명한 미국 스릴러 작가 조지프 파인더의 98년작 <하이 크라임스>를 읽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애슐러 저드와 모건 프리먼 주연으로 2002년에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또다른 유명 스릴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키스 더 걸스>에서도 콤비를 이룬 적이 있습니다. 영화는 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 없는 게 유감이지만, 뭐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이니까요.

 

성공한 하버드 법대 교수 클레어는 투자 회사의 CEO인 남편 톰, 귀여운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을 정도의 행복한 날들은 어느날 무참히 산산조각나고 맙니다. 남편 톰이 경찰에 살인죄로 체포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만해도 충격적인데 드러난 남편의 과거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전직 특수부대출신인 남편이 남미에서 작전 수행 중 사악한 광기를 드러내며 민간인 87명을 사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모든 사건이 조작되었으며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라고 항변합니다.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클레어는 남편을 변호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남편 톰이 받아야하는건 다름아닌 군사재판. 상식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권위적인 군사재판에서 민간인이, 그것도 군대에서 약자나 다름없는 여성 변호사인 클레어 교수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법정소설에 가깝습니다. 중반부터 끝날 때까지 군사법정 아래에서의 클레어와 군 검찰관 사이의 공방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군 기관에 맞서 클레어는 군 출신의 유능한 흑인 변호사 그라임스, 사립 탐정 데브르, 신참내기 변호사 엠브리와 한 팀을 이룹니다. 가끔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무고한 자를 구한다는 신념으로 증거를 모으고, 온갖 불리한 조건에서도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그들의 모습이 멋지게 묘사됩니다. 클레어 측에서 군 검찰관이 들고나오는 증거나 증인들을 면밀한 세부조사로 무너뜨리면, 더 강한 증인이 나옵니다. 클레어 측은 다시 곤란에 빠지고 또 머리를 짜내 허점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구도가 계속 반복되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일단 한 번 잡으면 반드시 끝을 보실거라 확신합니다. 페이지가 쉴새없이 넘어가는 소설을 영어로는'페이지 터너page-turner'라고 한다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최고의 페이지 터너입니다. 

 

또한 조지프 파인더는 정통 스릴러 작가답게 스릴과 서스펜스 창조에 능합니다. 일개 민간인들이 정부의 비밀 은폐 공작을 파고들자 그들은 실력 행사로 응수합니다. 군인이야 사람 죽이는 게 하는 일인데 민간인들 몇 명 제거하기가 얼마나 쉽겠습니까. 시종 계란으로 바위치는 상황이므로, 벼랑 끝까지 몰리는 주인공들(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립니다.)의 처지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마침내 손톱을 쥐어뜯게 만드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1958년생인 작가 조지프 파인더는 약력을 읽어보니 정부기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CIA나 군대의 첩보부 등의 일하는 방식을 정확하게 묘사하더군요. 이 작품에도 과거에 있었던 학살을 미끼로 권력 투쟁을 벌이는 미국내 유력기관들의 모습이 숨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한 번 잡고는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지만 결말에서는 살짝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지나친 반전강박증인데요. 요즘 나오는 미국 스릴러 소설에서는 막판뒤집기를 굉장히 선호해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반전이 등장합니다. 천편일률적인 반전이 작품마다 등장하니 오히려 시작부터 누가 범인인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뻔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사건이 끝나고도 두 번의 반전이 등장하는데, 한 번으로도 족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용기있는 스릴러 작가가 반전이 없는 게 오히려 반전인 작품을 그려봤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은 재생지 비슷한 지질에 미국의 페이퍼백 형태를 흉내내서 만든 것 같습니다. 분량에 비해 가격도 싸고, 인터넷 서점의 할인률까지 적용받으면 제법 페이퍼백 기분이 납니다. 미국의 페이퍼백 스릴러 시장을 흉내낸 이런 시도도 괜찮은 것 같은데 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별점: ★★★★

 


p.s/ 본문 시작 전에 '작가의 말'이 있는데 절대로 먼저 읽지 마세요. 중요한 스포일러 하나가 작가의 입을 통해 등장합니다. 저도 당했습니다. 본문이 끝나고 작가의 말을 읽는게 순서일텐데 왜 편집을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네요.

 

 




 
영화 <하이 크라임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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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0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이거 선물 받고 여직도 못 읽었네요 ㅠ.ㅠ

jedai2000 2006-03-0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3월달에는 꼭 읽어보세요. ^^;;

한솔로 2006-03-0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력한 푸싱이군요. 우선 장바구니로ㅎㅎ

jedai2000 2006-03-02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식 군대(?)를 다녀오지 못해서 군대 내부의 질서를 잘 모릅니다만, 한솔로님께서는 폐부 깊숙한 곳에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솔로 2006-03-0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간만 길었지 허투루 군생활을 해서리...

panda78 2006-03-0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본 것이 안타깝네요. ^^;

jedai2000 2006-03-0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그러셨군요..^^;; 그래도 군대 문화에 관한 내용이 많아 재미있으실 듯 합니다.

판다78님...아쉽네요. 꽤 재미있는 책인데. 영화보다는 소설이 훨씬 낫다는 게 중론입니다.
 
스트로보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민서각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 전에 영화화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화이트 아웃>의 원작자, 심포 유이치의 작품 <스트로보>가 출간되었습니다. 사진가가 주인공이고, 사진을 소재로 한 다섯 편의 연작 단편을 모은 단편집인데 재미있는 시도가 있습니다. 사진가가 쉰살이 되는 첫 번째 단편부터 시작해 마흔 두살, 서른 일곱 살의 모습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사랑한 우리 영화 <박하사탕>과 비슷한 구조로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각 단편의 제목을 소개해 드리면...

제5장 영정| 50세

제4장 암실 | 42세

제3장 스트로보 | 37세

제2장 한순간 | 31세

제1장 졸업 사진 | 22세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소재로 한 단편집이라 읽으면서 그동안 찍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아르바이트한 돈을 탈탈 털어 무려 비행기를 타고 강릉에 놀러갔다가 돈이 떨어져 비참한 2박3일을 보냈던 일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강릉 바다만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낡이 밝아 해가 떴습니다. 모두 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하고 그 감흥에 빠져 있었는데 마침 뒤에 있던 친구 녀석 하나가 해를 바라보는 우리 일행의 뒷모습을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사진은 찬란한 아침 해를 보며 저 높이 떠오르는 붉은 태양처럼 희망찬 미래를 다짐하는 남자들의 뒷모습이 멋지게 담겨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사진 몇 장쯤은 찍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가도 사진은 남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가끔 흐뭇하게 미소짓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지요. 그러고 보면 오래된 앨범 속에 꽂혀 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스트로보>에도 그런 감동이 있었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핵심이 되는 사진 한 장이 있고, 그 사진에 담긴 비밀이 풀리는 결말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눈에 저도 모르게 고이게 되더군요. 작가인 심포 유이치가 가장 신경쓴 부분은 역시 감동과 재미인 것 같습니다. 매 에피소드마다 사진을 매개로 한 감동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동은 억지스럽거나 과장되지 않은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감동입니다. 더 파고들면 눈물의 홍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만한 장면에서도 작가는 살짝 멈추고 숨을 고릅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사진 한 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설교조나 가르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도 않고요. 사진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소품의 느낌이 나지만 사실 소설(小說)은 소설이지 대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가 좋습니다. 섭씨 100도로 들끓는 작품이 아닌 인간의 체온과 같은 섭씨 36.5도 정도의 따스하고 안온한 기분이 드는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소설가로 유명한 작가답게 미스터리적인 재미를 주는데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각 단편들은 모두 일정한 미스터리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 사진으로 일가를 이룬 주인공의 사진 선배가 어느 순간부터 여자를 찍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주인공과 독자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이 작품에는 그런 일상사의 미스터리에도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직접 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네요.

 

또한 다섯 장면에는 모두 일종의 수수께끼를 설정해보았습니다. 다만 무엇이 사라졌다거나, 누가 수상한 인물인가 하는 그런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살인이나 불가사의한 사건을 만나게 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이상하게 보였던 사람의 행동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 이면에 그 사람의 숨은 본심이 드러나게 되는 경우도. 시각을 바꾸면 이런 상황들은 충분히 미스터리로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가장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무리 없는 미스터리가 되는 게 아닐까.

 

살인이나 실종 등의 범죄가 나와야만 미스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불가해한 것은 사람이 아닐까, 그런 불가해한 사람과 불가해한 행동을 그려보는 것도 좋은 미스터리가 될 수 있다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갑니다.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라 누가 보셔도 크게 후회하지 않을 연작 단편집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위에 적은 것 같은, 남들이 들으면 하나도 재미없지만 저에게는 큰 의미로 남아있던 사진에 대한 기억까지 떠오르게 만든 잊지 못할 작품이었습니다. <스트로보>를 읽고 옷장 깊숙한 곳에 쳐박아 두었던 앨범의 먼지를 탈탈 털고 지난 추억에 잠겨보시는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이란 참 좋은 거예요."

히로에가 사이드보드 쪽을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구로베가 글라스를 손에 든 채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바로 그리운 옛날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걸."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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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조각상의 그림자 - 상 - 로마의 명탐정 팔코 2 밀리언셀러 클럽 23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는 전편 <실버 피그>에 이은 로마 시대 탐정 팔코 시리즈의 제2작이다. 큰 기대를 안고 <실버 피그>를 보았지만 약간 실망했는데, 이번 작품은 전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실버 피그>나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나 추리적인 요소는 사실 약한 편이다. 그럴싸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치도 못했던 의외의 범인이 나오지도 않으며, 반전이 탁월하지도 않다. 다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시대 로마의 생활상이나 재치꾼 팔코의 재담, 될듯 말듯 아슬아슬한 로맨스 등의 요소가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추리소설로서의 기대를 조금 낮추고, 그냥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대중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꽤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다.

 

로렌스 샌더스의 <맥널리 시리즈>도 사실 추리적 재미는 적은 편이지만 작가 특유의 유머와 느긋한 분위기에 취해 만족스런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린지 데이비스의 팔코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라고 조언하고 싶다. 우물에서 숭늉 내놓으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책에서 부족한 부분만 너무 트집잡지 말고 작가가 신경쓴 다른 재미를 찾아 보시라는 부탁을 드리는 바이다. 또한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는 전편에서 다뤘던 사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간적 배경도 전편의 열흘 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편을 읽지 않으면 내용 이해도 곤란하고, 재미도 현저히 줄어드니 꼭 순서대로 읽어 보시기 바란다.

 

전편에서 황제를 끌어내리려는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막은 팔코, 사건의 뒤처리를 하고 있는데 아직 음모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쿠데타 세력의 잔당이 여전히 남아 제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팔코는 황제의 특명을 받고 쿠데타를 완전 분쇄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이에 위기를 느낀 음모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팔코를 처치하려고 눈에 불을 켜기 시작한다. 하지만 팔코는 로마 제국의 운명보다는 신분 차이로 이별을 결심한 연인에게 더욱 신경이 쓰이는데...무수한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드러난 음모의 실체는 무엇일까.

 

2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나오는 사건은 많지 않은 편이다. 특히 1편은 로마 시대 휴가지인 바닷가에서 소일하는 내용이 반이다. 그래도 이런 내용이 재미의 핵심이다. 로마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휴가를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책을 어디서 또 만난단 말인가. 작가가 고대 로마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쓴 티가 팍팍 나는 대목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여러모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장면들이 많으니 로마 마니아(?)들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추리적 요소는 전편보다는 많이 나오는 편이고, 더 잘 짜여져 있다. 작품 초반부터 쏠쏠히 등장하는 복선들이 후반 음모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하나씩 들어맞는 걸 지켜 보는 짜릿함도 있다. 작가가 추리소설의 작법 면에서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그래서 3편 <비너스의 구리반지>는 어떨지 기대해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의 최고 강점은 유머러스한 팔코의 재담과 연인 헬레나와의 로맨스이다. 입만 열면 재치있는 농담을 쏟아내는 팔코는 그런만큼 헐렁해보이지만 꽤 귀엽고 매력적이다. 언제나 유쾌한 팔코가 귀족에다 부자인 연인 헬레나를 사랑하면서도 놓아줄 것을 결심하는 대목에는 마음이 짠해진다. 만남과 헤어짐, 말다툼과 입맞춤을 반복하는 두 연인이 결국 사랑에 골인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이 긴 작품을 끝까지 흥미롭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다.

 

전편 <실버 피그>보다는 한층 나아진 모습을 보이는 작품으로, 혹시 전편에 실망하신 분들도 다시 한 번 잡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재담꾼 팔코가 정의를 위해, 사랑을 위해 칼을 뽑는 최후의 대결 장면에서는 본인도 팔코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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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낙 중의 하나가 바로 일요일 저녁에 하는 <FC슛돌이>를 보는 것이다. 위 사진의 아이들이 바로 영광스런 FC 슛돌이 멤버들이다. 이 애들이 전국 각지의 축구 강호들을 만나 매주 시합을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아주 홀린 것처럼 보게 된다. 내 경우에는 아이들을 접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또 아이들을 그다지 이뻐하는 편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 애들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무의식 중에 아이 공포증까지 생겼다. 특히 가장 공포스러운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나에게 거의 살의까지 불러 일으킨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흉악한 아이들에 비교해 보면, FC슛돌이들은 얼마나 귀엽고 늠름한지 정말 비슷한 또래인데 이렇게 다른가 싶다.

 

지난 주에는 만년 패배만 하던 FC 슛돌이가 드뎌 일승을 했는데, 한일전 같은 국가대표 시합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아주 손에 땀을 쥐면서 봤다. 마침내 이기는 순간 주책맞게 눈물이 다 나오는 거 있지..ㅋㅋ

 

 


  이 아이가 내가 제일 이뻐라 하는 김태훈 군이다. 어린 게 승부욕이 아주 끝내준다. 남자라면 역시 승부 근성이 있어야 멋져 보인다는 게 실감이 난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서태웅처럼 불굴의 승부 근성과 빠른 발을 갖췄다. 연예 계시판 같은 데서 보니까 얘가 남자로 보인다며 큰일났다고 한탄하는 여자분들도 많더라..ㅋㅋ 그런데 이 아이가 99년생이란다. 99년생이 남자로 보인다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단 말인가..^^;;

 

 

 

 

 축구찰 때는 어리지만 벌써부터 남자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녀석이, 이럴 때 보면 귀여운 아기같다. 정말 이 아이 부모님 되시는 분들은 아주 흐뭇하실 것 같다..^^;; 나도 이런 사내아이를 낳아 멋지게 한 번 키워보고 싶다만 그전에 먼저 애인이 생겨야겠지...-_-;;

 

개인기 빼어나고, 시야도 넓어 킬 패스를 만들어낼 줄 아는 조민호군과 빠르고 근성있는 김태훈군은 축구 계속해서 꼭 국가대표 콤비가 됐으면 좋겠다. 갑자기 <캡틴 츠바사>가 생각난다. ^^;;  다른 아이들도 지금처럼 이쁘게 자라서 다들 잘 됐으면 좋겠다. 이 프로그램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한결같이 응원할 거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무지 보고 싶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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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문
렌죠 미키히코 지음, 김현희 옮김 / 더블유출판사(에이치엔비,도서출판 홍)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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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인 <연문>은 한자로 戀文이라고 씁니다. 사모하는 글, 즉 연애편지를 말하는 거지요. 제목 그대로 아름답고 그만큼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다룬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84년 제 91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고, 이듬해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2003년에 드라마화되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만큼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서는 잊을 수 없는 연애소설의 고전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연애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연문>만큼은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연문>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은 제목과 같은 의미인 <러브레터>입니다. 철없는 연하의 남편을 둔 아내가 있습니다. 장난을 잘 치는 남편은 어느날 평소처럼 가벼운 말투로 말합니다. '미안해'라고..그 말을 남겨두고 남편은 떠납니다. 알고보니 남편이 결혼 전 사귀던 여자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고, 그는 그런 그녀의 곁을 보살펴주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일을 계기로 병든 남편의 옛애인을 만나게 되고, 뜻밖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 사이가 됩니다. 이 작품은 연애편지와 그것에 쓰인 사랑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사랑은 정말로 상대방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자유를 줄 수 있는 용기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지껏 본 가장 눈물나는 러브레터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붉은 입술>은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아내를 병으로 잃은 중고차 판매점 직원에게 장모가 찾아옵니다. 아내가 죽음으로 해서 인연이 끝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튼튼한 장모는 씩씩하게도 집안일을 도맡아하며 옛사위의 삶에 침투합니다. 옛사위가 새로 사귀는 여자를 품평하기도 하며 훼방을 놓기도 하지요. 기묘하지만 따뜻한 관계가 지속되다가 남자는 장모의 옛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의 사랑 이야기가 붉은 입술 연지 하나를 매개로 교차하며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머리속에서 구체적으로 장면을 그려보면 엄청나게 눈물나는 작품이지요.

 

<13년 만에 부르는 자장가>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재혼한 어머니의 새남편은 주인공보다 3살이나 어린 32살. 당연히 주인공은 그를 싫어하지요. 하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붙임성 좋고 싹싹한 새남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새남편은 주인공의 속도 모르고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부탁합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요. 묘하게 아버지라는 이름에 집착하는 새남편과 주인공의 가족사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펼쳐지다 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피에로>는 아내를 위해 언제나 헌신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늘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친절하고 재미있는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합니다. '난 괜찮아.'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서서히 외로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자신이 다른 남자를 만나 바람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난 괜찮아'로 일관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의미와 가치를 잃고 나서야 깨닫는 안타까움의 정서가 작품을 지배합니다. 늘 소중한 건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아는 법이니까요...

 

마지막 작품인 <재회>는 감정이 고장난 사람을 제외한 독자 모두를 눈물나게 만들 애절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성공만을 쫓는 불나방같은 인생을 사는 카메라맨 주인공을 그의 사촌 누이는 사랑합니다. 남자가 아직 어른이 되기 전, 거짓말만 만들어내는 어른이 되기 전부터 그를 알았던 사촌 누이는 마침내 사랑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친척이고 결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눈을 피해 평생 도피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공의 꿈을 꾸는 남자는 받아들일 수 없었죠. 누이는 남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다섯 장의 사진을 남기고 떠나간 누이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3년 뒤에 사망합니다. 20년이 지나서야 주인공은 다섯 장의 사진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숨겨야 했던, 하지만 너무도 알리고 싶던 사랑의 의미가 담긴 사진을 말입니다.

 

이상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좋습니다. 작가 렌죠 미키히코의 작품을 처음 읽어보는데 감탄에 감탄을 곱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다섯 편의 작품 모두 특색이 있고, 기품이 있습니다. 원래 추리소설작가로 데뷔했던 사람답게 작품마다 나름의 미스터리를 깔아두고 있습니다.(사람이 죽거나 하는 범죄적인 것이 아닌, 인생과 사랑의 미스터리를 말입니다.) 주인공들의 행적에 알수 없는 미스터를 깔아둠으로 독자의 호기심과 집중력을 이끌어가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비밀이 밝혀지면 둔중한 감동의 망치로 가슴을 세게 때립니다. 깊은 여운과 넓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진짜 감동을 만들어내는 진짜 작가입니다.

 

<붉은 입술>에서 장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반딧불이를 도시의 자동차 불빛으로 형상화낸 대목이나, 슬롯머신 유리창에 비친 눈물의 의미를 말하는 대목은 쓸쓸하고 삭막한 도시 생활에 윤기를 주는 명장면들입니다. <재회>에서의 다섯 장의 사진은 눈 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고요. 원래 시나리오를 공부했다는 사람답게 활자를 마음 속의 영상으로 바꾸어 주는 마술사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들이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관찰력과 감수성, 상상력에 모두 경의를 표합니다. 작가 후기를 읽어보니 자전적인 이야기도 있고, 부모님의 이야기, 실제에서 약간 부풀린 이야기들이 섞여 있지만 전부 현실 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있습니다.

 

작가 렌죠 미키히코는 1948년생으로 원래 <戻り川心中>라는 추리소설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언급한 작품은 일본추리소설의 걸작 리스트에서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연문>같은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도 기품있게 잘 쓰시네요. 이런 작가의 작품을 더 볼 수 없다는 건 진짜 비극입니다. 겨우 단편집 하나 읽고 좀 너무 나갔다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이분이야말로 현재 일본 최고의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분간 이 생각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네요...

 

 

 

작품 속에 나온 몇 마디의 대사들은 실제로 현실 속에서 제가 직접 들은 것들입니다. 이 책은 그렇게--- 제게 소박하지만 멋진 명장면과 명대사를 주신 만만찮은 아마추어 명배우들에게 제가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 렌조 미키히코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럼 난 보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여자를 울릴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이 내가 할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을 전하는 그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 술 취한 눈에 비치는 하얀 원고지가 마냥 눈부시기만 하다.

그래, 하고 머릿속에서 번쩍인다. 그것을 하면 된다, 나를 울렸던 <재회>를...

"렌죠 씨, <재회>를 주세요."

이것이 바로 원작자에게 보내는 엉터리 시나리오 작가의 '러브레터(戀文)'입니다.

 

- 시나리오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  (작품 해설 중에서)

 

 

올 겨울은 유난히도 따스했다.

하지만 느지막히 찾아온 추위는 싸락눈을 찬바람에 태우고 살며시 이 도시에 내려앉았다.

눈부실 정도로 하얗게 쌓이지는 않았지만

1월의 눈송이가

조용히 땅 속으로 녹아 스며들었듯 러브레터(戀文)의 감동도 그렇게 오래도록 스며들 것 같다.

 

- 옮긴이 김현희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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