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학 오디세이의 마지막은 피라네시와 함께 했다. 책표지만 보자면 피라네시의 이름은 몰라도 어딘지 낯설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겸 화가인 피라네시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가 많을만하다. 영감을 부르는 그의 작품과 마주하니 에셔와는 확실하게 다름을 알았다. 몽환적인 느낌 그리고 지금은 잊혀진 오랜 과거의 어느 순간을 보는듯한 착각.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은 그만의 능력이리라. 첫눈에 어디가 논리적이지 않은지 보이는 에셔와 다르게 피라네시는 인지가 어려웠다. 에셔도 재미있지만 피라네시 역시도 놀랍다. 18세기의 환상적 리얼리스트라는 명칭은 그냥 얻은 게 아니다.
 
 모르는 예술가만 나오면 섭섭하지. 모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루앙 성당이나 수련에서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저 인상주의 화가였거니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수련 작품을 많이 좋아한다. 객관이 아닌 주관을 지향한 화가의 눈을 통해 보여진 작품 앞에서 나 역시도 객관과 주관에 대해 돌아본다. 그리고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발러가 다시 그린 걸 보며 두 작품의 차이에서 차이보다는 공존을 느꼈다.
 
미메시스는 인식론적 모방(imitation)이 아니다. 그것은 주위 환경에 맞춰 제 몸의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같은 존재론적 '닮기'를 말한다.
 
- 86쪽, 창조의 언어中.
 모방과 닮기, 복제 그리고 원본 이 모든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복잡함과 다양함. 이것이 현대미술인가 보다. 오래전부터도 있어왔겠지만 더 후대로 갈수록 과거와는 구별되는 획을 긋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된다. 이런 와중에도 과거로의 회귀도 공존하니 우리네 세상은 참 재미있다.
 
 또 보르헤스는 역시!! 보르헤스의 글은 정말로 매력적인데 사실 많이 읽어보지 못해 아쉽다. 새롭게 발터 벤야민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다. 베이컨의 작품은 처음 보았는데 흥미롭다. 예술은 언제나 아름답지 않다는 공식을 깬 이들은 꽤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단연코 강렬했다. 내게는.
 
 그리고 클레. 처음 클레의 작품을 보았을 때 어린아이처럼 천진함과 단순함과 색채 등에 끌려 좋아했다. 책에서 다시 만난 클레는 더욱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적인 예술가였다. 저자의 말처럼 마그리트와 클레가 통한다는 사실. 그래서 둘 다 더 좋아지고 내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했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베이컨 등의 작품을 통해 정말 수많은 예술가가 표현하는 방법 앞에서 다양성과 치열한 예술혼을 본다. 더불어 그들의 사유를 느꼈다. 그에 반해 바쁜 현대인은 정신적으로 과연 얼마나 치열하게 사고하는지 자문한다. 이것은 내게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너무도 쉽게 정보를 얻는지라 그래서 생각의 체력이 약해진 게 아닐까 싶다. 관념은 보편타당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하다. 아하~~ 이건 말장난이 아니다.
 
실재와 가상을 가르는 기준 역시 가상이며, 현실과 허구를 나누는 기준마저 허구일 수 있다는 것. 도대체 무엇이 실재이며 무엇이 가상인가? 대체 어디까지 현실이며 어디부터 가상인가? 그런 의미에서 사라지는 것은 예술만이 아니다.
 
- 360쪽, 다시 가상과 현실中.
 저자가 줄기차게 말해왔던 안과 밖 그리고 실재와 가상까지. 그의 언급처럼 영화 <매트릭스>가 저절로 떠오른다. 아, 현대예술까지 달려온 탁월한 구성의 미학 오디세이! 다른 책과 철학자의 사상과 예술을 잘 골라 버무려 흥미 있고 쉽게 독자에게 다가왔다. 저자 진중권의 생각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따지자면 과거의 활자나 관념에 빚지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하나. 정말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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