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1 - 바이러스 밀리언셀러 클럽 7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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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킹의 <스탠드>가 출간된다는 소식에 참으로 반가웠다.
사실 그와는 책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다.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미저리>, <샤이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명영화가 바로 스티븐 킹의 소설로 탄생한 것이다. 즉, 그에게 빚지
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적이 있는 <스탠드>는 이번에 무삭제 완전판으로 출간되었고 전권은 6권이다. 이제 그 시작인 1, 2권을 만나며 다시금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초대받은 설렘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싶다. 6권이면 긴 여정같아 보이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앉은 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이며ㅡ그것도 블랙으로ㅡ소설삼매경에 빠지니 어느새 1, 2권이 끝나버렸다.

 이야기는 이렇다. 미국 군대의 '프로젝트 블루'라는 비밀실험 중 바이러스가 누출되고 그 실험단지
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 찰리는 운 좋게도 상황을 빨리 감지하고 탈출한다. 이윽고 집에 있는 부인과 아
이를 데리고 그곳으로부터 달아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처절하게 죽음을 맞는다. 눈치 챘겠지만 문제
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이다. 모든 전염병이 그렇듯 손쓸 새도 없이 재
빠르게. 미국은 정체불명의 감기증상을 보이는 질병으로 들끓는다. 그것을 캡틴 트립스라고 부르는데
이 병에 걸리면 마약에 취해 보이는 환각상태를 경험하기 때문이라 한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흔한 감기증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는 불안과 공포는 먼 이야기가 아니었
다. 슈퍼 바이러스는 따지고 보면 지금도 존재한다. 항생제 오남용, 강한 청소제 등. 사람들은 안심하지
못하며 더 강하고 그만큼 독한 약을 이용하고 만드는데 어느새 거기에 적응해 살아남은 바이러스만이
슈퍼 바이러스라는 형태가 된다. 각설하고 전염병의 확산이 전개될수록 공포도 커진다. 살아남고자 서
로를 죽이는 이유는 바로, 보이지 않는 공포 때문이다. 내가 전염되어 죽지 않으려고 근거없는 사실로
혹은 국가의 명령으로 시작된 살생이 이제 보편화된 것이다. 이 모습은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혼란을 보는 것과 다를 바없다.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언제나 그렇듯 이럴 경우의 국가의 대처모습이다. 무조건 은폐하고 진압한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결국 목숨 걸고 사실을 전한 용감한 시민들은 그 대가로 죽임을 당
한다. 국가부터가 혼란에 빠지면 국민을 지켜줄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니까.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은
스스로 지켜야만 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1권의 끝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악의 화신(다크맨)의 이야기, 2권의 전염되지 않은 살아남은 자들의 모
습은 생생하게 그려진다. 지옥의 아비규환은 바로 이 세계였다. 작가의 풍자적인 모습에 웃을 새도 없
이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슬픔을 털고 일어
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딘가로 향한다. 그리고 2권의 끝에서는 마침내 세 명이 길을 함께하기로 한다.
정부의 실험실에서 탈출한 스튜, 십대에 임신한 모범생 프레니, 철없지만 소설가가 꿈이며 프레니를 좋
아하는 헤럴드. 그 밖에도 다른 중심인물과 잠시 언급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는 모습
을 보여준다. 이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이 언제 끝이 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또 다
른 시작은 늘 무언가의 종말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카오스에서 탄생할 또 다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새롭게 생겨나는 모든 사회 집단들이, 적어도 서양 세계에서는 과학 기술을 사회의 초석으로 삼으
리라고 강력히 믿기 때문이오. … (생략)… 우린 과학 기술의 혜택에 중독되어 있으니까. 사람들은 우리
가 페인트를 바닥에 마구 칠하다 우리 스스로 방구석으로 내몰렸던 사실은 기억 못 할 것이오. 더러운
강물, 오존층에 뚫린 구멍, 원자폭탄, 대기 오염. …(생략)…

(318쪽. 노인 베이트먼의 말.)



 시작하는 단계라 인물의 상황설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다음부터가 이들의 본격적인 모험의 시작
이라 더 기대가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나를 허기지게 한다. 집중해서 빠져 읽다 보면 어느덧 배가
고파지기에 그렇다. 더구나 중간중간 적랄하게 번역한 욕설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여태 책을 읽으며
이런 표현은 처음 접하지 싶다. 번역가도 스티븐 킹의 마니아라서 그런가 보다. 긴 겨울밤 <스탠드>와
함께 할 생각을 하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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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거치지않고 방황을 거치지 않고 보다 큰 것에 복종하는 겸허함없이
얻어지는 자유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보다 큰 자유, 보다 큰
진리에 순종하는 자만이 가짜 자유와 가짜 진리에 진정으로 불복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167쪽) 



 
  결국 이 세상 모두가 수도원이고 내가 길 위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수도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들을 만나려고
 내가 이 길을 떠났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50쪽)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248쪽. 책 속에 인용된 장 루슬로)




 
 ■ 공지영(1963~ , 소설가)
  - 데뷔 : 1988년 창작과비평 '동트는 새벽' 등단.
  - 최신작:『 즐거운 나의 집 』(푸른숲, 2007/11/23)
  - 그외 작품 다수.

 

 

 

 

 수도원 기행을 떠난 그녀가 만난 수도원의 사람들, 길 위의 사람들의 이야기. 결국, 작가의 말처럼
세상 모두가 수도자일지 모른다. 나 역시도 한때 생각해본 적이 있는 문제인데 다만, 수도자란 말
대신 수행자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 달랐다.  금욕을 강요할 필요없이 어딘가로 은둔할 필요없이
바로 여기에서 한평생을 기꺼이 살아가는 자체가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세 번 정도를 읽은 것 같다. 처음은 성당, 수도원, 수도자라는 환상에 갇힌 호기심에서,
다음은 작가 공지영의 문체와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다가 책장에서 내
눈과 마주쳐 꺼내 읽었었다. 그녀처럼 절실한 마음과는 다르지만 결국은 똑같이 편안하고 차분해졌
다. 무언가 안심이 되는 그런 기분이다.

 대중에게 기억되는 작가들의 특징이 있는데 공지영의 경우는 무엇일까. 쉽게 읽힌다는 장점 그러니
까 대중적이라는 사실,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 감성적인 그녀의 문체. 그 속의 반짝임. 어떤 경우에
나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가 될수도 있다. 꾸준한 작품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도 계속 성장
중이다. 아직은 공지영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켜보고 싶은 작가임은 분명하다. 
 

-4340.12.07.쇠의 날. (07125_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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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램 수필선

찰스 램 지음 / 범우사
나의 점수 : ★★★☆(1991)




 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따끈한 간식 같은 찰스 램의 수필을 잡았다. 예전에도 수필 모음집에서 만났던
작가인데 그때 눈에 익혀서 범우사의 문고본으로 다시 읽은 것이다. 그래서 <굴뚝 청소부 예찬>이나
<돼지구이에 관한 이야기>가 겹쳤지만 다시 읽어도 따뜻하고 재미있었다. 특히나 돼지구이에 관한 수
필은 육류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보자면 <두 가지 인종(人種)>에서 그는 책을 빌려 아니 약탈해가는 이야기
를 들려준다. 찰스 램이 말하는 가장 무서운 약탈자는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다. 서가의 균형을 깨
뜨리고 책장의 틈을 이가 빠진 듯 벌여두며, 전집의 하나를 가져가고, 꽉 찬 듯 보여도 자신은 그 자리
에 존재했던 애착이 가는 책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더구나 다른 나라로 가져간 일도 있어서 그
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출처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집에 두고 간 책들
인데 그 책들(고아들이라 부른다.)을 수용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예전의 나도 그랬으니까. 책을 빌려주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
았고 책을 접거나, 줄을 긋지도 않았던 것이다. 조금은 병적이라 할 만큼 책의 유지에 신경을 썼던 것이
다. 그러나 지금은 줄도 긋고, 책장에 수용할 범위를 넘기지 않게 책을 선물하거나 책나눔한다. 자꾸만
덜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늘 어느 정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

 그만큼 받고(책나눔, 선물, 이벤트 책), 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럼에도 나도 이 빠진 책이
꽤 있다.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한 책들이 있어서인데 빌려주는 것은 좋지만 낱권이 아닌 전집이나
시리즈물의 한두 권만 없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아예 다 가져갔으면 차라리 이런 마음이 없을 텐데 말
이다. 그러나 너무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크게 마음쓰지 않는 것이 책에 대한 내 철학이
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난 그리 대단한 장서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이 생활이 되다 보면 책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와인의 철학>처럼 책
에 대해 나만의 철학이 생기는 것이리라. 그 생각은 유동적일 수 있다. 누군가 말했던 판타레이(모든 것
은 변한다,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라는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넘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따지
고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다 내 책이 될수도 있지 않은가. 서점에서 만나거나 도서관에서 혹은 지인
의 작은 서재에서 만나는 책들 말이다. 물론 나만의 서재는 소중한 공간이며 각자의 개성에 맞게 꾸려
나가는 것이 정답이다. 나는 램의 이야기에서 그의 안타까움을 십분 이해했으며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
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생각과 앞으로의 생각까지 차곡차곡 접어 넣었다. 때때로 꺼내 읽기 위해서
다. 그리고 주의하기로 한다. 내가 누군가의 책 약탈자가 되지 않기를!



독자여, 웬만한 장서를 지닌 축복을 어쩌다 누리고 있다면 남에게 보이는 것을 삼가하라.
그래도 빌려 주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다면 빌려주되 S.T.C(영국의 시인, 비평가)
같은 사람에게 주라.ㅡ그는 책값을 세 배로 올리고 풍부한 주석을 단 이자(利子)를 붙여
(대체로 약속한 기일 안에) 되돌려 준다. ……(중략)……내 조언하거니와 S.T.C에 대해
서만은 그대의 마음과 서재의 문을 닫지마시라.

(133~134쪽. 두 가지 인종人種)




 누군가에게 받은 책에 주석을 달아 돌려준다는 건 정말로 즐거운 일이다. 서로 감상을 나누고 이야기하
거나 책을 소개하는 일의 기쁨을 누리려면 역시 책과 그 서재의 주인에게 예를 갖춰야 하겠다. 가장 좋
은 방법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도 해주는 것이리라.



■ 찰스 램(1775~1834)


: 영국의 수필가·비평가. 1807년 누이 메리와 함께 번안하여 출판한 『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 』을 발
표하면서부터 문필가로 인정받기 시작. 대표작으로는 엘리아라는 필명으로 잡지에 기고 했다가 후에
책으로 엮은『 엘리아 수필집 』과 『 엘리아 수필 후집 』등이 있음.

......................................................................................................................................

 찰스 램과 처음 만난 것은 수필 모음집에서였고 다음으로는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를 하면서다. 셰익스
피어에 관한 책을 찾다가 누이 메리와 쓴 책을 보고 램과 메리가 썼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램은 병약했으며 슬픈 가정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누이 메리가 정신
발작으로 모친을 칼로 찔러 돌아가셨던 것이다. 이후 치매인 부친도 돌아가시자 형은 메리를 국립정신
병원에 보내자고 했으나 램이 죽을 때까지 둘은 함께 살았다. 그것도 둘 다 독신으로. 메리는 발작이
없을 때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이며 문학적이어서 램과 같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슬픈 두 남매의
이야기는 참 놀라운 동시에 혈연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램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램도 발작이 있었던 경험이 있으며 몸도 약했으며 어쩌면 누구보다 메리를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
늘 아래 고단하지 않은 삶은 없는 거 같다. 램 선생, 이제 편히 쉬시길.




-4340.12.4.불의 날. (07124_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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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2-05 13:01   좋아요 0 | URL
수필의 대가 찰스램에게 저런 숙명이 존재하고 있었군요.

은비뫼 2007-12-08 00:12   좋아요 0 | URL
<돼지구이에 관한 이야기>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찰스 램이 이런 아픔이 있을 줄 저도 몰랐습니다. 메리와 썼다는 책도 빨리 읽고 싶어집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최대의 신뢰는 충고를 해주는 신뢰이다. 

 (84쪽. 충고에 관하여)  


 

  실제적인 사람은 학문을 멸시하고,
 단순한 사람은 학문을 숭배하며,
 슬기로운 사람은 학문을 이용한다. 


 (137쪽. 학문에 관하여)  

 


  독서는 반대하거나 논박(論駁)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믿기 위해서나 동의(同意)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또 이야기와
 논설을 찾아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경중(輕重)을 가리고 고찰하기 위해서 독서하라. 


 (137쪽. 학문에 관하여)




■ 베이컨(1561~1626)
: 영국의 철학자. 근대 철학, 특히 영국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
실험과 관찰에 기초를 둔 귀납적 방법을 중시했으며, 사랑에 의한 실천적 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


 그의 글에서 관찰력이 느껴진다. 일종의 처세술 같기도 하나 현실적이며 도를 논하기보다 구체적 방안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베이컨은 현명했지만 세속적 성공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후 말년에야 학문에
정진하는데 진작 그러지 못했음을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4340년 11월에 만난 베이컨의 책. (07123_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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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철학> 서평단 알림
와인의 철학 포즈 필로 시리즈 3
티에리 타옹 지음, 김병욱 옮김 / 개마고원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많은 와인을 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혀를 채워줄 와인을 계속 찾는다. 그것이 와인을 조금씩이
나마 만나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마치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만나고자 영화를 지속적으로 찾는
것과 같다. 아직도 나는 감동적으로 본 영화를 꼽으라면 다소 주저한다. 좋은 영화는 많지만 그 영화가
아니면 안될 만큼 미치게 하는 영화는 다소 적기 때문이다. 그에 비한다면 와인은 아직 내게 미개척인
황무지나 마찬가지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저자의 와인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철학을 가르치는 이라 그런지 철학자의 이야기
도 간간이 들려온다. 와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원했다면 실망하겠지만 이미 시중에는 그런 책들이
여러 권 나와있으니 실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 책의 특징은 와인의 철학을 풀어내며 인간의 내면, 즉
와인에 대한 욕망과 애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와인의 라벨읽기, 와인분류 등은 일체 언
급하지 않으며 그야말로 와인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여과 없이 주관적으로 설파한다. 그래서 철학적이
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와인은 언제나 욕망이지 결코 필요가 아니다. (145쪽)


 모든 기호 식품이 그렇듯 욕망이란 지극히 개인적이며 상대적이다. 다시 말해 보편적이지 않으며 절대
적이지 않다. 욕망이란 애태움과 기다림 그리고 상상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동반하는데 그 논점이 여기
서는 와인일 뿐이다. 이런 공식을 적용시켜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와인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
게 된다. 내게 있어 아직은 와인이 삶의 이유에 들어가지 않지만 무엇이건 제대로 만나봐야 알 일이다.

 이름난 와인을 들먹이며 자신의 와인취미를 과시하는 것을 경계하고 진정으로 즐기고자 고뇌하는 모
습이 인상적이며 나 또한 지향하는 바이다. 유명와인부터 시작해도 괜찮겠지만 일단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와인부터 마주하는 것이 좋은 방법의 예이다. 집에 있는 와인, 주변인의 추천,
마트나 와인매장에서 만나는 그런 흔한 와인 속에도 내 혀를 간지르는 와인이 있을 것이다. 나와 주파
수가 맞는 친구를 만나듯 그런 귀한 나만의 와인을 만날 것이라는 예감만으로 매우 즐거운 일이다.

 와인을 그저 음료처럼 입으로 가져가 마시는 행위를 저자는 용납할 수 없었다. 와인병을 바라보는 일부
터 와인잔, 따르는 소리, 색깔과 향을 충분히 음미하고 상상한 후에야 맛을 보는 것이다. 또한 맛을 볼
때도 그냥 넘기지 않고 입안의 모든 기관을 이용하며 오감을 총동원하는 방법으로 느낀다. 차 한 잔을
마주할 때 느끼는 그 행복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와인초보자인 내게 유용한 책이었지만 와인을 즐기는 이에게도 괜찮을 거 같다. 역시나 모든 물질에 속
하는 무의미한 것을 나만의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노력과 관심이 필요함을 거듭 느낀다. 그것
이 열정이란 이름으로 드러날 때 또 다른 삶의 의미가 될 것이다.


* 이 책은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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