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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 풍경 1 -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 ㅣ 서정적 풍경 1
복거일 지음, 조이스 진 그림 / 북마크 / 2009년 3월
평점 :
책장 아래쪽에 자리 잡은 2003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애써 꺼내게 된 건 복거일 때문이었다. 그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글은 읽었던 기억이 나서인데 바로 2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추천 우수작인 복거일의 <내 얼굴에 어린 꽃>이다. 당시에는 대상 수상작인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 그리고 특별상인 전상국의 <플라나리아> 등이 인상깊었다. 그래서 거의 잊고 있다가 다시 읽어버렸다. 그렇게 복거일의 글은 편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복거일이 수필과 시에 대해 구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삽화는 그의 딸이 보나르 풍으로 그렸다. 그래서 제목이 조금 길다. 서정적 풍경은 복거일의 수필과 시 때문이며,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은 딸의 삽화를 배려한 제목처럼 느껴진다. 또 하나 궁금한 보나르 풍이라는 그림은 찾아보니 삽화와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 자체가 몽환적이며 전체적으로 차분해서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참 예쁜 책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독자들이 수필을 읽으며 시도 음미할 수 있도록 거리 좁히기를 시도했다. 책머리에서부터 나타난 시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데 시와 산문의 거리를 좁히며 독자에게 편안하게 들려준다. 물론 그의 생각과 기호에 맞게 썼기에 주관적이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시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 좋았다. 학창시절에 심취했던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 테니슨, 키츠, 휘트먼, 황동규부터 교과서에서 만났던 박목월, 김소월, 서정주, 박성룡 그리고 관심 있는 김수영, 김춘수, 노천명, 프로스트, 육유에다 새롭게 발견한 담백한 시인 박이문까지.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다.
잔잔하고 때로 가슴이 뛰며 또는 뭉클해지기까지 한 수많은 시를 데려온 저자는 마치 여행을 떠나는 독자에게 미지의 장소로 안내하는 사람 같았다. 느리게 가는 옛날 기차에 앉아 창밖을 보듯 수필과 시로 이어진 끝없는 길을 보여주었다. 구름으로 뜬 조각의 시들,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스쳐가는 나무 같은 글들. 그래서 복거일이 안내하는 기차는 완행열차일 수밖에 없다.
시집을 읽으려 하지만 다소 주저하는 중이라면 이런 책도 괜찮을 거 같다. 아름다운 삽화와 편안한 글, 다양한 시를 만나다 보면 굳이 시와 산문을 구분할 필요도 없어지니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가 시인만을 위한 게 아니듯 독자도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를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실은, 시간 죽이기는
시간이 우리를 죽이는 다양한 가운데
단지 또 하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In reality, killing time
Is only the name for another of the multifarious ways
By which Time kills us.
-영국 시인 오스버트 시트웰의 시에서. 68쪽.
* 책에는 좋은 시구가 많은데 하필이면 이게 기억에 남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