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글을 읽을 때는 주로 눈으로 페이지를 쫓지만 가끔은 소리 내 읽어보게 된다. 리듬감 있는 시를 만날 때 혹은 기억하고 싶은 말을 발견할 때 그리고 말 자체만으로도 예뻐서 반드시 소리 내 보고 싶게 하는 단어를 만날 때가 그렇다.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은 읽기 전부터 익히 들었던 제목임에도 책을 마주하니 자꾸만 사박사박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읽어본 이 책의 느낌은 제목처럼 정말이지 예쁜 책이어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사박사박이라는 단어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온갖 말들이 머리에서 떠다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린 날의 순수했던 행복의 시간을 기억하게 해준 것이었다. 사박사박- 기억하기로 하자. 사박사박- 이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둘이 사는 열 살의 사키. 모녀가 나누는 이야기가 정겹다. 작가인 엄마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방식을 보며 이건 작가라서가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가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엄마들은 다 동화작가이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여 흡수하는 아이들 또한 사랑스럽다. 순수하다는 건 재지 않다는 의미와 통한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틀에 맞춰진 방식으로 재단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우물에 빠진 전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엄마의 질문에 사키는 이렇게 말한다. "아뿔싸." (63쪽.) 살포시 웃게 되는 아이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리고 책의 제목은 외할아버지가 부른 곡을 엄마가 가사를 바꿔 부른 것이다.  


달의ㅡ사막을

사박ㅡ사박ㅡ

고등어ㅡ조림이

지나ㅡ가네요ㅡ 

(82쪽.)

 원래의 가사는 '멀리멀리 낙타를 탄 나그네들이 지나갑니다.'로 아래 두 줄이 다르다. 이 곡을 듣고 사키가 엄마에게 고등어가 종종거리며 가는 모습이 귀엽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엄마와 사키 둘 다 귀엽기 그지없다. 책에는 수없이 많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로 깨우치게 된다. 어린 시절의 해맑던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가 하면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나도 아이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즐거움까지 생각나 행복해졌다. 분명히 이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만 사는 사키는 언제나 씩씩하다. 오나리 유코의 삽화가 독자의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점으로만 찍힌 눈,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가볍지만 경쾌한 그림이 글과 잘 어울렸다. 글과 그림이 모두 담백해서 실로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연방 떠나지 않았다. 오래전 <창가의 토토>를 만났을 때처럼.  

 그러나 뜻밖에도 작가가 여자일 거라 생각했는데(ㅡ거의 확신에 가까운!) 남자였다. 그것도 미스터리 소설가로 유명한 사람이라니 놀라웠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될 만큼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렇지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아기자기하게 어여쁜 수를 놓겠는가. 그만큼 관찰을 했을 거 같다. 사실 어른과 아이가 마음으로 주고받는 말이라면 엄마건 아빠건 상관없이 이런 책이 탄생할 것이다.  

 6월이니 여름이다. 이제 무더위가 몰려올 테고 그런 날 한들한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읽기에도 좋을 거 같고, 비가 오는 날이면 뽀송뽀송한 이불 위에 엎드려 빗소리를 들으며 읽어도 즐거울 책이다. 연필을 들고 공책에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글을 끼적여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준다는데 한 표 던진다. 온종일 웃지 않았다면 사키를 떠올리며 한 번쯤 살포시 웃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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