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 전2권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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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오래도록 글을 쓰다 보면 독자층이 늘면서 생기는 현상 중 재미있는 일이 있다. 바로 작가의 특정부분을 좋아하거나 반대로 변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외수도 <벽오금학도>를 비롯해서 초반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고 이후의 글들이나 혹은 감성적인 그림과 글에 후한 점수를 주는 독자도 있다. 나는 초기작품도 좋고, 감성적인 글도 좋아한다. 그러나 <괴물>은 안타까운 작품으로 생각하는 쪽이다. 그가 얼마나 힘겹게 작품을 완성했는지는 들었으며 젊은 독자층이 좋아하는 것도 알겠지만 그럼에도 책의 완성도에서 점수를 깎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함몰된 눈을 가졌고 화살, 군중,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 등의 꿈을 악몽으로 꾸는 소년이 있다. 이후 소년은 혼자만의 명상과 수련을 거듭하며 꿈이 전생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복수를 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복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증오를 내뿜는다. 그래서 이용하는 게 바로 직접 쓴 초생성서이다. 이메일 바이러스를 이용한 방법으로 만약 메일을 공격성향이 있는 정신질환자들이 읽게 된다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한마디로 메일에는 살인을 부추기는 정신적 염력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면 잘 짜인 흥미로운 진행이 기대되지만 이후 수많은 등장인물과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있어서 산만했다. 그래서 용두사미 격이 되어 아쉬웠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끝날 수 있는 내용이 아닐 만큼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많다. 물론 탁월한 이야기꾼이라 두 권에도 잘 담겼지만,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 개운하지 않았다. 연작 소설이나 혹은 시리즈물처럼 더 길어졌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다. 물론 그러려면 작가의 피 말리는 시간이 더 길어졌을 테지만.  

 아쉬운 점만 쓴 거 같지만 사실 책은 나름 흥미롭다. 특유의 사회현실비판도 여전하고, 초생신서를 빌어 작가는 현대사회의 병든 인간군상을 나열한다. 온갖 사기꾼을 비롯하여 사이비 종교 등 두루 섭렵하여 다양한 인간 종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제법 길게 보여주다가 1권의 끝에 가서야 일말의 희망이나마 보여준다. 그래서 2권을 읽게 된다. 여러 명의 등장 인물은 각기 매력 있지만 각자의 사연이 기구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거 같다.  

 생존하려는 바이오필리아와 죽음을 사랑하는 네크로필리아라는 두 성향이 인간의 잠재적 성향이라고 에리히 프롬이 말했다는데(2권의 189-190 참고.) 결국 두 가지 성향 다 인간이 가진 것이기에 분리할 수 없는 거 같다. 이는 마치 자웅동체 같아서 어느 순간 고개를 쳐들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할 때야 비로소 문제가 커지는데 네크로필리아로 대표되는 성향의 사람들은 살인을 즐기고 심지어는 시체를 사랑한다고 책에도 나온다. 반대로 책에서 언급하진 않지만 바이오필리아가 생존만을 우선순위로 두고 치우친다면 그도 역시 병적인 상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생명체는 생존욕구가 강하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건 살고자 모든 윤리규범을 무시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과정하에서 생각해 본 것이다. 작가도 한번은 말하고 넘어간다. 쾌락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는 인간은 대부분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생명체에게 있어 네크로필리아로 존재할지도 모른다고.(193쪽 참고.) 생존이 아닌 쾌락을 위해서라는 말에 주목한다. 살고자 먹는 것과 먹을 것이 충분한데도 먹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소설 <괴물>은 이외수의 수많은 이야깃꺼리인 아이디어 창고와도 같다. 복수, 구원, 불교적 느낌, 현실비판 그리고 사연 있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엮이는 인간관계가 그렇다. 여름이면 공포영화가 밀려오고, 스릴러 장르 책을 찾는 독자라면 무더운 여름에 만나는 이외수의 <괴물>도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여기서 다 풀지 못한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작가가 다른 책으로 엮어주기를 기대하면서 괴물과도 안녕을 고한다. 
 

-4342.05.07.나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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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 풍경 1 -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 서정적 풍경 1
복거일 지음, 조이스 진 그림 / 북마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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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 아래쪽에 자리 잡은 2003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애써 꺼내게 된 건 복거일 때문이었다. 그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글은 읽었던 기억이 나서인데 바로 2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추천 우수작인 복거일의 <내 얼굴에 어린 꽃>이다. 당시에는 대상 수상작인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 그리고 특별상인 전상국의 <플라나리아> 등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거의 잊고 있다가 다시 읽어버렸다. 그렇게 복거일의 글은 편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복거일이 수필과 시에 대해 구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삽화는 그의 딸이 보나르 풍으로 그렸다. 그래서 제목이 조금 길다. 서정적 풍경은 복거일의 수필과 시 때문이며,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은 딸의 삽화를 배려한 제목처럼 느껴진다. 또 하나 궁금한 보나르 풍이라는 그림은 찾아보니 삽화와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 자체가 몽환적이며 전체적으로 차분해서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참 예쁜 책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독자들이 수필을 읽으며 시도 음미할 수 있도록 거리 좁히기를 시도했다. 책머리에서부터 나타난 시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데 시와 산문의 거리를 좁히며 독자에게 편안하게 들려준다. 물론 그의 생각과 기호에 맞게 썼기에 주관적이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시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 좋았다. 학창시절에 심취했던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 테니슨, 키츠, 휘트먼, 황동규부터 교과서에서 만났던 박목월, 김소월, 서정주, 박성룡 그리고 관심 있는 김수영, 김춘수, 노천명, 프로스트, 육유에다 새롭게 발견한 담백한 시인 박이문까지.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다. 

 잔잔하고 때로 가슴이 뛰며 또는 뭉클해지기까지 한 수많은 시를 데려온 저자는 마치 여행을 떠나는 독자에게 미지의 장소로 안내하는 사람 같았다. 느리게 가는 옛날 기차에 앉아 창밖을 보듯 수필과 시로 이어진 끝없는 길을 보여주었다. 구름으로 뜬 조각의 시들,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스쳐가는 나무 같은 글들. 그래서 복거일이 안내하는 기차는 완행열차일 수밖에 없다. 

 시집을 읽으려 하지만 다소 주저하는 중이라면 이런 책도 괜찮을 거 같다. 아름다운 삽화와 편안한 글, 다양한 시를 만나다 보면 굳이 시와 산문을 구분할 필요도 없어지니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가 시인만을 위한 게 아니듯 독자도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를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실은, 시간 죽이기는
 시간이 우리를 죽이는 다양한 가운데
 단지 또 하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In reality, killing time
  Is only the name for another of the multifarious ways
  By which Time kills us.

  -영국 시인 오스버트 시트웰의 시에서. 68쪽.

 
 * 책에는 좋은 시구가 많은데 하필이면 이게 기억에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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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 / 푸른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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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일본의 후소사 역사 교과서 이야기로 떠들썩하던 때가 있었다. 언제였나 싶게 지금은 쑥 들어가버렸지만. 일본의 극우단체에서 후원하는 후소사는 사실 채택률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오류를 넘어선 고의적인 왜곡을 해서 문제가 된다. (일본의 교과서가 모두 왜곡을 하지는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게다가 중국까지 역사 왜곡에 가세해서 고구려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입장이고 중국과 일본 두 나라도 서로 영토분쟁 등 얽히고설켰다. 서로 내세우는 주장이 다르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국력의 뒷받침과 지속적인 관심 등이다. 역사적 진실보다 설득력 있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거나 혹요 남아있더라도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등 문제가 복잡하다. 역사는 사실 따지고 보면 올바로 해석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거나 전해질 수도 있으며, 단편적인 면만 보고 그것을 전부로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보수집과 더불어 해당 역사학자가 더 많아져야 하며 우리 또한 관심을 둬야 한다.  

 가까운 나라에서 왜곡하는 우리의 역사 이야기만 기막힌 게 아니었음을 이 책으로 되돌아 보았다. 먼 나라에서는 아예 잘못 알고 있거나(ㅡ이것은 고의적인 게 아니라 그야말로 정보가 없거나 무지해서이다.) 과거 몇 십 년대에 머문 상태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했던 경우를 예로 든다면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사람들 앞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자료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실수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브라질은 미국은 물론 영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 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 미국이라고 덥석 모든 걸 받아들이지는 않기 때문인데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다. 그래서 영어로 한국자료를 준비해간 저자는 그들의 굳어진 얼굴에 긴장했을 것이다. 포르투갈어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스페인 어를 선호하는 그네들의 배경을 파악했어야 했던 거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상대방 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혹은 역사적 배경을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는 허다하다. 이럴 때는 실수하면 배운다 쳐도 우리가 말하는 동해 표기법 등을 외국인에게 설명하려면 그들에게 우리의 배경만 설명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 또한 그들 나라에 관심을 두고 다가설 때 감사하고 신기해서라도 그들도 성의껏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저자의 방법으로 실로 공감할만한 태도였다. 그렇게 다가서며 이해관계를 만들고서 그들 교과서를 수정해달라는 요청을 할 때 효과가 있는 건 당연하다. 섣부른 판단은 금지할 것을 재차 인식하게 되었다. 

 책에는 가까운 아시아부터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를 일일이 보고 인용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읽으며 황당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가끔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어 즐거웠다. 예로 자기 나라의 문자를 국경일로 기념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과 외국인에게는 특이 이런 사실이 부러운 기념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이 일본기업이라는(멕시코 편.) 말이나 현대가 일본이 아니냐는(스웨덴 편.) 말은 아직도 한류니 뭐니 해도 한국이 일본에 많이 가려졌음을 시사한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국력신장이 되었어도 우리네 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리는데 소홀했던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진행되기에 이 기나긴 싸움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예전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내가 생각했던 건 독도냐, 다케시마 어쩌구냐보다 더 큰 관심을 뒀던 건 동해냐, Sea Of Japan이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는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 내 생각으로는 동해라는 말 자체도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 다른 명칭으로 영토분쟁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한다. 동해라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동쪽의 바다니 그럴 수 있겠지만, 지구라는 커다란 지도를 놓고 보자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끼리는 동해라고 불러도 국제명칭은 다른 것이었으면 한다. 예로 우리가 남해로 부르는 바다의 국제적 명칭은 대한해협이다. 일부에서는 이것도 쓰시마해협이라 부르지만. 그리고 동해, 남해 등은 바다를 접한 나라라면 어디에나 있는 명칭이다. 그래서 더욱 한국적인 혹은 그에 타당한 명칭이 필요하겠다. 이것은 국수주의도 아니며, 지나친 애국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부르르 끓어 넘치는 지나친 애국심이야말로 경계해야 한다. 무관심도 마찬가지이다. 차근차근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상대에서 더는 문제제기를 할 수 없을 만큼의 자료 확보 등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 없다. 사실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려면 나라 안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라 안의 남아있는 낡은 찌꺼기부터 걷어내서 정화하며 언어 등에서부터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하며(ㅡ아직도 남아있는 언어의 불순물이 많다.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는….) 국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산지원을 늘리는 것은 물론 해당 인력 확보에 신경 써서 연구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며,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도 분명히 있을 터이다. 나는 이 책을 쓴 저자가 훌륭한 환경에서 책을 내지는 않았을 거라 판단했다. 그럼에도, 열정과 관심만으로 책이 나왔고(ㅡ책의 완성도를 떠나. 사실 이 책에는 어떠어떠하다는 건 잘 알려주지만, 저자가 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국가이미지 개선을 위한 방향을 제시(여는 글에서 말했듯)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독자들이 늘어나기를 희망한다. 

 책에는 상당히 많은 나라의 교과서에 대해 실려 있어서 읽으며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읽어버리게 된 이유는 다른 책도 아니고 학생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우리의 교과서는 어떠한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학생 때 우리 역사나 문화를 배울 때도 오래된 사진을 보며 최신사진은 바라지 않아도 꼭 이런 사진을 넣어야 하나 싶었던 마음이 떠올랐다. 재미있는 건 오히려 일본 등에서는 최신사진을 넣어 우리의 문화를 설명했다는 구절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김치를 이야기하며 항아리에 넣어서 먹는다고 설명했는데 시대의 흐름에 발 빠르게 반응한 일본은 김치냉장고까지 이야기하며 사진을 넣었다는 게 흥미롭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우리의 주체성이 제대로 설 때야말로 역사, 교육, 경제 그 밖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노력을 게을리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아야 할 터. 그래야, 미래의 후손들까지 이런 역사적 논쟁을 이어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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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정옥 지음 / 크리스챤서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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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든 일에 점진적이라는 비밀이 가장 힘이 강하다고 본다.
  우리는 무엇이든 한꺼번에 빨리 얻으려고 한다. 기다리고 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걷는 길이 가장 멀리 갈 수 있다.
 
                                                      ( 31쪽. )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도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
  니다. 그 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떠나라. 깨끗한 길을
  계속 찾
  아 살거라. 꺠끗한 길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단다.
 

                                                      ( 115쪽.

 

 내가 읽은 첫 종교서적. 불교나 기타 종교에 관한 책은 읽어보았지만, 기독교 책은 처음이다. 물론 지인이 선물해주었기에 읽게 되었지만 참 따뜻한 책이구나 싶었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두 번째 글은 친정어머니가 저자인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지만 기억에 남아 옮겨보았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하수구에서 살다 죽었고, 다른 한 쥐는 똥통에서만 살아갔고 나머지 한 쥐는 쌀 곳간에서 살았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느냐고 물었고 딸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대답처럼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세 마리의 쥐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평생 벗어나지 않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왜 못 떠나느냐는 물음에 딸은 또한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 봐 겁나서라 대답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렇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지금까지 그래도 남들보다는 모험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현실에 안주하며 살지는 않았나 싶다. 결혼하면서 이제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모습에서 또 다른 변화를 추구한다. 주어진 삶을 앉아서 보낼 것인지 시간을 찾아나설 것인지를…. 

 책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는데, 되새기는 글 게시판이 원체 그렇다. 그냥 기억에 남는 구절을 적어두고 싶어서 끼적이게 되었다. 참고로 이 책은 비종교인이 읽기에 전혀 거부감 없는 따뜻한 수필이라 생각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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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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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함민복의 시를 만난 것은 지인을 통해서였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시집)>, <눈물은 왜 짠가(산문집)>를 읽으며 단숨에 시인에게 빠져들었다. 시인이기 전에 이 사람 정말이지 마음결이 곱지 않은가 싶어서였다. 억지로 아름답게 꾸미지도 않고 덥석덥석 내려두는 말들이 이다지도 정겹고 포근할 수 없었다. 마음이 메마른 날 그의 글과 만나면 단비를 촉촉이 머금은 순한 마음이 되리라.  
 그렇다면, 어떤 점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현대적이거나 세련미와는 다르게 친근함을 들 수 있겠다. 눈물이 날만큼 슬프지는 않지만,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는 느낌. 이것이 특징이라 생각된다. 어려운 말, 지독히도 형이상학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분명히 그만의 언어로 들려주지만,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게 좋았다. 그래서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이번 시집에는 유난히 짧은 시가 와 닿았다.
"천만 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움(64쪽.)이란 시의 전문인데도 단 한 줄이다. 시집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단 한 줄의 시가 여백을 가득 남기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살면서 우리네 눈에서는 얼마나 많은 물살이 일어날까. 눈 물살 만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삶의 고난을 겪어보았다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워한 적이 있었다면 충분한 공감을 할 것이다.  

 사실 함민복이란 이름만으로 기대가 큰데 <김수영 문학상>까지 수상한 시집이라 시를 시만으로 읽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고 늘 외치면서도 정작 그 타이틀 때문에 신경 쓰게 된 것이다. 못마땅한 내 태도를 반성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보다 감동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함민복이지 않느냐고 자신을 다독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시 읽을수록 교만했음을 알았다. 곱씹을수록 잔잔해져서 마음이 편해졌다. 시집의 후반(4 뻘)으로 가면 섬에 대해 쓴 글들이 나타난다. 서정시인의 계보를 이어가는 시인의 정수가 이 책에 가득하다. 어민후계자 함현수(110쪽.) 같은 시는 구수하고 정겹다. 그리고 이어지는 섬에 대한 글들은 그가 사는 강화도의 바다, 뻘이 숨 쉰다. 짧은 시와 더불어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섬이 하나면 섬은 섬이 될 수 없다(-섬이 섬에게 보내는 편지) 편에서 그가 풀어둔 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며 언제였더라. 몇 해 전 섬에 대해 한참 생각해 보던 때가 떠올랐다. 지방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할 때였는데 날마다 작은 섬에 갇혀 지내던 때였다. 일 중독에 빠져서 회사에서 밤을 넘기기가 허다했는데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빈집 이상한 공간의 섬에 착륙하고는 했다. 우울함으로 나무를 가꿔서 기묘하게 자라기만 했는데 그 시절에 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글을 읽으며 공감하며 웃을 수 있었다. 킹크림슨의 <아일랜드>라는 곡을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지구라는 큰 섬에 사는 나를 되돌아 보았다.  


배 언저리만 보이는 안개에 갇혀 있는 상황과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무엇이 다른가. 내 삶을 좀 먼 시간 밖에서 바라다보면 결국 안개에 갇혀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현재란 시간의 섬이다. 세월이 가는 길 시간은 현재의 뭍이다. (129쪽. 3.뱃길의 일부.) 

달빛이 우는 소리를 오랫동안 들었습니다. 물결 위에서, 물을 끌어당겼다가 놓았다가 반복하는 달의 힘 위에 올라앉아, 달의 힘을 느끼며, 달빛을 타며……, 내륙의 한복판 중원 땅에서 태어나 바다 한가운데까지 오게 된 내 지나온 길들을 낚싯줄처럼 풀어도 보고 그물처럼 엮어도 보았습니다. (130쪽. 4.그물터의 일부.) 

섬은 외로워서 지상에서 가장 낮은 울타리, 물울타리를 치고 제가 품고 있는 그리운 마음 상할까 사방에 소금물을 둘렀습니다. 우주에 떠 있는 지구라는 섬에서 움직이고 있는 나라는 개체는 얼마나 작은 섬인가. 그리움에 가득 찬 존재인가. 영종도 공항 쪽에서 날아오른 물고기 닮은 비행기를 쳐다봅니다. (130쪽. 5.귀항의 일부.)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또 반갑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 만나지 않았어도 왠지 친숙하다. 그래서 함민복 시인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위의 마지막 귀항의 일부를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나 또한 소금물 두르고 섬을 만들었지만, 시인처럼 표현하진 않았다. 다만, 힘든 시기였다. 일직선이 아닌 여러 각도의 선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단조롭기만 할 텐데. 이렇게 혹은 저렇게 어디에선가 마주치는 것만으로 서로 위안을 주고 격려해줄 수 있어서 살만하지 않은가 싶다. 함민복, 정호승 등 이렇게 몇몇 시인에게 나는 빚을 진 셈이다. 고마워요, 이 시대의 위대한 시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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