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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전2권
해냄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작가가 오래도록 글을 쓰다 보면 독자층이 늘면서 생기는 현상 중 재미있는 일이 있다. 바로 작가의 특정부분을 좋아하거나 반대로 변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외수도 <벽오금학도>를 비롯해서 초반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고 이후의 글들이나 혹은 감성적인 그림과 글에 후한 점수를 주는 독자도 있다. 나는 초기작품도 좋고, 감성적인 글도 좋아한다. 그러나 <괴물>은 안타까운 작품으로 생각하는 쪽이다. 그가 얼마나 힘겹게 작품을 완성했는지는 들었으며 젊은 독자층이 좋아하는 것도 알겠지만 그럼에도 책의 완성도에서 점수를 깎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함몰된 눈을 가졌고 화살, 군중,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 등의 꿈을 악몽으로 꾸는 소년이 있다. 이후 소년은 혼자만의 명상과 수련을 거듭하며 꿈이 전생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복수를 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복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증오를 내뿜는다. 그래서 이용하는 게 바로 직접 쓴 초생성서이다. 이메일 바이러스를 이용한 방법으로 만약 메일을 공격성향이 있는 정신질환자들이 읽게 된다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한마디로 메일에는 살인을 부추기는 정신적 염력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면 잘 짜인 흥미로운 진행이 기대되지만 이후 수많은 등장인물과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있어서 산만했다. 그래서 용두사미 격이 되어 아쉬웠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끝날 수 있는 내용이 아닐 만큼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많다. 물론 탁월한 이야기꾼이라 두 권에도 잘 담겼지만,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 개운하지 않았다. 연작 소설이나 혹은 시리즈물처럼 더 길어졌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다. 물론 그러려면 작가의 피 말리는 시간이 더 길어졌을 테지만.
아쉬운 점만 쓴 거 같지만 사실 책은 나름 흥미롭다. 특유의 사회현실비판도 여전하고, 초생신서를 빌어 작가는 현대사회의 병든 인간군상을 나열한다. 온갖 사기꾼을 비롯하여 사이비 종교 등 두루 섭렵하여 다양한 인간 종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제법 길게 보여주다가 1권의 끝에 가서야 일말의 희망이나마 보여준다. 그래서 2권을 읽게 된다. 여러 명의 등장 인물은 각기 매력 있지만 각자의 사연이 기구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거 같다.
생존하려는 바이오필리아와 죽음을 사랑하는 네크로필리아라는 두 성향이 인간의 잠재적 성향이라고 에리히 프롬이 말했다는데(2권의 189-190 참고.) 결국 두 가지 성향 다 인간이 가진 것이기에 분리할 수 없는 거 같다. 이는 마치 자웅동체 같아서 어느 순간 고개를 쳐들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할 때야 비로소 문제가 커지는데 네크로필리아로 대표되는 성향의 사람들은 살인을 즐기고 심지어는 시체를 사랑한다고 책에도 나온다. 반대로 책에서 언급하진 않지만 바이오필리아가 생존만을 우선순위로 두고 치우친다면 그도 역시 병적인 상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생명체는 생존욕구가 강하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건 살고자 모든 윤리규범을 무시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과정하에서 생각해 본 것이다. 작가도 한번은 말하고 넘어간다. 쾌락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는 인간은 대부분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생명체에게 있어 네크로필리아로 존재할지도 모른다고.(193쪽 참고.) 생존이 아닌 쾌락을 위해서라는 말에 주목한다. 살고자 먹는 것과 먹을 것이 충분한데도 먹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소설 <괴물>은 이외수의 수많은 이야깃꺼리인 아이디어 창고와도 같다. 복수, 구원, 불교적 느낌, 현실비판 그리고 사연 있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엮이는 인간관계가 그렇다. 여름이면 공포영화가 밀려오고, 스릴러 장르 책을 찾는 독자라면 무더운 여름에 만나는 이외수의 <괴물>도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여기서 다 풀지 못한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작가가 다른 책으로 엮어주기를 기대하면서 괴물과도 안녕을 고한다.
-4342.05.07.나무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