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램 수필선
찰스 램 지음 / 범우사
나의 점수 : ★★★☆(1991)
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따끈한 간식 같은 찰스 램의 수필을 잡았다. 예전에도 수필 모음집에서 만났던
작가인데 그때 눈에 익혀서 범우사의 문고본으로 다시 읽은 것이다. 그래서 <굴뚝 청소부 예찬>이나
<돼지구이에 관한 이야기>가 겹쳤지만 다시 읽어도 따뜻하고 재미있었다. 특히나 돼지구이에 관한 수
필은 육류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보자면 <두 가지 인종(人種)>에서 그는 책을 빌려 아니 약탈해가는 이야기
를 들려준다. 찰스 램이 말하는 가장 무서운 약탈자는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다. 서가의 균형을 깨
뜨리고 책장의 틈을 이가 빠진 듯 벌여두며, 전집의 하나를 가져가고, 꽉 찬 듯 보여도 자신은 그 자리
에 존재했던 애착이 가는 책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더구나 다른 나라로 가져간 일도 있어서 그
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출처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집에 두고 간 책들
인데 그 책들(고아들이라 부른다.)을 수용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예전의 나도 그랬으니까. 책을 빌려주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
았고 책을 접거나, 줄을 긋지도 않았던 것이다. 조금은 병적이라 할 만큼 책의 유지에 신경을 썼던 것이
다. 그러나 지금은 줄도 긋고, 책장에 수용할 범위를 넘기지 않게 책을 선물하거나 책나눔한다. 자꾸만
덜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늘 어느 정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
그만큼 받고(책나눔, 선물, 이벤트 책), 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럼에도 나도 이 빠진 책이
꽤 있다.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한 책들이 있어서인데 빌려주는 것은 좋지만 낱권이 아닌 전집이나
시리즈물의 한두 권만 없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아예 다 가져갔으면 차라리 이런 마음이 없을 텐데 말
이다. 그러나 너무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크게 마음쓰지 않는 것이 책에 대한 내 철학이
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난 그리 대단한 장서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이 생활이 되다 보면 책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와인의 철학>처럼 책
에 대해 나만의 철학이 생기는 것이리라. 그 생각은 유동적일 수 있다. 누군가 말했던 판타레이(모든 것
은 변한다,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라는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넘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따지
고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다 내 책이 될수도 있지 않은가. 서점에서 만나거나 도서관에서 혹은 지인
의 작은 서재에서 만나는 책들 말이다. 물론 나만의 서재는 소중한 공간이며 각자의 개성에 맞게 꾸려
나가는 것이 정답이다. 나는 램의 이야기에서 그의 안타까움을 십분 이해했으며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
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생각과 앞으로의 생각까지 차곡차곡 접어 넣었다. 때때로 꺼내 읽기 위해서
다. 그리고 주의하기로 한다. 내가 누군가의 책 약탈자가 되지 않기를!
독자여, 웬만한 장서를 지닌 축복을 어쩌다 누리고 있다면 남에게 보이는 것을 삼가하라.
그래도 빌려 주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다면 빌려주되 S.T.C(영국의 시인, 비평가)
같은 사람에게 주라.ㅡ그는 책값을 세 배로 올리고 풍부한 주석을 단 이자(利子)를 붙여
(대체로 약속한 기일 안에) 되돌려 준다. ……(중략)……내 조언하거니와 S.T.C에 대해
서만은 그대의 마음과 서재의 문을 닫지마시라.
(133~134쪽. 두 가지 인종人種)
누군가에게 받은 책에 주석을 달아 돌려준다는 건 정말로 즐거운 일이다. 서로 감상을 나누고 이야기하
거나 책을 소개하는 일의 기쁨을 누리려면 역시 책과 그 서재의 주인에게 예를 갖춰야 하겠다. 가장 좋
은 방법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도 해주는 것이리라.
■ 찰스 램(1775~1834)
: 영국의 수필가·비평가. 1807년 누이 메리와 함께 번안하여 출판한 『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 』을 발
표하면서부터 문필가로 인정받기 시작. 대표작으로는 엘리아라는 필명으로 잡지에 기고 했다가 후에
책으로 엮은『 엘리아 수필집 』과 『 엘리아 수필 후집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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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램과 처음 만난 것은 수필 모음집에서였고 다음으로는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를 하면서다. 셰익스
피어에 관한 책을 찾다가 누이 메리와 쓴 책을 보고 램과 메리가 썼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램은 병약했으며 슬픈 가정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누이 메리가 정신
발작으로 모친을 칼로 찔러 돌아가셨던 것이다. 이후 치매인 부친도 돌아가시자 형은 메리를 국립정신
병원에 보내자고 했으나 램이 죽을 때까지 둘은 함께 살았다. 그것도 둘 다 독신으로. 메리는 발작이
없을 때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이며 문학적이어서 램과 같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슬픈 두 남매의
이야기는 참 놀라운 동시에 혈연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램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램도 발작이 있었던 경험이 있으며 몸도 약했으며 어쩌면 누구보다 메리를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
늘 아래 고단하지 않은 삶은 없는 거 같다. 램 선생, 이제 편히 쉬시길.
-4340.12.4.불의 날. (07124_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