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차원을 떠나 책이 많은 의미를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제목에 「책」자만 들
어가도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마디로 짧은 여정처럼 길지 않지만 의미 있는 시
간을 보낸 것과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시작부터 책의 희생자들을 열거하는데 그들의 죽음에는 하나의 상징처럼 책이 공존한다. 한때는 나도
지진이 나면 나만의 서재나 책장 앞에서 온통 책으로 덮여 최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과연 그에 걸맞게 제대로 책과 만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델가도나 브라우어처럼 열정이 있는지의
문제도 필수적이다. 이들의 열정이 지나치다면 나는 거기에 미치지 않는 아직은 풋내기니까.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ㅡ 17쪽


책장에 마구잡이로 쌓아둔 책을 보며 가끔은 일정기간을 두고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행
해 본 적이 없다.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북크로싱을 해도 좋을 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차차 시도
해야겠다.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때때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그래도 좋은 책이 많
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이것도 앞으로는 목록을 만들어 두기로 생각했다.

다시 책과 사랑에 빠진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떠올려 본다. 그의 모든 것이 된 책은 그에게 곧 짐이 된
다. 저주처럼 사랑이야말로 강력한 파괴의 성질을 갖추고 있다. 그 능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결코
거부하기 어렵다. 영화 《킹콩》에서도 콩은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파국을 맞았다. 물론 콩의 선택이
었지만. 이토록 치명적인 장단점을 사랑은 갖고 있는데 브라우어의 대상은 바로 책이었던 것이다. 그
것이 사람이건 음악이건 영화이건 이것들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처럼 중독 적이다. 이미 경험한 우리
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인간만이 책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ㅡ 82쪽

자, 그렇다면 내 책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나에게 달렸다. 단지 습관적으로 책을 읽
고 있는지 또 소유욕으로 모으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어느 존재든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 끝
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할 수 없으니까. 다만, 과시적이
거나 계산적인 노력은 책과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임을 명심하자.

시(詩)처럼 함축적인 글 그리고 퍽 어울리는 삽화를 보며 책으로 집도 짓고 무너뜨리며 책에 대한
환상을 떠올렸다. 책으로 집을 지은 브라우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가 행복하다면 그런 것이므로. 소화할 수 없는 책을 읽어 거북해진 배는 그만
큼의 내공이 쌓여야 묵은 체증 내려가듯 뚫릴 것이다. 그처럼 단계적으로 책을 읽어야 함을 다시 생각
했다. 그리고 이후에 찾아올 여러 문제점을 지금부터 싸매고 걱정하진 않겠다. 지금은 책 자체를 오롯
하게 소화시킬 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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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2-14 12:54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은 묵은 체증을 생각하지 말고 책 자체를 소화시킬 시기인것 같아요. 언젠가 뻥 뚫어질 날이 있겠지만 지금은 현재의 책읽기만을 생각하렵니다.^^

은비뫼 2007-02-14 21:35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즐거운 책읽기 하세요. ^_^
시원하게 뻥 뚫어질 날이 오면 유쾌한 마음의 잔치가 벌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