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소녀
엑토르 말로 지음, 원용옥 옮김 / 궁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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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커서 다시 꺼내 읽기란 유년의 향수를 찾을 뿐 아니라 생각의
주머니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때 내가 그렇게도 열광했던 책들
은 공주 이야기보다 모험 이야기였다. 특히나 『집없는 아이』와 이 작품은 힘겨운 생
활을 잘 헤쳐나가는 소년, 소녀의 모험이 들어있는데 지금 읽어도 새삼 느끼는 점이 많다. 이들의 순수
함은 물론이거니와 정직함과 용기가 좋다. 나도 이런 용기있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모험의 비중이 자꾸
만 줄어간다. 그보다는 안락함을 더 찾기 때문일 것이다. 모험과 안락함이 적절히 조화되면 최선이겠으
나 모험을 다소 주저하게 된 것이 문제다. 매순간의 선택에서 모험은 뒤로 빼버릴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모험은 삶의 활력이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는 뻬린느의 모습을 보며 지금 병원에 계시는 엄마 생각을 했다.
작은 수술을 하나 하셨는데 엄마의 공간이 크게 느껴진다. 이제 성인이라 모든 것을 내가 처리할 수 있
지만 가족의 자리란 것은 그 사람의 부재만으로도 공허함이 크다.
각설하고 이런 상황에서 홀로 된 뻬린느는 길을 나서게 된다.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소녀를 괴롭힌다.
날씨와 배고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혼자라는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아이
특유의 밝은 마음씨를 간직한 소녀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와 극적으로 만난다.
가족의 소중함은 곁에 있을 때는 모른다. 부재했을 때에야 느껴지는데, 그런 상실감을 최소화시키는 방
법은 관심과 대화이다. 소녀도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고 그들은 서로에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가족은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인공 뻬린느인데 대충 우리나라 아이라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
도가 아닐까 싶은데 여간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홀로 된 상태에서 그렇게나 꿋꿋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간혹 들지만 작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곳곳에 아이 특유의 소심함도 함께 나타냈다. 그
래도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그렇다, 이 책은 동화의 완역본이다. 그래서 꽤 분량이 많고
내용은 흥미진진하기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동화적 느낌이 강한 부분은 뻬린느가 홀로 섬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모습이다. 19세기의 프랑스 사회에서 느껴지는 산업혁명시대의 배경과는 대조되는
모습인데 섬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다분히 그 시대상이 묻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뻬린느는
아이치고 너무도 신중하다. 개인적으로 너무 교과서적인 인물에는 흥미가 떨어진다. 아무튼, 환경이
아이의 능력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좋았던 것은 삽화!
어릴 때 보던 삽화와 정말 비슷하다. 색채가 아닌 흑백인 것까지 말이다. 삽화에 대한 말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옮긴이의 말에 적힌 <앙리 라노스(Henri Lanos)>의 삽화로 추정된다. 몽환적이거나 밝지도 않지
만 낯이 익어서 그런지 내게는 친숙했다.

『집없는 소녀』는 집도, 가족도 없이 엄마의 유언을 따라 친지를 만나러 가는 소녀의 모험이다.
물질적인 집이나 정신적인 가족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집과 가족 모두가 있어도 뻬린느처
럼 당당하게 모험을 해나갈 의지가 강한 아이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화로 보았던 『엄마찾
아 삼만리』가 머릿속에 겹쳐진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모험 동화책을 한아름 선물하시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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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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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차원을 떠나 책이 많은 의미를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제목에 「책」자만 들
어가도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마디로 짧은 여정처럼 길지 않지만 의미 있는 시
간을 보낸 것과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시작부터 책의 희생자들을 열거하는데 그들의 죽음에는 하나의 상징처럼 책이 공존한다. 한때는 나도
지진이 나면 나만의 서재나 책장 앞에서 온통 책으로 덮여 최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과연 그에 걸맞게 제대로 책과 만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델가도나 브라우어처럼 열정이 있는지의
문제도 필수적이다. 이들의 열정이 지나치다면 나는 거기에 미치지 않는 아직은 풋내기니까.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ㅡ 17쪽


책장에 마구잡이로 쌓아둔 책을 보며 가끔은 일정기간을 두고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행
해 본 적이 없다.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북크로싱을 해도 좋을 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차차 시도
해야겠다.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때때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그래도 좋은 책이 많
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이것도 앞으로는 목록을 만들어 두기로 생각했다.

다시 책과 사랑에 빠진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떠올려 본다. 그의 모든 것이 된 책은 그에게 곧 짐이 된
다. 저주처럼 사랑이야말로 강력한 파괴의 성질을 갖추고 있다. 그 능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결코
거부하기 어렵다. 영화 《킹콩》에서도 콩은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파국을 맞았다. 물론 콩의 선택이
었지만. 이토록 치명적인 장단점을 사랑은 갖고 있는데 브라우어의 대상은 바로 책이었던 것이다. 그
것이 사람이건 음악이건 영화이건 이것들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처럼 중독 적이다. 이미 경험한 우리
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인간만이 책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ㅡ 82쪽

자, 그렇다면 내 책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나에게 달렸다. 단지 습관적으로 책을 읽
고 있는지 또 소유욕으로 모으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어느 존재든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 끝
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할 수 없으니까. 다만, 과시적이
거나 계산적인 노력은 책과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임을 명심하자.

시(詩)처럼 함축적인 글 그리고 퍽 어울리는 삽화를 보며 책으로 집도 짓고 무너뜨리며 책에 대한
환상을 떠올렸다. 책으로 집을 지은 브라우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가 행복하다면 그런 것이므로. 소화할 수 없는 책을 읽어 거북해진 배는 그만
큼의 내공이 쌓여야 묵은 체증 내려가듯 뚫릴 것이다. 그처럼 단계적으로 책을 읽어야 함을 다시 생각
했다. 그리고 이후에 찾아올 여러 문제점을 지금부터 싸매고 걱정하진 않겠다. 지금은 책 자체를 오롯
하게 소화시킬 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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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2-14 12:5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은 묵은 체증을 생각하지 말고 책 자체를 소화시킬 시기인것 같아요. 언젠가 뻥 뚫어질 날이 있겠지만 지금은 현재의 책읽기만을 생각하렵니다.^^

은비뫼 2007-02-14 21:35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즐거운 책읽기 하세요. ^_^
시원하게 뻥 뚫어질 날이 오면 유쾌한 마음의 잔치가 벌어질 겁니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정철진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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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회사에서 한 선배가 말했다. "너만 알고 있어. 나 주식 대박이야~!" 이 말과 함께 선배는 얼
마 후 퇴사했다. 연락처를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 타입이었는데 그날
은 아마도 기분이 매우 좋아 내게라도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한 적이
없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집안일 하며 아이 키우며 회사 다니며 그야말로 바
쁜 사람이었다. 한순간 그렇게 지나간 과거의 그녀가 이 책으로 다시 떠올랐다.

경제, 경영에 관한 책에 관심이 없던 내가 우연하게 『여자 경제학』을 읽으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그 전으로 올라가서 『주식투자의 심리학』을 보면서 부터인거 같다. 그 전에도 읽은 적은 있었
지만 본격적으로 조금씩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물론 20대, 재테크 이야기를 30대에 읽는 것은 조금 아이
러니지만 내용을 보니 30대도 얼마든 상관없었다.

특히 앞부분은 개인 재무제표 하는 방법 등의 이야기부터 보험, 펀드, 저축과 투자, 주택청약통장에 관
한 이야기까지 실생활에서 모두 득이 되는 내용이다. 대략 알고 있었던 내용이 정리가 되었다. 20대에
이 책을 읽고 시작하는 이들은 얼마나 시간을 많이 벌까 라는 생각도 했다. 나도 20대에 주식에 관심이
있었는데, 한 번 크게 놓아버린 일이 있어서 다음부터는 돈에 관심이 없어졌었다. 지금도 돈보다는 실
생활에서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똑똑한 책이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3000만 원 정도를 공격적으로 주식으로 굴리려면 적어도 1년 이상 체계적인 공부도 필요하다. 적어도
시중 증권사에서 매일 발간하는 '애널리스트 리포트' 를 읽고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정도의 식견
은 갖춰야 한다. 신문 증권면에 나오는 기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100% 이해하고 토론할 정도
는 돼야 한다. ㅡ 237쪽


위의 글은 마지막 4장 <실전! 20대 재테크>에 있는 말인데 실제 투자하고 있는 사람이나 곧 시작할 이
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방법을 말한다. 더구나 각각의 금액에 따른 투자지침이 들어있으니 의욕이 생
길만도 하다. 나처럼 좁은 경제 식견을 가진 이는 묵묵히 읽어나가지만 그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은 전
혀 들지 않는다. 20대를 위해 쓰여진 책이지만 누구에게나 도움되는 책. 아, 경제서에 이러다 취미 붙이
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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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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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작가의 성장소설인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정말이지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
에 소리 내어 웃게 한 장본인이다.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에 치중하여 살던 내 삶에 잠시 쉬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지나간 과거를 돌
아보는 시간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왜 가끔 잊어버리는 것일까. 작가의 잊혀진 유년을 만나고자 쓴 책
에서 더불어 나의 유년도 살며시 꺼내보았다. 물론 작가와 나는 세대 차가 있기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선물 받았다.

제주도의 풍경과 어우러져 커 나간 작가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내게 제주도는 그저 수학여행
으로 다녀와 본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일본TV에 제주도에 관한 내용이 자주 반영되는 것을 보고 역시
자랑스러운 제주도라고만 생각했다. 이질적인 제주도 말을 들으면 도대체 어떤 말인지 몰라 궁금해하
던 내게 작가의 제주도와 만나고 나자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이렇듯 내게도 자신의 유년시절과 제주도
를 나눠 눈 책이라 책장을 덮고 나도 기분이 좋다. 제주도의 사투리도 구수한 누룽지처럼 느껴진다.

어머니만이 나를 키운 것은 아니다. 내 동무들도 내 성장을 도왔고,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대지 또한
내 성장의 요람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속물이면서 동시에 아이들 무리 속의 일부였고 대자연 속의
한 분자였다. ㅡ 82쪽


정말이지 제주도의 다채로운 풍경만큼이나 풍요한 유년시절 이야기가 샘솟듯 흘러나오는데 거기에는
좋은 추억만이 아닌 슬픔과 고뇌가 함께여서 감동적이다. 제주도 4.3이야기는 나 같은 육지인은 잘 모
르거나 알더라도 관심에서 비켜가는데 그래서인지 묻혀진 아픈 역사의 한 가닥이 서글펐다. 시대의 참
상을 바로 알아야 현재를 제대로 보고 미래도 예측할 터. 그런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을 다잡고 경건하
게 임했다. 또 작가는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하기에 내가 겪은듯한 몽롱함을 주었다. 물론 그중에는 너
무도 생경한 것도 있었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해서 마음마저 밝아지게 했다.

삶이란 두려움의 대상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 ㅡ 167쪽

소리 내 웃은 부분은 바로 맥베스를 연극하는 부분이었다. 바로 전에 읽은 책이『맥베스』였기에 친
근감까지 들었다. 누구라도 이 부분을 읽는다면 웃지 않을 수 없을 거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많은 것을 겪으며 터득해가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힘들던 일이 아니 바로 얼마 전의 일
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듯 말이다. 물론 시간의 흐름이 지니는 장점일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성숙이
라고도 부르지만. 그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작가는 유년시절의 여행을 끝
맺는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구절의 모습에서 작가이기 이전에 성숙한 인간에게서 느껴
지는 참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직도 익어가는 길에 서 있는 내게 숙연함을 주었다.

죽음이 궁극적으로 나를 자연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이렇게 귀향연습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중략)
..저 바다 앞에 서면,궁극적으로 내가 실패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ㅡ 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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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9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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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세 번째 『맥베스』는 <왕권을 주제로 한 웅대한 연극(25쪽)>
으로 책에서처럼 연극과 인생이 서로 비추어 주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다시금
들게 한다. 물론 지금은 연극뿐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으로 더 다양화되었으나
당시로써는 연극의 극적인 효과가 크게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반소설의 느낌
과 사뭇 다른 희극 특유의 대사와 상황은 지금도 독특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 역시 인간의 마음에서 도사리는 욕망을 여지없이 보여주는데 결국 그 욕망이 끓어올라 곪아
터지는 과정과 몰락하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과연 몰락이라고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그보다 어쩌
면 인생의 덧없음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이미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욕망
에 찬 인간군상의 모습과 겹쳐지나 다른 점이 있다. 우리가 매순간 갈등하듯 맥베스도 끝없이 갈등
한다는 사실이다.

빛이여, 검고 깊은 내 욕망을 보지 마라.
눈은 손을 못 본 척하지만 끝났을 때
눈이 보기 두려워할 그 일은 일어나라.

ㅡ 30쪽, 맥베스.


그 욕망의 근원은 권력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탐욕으로 얼룩진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다른 작품의 인물(오셀로의 이야고 등)과는 다른데 그는 다른 이에 의해서 동기를 강하게 부여
받은 것이다. 여기서는 그 역할을 세 명의 마녀가 하고 있다. 게다가 맥베스 부인도 옆에서 충동질하고
있다. 그래서 맥베스 자체의 등장인물이 가지는 매력은 떨어지게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 내게
는 조금 심심했다. 사실 옆에서 누가 동기를 부여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 맥베스
란 인물은 변화되거나 입체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심 없이 아니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
고 다소 주저하지만(갈등 때문에) 일단 나아간다.

당신의 얼굴은 책과 같아 낯선 걸 읽을 수 있어요.
세상을 속이려면 세상처럼 보이세요. 눈과 손과 혀로써
환영을 표하세요. 순진한 꽃 같지만 그 밑의 뱀이 되는
겁니다. ㅡ 33쪽, 맥베스 부인.


맥베스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맥베스 부인은 흔들림 없이 그의 욕망을 부추긴다. <눈앞의 공포보다 끔
찍한 상상이 더 무서운 법>이 말하던 맥베스는 <올 테면 오라지, 날이 암만 험악해도 세월은 흐른다>
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 비극을 맞는다.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 ㅡ 124쪽, 맥베스.


그가 깨달은 것이다. 그의 허무함에 동감하지만 욕망의 노예가 아닌 그 욕망을 잘 다스려 긍정적인 곳
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삶이 지나치게 건조하지도 않으
며 치열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맥베스와 다를 바없이 고민하고 선택한다. 산다
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다. 좀 더 안으로 다가서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 ㅡ 14쪽, 마녀들의 말.

등장하는 마녀들의 말이 모두 헛소리는 아니었으니 저 말을 기억하고자 한다.

물론 마녀들의 예언이 맥베스에게는 저주가 되었지만 저 말은 진실이다. 그리고 불분명한 예언에 희망
을 거느니 마음에서 그것을 지우는 편을 선택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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