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특별한 날 - 타샤 할머니가 들려주는 열두 달 이야기 타샤 튜더 클래식 2
타샤 튜더 글.그림,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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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E  

 이제 여름이 왔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름이.

 -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처음 만나는 타샤의 그림책 <타샤의 특별한 날>은 일반적인 이야기가 있는 그림 동화책은 아니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엄마가 자기만 할 때 어땠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한 편의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어쨌거나 이것도 하나의 줄거리가 되기는 하는데 타샤의 대답은 이러했다. "정말이지, 즐거운 날이 아주 많았지."  

 사이즈도 크고 얇아 일반 동화책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테두리 장식 그림부터 나를 즐겁게 했던 책이다. 어릴 때 동화책 선물 받고 신났던 때처럼 이 책은 어른인 나를 신나게 했다. 1년을 달마다 나눠서 각 달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보내는 형식인데 더불어 미국의 여러 행사가 나오지만, 대부분은 타샤가 만든 집안행사라 더욱 재미있다.  

 이미 타샤는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한다고 예전에도 말했듯 12월 크리스마스날은 1년 중 최고로 아름다운 때였다고 말한다.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읽을 때 사실 많이 놀랐다. 그녀가 이벤트의 여왕인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오래도록 세심하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타샤가 없지만, 자손들이 집안행사로 이어가니 앞으로도 영원히 되풀이될 것만 같다.  

 맨 위에 인용한 시구는 타샤가 직접 고른 건데 다독가였던 그녀답게 여러 사람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다. 타샤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녀도 셰익스피어를 즐겨 읽었으리라 추측한다. 잼을 만들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다("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고 했던 그녀이니 말이다. 대대로 내려온 요리책("타샤의 식탁")이라던가, 이 책에서 말하는 가족행사 등 가족전통을 배우고 지켜서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모습이 정말로 훈훈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특별한 날은 얼마나 될까. 지금의 우리는 그날조차도 잘 지켜주지 못하는데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만들어 함께 행복을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지만 진정으로 가치 있다. 아이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 될 터이니까. 특별한 날을 기다리지만 말고 직접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를 깨닫는다면 아마도 날마다 특별하리라. 더불어 우리만의 잊혀진 혹은 이어갈 멋진 날도 많을 거 같다. 일 년 열두 달 속의 한국판 동화도 언젠가는 나오겠지. 

 꽃이 가득하지만 화려하기보다 수수하고 그윽한 타샤의 그림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정겹게 느껴지는 거 같다. 꼬마였을 때 엄마가 장식장에 넣어두었던 유채 그림들 처럼 말이다. 나만한 남매가 시골의 강가에서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모습이었던 거 같다. 제법 오래도록 장식장을 차지하고 있던 서양유채 풍의 장식그림은 이제 없지만 그림이 전해준 풍경의 느낌은 아직 살아있다. 타샤의 그림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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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그림 (리커버)
타샤 튜더.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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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타샤 튜더가 나를 사로잡았던 건 그녀의 정원이었다. 전문원예가 못지않은 지상낙원을 만들었던 아름다운 순수의 정원은 곧 타샤의 삶이었다. 서로 다른 꽃들의 어우러짐을 통해 그녀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보며 나조차도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었다. 그렇게 타샤의 세계와 만나면서 빠져들어서 이후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 관련 책들을 하나씩 찾아 읽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그림을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타샤의 동화책 첫 권이 <타샤의 그림 인생>. 엄밀하게 말하면 이 책은 동화는 아니고 타샤의 그림 작업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많은 작품이 들어 있어서 종합선물 세트처럼 느껴지는데 소박하고 정겨운 타샤 특유의 화풍은 언제 보아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다른 화풍도 실려 있어 흥미로웠는데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선보인 화풍이었다. 그림이 예쁘기는 하지만 역시 정겨움이 물씬 풍기는 손맛 나는 그림이 더 좋다. 

 타샤는 어릴 때부터 혼자 그림을 그려서 터득했는데 모친이 초상화 화가였다. 그래서인지 이미 타샤는 삽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모친의 영향이 있었을 거 같다. 또 하나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림에 관한 것뿐 아니라 다른 책에서 이미 언급한 가족사를 비교적 소상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타샤의 이름이 원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나타샤였는데(아버지가 좋아해서 지은 이름.) 후에 타샤로 줄여 불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타샤의 집, 정원, 식탁, 크리스마스 등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어서 더 좋았다. 물론 순서는 상관없겠지만 일단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알고 그림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이미 책에서 만난 사진이 금세 떠올라 이해가 더 쉽다. 사실 사진과 그림 중 어떤 게 더 좋으냐고 질문하는 것은 어리석은지도 모른다. 그러니 반대로 이 책을 먼저 읽고 라이프스타일 관련서를 찾아 읽어도 괜찮을 거 같다. 그래도 한마디 더 하자면 여기서 글로만 말하는 풍경을 알고 있다는 행복감 그리고 절로 생생하게 광경이 떠오른다는 기쁨이 있음을 말해둔다.

 편지나 엽서를 쓸 때 선 수준의 그림 아닌 낙서를 해서 보내는 취미를 가진 내게 타샤의 테두리 그림은 놀라웠다. 어릴 때 동화에서도 이렇게 예쁘게 그려져 있진 않았던 거 같다. 주제에 맞게 이야기가 이어지며 독립된 공간이기도 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테두리. 계절감과 자연이 잘 표현되어 볼수록 부러웠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그 페이지만의 이야기가 있는 <타샤의 그림 인생>을 덮으며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고단했지만 즐거웠어요." 타샤가 지금까지의 삶을 최대한 간단히 말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간단하지만, 고스란히 그녀의 삶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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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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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날 어머니가 들려주는 음악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피아노 소품곡들과 팝송이었는데 특히나 클래식 음악은 언제나 잔잔하고 듣기 좋아서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그래서 야영 가는 날에도 테이프를 들고 가서 카세트에 넣어 듣다가 망가뜨리기도 했었다. 이제는 테이프를 들을 일이 없지만, 가끔 그때 생각이 나고는 한다. 
 
 이처럼 친숙한 클래식이지만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베토벤을 좋아하면서도 말이다. 중구난방 그저 우울할 때는 바로크 음악을 찾아 듣고 아니면 베토벤의 곡들이었다. 그러다 클래식을 제대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는데 재미있게도 록음악 때문이었다. 다양한 록의 장르를 여러 개 탐방하면서 아트락을 만났는데 모든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전위적인 음악이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때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거 같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두껍고 비싼 클래식 책을 탐독하고는 했지만 따분하거나 전문적이었다. 그래서 듣고 싶은 부분만 읽고는 했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는 서양 음악사를 한 권에 담았다. 그것도 별로 두껍지 않으며 CD도 준다. 물론 귀에 익은 곡들뿐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러 페이지에 걸친 머리말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와 고집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 책은 '음악사'이면서 '음악을 듣는 법'에 대한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은 과연 적중했다. 보통은 객관성과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활력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드러나는데 저자는 이 부분을 지양하며 썼던 것이다.  

 더구나 음악에 관한 다양한 삽화가 수록되어 있어서 즐겁고 다채롭게 읽을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책을 잡고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버렸다. 그만큼 가독성도 좋고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종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음악은 특히 서양음악사의 주요 뿌리인 단선율의 그레고리오 성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중세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려주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려준다. 음악이 대수, 기하학, 천문학 등과 함께 고등한 수학적 학문으로 분류(44쪽.)되었다는 것부터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김연아 선수가 선택한 음악이었기에 죽음의 무도는 이제 학생들에게까지도 유명해졌다. 십자군 실패의 반복과 교회의 타락 그리고 페스트 때문에 중세는 대혼란의 시대였고 그런 분위기로 죽음의 무도라는 시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절대음감자 생상스가 곡을 쓴 거였다.  

 계속 이어지는 르네상스 이야기를 통하여 음악뿐 아니라 당시 사회의 미술, 종교 등과의 연계성까지 두루 돌아볼 수 있어서 교양서로 안성맞춤이었다. 예전에 읽은 <르네상스의 비밀>이나 <보티첼리> 같은 책을 떠올리며 확장이 되었다. 조금씩 나오는 에피소드도 재미있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바로크 시대의 바흐에 대한 부분도 즐겁게 읽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고전파 베토벤(사랑하는 베토벤 선생~!) 부분만큼 신나게 읽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놀이도 함께했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 그리고 체르니의 제자 리스트. 친근한 이름의 예술가 관계도 연결짓기 놀이! 니체와 친구인 바그너 등 서로 이어지는 관계가 언급될 때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고 싶어졌다.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지루하고 복잡하면 그렇다고 불만인데 이렇듯 쉽고 간결하게 지나가니 더 알고 싶다고 보채고 있다. 19세기 스트라빈스키와 20세기의 글렌 굴드까지 한 권에 이렇듯 줄줄이 묶인 대어들을 먹은 셈이다. 그 맛 또한 좋았다.   

 한 권으로 끝나는 서양 음악사는 초보자에게 추천하고 싶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장점은 친근함이다. 저자의 각오와 노력이 이뤄낸 결실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즐겁기 그지없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독일은 바흐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그리할 수 있으려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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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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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껏해야 백 년을 살지 못한다는 사람. 그러나 그동안을 살면서 온갖 경험을 하고 그만큼 마음에도 상처와 흔적이 남는다.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거나 회의감이 드는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결국은 정면으로 충돌해야함을 깨닫는다.  

 고등학생 때 많은 회의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말 많은 사람들이 싫어서 침묵했고 학교라는 입시위주의 공간이 지겨워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대안으로 떠올린 곳이 정신병원이었다.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가고 싶은 소망은 돌이켜보니 그저 도망일 뿐이었다. 누구와도 말을 섞기 싫고 실컷 책이나 읽으며 생각이나 정리하고 산다는 게 쉽지는 않다. 그것도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그리 사는 것과 모든 것을 회피하여 그리 사는 건 분명히 다르니까.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수명과 승민. 이들은 정신병원에서 만난 동갑내기로 승민은 탈출을 소망하고 수명은 이를 돕는다. 수명은 어릴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이후 아버지에 의해 정신병원에서 살게 된다. 무엇하나 희망없이 그저 병원에서 살지만 사실 정신은 멀쩡하다. 물론 병명도 있고 거부감을 느끼는 공포도 있지만,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협이 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시간 속에서 오롯하게 살아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세탁부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기한테서 도망치는 병을 안고 있는 게 수명이라고. 수명은 이 말을 들으며 가슴 한 부분이 뜨끔하며 금이 가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고등학생 때의 나처럼 말이다.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치가는 자." (213쪽. 수명.)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286쪽. 승민.)
 

 다시 한 번 왜 정신병원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가 그랬었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결국 미쳐버렸다고. 이미 세상은 절대적 기준이란 게 사라진 지 오래이듯 정신병에 대한 내 생각도 비슷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병원에 가는 이들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정신병이란 마음병이며 치유되지 않은 그 무엇이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치유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도 격렬해서 반응 자체에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미쳤다고 한다. 병원에서 환자를 다루는 방식은 아직도 인권존중과는 거리가 있으며 자유롭게 가족과 연락하기조차도 어렵다. 이곳도 하나의 사회라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으며 다양한 상처를 안고 있다. 정신이 무너지면 지탱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병동은 무너지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처음으로 정신병원으로 실습을 나가 어떤 이에게 말을 걸고 지켜보고자 했으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후 마음에 그것이 남아있었고 결국 숙명처럼 우연한 기회를 얻어 많은 시간과 과정을 거쳐 작품이 탄생했다. 그들의 운명이 침몰될 때, 그녀의 운명이 침몰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소설의 처음은 평범했다. 별다른 사건 없이 묵묵히 읽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가독성은 좋았다. 이후 점점 재미있어지면서 후반이 금세 지나간다.  

 죽어 있는 삶을 사느니 죽어버릴 각오로 부딪치는 의지. 이왕이면 나만의 시간 속에서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 주저 없이 자유를 택해 나는 것. 승민이 수민에게 보여준 것들이다. 이제 승민은 자유로울지 그리고 남아있던 수민의 선택은 어떨지 그려보며 흐뭇하게 책을 만져본다. 그저 두 명의 동갑내기가 정신병동을 탈출하려는 재미있는 소동으로만 보기에는 이 책이 묵직하다. 삶에서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망으로만 끝나면 의미가 없듯 생각 속에 파묻히지 말고 수면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제법 긴 숨을 참아가며 말이다. 그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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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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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방송에서 크로아티아를 처음 보았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주위에 누구 하나 가본 적도 없는 낯선 나라였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화려하지도 않고 도시적이지도 그렇다고 보통 꿈꾸는 유럽과도 차별되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지명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라 이름은 예쁘기도 해서 기억하는데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크기도 작고 온통 붉은 지붕이 그려진 일러스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딱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풍인데 다음 장을 넘겨도 붉은 지붕 일러스트가 온통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제모습의 사진을 보자 방송에서 본 곳이 이곳이었음을 확신했다. 저자는 크로아티아의 네 곳인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를 소개한다. 아니 소개라기보단 저자만의 느낌을 담은 일기장이나 메모장을 엿본듯하다.  

 푸른 바다 아드리아해가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 그리고 이곳의 색은 바다색과 주황색뿐이라는 느낌이 들듯 온통 지붕들은 주황빛이다. 이곳이 두브로브니크라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어 행복했다. 방송을 보며 나중에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던 곳. 저자도 이곳의 붉은 지붕이 펼쳐진 사진 한 장에서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드리아해 그리고 역사와 세월을 꿋꿋하게 이겨낸 두브로브니크 성벽과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좋아서 크로아티아를 기억하게 된 나. 이렇듯 모든 여행의 동기는 다르지만 같은 장소를 소망하는 이들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게다가 저자를 위로해준 물속에 잠긴 나무가 있는 요정이 사는 숲 플리트비체의 발견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장소가 현실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크로아티아도 관광객이 갈수록 늘어난다는데 아무쪼록 이곳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곳이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는 역사적 아픔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플리트비체에서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말 많던 사람들의 세상에서 떠나와

말 없는 이곳에서 위로받는다.
 

(플리트비체에서.)
 

 계속 이어지는 스필리트에서는 초록색 대문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은 이유는 보이지 않는 대문 너머의 풍경이 절로 머릿속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있을법한 나름의 삶. 여행이 주는 혹은 낯설지만 익숙한 것들이 주는 매력의 일부이다. 마지막으로 파란색이 많은 도시 자그레브에서 또 다른 여행자가 저자에게 말했던 공존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전쟁에 나가는 이들에게 정성 들여 목에 매주던 것이 넥타이의 유래임을 알게 되고 도이치 시장의 사과가 맛있어 보여서 자꾸만 여행생각이 간절했다.

 

 이병률의 <끌림>처럼 마음에 꼭 드는 책이었다. 전자가 사람들 안으로 떠나는 여행의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크로아티아라는 보석을 발견하러 떠나고 싶게 만든 책이다. 글과 사진, 일러스트의 조화가 돋보이나 글은 생각보다 짧고 적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크로아티아의 풍경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거 같다. 간혹 사진 위에 있는 글자가 바탕색과 선명한 구분이 되지 않아 쳐다보게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공부하듯 꼼꼼하게 글자를 쫓지 말며 사진을 통해 사진 너머를 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니까.

 

 가보고 싶던,

 그리고 여전히 가고 싶은 나라.

 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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