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79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지음, 윤우섭 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러시아 추리물이라는 말을 듣자 대번에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추리물 하면 영미권이나 일본의 책이 떠오르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러시아가 배경이라면 몹시도 추운 긴 겨울이 떠오른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책 대부분의 풍경은 겨울이며 크리스마스, 새해 등을 전후로 일어난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색다른 것은 각 단편의 작가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추리물과 여성작가라! 정말이지 부러운 일이다. 장르소설이 폭넓고 다양해지는 가운데 독자는 물론 작가도 더욱 풍성해지는 현상은 흥분되는 일이다. 국내 추리소설도 더 풍요로와지기를 빌어본다. 독자들이 많으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자, 이제 열 편의 단편을 만나보자. (아랫글부터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주의. 물론 결정적인 건 밝히지 않습니다.)

1.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
주인공 니나는 오래전 잃어버린 딸이 있다. 어느 날 우연하게 광장에서 구걸하는 마샤라는 소녀를 만나고 그 아이가 자신을 똑 닮았음을 느낀다. 결국, 마샤를 잃어버린 딸이라고 생각한 니나는 개인탐정 알렉세이에게 의뢰를 부탁한다. 이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자는 탐정인 알렉세이로 따뜻하고 잔잔했다. 범인은 늘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일반적인 공식이 깨지지 않는다. 노숙자, 구걸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약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며 첫 단편인데 기억에 남는다.

2.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
제목이 독특해서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관심이 쏠렸던 단편. 주인공 폴리나의 남편이 살해당하고 남편의 친구 바짐은 어느 날 사라진 폴리나를 찾게 된다. 여기서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자는 폴리나. 예민한 그녀답게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범인처리방법은 냉정하고 깨끗했다. 그녀의 독백부분이 인상적이다.

3. 천사가 지나갔다
제목만 보면 왠지 톨스토이가 떠오른다. 러시아의 대문호라 그럴까.
노작가의 심장을 멈추게 한 링거병 바꿔치기를 의심하는 의사 슈마코프가 추리자로 이 단편은 추리물 같지 않은 끝맺음이었다. 그의 집착이 더 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조금은 시시하게 느껴져서 음식으로 치면 간이 덜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래인용 말에 무척이나 동감했다.



도대체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148쪽)


4. 이지웨이!
추리소설작가 알료나가 추리자. 그녀의 시원시원한 이야기는 러시아의 혹독한 눈보라와 대조적으로 따뜻한 결말로 끝난다. 제목의 이제웨이는 가방상표 이름이다.

5. 새해 이야기
주인공의 건방증 심한 친구는 돈을 잃어버려서 그 돈만큼 액수를 채워야 하고, 남편과는 이혼 직전의 상태로 주인공은 친구들이 더 소중할지도 모를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산타클로스처럼 나타난 사람의 선물 그리고 역시나 해피엔딩. 새해 하면 무언가 희망차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 그에 부응하듯 이 단편도 따뜻하고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서 기적이라 불릴 수 있는 일이 생긴다.

6. 행복한 크리스마스
주인공 다샤가 추리자로 친구의 남편 살인사건을 풀어간다.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라고 판단한 그녀는 차근차근 사건을 해결하는데 재미있었다. 제목처럼 역시 해피엔딩이다. 가만 보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하나같이 돈, 유산 때문이다. 하루라도 사건·사고 없이 지나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서글퍼진다.

7. 복수의 물결
이 책에서 유일한 남매작가의 글. 이들은 늘 합작으로 글을 쓰는가 보다.
주인공이자 추리자인 료샤는 대학등록금이 필요해서 수입이 많은 대저택의 하녀 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파티에서 주인이 살해되고 안주인은 포상금을 내건다. 료샤는 추리를 시작하고 결국 살인범을 찾아낸다. 전형적인 복수 이야기였다. 그러나 복수라는 것은 사실 동기가 있다. 돈보다 더 큰 상처를 입어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던 것. 범인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아직 순수하고 어린 료샤의 선택은?? 재미있게 읽었다.

8. 러시아식 성탄절
추리자 스베틀라나는 우연한 기회에 유명인들과 성탄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녀의 추리가 시작된다. 로맨스도 살짝 가미된 이 단편은 더빙 된 외국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는데 괜찮았다.

9. 마지막 유언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아내 아냐와 남편 르보비치. 새해를 맞아 아내는 친구 내외를 초대하고 부엌에 거위요리를 꺼내러 갔다가 살해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이런!!

10. 예정된 살인
어느덧 이 책의 마지막 단편. 러시아의 단면이 살짝 느껴졌는데 마피아, 살인 등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이 책의 모든 단편이 그렇듯 폭력이나 잔인한 장면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전반적으로 탐정이나 형사 등의 전문인이 일을 해결하기 보다 아마추어인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로 우리 주변의 그 누군가이거나 혹은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비일상적인(-살인은 정말이지 비일상적이라 말하고 싶다.) 사건 그리고 잔잔한 전개는 무섭거나 긴장감을 주지 않고 에피소드처럼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래서 자극물에 마음이 약하거나 추리물에 입문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반면에 극적 긴장감을 원한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러시아가 배경이고 여성추리작가들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책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래서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변해가는 러시아의 흐름도 느껴져서 좋았다. 내게 먼 나라로만 생각된 곳 러시아는 늘 영화에서의 이미지로만 남았는데 이 책으로 조금 더 다가선 거 같다. 싸이코살인마가 등장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할 필요가 없는 책이니 옆에 간식을 두고 편하게 만나기를.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지나간 긴 겨울을 잠시 떠올리듯 그렇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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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8-03-28 00:08   좋아요 0 | URL
오호....옆에 간식처럼 두고 볼 수 있는 책이라고요? 땡깁니다, ㅋㅋ

은비뫼 2008-03-28 01:57   좋아요 0 | URL
앗, 몽당연필님! ^^* 맥주 한 잔 옆에 두고 읽어도 될... 흐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