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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동방 ㅣ 김소진 문학전집 6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평점 :
몇 년 전에 선물 받은 책인데 내가 모르는 작가의 책이라 오래도록 책표지와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 무렵 이제는 읽어보고 싶어졌다. 참 희한한 버릇이지만 새로운 작가의 책은 그 어떤 선입견이나 기대도 없기에 나름 제목과 책표지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대부분 보기 좋게 빗나가지만 더러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리움이 주는 아련함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있어서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다만 동방을 나 혼자 동아리방이라고 생각한 게 우습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소진 전집 중 마지막 6권인「그리운 동방」은 산문이다. 그래서 작가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요절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 아쉽다. 그가 삶을 끝낼 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왜 진작 작가가 살아있을 때 읽어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렇게나 왕성하게 글을 남긴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아직 읽지 않은 5권의 책이 남아있지만, 더 많은 작품을 읽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건 역시나 슬프다.
산문의 중심은 작가의 아버지이다. 자전소설이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그가 그려낸 가족의 모습에서 부모님을 돌아보았다. 사연 없는 가족은 없겠지만, 시대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오게 된 아버지의 삶의 모습을 따라가노라니 내 가족이 아니어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작가가 사람 냄새나게 그렸기 때문이리라. 기억, 추억, 유년기라는 단어에서는 향수가 어려있어서인지 한없이 푸근하면서도 쌔하다. 우리가 소설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 유독 유년기의 추억은 더 정겹다. '유년 시절은 생애 최대의 풍경'(125쪽)이라는 말에 한없이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김연수의「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도 떠오르면서 글에 빠져들었다.
작가려면 정녕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솜씨가 뒷받침돼야 하지 않을는지. 그러나 나는 작품을 하나 다듬어서 내놓을 때마다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냈다는 보람보다는 아슬아슬한 기억을 하나 되살려놓았구나 하는 느낌이 먼저 들곤 한다. 이것은 앞으로 나의 글쓰기 작업에 한계로 작용할 것인가, 아니면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될 것인가?
- 32쪽, 원체험, 기억 그리고 소설 일부발췌.
사라져가는 것들. 어쩌면 소설이란 그런 것들을 추억하는 기억 위에서 구축됐다가 또다시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움과 안타까움 없이 소설을 읽는 간 큰(?) 사람이 요즘 아무리 많아졌다 해도.
- 36쪽, 원체험, 기억 그리고 소설 일부발췌.
1부 산문이 끝나고 2부 습작소설과 시에서 <아버지의 슈퍼마켓>에 빠져들었다. 끝나서 무척이나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이다. 학회지에 실린 <소외>도 인상적이었다. 3부 책글에서는 여러 작가의 책이 나온다.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지만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책을 찾아 있고 싶어졌다. 여기까지는 제법 개인적인 느낌인지라 작가 김소진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4부 인물글 또한 흥미롭다. 문예지 등에 있던 글모음인데 저자가 기자였을 때 만난 인물글 같다.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의 누구, 서울토박이회의 누구, 도시 코디네이터 누구를 비롯하여 대중에게 친근한 개그맨 전유성까지 만날 수 있다. 글을 쓴 때는 내가 대학생일 때였다. 20대의 질풍노도 속에 철없이 고심하고 있었을 어린 나와 당시의 인물과 시대를 만날 수 있어서 새롭게 느껴진다. 저자는 요절했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음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5부 대담글은 글, 소설에 대한 대화형식이다. 개인적으로 5부를 읽을 수 있어서 또한 좋았다. 작가들의 문학과 소설에 대한 치열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진, 김형경, 박상우 세 작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저는 문학을 공부할 때, 문학이란 사사로운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되, 그것이 이 사회와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들과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다 큰 의미망을 가진 이야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제 체험을 소설 속에 그리 많이 풀어내지 않았습니다.
(…이하 중략…)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썼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완성되어 있으며, 얼마나 독자에게 진실성있게 다가가느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293쪽, 원체험, 현실 그리고 독자中 김형경의 말 일부발췌.
작가 김소진과 대조되는 김형경의 소설 쓰는 방식이지만 결국 어떤 방식이건 상관없이(김형경 작가의 말처럼) 독자에게 작가들의 책은 공평하게 다가온다.
모르는 작가의 마지막 전집과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 권부터 읽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격이다. 바로 완전한 장편 혹은 단편의 책을 읽었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거꾸로 만나는 김소진 편으로 계획해서 읽어봐야겠다.「관촌수필」처럼 구수함이 어린 우리소설이었다. 작가의 어머니 영향으로 얻은 구수한 입담과 아버지와 유년기를 쏟아낸 김소진. 소설과 아내 함정임까지 김소진을 둘러싼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더욱 오롯하게 글로 만나고자 다음에는 소설을 꼭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