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의 뉴욕 일기
엄정화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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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이자 배우인 엄정화가 홀로 뉴욕에서 지내며 기록한 일기형식의 글. 일단 서두에서 밝히듯 그녀는 이 책의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솔직하게 쓰기로 다짐했으며 이를 실행했다. 작년에 읽은 배두나의 도쿄놀이처럼 특정 팬들에게는 어쩌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읽기에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더구나 화려한 엄정화를 내세웠지만 그녀만큼 책은 화려하지 않다. 물론 그녀의 솔직함이 어느 정도 지면을 채우지만 책의 편집은 정말로 별로였다. 그래서인지 엄정화의 개성과 감각이 크게 드러나지 않은 느낌이며 오로지 그녀의 글과 사진이나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주내용은 일기지만 팁으로 뉴욕의 곳곳을 소개하는데 음식점과 박물관 등은 뒤편에 주소, 전화번호, 홈페이지가 정리되어 있다. 타다오 안도가 디자인했다는 레스토랑은 나도 가보고 싶어졌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엄정화의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외롭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니 말이다. 동그란 자신의 눈이 싫어서 최대한 길어 보이게 그려본다는 별거 아닌 거 같은 사소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또 입은 울어도 눈은 절대 울면 안 된다는 말에서 험난한 연예계에서 버텨온 그녀의 저력이 드러나면서도 강인하게 버티려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 책에 타이포그래피가 적절하게 배합되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편집이나 글씨체부터 사진의 색감까지 다 별로였던 까닭이다. 보통 이런 책은 화보 수준으로 멋지게 구성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야, 상업적으로 돈이 될 터이니 말이다. 

 독자들이 이런류의 책을 보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이보다는 더 괜찮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전문작가가 아님을 알기에 글은 이만하면 뭐 개인의 이야기니 넘어간다. 역시 책의 구성이 문제라고 나는 끝까지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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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79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지음, 윤우섭 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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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추리물이라는 말을 듣자 대번에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추리물 하면 영미권이나 일본의 책이 떠오르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러시아가 배경이라면 몹시도 추운 긴 겨울이 떠오른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책 대부분의 풍경은 겨울이며 크리스마스, 새해 등을 전후로 일어난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색다른 것은 각 단편의 작가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추리물과 여성작가라! 정말이지 부러운 일이다. 장르소설이 폭넓고 다양해지는 가운데 독자는 물론 작가도 더욱 풍성해지는 현상은 흥분되는 일이다. 국내 추리소설도 더 풍요로와지기를 빌어본다. 독자들이 많으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자, 이제 열 편의 단편을 만나보자. (아랫글부터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주의. 물론 결정적인 건 밝히지 않습니다.)

1.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
주인공 니나는 오래전 잃어버린 딸이 있다. 어느 날 우연하게 광장에서 구걸하는 마샤라는 소녀를 만나고 그 아이가 자신을 똑 닮았음을 느낀다. 결국, 마샤를 잃어버린 딸이라고 생각한 니나는 개인탐정 알렉세이에게 의뢰를 부탁한다. 이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자는 탐정인 알렉세이로 따뜻하고 잔잔했다. 범인은 늘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일반적인 공식이 깨지지 않는다. 노숙자, 구걸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약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며 첫 단편인데 기억에 남는다.

2.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
제목이 독특해서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관심이 쏠렸던 단편. 주인공 폴리나의 남편이 살해당하고 남편의 친구 바짐은 어느 날 사라진 폴리나를 찾게 된다. 여기서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자는 폴리나. 예민한 그녀답게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범인처리방법은 냉정하고 깨끗했다. 그녀의 독백부분이 인상적이다.

3. 천사가 지나갔다
제목만 보면 왠지 톨스토이가 떠오른다. 러시아의 대문호라 그럴까.
노작가의 심장을 멈추게 한 링거병 바꿔치기를 의심하는 의사 슈마코프가 추리자로 이 단편은 추리물 같지 않은 끝맺음이었다. 그의 집착이 더 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조금은 시시하게 느껴져서 음식으로 치면 간이 덜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래인용 말에 무척이나 동감했다.



도대체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148쪽)


4. 이지웨이!
추리소설작가 알료나가 추리자. 그녀의 시원시원한 이야기는 러시아의 혹독한 눈보라와 대조적으로 따뜻한 결말로 끝난다. 제목의 이제웨이는 가방상표 이름이다.

5. 새해 이야기
주인공의 건방증 심한 친구는 돈을 잃어버려서 그 돈만큼 액수를 채워야 하고, 남편과는 이혼 직전의 상태로 주인공은 친구들이 더 소중할지도 모를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산타클로스처럼 나타난 사람의 선물 그리고 역시나 해피엔딩. 새해 하면 무언가 희망차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 그에 부응하듯 이 단편도 따뜻하고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서 기적이라 불릴 수 있는 일이 생긴다.

6. 행복한 크리스마스
주인공 다샤가 추리자로 친구의 남편 살인사건을 풀어간다.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라고 판단한 그녀는 차근차근 사건을 해결하는데 재미있었다. 제목처럼 역시 해피엔딩이다. 가만 보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하나같이 돈, 유산 때문이다. 하루라도 사건·사고 없이 지나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서글퍼진다.

7. 복수의 물결
이 책에서 유일한 남매작가의 글. 이들은 늘 합작으로 글을 쓰는가 보다.
주인공이자 추리자인 료샤는 대학등록금이 필요해서 수입이 많은 대저택의 하녀 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파티에서 주인이 살해되고 안주인은 포상금을 내건다. 료샤는 추리를 시작하고 결국 살인범을 찾아낸다. 전형적인 복수 이야기였다. 그러나 복수라는 것은 사실 동기가 있다. 돈보다 더 큰 상처를 입어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던 것. 범인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아직 순수하고 어린 료샤의 선택은?? 재미있게 읽었다.

8. 러시아식 성탄절
추리자 스베틀라나는 우연한 기회에 유명인들과 성탄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녀의 추리가 시작된다. 로맨스도 살짝 가미된 이 단편은 더빙 된 외국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는데 괜찮았다.

9. 마지막 유언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아내 아냐와 남편 르보비치. 새해를 맞아 아내는 친구 내외를 초대하고 부엌에 거위요리를 꺼내러 갔다가 살해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이런!!

10. 예정된 살인
어느덧 이 책의 마지막 단편. 러시아의 단면이 살짝 느껴졌는데 마피아, 살인 등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이 책의 모든 단편이 그렇듯 폭력이나 잔인한 장면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전반적으로 탐정이나 형사 등의 전문인이 일을 해결하기 보다 아마추어인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로 우리 주변의 그 누군가이거나 혹은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비일상적인(-살인은 정말이지 비일상적이라 말하고 싶다.) 사건 그리고 잔잔한 전개는 무섭거나 긴장감을 주지 않고 에피소드처럼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래서 자극물에 마음이 약하거나 추리물에 입문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반면에 극적 긴장감을 원한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러시아가 배경이고 여성추리작가들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책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래서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변해가는 러시아의 흐름도 느껴져서 좋았다. 내게 먼 나라로만 생각된 곳 러시아는 늘 영화에서의 이미지로만 남았는데 이 책으로 조금 더 다가선 거 같다. 싸이코살인마가 등장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할 필요가 없는 책이니 옆에 간식을 두고 편하게 만나기를.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지나간 긴 겨울을 잠시 떠올리듯 그렇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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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8-03-28 00:08   좋아요 0 | URL
오호....옆에 간식처럼 두고 볼 수 있는 책이라고요? 땡깁니다, ㅋㅋ

은비뫼 2008-03-28 01:57   좋아요 0 | URL
앗, 몽당연필님! ^^* 맥주 한 잔 옆에 두고 읽어도 될... 흐흐흣.
 
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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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글인 독서일기 형식의 책.
내가 꼬맹이였던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기록으로 당시 문학의 시대상이 반영되었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그것은 이채롭지만 선뜻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우리는 부여받았다.

 때로 준비하고 있던 에세이의 목차도 나오기도 하고, 불문과를 졸업하고 번역서, 연구서를 내어서인지 불어단어도 만날 수 있으며 프랑스 문인을 비롯한 여러 작가와 작품이 언급된다. 그중 우리 문학에 대한 내용을 보자면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책을 읽고 쓴 일기지만 그 밖의 영화, 여행, 병 등에 관한 내용 또 뜻밖에 일기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배제해서 감성적이기보다 비평적이다.

 문학적으로 트인 한 지식인의 통렬한 비판과 관심을 엿볼 수 있었기에 즐겁고 부러우면서도 그의 사유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야 한다. 그가 언급한 책 중 읽지 못한 책이 많다는 사실이 약간 우울하지만 그의 의식을 쫓아가는 경험이나마 간접적으로 이어갔다.

 짧고 맛있는 글쓰기란 이런 것일 터. 짧은 글에 핵심을 박아두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흉내는 낼 수 있을지언정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방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훔치고 싶은 사유와 비평으로 가득해서 정말이지 책이 너덜거릴 때까지 읽고 탐구하고 싶다.

 또한, 그해에 나온 신간서적을 많이 읽는 모습에 반성했다. 나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거나 읽고 싶은 책만을 찾아 읽는다. 우리 작가의 책도 생각보다 많이 읽지 않았다. 내 딴에는 거품이 빠진 후 읽겠다는 심보지만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 저변에는 읽을만한 책만 읽겠다는 생각이 깔렸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좋은 서평이 많은 책을 선택하는 쪽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책을 골라서 읽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제대로 된 판단이 설 수 있도록 깊이 있게 책을 대하고 싶다.

 일단 김현의 책과 교감하려면 상당한 내공을 더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일단은 부담없이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 책을 오래도록 함께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더욱 폭넓은 사유를 지향하거나 책읽기의 방향에 회의를 느끼는 독자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 아래 글들은 처음 읽었을 때 메모해 둔 것들의 일부.


가능성 있는 글을 읽는 밤은 즐겁고, 즐겁다.

(15쪽, 1986년 1월 14일.)



근원은 없고 흔적만이 있는 의미, 근원은 없고 시작만 있는 문학…

(16쪽, 1986년 1월 27일.)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나는 싫다. 자리매김이란 관계 맺기, 관계 지우기 보다 훨씬
고착적이어서, 한번 자리가 맺어지면 변경하기가 힘들다.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자
리매김이란 딱지 붙이기에 다름아니다.

(19쪽, 1986년 2월 14일.)


삶이 아름다울수록, 죽음의 원통함은 더 절실하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41쪽, 1986년 8월 17일.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 나 역시도 좋아하는 구절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푸풋-)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54쪽, 1986년 11월 21일.)


▲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김현 선생에 대해 낯설음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 (푸풋-)


가난한 사람들은 눈에 금방 띄는 환부이지만, 진짜 아픈 부분은 몸의 다른 곳이다.
그곳을 보지 못하는 한 총체성은 얻어지지 않는다. 사회라는 거대한 몸 속의 가장
아픈 부분은 정치와 돈이 만나는 자리이다.


(63쪽, 1987년 1월 6일. 시인 복거일씨가 들려준 말.)


나는 책읽기가 단순한 활자 읽기가 아니라 그 책이 던져져 있는 상황 읽기라는 생각
에 도달하게 되었다.


(89쪽, 1987년 3월 22일.)


장자의 무용지용에 대한 퉁명스러운 반론: \"그래 그렇게 오래 살아 뭐하자는 게요, 제기랄.\"

(150쪽, 1988년 4월 11일.)


새벽에 행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

(282쪽, 1989년 12월 12일.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글.
그는 그다음해인 1990년 6월에 세상을 등진다.)

**다시 돌아보는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이 책은 작년 5월에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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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의 작은 거인들
고든 코먼 지음, 남문희 옮김 / 달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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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실제로 오르지 못한 사람들도 알 만큼 유명하다. 얼마나 오르기 어려운지 등반 내내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안다. 그래서 이곳을 정복한 사람들은 유명해진다. 인간승리로 대표되듯 자신의 의지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작은 거인들 즉, 소년소녀들에 관한 성장소설이며 모험소설이다.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한 세계 최연소 등반대로 구성된 원정대의 이야기 속에 여러 등장인물과 그들의 집념이 들어 있다.

 제1장 <선발>에서는 서미트 원정대가 구성된다. 스포츠 음료수 회사인 서미트에서 행사가 있었고 그 행운권을 잡은 아이들이 모이고 거기서도 선발과정을 통해 인솔자인 시세로와 오버맨 박사의 심리 진단을 받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예상을 뒤엎고 최종 선발된 아이들 네 명은 각기 개성이 뚜렷하다.

 몽유병 증세를 보이는 소녀, 모험과 긴장감 없이 단 일 초도 살 수 없는 소녀, 원정대에 끼고 싶지 않았으나 억지로 등 떠밀려 온 에베레스트에 가고 싶지 않은 소년, 가장 어리고 작은 중학생 소년, 체력과 기술은 좋지만 모든 아이들과 충돌하는 소년까지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거 같은 이들의 경쟁과 훈련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나 가독성은 굉장히 빠른 책이다.

 제2장 <등정>에서는 본격적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이 시작된다. 작은 소년은 고산병인 고소폐부종에 걸려 힘겨운 싸움을 하고 다른 아이들도 각자 고소적응을 한다. 고소적응 없이 무리해서 한 번에 오르게 되면 고산병에 걸리고 고산병이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아이들이 버티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삶 또한 이렇지 않은가. 순차적인 준비 없이는 그 무엇도 이뤄내기 힘겹다. 눈물겹더라도, 더디게 나아가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른다. 

 이 책의 특징은 청소년 문학이라는 즉, 아이들만의 순수함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어른이었다면 앞뒤 생각하느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일을 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일 초의 생각 없이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상대의 목숨을 구하는 장면에서 특히나 작은 소년의 착한 마음씨를 볼 수 있었다. 이 소년과 대조되는 아웃사이더 소년도 결국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다른 소년의 목숨을 구하고자 희생한다. 순수열정으로 가득한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끝으로 제3장 <정상>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에베레스트 산처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과도한 경쟁심리가 빗어낸 한 소년의 죽음은 씁쓸하다. 그 소년이 그토록 집착한 정상정복은 어쩌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정상의 의미와 다르지 않은 거 같다. 무조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정상의 개념.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혹은 제2인자의 가치는 없다는 식의 매정함. 결국, 살아남고자 그렇게도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경쟁이 무가치하지 않으려면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여차 하는 순간 그것을 잃어버렸다면 목적 없이 과도한 경쟁에 휩싸여 의미 없이 나아가는 것에 불과하지 않다. 아직 어린 이들의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그들은 많은 것을 얻었을 테고 그것은 두고두고 아이들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가까운 곳의 산이나 가끔 오르는 내게 산악인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지만 이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 흥미로울 책이다. 엄홍길 대장의 추천사처럼 용기를 얻게 될 수도 있겠다.

 삶에서 뛰어넘어야 할 모든 것들은 거대산의 정복뿐 아니라 깊이와 높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산 정복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중력을 거부한 채 불가능할 정도로 멀게만 보이는 정상을 향해 계속 전진하고 싶은 느낌! 바로 등반이었다. 


(553쪽. 이 책의 마지막 네 줄.)
  



* 오타 : 459쪽, 19번째 줄 - '스니지는 황급히 도미니크를 따라붙었다.' 도미니크가 아니라 틸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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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 - 남자를 눈뜨게 하는 여자의 신비
존&스테이시 엘드리지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남자를 눈뜨게 하는 여자의 신비'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제목처럼 매혹적인 강렬한 붉은빛에 유
독 눈길이 간다. 그 붉은빛은 어떤 내용일지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묘한 긴장감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여자인 당신 안
에 이미 내재된 모습을 찾아가려는 책이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
을 해내도록 창조된 여자다. 사방에 드러내야 할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자다. 하나님이 이브를 만드실
때… 하나님이 당신을 만드실 때 마음에 품었던 여자다. 영광에 넘치고 강렬하며 매혹적인 여자다.


(34쪽, chapter 1 소중한 마음 여자는 욕망한다 中)



 위 글처럼 이 책은 하나님이 창조한 이브인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인이 아니라 조금은 지루했지
만 종교인의 관점에서라면 더 몰입해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가 아니어도 남자가 읽어두어도
나쁘지 않을 내용이다. 처음에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전개 등으로 말미암아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그저 그랬는데ㅡ사실 반신반의하며 때로는 졸리기도 했다ㅡ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무사히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아마 그런 부분이라도 없었다면 일찌감치 덮었으리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존재만으로도 희망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의 그 어느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여자에 대해 속속들이 되짚어 본 것이다. 이것은 물론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드러내고 인정하라는 내용이었다. 숨어있지 말고 활동하라는 것!
감춰둔 속내를 꺼내 들여다보고 표현해서 빛을 발하라는 것이다. 여자가 진정으로 아름다울 때 상대인
남자까지도 눈 뜨게 한다는 그런 말이다. 이것은 비단, 남자 여자만의 관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누구라도 진정으로 자신다울 때에야 비로소, 측정할 수 없는 영혼의 무게까지도 실린 오롯한 내가
될 터이며 그것이 존재 이유가 아니겠는가.

 공동저자인 이들 부부의 굳건한 믿음처럼 오늘날의 남녀가 모두 제대로 나다울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여자답거나, 남자답거나의 문제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도대체 무엇이 여
자다운 것이고, 또 반대로 남자다운 것이란 말인가.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보통 여성성향을 가졌다
고 판단되는 남자 친구들이 좋다. 그러니 내게는 그런 분류법이 반갑지 않다. 말이 겉돌았는데 각설하
고, 성을 떠나서 나다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야말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햇살처럼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그대들이여, 자신의 내면에 눈 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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