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속도시의 즐거움 ㅣ 세계사 시인선 4
최승호 지음 / 세계사 / 1990년 4월
평점 :
품절
시인 최승호를 처음 만난 건 '북어(시집「대설주의보」1983)'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귀가 먹먹하도록 말했던 '너도 북어지.'라는 물음에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든 최승호는 강렬했다. 시 북어(北魚)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jazzyrain.egloos.com/4095858
그리고 전에 읽은 그의 <눈사람>에서도 북어를 만났고, 이번 시집에서도 북어를 만났다. 말라 비틀어진 북어의 눈을 통해 그가 말하던 것들은 달콤하고 예쁜 언어가 아니었다. 물론 그의 시를 통틀어 달곰한 말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을 만큼 어둡게 느껴지는 글이 그의 장점이니까. 그러나 그의 유모와 비판에 수긍할 수밖에 없기에 자꾸 손이 간다.
특히나 후에 쓴 시집인 <눈사람>과 비교하자면 더 진지하고 치열해서 회의적인 느낌까지 든다. 유모가 느껴지지 않지만, 비판적이고 안으로의 투쟁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하다고 정의된다. 거침없고 여과되지 않아 불편할 수 있지만, 문명을 비판하는 그의 도시와 정치는 제목처럼 역설적인 표현을 쓴다. 우리가 즐기는 자연에서 멀어진 세속도시. 그러나 거기서의 즐거움 속에 가려진 이면의 이야기. 시인이 들려주는 세계다. 전혀 낯설지 않은 이곳.
'그로테스크한 죽음 앞에서(50쪽.)'를 읽으며 죽어가면서 짖어야 할 말로 가득하지만, 가짜 눈물을 흘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 평화의 죽음이 될 수 없다. 죽음은 뿔과 같이 딱딱하고, 뾰족하고, 노려보는 것이며 속이 텅 빈 것이라(80쪽, 뿔 돋친 벽에서 인용.) 했다.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99쪽, 동명의 시 제목.)라고 말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애초에 뿔을, 죽음을 달고 있던 코뿔소는 비어 있으므로 죽음 자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어 또한 그렇지 않을까. 말라서 딱딱하고, 뾰족해지고, 빈 눈은 허공을 노려본다. 그렇게 빈 북어이니 죽음 자체였고 그래서 우스꽝스럽게도 죽음 앞에서 토해내지 못한 말을 삼키며 한줄기 가짜 눈물을 보인 것. 이미 죽었는데 애써 죽은 체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잉태하지만 죽은 채로 살지는 않는다. 다만, 그러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시인의 말은 입 안에서 꺼끌꺼끌하지만 자꾸 되씹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이외수의 책을 잡았었는데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문명비판을 들 수 있겠다. 소설가와 시인의 공통 화제. 그리고 다른 방식의 이야기. 나는 아직도 이 시집이 손에 착 감기지는 않지만, 내내 묵혀 둘 거 같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부분 포스트 잍을 붙이지 않은 곳에 시선이 닿는 날 잠시 멈춰 서 그 부분에서 먹어치워야 할 길이 있음을(96쪽. '묵은 책,' 끝 부분 인용.) 또한 알기 때문이다.
이로써 최승호 시집읽기는 계속된다. 그의 산문집 제목에서도 당기는 게 있어서 읽고 싶은 책이 또 늘었다. 그의 산문은 어떤 맛일지 기대하며 시집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