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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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날 어머니가 들려주는 음악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피아노 소품곡들과 팝송이었는데 특히나 클래식 음악은 언제나 잔잔하고 듣기 좋아서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그래서 야영 가는 날에도 테이프를 들고 가서 카세트에 넣어 듣다가 망가뜨리기도 했었다. 이제는 테이프를 들을 일이 없지만, 가끔 그때 생각이 나고는 한다. 
 
 이처럼 친숙한 클래식이지만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다. 베토벤을 좋아하면서도 말이다. 중구난방 그저 우울할 때는 바로크 음악을 찾아 듣고 아니면 베토벤의 곡들이었다. 그러다 클래식을 제대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는데 재미있게도 록음악 때문이었다. 다양한 록의 장르를 여러 개 탐방하면서 아트락을 만났는데 모든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전위적인 음악이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때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거 같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두껍고 비싼 클래식 책을 탐독하고는 했지만 따분하거나 전문적이었다. 그래서 듣고 싶은 부분만 읽고는 했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는 서양 음악사를 한 권에 담았다. 그것도 별로 두껍지 않으며 CD도 준다. 물론 귀에 익은 곡들뿐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러 페이지에 걸친 머리말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와 고집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 책은 '음악사'이면서 '음악을 듣는 법'에 대한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은 과연 적중했다. 보통은 객관성과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활력을 잃어버리는 단점이 드러나는데 저자는 이 부분을 지양하며 썼던 것이다.  

 더구나 음악에 관한 다양한 삽화가 수록되어 있어서 즐겁고 다채롭게 읽을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책을 잡고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버렸다. 그만큼 가독성도 좋고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종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음악은 특히 서양음악사의 주요 뿌리인 단선율의 그레고리오 성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중세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려주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려준다. 음악이 대수, 기하학, 천문학 등과 함께 고등한 수학적 학문으로 분류(44쪽.)되었다는 것부터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김연아 선수가 선택한 음악이었기에 죽음의 무도는 이제 학생들에게까지도 유명해졌다. 십자군 실패의 반복과 교회의 타락 그리고 페스트 때문에 중세는 대혼란의 시대였고 그런 분위기로 죽음의 무도라는 시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절대음감자 생상스가 곡을 쓴 거였다.  

 계속 이어지는 르네상스 이야기를 통하여 음악뿐 아니라 당시 사회의 미술, 종교 등과의 연계성까지 두루 돌아볼 수 있어서 교양서로 안성맞춤이었다. 예전에 읽은 <르네상스의 비밀>이나 <보티첼리> 같은 책을 떠올리며 확장이 되었다. 조금씩 나오는 에피소드도 재미있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바로크 시대의 바흐에 대한 부분도 즐겁게 읽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고전파 베토벤(사랑하는 베토벤 선생~!) 부분만큼 신나게 읽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놀이도 함께했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 그리고 체르니의 제자 리스트. 친근한 이름의 예술가 관계도 연결짓기 놀이! 니체와 친구인 바그너 등 서로 이어지는 관계가 언급될 때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고 싶어졌다.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지루하고 복잡하면 그렇다고 불만인데 이렇듯 쉽고 간결하게 지나가니 더 알고 싶다고 보채고 있다. 19세기 스트라빈스키와 20세기의 글렌 굴드까지 한 권에 이렇듯 줄줄이 묶인 대어들을 먹은 셈이다. 그 맛 또한 좋았다.   

 한 권으로 끝나는 서양 음악사는 초보자에게 추천하고 싶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장점은 친근함이다. 저자의 각오와 노력이 이뤄낸 결실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즐겁기 그지없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독일은 바흐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그리할 수 있으려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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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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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껏해야 백 년을 살지 못한다는 사람. 그러나 그동안을 살면서 온갖 경험을 하고 그만큼 마음에도 상처와 흔적이 남는다.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거나 회의감이 드는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결국은 정면으로 충돌해야함을 깨닫는다.  

 고등학생 때 많은 회의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말 많은 사람들이 싫어서 침묵했고 학교라는 입시위주의 공간이 지겨워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대안으로 떠올린 곳이 정신병원이었다.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가고 싶은 소망은 돌이켜보니 그저 도망일 뿐이었다. 누구와도 말을 섞기 싫고 실컷 책이나 읽으며 생각이나 정리하고 산다는 게 쉽지는 않다. 그것도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그리 사는 것과 모든 것을 회피하여 그리 사는 건 분명히 다르니까.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수명과 승민. 이들은 정신병원에서 만난 동갑내기로 승민은 탈출을 소망하고 수명은 이를 돕는다. 수명은 어릴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이후 아버지에 의해 정신병원에서 살게 된다. 무엇하나 희망없이 그저 병원에서 살지만 사실 정신은 멀쩡하다. 물론 병명도 있고 거부감을 느끼는 공포도 있지만,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협이 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시간 속에서 오롯하게 살아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세탁부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기한테서 도망치는 병을 안고 있는 게 수명이라고. 수명은 이 말을 들으며 가슴 한 부분이 뜨끔하며 금이 가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고등학생 때의 나처럼 말이다.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치가는 자." (213쪽. 수명.)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286쪽. 승민.)
 

 다시 한 번 왜 정신병원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가 그랬었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결국 미쳐버렸다고. 이미 세상은 절대적 기준이란 게 사라진 지 오래이듯 정신병에 대한 내 생각도 비슷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병원에 가는 이들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정신병이란 마음병이며 치유되지 않은 그 무엇이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치유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도 격렬해서 반응 자체에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미쳤다고 한다. 병원에서 환자를 다루는 방식은 아직도 인권존중과는 거리가 있으며 자유롭게 가족과 연락하기조차도 어렵다. 이곳도 하나의 사회라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으며 다양한 상처를 안고 있다. 정신이 무너지면 지탱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병동은 무너지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처음으로 정신병원으로 실습을 나가 어떤 이에게 말을 걸고 지켜보고자 했으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후 마음에 그것이 남아있었고 결국 숙명처럼 우연한 기회를 얻어 많은 시간과 과정을 거쳐 작품이 탄생했다. 그들의 운명이 침몰될 때, 그녀의 운명이 침몰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소설의 처음은 평범했다. 별다른 사건 없이 묵묵히 읽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가독성은 좋았다. 이후 점점 재미있어지면서 후반이 금세 지나간다.  

 죽어 있는 삶을 사느니 죽어버릴 각오로 부딪치는 의지. 이왕이면 나만의 시간 속에서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 주저 없이 자유를 택해 나는 것. 승민이 수민에게 보여준 것들이다. 이제 승민은 자유로울지 그리고 남아있던 수민의 선택은 어떨지 그려보며 흐뭇하게 책을 만져본다. 그저 두 명의 동갑내기가 정신병동을 탈출하려는 재미있는 소동으로만 보기에는 이 책이 묵직하다. 삶에서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망으로만 끝나면 의미가 없듯 생각 속에 파묻히지 말고 수면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제법 긴 숨을 참아가며 말이다. 그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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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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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방송에서 크로아티아를 처음 보았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주위에 누구 하나 가본 적도 없는 낯선 나라였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화려하지도 않고 도시적이지도 그렇다고 보통 꿈꾸는 유럽과도 차별되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지명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라 이름은 예쁘기도 해서 기억하는데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크기도 작고 온통 붉은 지붕이 그려진 일러스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딱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풍인데 다음 장을 넘겨도 붉은 지붕 일러스트가 온통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제모습의 사진을 보자 방송에서 본 곳이 이곳이었음을 확신했다. 저자는 크로아티아의 네 곳인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를 소개한다. 아니 소개라기보단 저자만의 느낌을 담은 일기장이나 메모장을 엿본듯하다.  

 푸른 바다 아드리아해가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 그리고 이곳의 색은 바다색과 주황색뿐이라는 느낌이 들듯 온통 지붕들은 주황빛이다. 이곳이 두브로브니크라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어 행복했다. 방송을 보며 나중에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던 곳. 저자도 이곳의 붉은 지붕이 펼쳐진 사진 한 장에서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드리아해 그리고 역사와 세월을 꿋꿋하게 이겨낸 두브로브니크 성벽과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좋아서 크로아티아를 기억하게 된 나. 이렇듯 모든 여행의 동기는 다르지만 같은 장소를 소망하는 이들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게다가 저자를 위로해준 물속에 잠긴 나무가 있는 요정이 사는 숲 플리트비체의 발견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장소가 현실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크로아티아도 관광객이 갈수록 늘어난다는데 아무쪼록 이곳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곳이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는 역사적 아픔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플리트비체에서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말 많던 사람들의 세상에서 떠나와

말 없는 이곳에서 위로받는다.
 

(플리트비체에서.)
 

 계속 이어지는 스필리트에서는 초록색 대문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은 이유는 보이지 않는 대문 너머의 풍경이 절로 머릿속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있을법한 나름의 삶. 여행이 주는 혹은 낯설지만 익숙한 것들이 주는 매력의 일부이다. 마지막으로 파란색이 많은 도시 자그레브에서 또 다른 여행자가 저자에게 말했던 공존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전쟁에 나가는 이들에게 정성 들여 목에 매주던 것이 넥타이의 유래임을 알게 되고 도이치 시장의 사과가 맛있어 보여서 자꾸만 여행생각이 간절했다.

 

 이병률의 <끌림>처럼 마음에 꼭 드는 책이었다. 전자가 사람들 안으로 떠나는 여행의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크로아티아라는 보석을 발견하러 떠나고 싶게 만든 책이다. 글과 사진, 일러스트의 조화가 돋보이나 글은 생각보다 짧고 적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크로아티아의 풍경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거 같다. 간혹 사진 위에 있는 글자가 바탕색과 선명한 구분이 되지 않아 쳐다보게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공부하듯 꼼꼼하게 글자를 쫓지 말며 사진을 통해 사진 너머를 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니까.

 

 가보고 싶던,

 그리고 여전히 가고 싶은 나라.

 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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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사랑한다 - 최병성의 생명 편지
최병성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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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에서 위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마의 품이나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만 있어도 느껴지는 안도감과 포근함처럼 자연은 언제나 조건 없이 인간을 안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의 우리는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숲으로 들어가야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은 자연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스팔트 위로 빠끔히 나온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서부터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가로수의 잎사귀에서 또 친구와 만나는 커피숍의 작은 화분에도 말이다.  

 저자 최병성은 환경운동가 겸 생태교육가이다. 책에는 연고 없는 강원도 영월의 숲에 사는 그의 일상이 계절별로 나뉘어있다. 직접 찍은 사진은 애정을 담아 보낸 눈길까지 들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신기하다. 저자의 말처럼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 낮은 바닥으로 시선을 돌려야만 만날 수 있는 그들의 세계를 느끼며 생명의 소중함을 돌아본다. 사진과 글의 조합이 지니는 편안함과 가벼움을 좋아하지만 더러는 그렇게만 끝나는 경우가 있어서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꾸밈없다. 진지하면서도 소박하고, 가벼우면서도 제법 무게감이 있어서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두고 싶다. 책띠지에 나온 어여쁜 새의 이름은 흰눈썹황금새로 정말이지 근사하다.
 

 책이 예쁘다는 사실만으로 <알면 사랑한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저자의 글이다. 아기자기한 사진도 훌륭하지만, 그의 솔직하고 성찰 있는 글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통해 배울 게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정하게 된다. 여치를 제대로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 여치나 사마귀 등을 가깝게 느낀 적조차 없다. 여치의 얼굴이 이렇게나 귀여운 줄 몰랐다. '거봐요. 이렇게 들여다보니 정감 가지 않는 생명은 없죠?.' 이렇게 저자가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식물의 씨앗은 뿌리는 시기가 따로 있지만,  

생각의 씨앗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너무 빠른 때도 없고, 이미 늦은 법도 없습니다.

씨앗을 심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34쪽. 봄.)
 

 자연에서 벌어지는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안다면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일일이 경험하지 않아도 저자를 통해 얻을 수 있으니 마음마저 평온해진다. 깨달음의 글에 이십여 년간 꽃 사진을 찍은 저자의 사진까지 덧붙여 독자의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 책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덕만 보고 이용하며 결국 파괴하는 탐욕의 습성이 문제다. 다람쥐가 의도하지 않게 도토리를 땅에 묻어 수많은 나무가 숲을 덮듯 우리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모이면 이와 같은 푸르름이 커지고 지켜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엿본 거 같아 읽는 동안 행복했다. 

 


* 사진 옆에 글자가 지나치게 작아서 개정판 때는 커졌으면 좋겠다. 
 나이 든 분께는 선물하기 미안할 정도로 글자가 작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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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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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을 때는 주로 눈으로 페이지를 쫓지만 가끔은 소리 내 읽어보게 된다. 리듬감 있는 시를 만날 때 혹은 기억하고 싶은 말을 발견할 때 그리고 말 자체만으로도 예뻐서 반드시 소리 내 보고 싶게 하는 단어를 만날 때가 그렇다.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은 읽기 전부터 익히 들었던 제목임에도 책을 마주하니 자꾸만 사박사박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읽어본 이 책의 느낌은 제목처럼 정말이지 예쁜 책이어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사박사박이라는 단어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온갖 말들이 머리에서 떠다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린 날의 순수했던 행복의 시간을 기억하게 해준 것이었다. 사박사박- 기억하기로 하자. 사박사박- 이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둘이 사는 열 살의 사키. 모녀가 나누는 이야기가 정겹다. 작가인 엄마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방식을 보며 이건 작가라서가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가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엄마들은 다 동화작가이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여 흡수하는 아이들 또한 사랑스럽다. 순수하다는 건 재지 않다는 의미와 통한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틀에 맞춰진 방식으로 재단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우물에 빠진 전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엄마의 질문에 사키는 이렇게 말한다. "아뿔싸." (63쪽.) 살포시 웃게 되는 아이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리고 책의 제목은 외할아버지가 부른 곡을 엄마가 가사를 바꿔 부른 것이다.  


달의ㅡ사막을

사박ㅡ사박ㅡ

고등어ㅡ조림이

지나ㅡ가네요ㅡ 

(82쪽.)

 원래의 가사는 '멀리멀리 낙타를 탄 나그네들이 지나갑니다.'로 아래 두 줄이 다르다. 이 곡을 듣고 사키가 엄마에게 고등어가 종종거리며 가는 모습이 귀엽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엄마와 사키 둘 다 귀엽기 그지없다. 책에는 수없이 많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로 깨우치게 된다. 어린 시절의 해맑던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가 하면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나도 아이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즐거움까지 생각나 행복해졌다. 분명히 이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만 사는 사키는 언제나 씩씩하다. 오나리 유코의 삽화가 독자의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점으로만 찍힌 눈,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가볍지만 경쾌한 그림이 글과 잘 어울렸다. 글과 그림이 모두 담백해서 실로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연방 떠나지 않았다. 오래전 <창가의 토토>를 만났을 때처럼.  

 그러나 뜻밖에도 작가가 여자일 거라 생각했는데(ㅡ거의 확신에 가까운!) 남자였다. 그것도 미스터리 소설가로 유명한 사람이라니 놀라웠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될 만큼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렇지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아기자기하게 어여쁜 수를 놓겠는가. 그만큼 관찰을 했을 거 같다. 사실 어른과 아이가 마음으로 주고받는 말이라면 엄마건 아빠건 상관없이 이런 책이 탄생할 것이다.  

 6월이니 여름이다. 이제 무더위가 몰려올 테고 그런 날 한들한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읽기에도 좋을 거 같고, 비가 오는 날이면 뽀송뽀송한 이불 위에 엎드려 빗소리를 들으며 읽어도 즐거울 책이다. 연필을 들고 공책에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글을 끼적여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준다는데 한 표 던진다. 온종일 웃지 않았다면 사키를 떠올리며 한 번쯤 살포시 웃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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