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외수 오감소설 '광기'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외수 오감소설 광기(狂氣) 편 <칼>을 다시 잡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칼로 딱 내리쳐 끊어 버려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무의미한 것들을 포함해서 그렇다. 공중에서 칼을 휘두를 때는 그저 서슬 퍼런 등골 시림에서 끝나지만, 마음을 도려내려니 그만한 공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나약했고 열등감이 있었다. 급우들에게 폭력을 피하려는 방편으로 칼을 지니고 다니게 되는데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칼을 지니고만 있어도 안정감이 생겼고 가끔 나약한 현실의 자신을 버리고 강인한 모습을 상상하는 등 그에게는 칼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된다. 결국,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고 마흔이 되자 그는 직장도 그만두고 신검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한다.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이야기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신검인 우는 칼을 만들려는 주인공의 열정이 주축인데 그의 칼에 대한 열정은 <들개>의 화가와도 닮아있다. 책에는 칼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가 있어서 평소 관심 없던 사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덤으로 듣게 된다. 심지어 검도의 검까지 말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작가인지라 역시 언제나처럼 가독성이 좋다.  

직업이란 먹고 사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그 외의 다른 의미를 단 한 가지도 발견할 수가 없다. (33쪽.)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물론 지금도 부럽기는 하지만, 굳이 먹고 사는 일로 직업을 행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이 노력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처럼 마흔 살에 대장간을 차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우는 신검을 만들면 그 소리를 듣고 멀리서 무사가 찾아오고, 힘이 아닌 선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이야기. 즉, 신검은 악을 막는 데 필요한 정신의 도구(178쪽.)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인물과의 관계는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그를 돕는다. 물론 결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결국 주인공인 박정달 씨도 아직은 수련이 덜 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신검의 완성을 끝내게 된다. 처음에는 사실 의아했다. 도대체 왜? 그는 노력할 만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을까 싶었지만, 책을 덮고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완벽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으니까. 공중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던 미지의 친구와 꼭 재회하기를 바라며 잠시 나만의 줄거리를 따라 결말을 마구 만들고는 하던 때가 떠올라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나 문명비판과 도학적인 느낌이 빠지지 않는 책이었다. 작가가 말하는 마지막 줄의 비밀을 풀고자 이번에도 도표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속 시원한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편하다. 도표 자체가 그의 언어였고 철학이며 사상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 신신당부 했었던 것임을 안다.  

 오래전 이외수의 책에 빠졌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의 감성은 좋지만 깊이는 모르겠다고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잡은 이외수의 예전 책에서 어쩌면 너무도 쉽게 그를 판단하고 어떠어떠하다고 치부한 게 아니었느냐는 반성을 한다. 운명이니 하는 것에 휘둘리는 건 싫지만, 인연은 믿는다. 작가가 꿈에 두 번 찾아왔었다. 냉담하게 그를 돌아섰던 시기였는데 두 번 모두 새책이 출간되는 시기였다. 이 책에서 말하듯 작가는 세상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열린 마음을 가졌다. 그것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환상(흔히 말하는 판타지적 느낌.)과 현실의 경계 없이 뒤섞여 있어서 재미도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건 언제나 희망과 구원이다. 거창하게는 세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는 바로 자신의 희망과 구원이다. 신선세계가 되었건 유토피아가 되었건 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접근법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임을 작가는 언제나 조용히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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