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반양장) 믿음의 글들 194
김양재 지음 / 홍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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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인이 읽어보라고 준 큐티에 대한 책.
도대체 큐티가 뭔지도 잘 모르는 내게 낯선 책이었지만 교회에 가지는 않아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고자 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날마다 혼자 큐티책을 하루 한 장씩 읽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 질문에 답을 준 책이니 고맙고 또 고마웠다. 
 큐티(QT, Quiet Time)란 말씀묵상으로 겉보기에는 글만 읽는 거 같지만 글 속에 담긴 메시지를 찾아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적용하며 풀어가는 과정이었다.  

 종교인이 읽었다면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표현을 쓰겠지만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적당한 거 같다. 아직도 여러 번 되풀이 되는 단어들이 낯설지만 조금씩 이해가 갔다. 이 책에는 큐티하는 방법까지 소개되어 있어서 참고하기 딱 좋았다. 그저 눈으로만 읽었던 글자를 돌이켜보게 된 것이다.  

 저자 김양재는 고된 시집살이로 어느 날 가출하여 기도원에 간 일을 계기로 말씀을 전하게 된다. 책에서 아니 성경에서도 일부 읽어본 바로는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을 쓴다. 왜 내게만 이런일이 일어나느냐며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거였다.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얻으리라."(34쪽.)라는 한 마디를 통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견딘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끝까지 묵묵하게 견디기란 실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수많은 밤과 낮을 고뇌하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차라리 견디고 받아들이면 속이 편해진다는 것. 가끔 우리도 느끼지 않는가. 그러나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알면서도 행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물론 위 인용 말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내게 익숙하지 않다. 일반적인 구원과 종교적인 구원으로 구별해서 받아들여서일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책에서 거룩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거룩은 구별된다는 뜻." (97쪽.) 거룩하다는 의미가 이런 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여기저기 적용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아서 역시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쭉 성경을 읽고, 큐티도 하고 조만간에 교회도 가볼 텐데 그렇게 된 후의 구원, 거룩의 단어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에 두어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구별된 삶을 살고자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약간의 갈증이 해소된 느낌이었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좋지만 무조건 행복하라는 말이나, 안부는 사실 싫었었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볼 거리가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특히 2장 큐티의 실제 편에서 제대로 큐티하는 방법을 통해 내가 하는 큐티법과 비교, 반성하며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눈으로만 쫓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기로 했다. 많이 배우고 얻었으니 지인에게 감사한다. 아직 모든 말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오늘은 부활절이었는데 아파트 앞 동에 사는 친구들이 달걀을 전해주고 갔다.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내 안의 부활에 관해. 일단 믿음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흥미를 갖고 시작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오래 지나서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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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도시의 즐거움 세계사 시인선 4
최승호 지음 / 세계사 / 199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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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최승호를 처음 만난 건 '북어(시집「대설주의보」1983)'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귀가 먹먹하도록 말했던 '너도 북어지.'라는 물음에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든 최승호는 강렬했다. 시 북어(北魚)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jazzyrain.egloos.com/4095858
   

 그리고 전에 읽은 그의 <눈사람>에서도 북어를 만났고, 이번 시집에서도 북어를 만났다. 말라 비틀어진 북어의 눈을 통해 그가 말하던 것들은 달콤하고 예쁜 언어가 아니었다. 물론 그의 시를 통틀어 달곰한 말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을 만큼 어둡게 느껴지는 글이 그의 장점이니까. 그러나 그의 유모와 비판에 수긍할 수밖에 없기에 자꾸 손이 간다.  

 특히나 후에 쓴 시집인 <눈사람>과 비교하자면 더 진지하고 치열해서 회의적인 느낌까지 든다. 유모가 느껴지지 않지만, 비판적이고 안으로의 투쟁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하다고 정의된다. 거침없고 여과되지 않아 불편할 수 있지만, 문명을 비판하는 그의 도시와 정치는 제목처럼 역설적인 표현을 쓴다. 우리가 즐기는 자연에서 멀어진 세속도시. 그러나 거기서의 즐거움 속에 가려진 이면의 이야기. 시인이 들려주는 세계다. 전혀 낯설지 않은 이곳. 

 '그로테스크한 죽음 앞에서(50쪽.)'를 읽으며 죽어가면서 짖어야 할 말로 가득하지만, 가짜 눈물을 흘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 평화의 죽음이 될 수 없다. 죽음은 뿔과 같이 딱딱하고, 뾰족하고, 노려보는 것이며 속이 텅 빈 것이라(80쪽, 뿔 돋친 벽에서 인용.) 했다.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99쪽, 동명의 시 제목.)라고 말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애초에 뿔을, 죽음을 달고 있던 코뿔소는 비어 있으므로 죽음 자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어 또한 그렇지 않을까. 말라서 딱딱하고, 뾰족해지고, 빈 눈은 허공을 노려본다. 그렇게 빈 북어이니 죽음 자체였고 그래서 우스꽝스럽게도 죽음 앞에서 토해내지 못한 말을 삼키며 한줄기 가짜 눈물을 보인 것. 이미 죽었는데 애써 죽은 체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잉태하지만 죽은 채로 살지는 않는다. 다만, 그러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시인의 말은 입 안에서 꺼끌꺼끌하지만 자꾸 되씹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이외수의 책을 잡았었는데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문명비판을 들 수 있겠다. 소설가와 시인의 공통 화제. 그리고 다른 방식의 이야기. 나는 아직도 이 시집이 손에 착 감기지는 않지만, 내내 묵혀 둘 거 같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부분 포스트 잍을 붙이지 않은 곳에 시선이 닿는 날 잠시 멈춰 서 그 부분에서 먹어치워야 할 길이 있음을(96쪽. '묵은 책,' 끝 부분 인용.) 또한 알기 때문이다. 

 이로써 최승호 시집읽기는 계속된다. 그의 산문집 제목에서도 당기는 게 있어서 읽고 싶은 책이 또 늘었다. 그의 산문은 어떤 맛일지 기대하며 시집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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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트리나 포올러스 글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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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비를 자주 보았다. 어느 새부터인가 나비를 보는 일은 드물어졌고 그런데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가끔 허브농원이나 시골에서 마주치는 흰나비는 더러 있었지만, 노랑나비나 그 밖의 찬란한 빛깔을 가진 나비는 기억에서나 겨우 존재했다. 어쩌면 올봄 이 책을 만난 것은 세상의 봄빛만 쫓으며 중요한 내면의 빛을 꺼트리고 살아온 내게 현재를 돌아보게 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래전부터 말로만 듣던 책을 늦게나마 만났고 소장하고 있다가 아이가 생기면 꼭 읽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조카에게라도 소리 내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애벌레처럼 눈에 보이는 당장만의 상황에 만족하며 더는 발전하지 않고 멈춘 수많은 애벌레에게 이 책은 나지막이 경고한다. 무료한 삶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 애벌레는 새롭게 만나는 모든 것을 보고 느끼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찾고자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오르고자 하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맹목적으로 다른 수많은 애벌레를 밟고 올라선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친구와 경쟁상태의 그곳을 떠나지만 둘의 행복한 시간도 잠깐이다. 둘은 결국 각자의 길로 들어서고 거기서 그들이 원했던 삶을 찾아간다. 대략의 내용을 적으며 느끼는 건 단어가 짧고 그림과 어우러져 이 내용이 전부라는 사실. 또 하나는 어쩐지 이런 이야기 다들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그렇다. 눈치 챘겠지만 우리네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무료함과 공허함, 삶에서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 치열한 경쟁과 모두가 우러러보는 곳을 향한 갈망, 잠깐의 끌림과 각자의 길, 껍데기를 깨부수는 아픔과 인내를 수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무엇, 의심과 갈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닮아있다. 짧은 동화 속에 예쁜 그림과 간단한 단어로 이루어진 책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 거 같다.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미루는 성격이라 늦게 읽었지만 참 괜찮은 책이었다.  

 변화를 바라면서 정작 무엇하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삶이 여기 또 한 명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깨달으며 책표지에 물든 봄빛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처럼 나비가 없으면 꽃들도 사라지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책장을 덮고 나니 시나브로 떠올랐다. 나비가 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해진 개체가 되어야 하며 그로 인해 또 공존의 수레바퀴에 속하는 꽃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이 이미 제시된 거였다. 자연계의 나비와 꽃의 관계처럼 성숙한 개체의 줄어듦으로 크다고 생각했던 지구가 앓고 있다. 작게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크게는 모든 것과의 조화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 그것은 실로 조그마한 이야기였다.  

 그저 예쁜 이야기려니 넘겨짚었는데 오히려 당찬 이야기를 들려줘서 좋았다. 가끔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읽어도 딱딱 들어맞을 정도니 저자가 글을 썼던 때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서 앞으로도 <꽃들에게 희망을>을 찾는 독자는 꾸준할 것이다. 내 안의 작은 혁명은 자기계발서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이 책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  .  .중략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과는 다르단다."                                     

                                      ( 7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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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 오감소설 '광기'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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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 오감소설 광기(狂氣) 편 <칼>을 다시 잡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칼로 딱 내리쳐 끊어 버려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무의미한 것들을 포함해서 그렇다. 공중에서 칼을 휘두를 때는 그저 서슬 퍼런 등골 시림에서 끝나지만, 마음을 도려내려니 그만한 공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나약했고 열등감이 있었다. 급우들에게 폭력을 피하려는 방편으로 칼을 지니고 다니게 되는데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칼을 지니고만 있어도 안정감이 생겼고 가끔 나약한 현실의 자신을 버리고 강인한 모습을 상상하는 등 그에게는 칼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된다. 결국,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고 마흔이 되자 그는 직장도 그만두고 신검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한다.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이야기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신검인 우는 칼을 만들려는 주인공의 열정이 주축인데 그의 칼에 대한 열정은 <들개>의 화가와도 닮아있다. 책에는 칼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가 있어서 평소 관심 없던 사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덤으로 듣게 된다. 심지어 검도의 검까지 말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작가인지라 역시 언제나처럼 가독성이 좋다.  

직업이란 먹고 사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그 외의 다른 의미를 단 한 가지도 발견할 수가 없다. (33쪽.)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물론 지금도 부럽기는 하지만, 굳이 먹고 사는 일로 직업을 행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이 노력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처럼 마흔 살에 대장간을 차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우는 신검을 만들면 그 소리를 듣고 멀리서 무사가 찾아오고, 힘이 아닌 선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이야기. 즉, 신검은 악을 막는 데 필요한 정신의 도구(178쪽.)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인물과의 관계는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그를 돕는다. 물론 결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결국 주인공인 박정달 씨도 아직은 수련이 덜 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신검의 완성을 끝내게 된다. 처음에는 사실 의아했다. 도대체 왜? 그는 노력할 만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을까 싶었지만, 책을 덮고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완벽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으니까. 공중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던 미지의 친구와 꼭 재회하기를 바라며 잠시 나만의 줄거리를 따라 결말을 마구 만들고는 하던 때가 떠올라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나 문명비판과 도학적인 느낌이 빠지지 않는 책이었다. 작가가 말하는 마지막 줄의 비밀을 풀고자 이번에도 도표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속 시원한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편하다. 도표 자체가 그의 언어였고 철학이며 사상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 신신당부 했었던 것임을 안다.  

 오래전 이외수의 책에 빠졌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의 감성은 좋지만 깊이는 모르겠다고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잡은 이외수의 예전 책에서 어쩌면 너무도 쉽게 그를 판단하고 어떠어떠하다고 치부한 게 아니었느냐는 반성을 한다. 운명이니 하는 것에 휘둘리는 건 싫지만, 인연은 믿는다. 작가가 꿈에 두 번 찾아왔었다. 냉담하게 그를 돌아섰던 시기였는데 두 번 모두 새책이 출간되는 시기였다. 이 책에서 말하듯 작가는 세상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열린 마음을 가졌다. 그것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환상(흔히 말하는 판타지적 느낌.)과 현실의 경계 없이 뒤섞여 있어서 재미도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건 언제나 희망과 구원이다. 거창하게는 세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는 바로 자신의 희망과 구원이다. 신선세계가 되었건 유토피아가 되었건 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접근법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임을 작가는 언제나 조용히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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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 금학도 - 이외수 오감소설 '신비'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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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한참 이외수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이 작가가 마음에 들었던 건 문명을 비판하는 동시에 즐길 줄 안다는 이유 때문이다. 언제던가 디카의 매력에 빠져 셀카를 찍어서 인터넷에 뜬 노(老)작가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작품에는 치열함과 유모, 감성 등이 가득 들어찼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그만의 글솜씨를 꼽을 수 있겠다. 천상 글쟁이라 느껴지는 이야기꾼이자 이 시대의 독특한 소설가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다 아마도 <장외인간>을 끝으로 이후의 책은 <글쓰기의 공중부양>을 제외하고는 읽지 않았던 거 같다. 천상 글쟁이의 글쓰기 비법 책이니 궁금한 것은 당연했으니까. 물론 조금 싱겁기는 했지만, 부단한 노력만이 글쓰기의 내공을 올려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가장 최신작으로 아는 <하악하악>도 고민하다 아직 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하게 다시 그의 책을 읽게 된 것은 도련님 때문이었다. 이외수 작가의 열혈독자로 감성마을도 가고 작가도 만나는 그런 문학청년인데 그의 책장에는 이외수의 책이 언제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날 때면 가끔 이외수의 책들 이야기를 하며 뒤적이는데 다시 읽고 싶어졌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도련님이 이책저책 자꾸만 권한다. 절판된 책에서 구하지 못한 게 있어서 아직도 찾는 책도 있다고 한다. 다음에 신간이 나오면 꼭 선물해야겠다. 
 서론이 길었는데 각설하고, 이외수의 대표작으로 <벽오금학도>를 주저 없이 말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고 나 역시 그렇다. 물론 작가도 가장 추천하고픈 책이라고 말했었다. 왜일까. 읽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아직 이외수의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의 철학과 사상이 응집된 책이라고. 방송이나 인터넷에서도 잘 알려진 기인의 이미지처럼 이 책에는 선계, 동양철학 등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제목이 주는 딱딱함이나 다소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읽지 않았다면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제목의 벽오금학도란 주인공 강은백이 어릴 때 선계에 갔다가 받은 그림으로 이후 줄곧 갖고 다닌다. 그것은 선계로 돌아갈 중요길잡이이자 화두이다. 외국의 환상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우리 고유의 환상소설을 작가는 천연덕스럽게 들려준다. 선계 즉 유토피아로 꿈꾸는 세계로 귀환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한 치 앞도 내다볼 여유가 없는 현대인에게는 다소 허황한 이야기로 비치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 저쪽 세계로 가버리면 행복할 것인지. 그리고 지금 이곳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일 것이다. 포기와 비워냄이 분명히 다르듯이 선택은 자신에게 달렸다. 강은백처럼 모든 것을 비워내고 모든 것과 합일할 수 있는 마음(책에서는 이른 편재遍在라 부른다.)을 얻었다면 그는 우주일 수도, 돌멩이나 혹은 바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포자기한 사람은 어디에서건, 무엇으로건 편재할 수 없으며 행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시 선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데 선조들은 과거에 도인 혹은 신선이 사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궁핍하게도 살기가 어려웠으니 그런 지상낙원을 동경하는 마음이 컸을 테고 그래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여러 가지 살을 덧붙여 다시 또 구전되었을 것이다. 작가 이외수가 선계에 관심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질문명이 주는 편리함은 기꺼이 즐길 수 있지만 정신문명까지 서구화되어 계승되던 정신이 흩어지면서 사회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마음을 바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선계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물질만능주의 사회를 비판한다. 자신을 질책하며 독자를 질책하는 것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거대한 이야기보다 스스로 구원하는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연관성을 마지막에 들려주며 시종일관 이야기는 물질주의 비판을 들춰내지만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신비로운 선계 이야기와 그에 못지않은 등장인물들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만물박사처럼 자료조사를 통한 흥미로운 것들을 알려주어서 쏠쏠한 재미를 준다. 예로 백발현상 등을 들 수 있겠다. <장외인간>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이 소설은 <장외인간>보다 10년도 더 전에 쓴 책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후에 쓴 책이 따라잡지 못한다. 그래서 <장외인간>을 읽었을 때 재미는 있었으되 감동이 없다는 실망감에 작가의 책을 더는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이니 <벽오금학도><장외인간>을 함께 읽어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가독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만 여기고 지나치지 않기도 당부한다. 내게는 한 작가의 사상이 응집된 책을 그저 지나치는 책읽기로 끝내기보다 한 번쯤은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다시 읽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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