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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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출 전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읽으려고 쌓아둔 책탑의 맨 위에 <노란 불빛의 서점>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며 후회가 밀려온다. 하필이면 외출해야 하는데 손에서 놓치기 싫은 책을 만난 까닭이다. 이건 명백한 내 실수였다. 그러나 어쩌랴. 결국, 외출 시간이 임박했고 주저하면서도 책갈피를 끼워둘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지하철 등을 이용한다면 끝까지 들고 갔을 것이다.  

 여기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웠다는 한 남자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책이나 서점 혹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만나면 여간 설레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 지내왔다면 도서관 사서, 서점주인 등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서재에는 항상 책이 가득해서 지하실에 쌓아둘 정도였다. LP와 책은 그래서 언제나 추억 한 부분을 차지한다. 세로로 읽는 책부터 귀퉁이가 노랗게 바랜 책까지 가끔 몰래 읽으며 희열을 느꼈다. 저자 루이스 버즈비는 서점에서 근무하고자 고등학생 때부터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렸고 마침내 꿈의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후 영업직으로 옮기는 등 그의 삶에서 서점은 중요한 공간임이 분명했다. 그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는 정말 훌륭했다. 

 읽을수록 서점에서 보낸 내 유년기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학창시절을 보낸 소도시에서 가장 큰 서점은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밤에 문을 닫을 때까지 좋아하는 작가의 코너에서 서성이며 책을 꺼냈다 넣다를 반복했던 시간들, 약속장소로 최고였던 곳, 한 해를 마감하거나 새해를 맞으며 들려보는 즐거운 장소였다. 성인이 되어 서울에 살면서는 복합공간의 서점, 헌책방 등을 다녔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기 전까지는 원하는 책이 없으면 서점주인에게 주문해서 기다리는 시간의 행복함까지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 서점을 많이 이용하지만 여전히 서점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저자의 이야기에서 여러 부분 공감이 많이 갔다. 남의 책을 흘깃거리는 무의식적인 습관까지 말이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서점에서 근무한 저자의 환경이었다. 규모면 규모, 지원이면 지원까지 실로 부러웠던 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출판 관계자, 서점 관계자까지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실비아 비치와 조이스의 <율리시즈> 출간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떠올리며 역사 속 이들의 우정이 낳은 결과를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파리의 특성화된 서점들과 체인점화 된 서점들 혹은 작지만 내실있는 서점 등 풍부한 내용이 가득하다. 게다가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추억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출판 비즈니스 등의 분야까지 실로 엄청난 내용을 전부 담고 있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함이 없다. 서점은 그의 삶이 이루어진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고 보니 책과 관련된 여러 추억이 절로 떠올라 되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책에서 배운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분명한 건 책을 통해 더 넓고 깊은 확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의 삶처럼 내게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간 자주 가지 못했던 서점의 풍경이 떠올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면 집에서 나와 가까운 서점인 책도시로 피서라도 떠나야겠다. 


한 권의 책, 거기서 읽은 하나의 문장으로 세상의 온갖 좋은 것, 사소한 것, 심오한 것들이 시작되었음을 나는 배웠다. 그 한 문장이 나를 다른 책으로 이끌고 다시 그 책이 훨씬 더 많은 다른 책으로 이끄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ㅡ111쪽. 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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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 :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 샘깊은 오늘고전 10
방현희 지음, 김태헌 그림 / 알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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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류의 기록이 세계의 기록으로 남다. 

 표해록(漂海錄)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다에서 표류했던 기록을 담은 책이다. 표류하니까 어린 시절에 읽은 <15 소년 표류기>가 떠오른다. 목숨을 담보로 망망대해에 던져진 사람들의 목표는 하나로 집결된다. 바로 살고자 하는 것인데 저자 최부는 그뿐 아니라 반드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제주도에서 근무하던 중 부친상을 당해 전남 나주로 배를 타고 가다 표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교를 숭상하던 당시 조선이었던 것도 배경이지만 이를 떠나 부모를 향한 극진한 마음이야 모두가 매한가지일 것이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나주로 가려다 결국 중국 남부 해안까지 밀려갔고 이후 중국의 강남 및 산등, 북경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8,000여리, 135일이 걸렸다 한다. 그간 고생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해적을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목숨은 부지했으나 이후 왜구로 몰려 또 위협을 당한다. 이런 내용을 통해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는 것이 표해록의 기록적 특징이며 가치이다.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문학적 가치까지 동시에 지닌 우리의 고전을 이제나마 읽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다. 세계 3대 중국 견문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그리고 최부의 <표해록>이다. 한 권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나머지 두 권은 일본, 한국인이 쓴 책이다. 
 

:: 모든 것을 그대로 기록한 최부.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돌아온 최부와 일행은 전원 모두 무사히 귀환했다. 이는 최부의 침착하고 당당한 대응도 한몫하는데 부하들의 불만 등을 선비다운 점잖은 말로 조용하지만, 통솔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사람이 많을수록 균열이 일어나는 법이다. 하물며 43명이었으니 알만하다. 이들이 돌아오자 성종은 최부에게 있는 그대로의 것을 기록하게 하고 이것이 표해록으로 탄생된다. 날짜와 날씨는 물론 당시 상황까지 상세하게 묘사했기에 성종은 표해록의 훌륭함을 알아보고 외교문서를 보관하는 승문원에 보관하게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왜구로 몰렸던 연유 등을 소상하게 남겨 당시 중국, 조선, 왜 등의 관계도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으로 필담을 나눠 의사소통을 했으며 학식이 높은 최부를 알아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중국인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먹을 것을 주고 호의를 베푸는 중국인에게 최부는 감사의 답례로 시를 화답하기도 했다.  

 수차水車를 눈여겨본 최부가 만드는 법을 알고자 노력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농사를 주로 짓는 조선에서 가뭄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을 알았기에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이후 수차를 만들어 잘 적용해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부의 지극한 마음이 임금과 어버이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백성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부분이다. 이런 그의 강직함과 침착한 면이 높게 평가 되는 듯하다. 게다가 해적이나 동행한 이들을 통솔하는 부분도 강렬함은 없지만, 어디에도 꺾이지 않는 부드러운 당당함이 최부의 성품을 보여준다.
 

:: 고전 표해록을 읽고 나서. 

 학창시절 고전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고전은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다. 그래서 반성도 했다. 알마에서 나온 이 책을 읽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부분이 지나면 다듬어 쓴 소설가 방현희의 글이 이어지는데 문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돌아보게 한다. 물론 그래서 교과서처럼 설명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친절한 해설은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당시의 기록을 소중하게 보관해 전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록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고전을 더 많이 읽어둘 필요성을 느꼈다. 선비가 점잖게 쓴 책이지만 돌아보니 참으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을 통해 당시 시대를 이해하고 지금을 돌아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지식의 폭만 넓어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거나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도 사는 건 마찬가지였다는 사실 말이다. 상황이야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대처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표해록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지금 읽으면 대단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덜 들겠지만 최부와 시대를 따라 흘러가다 보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서 우리의 지금으로 와 닿는 것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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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예술 - 예술은 영혼의 언어이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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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세를 처음 만난 것은 <데미안> 때문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책들로 재탄생한 특별반 교실의 책꽂이. 거기서 뽑아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단번에 사로잡은 싱클레어와의 이야기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었다. 이후 헤르만 헤세의 책은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헤세가 추구하는 내면, 자아탐색 등의 세계를 만나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삶의 이면이나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하는 물꼬를 터주었다.  

 이후 헤세의 시를 공책이나 수학 연습장의 첫 장에 적어 두고는 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헤세의 그림, 정원 등에 대한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춘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나는 헤세를 좋아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의 책들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설레는 계획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예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읽고 어릴 때만큼의 감흥이 없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헤세와의 인연이 절로 떠오른 것은 그책 출판사에서 나온 <헤세의 예술>때문이다. <헤세의 인생>, <헤세의 사랑>과 함께 나온 이 책들은 제목처럼 헤세의 수많은 글 중에서 각 주제에 맞게 편집해서 실은 책이다. 엮은이는 헤세의 작품을 연구하는 폴커 미헬스라는 사람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렇듯 지속적으로 폭넓게 사유한 헤세의 모습 또한 인상깊다. 그러나 솔직히 조각 모음된 글을 쭉 읽어나가는 건 생각처럼 재미있지 않아서 이따금 접어두기도 했지만, 다시 떠오를 때마다 책장을 펴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쉬엄쉬엄 읽었는데도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헤세의 글에서 느낀 점이 있다. 관념적이지만 현학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생각하며 방황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가장 쉽게 느낄 방법은 헤세의 소설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뽑아 낸 조각 글에서도 특유의 사유력이 느껴져 좋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헤세에게 관심이 없거나 그의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독자라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진정으로 우리 시대에 대해 절망하고 혼돈을 두려워하는 작가는 많다.
그러나 혼돈 위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정도로 믿음과 사랑에 충만한 작가는 드물다.  

ㅡ비평「내가 내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책 두 권」. 1935년 1월. (126쪽.)

 

나는 시를 쓰려는 충동을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충고합니다. 출판을 기대했다가는 대부분 실망하게 되므로 출판을 고려해서 쓰지 말고, 일상생활에서는 펼치지 못하는 영혼의 힘을 각성시키기 위해 시를 쓰십시오.

ㅡ카트린 그로스-탈몬에게 보낸 편지. 1956년 10월. (190쪽.)
 

 책장의 아무 곳이나 펴들고 꼭지 하나만 만나도 지루하지 않다. 쉽게 공감하는 글부터 생각을 요하는 글까지 나름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영혼의 언어라는 부제처럼 나만의 예술로 표현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가 될 수도 있고, 블로그에 올리는 짤막한 시 혹은 편지 등 수많은 형식이 있을 것이다. 영혼의 언어가 예술이라는 과정하에서 나의 언어는 얼마나 이루어졌나 자문해본다. 이 책을 자주 읽어 볼 거 같지는 않지만, 책장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어 나를 쳐다보는 걸로도 즐거움을 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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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비치 - 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 곳
앤디 앤드루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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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 앤디루스 탐색하기. 
 
 미국 네 명의 역대 대통령 앞에서 연설했다는 앤디 앤드루스. 그의 작품 중 유명한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읽어보진 않았다. 직접 읽기 전까지는 대부분 간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만을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유명하면 지레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잦다. 거품이 빠지고 나서 읽어본다는 생각으로 한참 지난 후 만나고는 한다. 이렇듯 앤디 앤드루스라는 작가도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오렌지 비치>라는 제목에 걸맞게 책표지는 오렌지색이고 비치를 걷는 까마잡잡한 노인이 보인다. 카피는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지만 왠지 재미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드는 책. 탐색은 여기까지였다.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자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한 밤에 읽느라 의식을 깨우고자 일부러 카푸치노를 타서 마시는 수고를 해가며 읽어버렸다. 한 손에는 책을 다른 손은 머그잔을 잡고 다소 분주한 자세지만 생각과 마음만은 크게 요동쳤다.
 

* 저자의 오렌지 비치로 떠나기.

 땀이 나도록 손에서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읽을수록 내 삶에 적용하며 되돌아보게 한 이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오렌지 비치라는 마을이 있다. 존스라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이 마을 사람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존스는 상대를 자신만의 대화 속으로 쉽고 편안하게 끌어낸다. 존스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 우리의 고민을 해결한다고나 할까. 이런 식이면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이고 교훈적으로 끝나는 그저 그런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직접 읽으라고 권한다.  

 여러 명의 이야기에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처음 앤디와의 이야기,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 그런지 부부인 잰과 베리의 상황 그리고 변화를 행동으로 보이지만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헨리 이야기였다. 이들의 고민은 대단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집중하게 되었다. 더구나 관점의 문제라는 반복되는 핵심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저자의 필력이 와 닿았다. 한 편의 우화처럼 구성했지만, 주제는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부부인 잰과 베리 편에서 사랑에 대한 방법의 차이는 즉, 대화의 실패일 뿐이라는 말을 들으며 백번 공감했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잔잔히 흐르는 존스와의 대화를 통해 괴리감은커녕 안도감을 느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낯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보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질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자가 택한 보여주기 위한 방식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이 부분에 집착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더욱 중요한 내용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있었다. Dream is No Where? 그리고 Dream is Now Here! 은 확연히 다르다.  

 존스와의 만남을 통해 깨닫고 변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평범하지만, 우리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예를 들면 좌절의 씨앗은 감사하는 마음에 결코 뿌리 내릴 수 없다는 말(95쪽.) 등을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 아니다. 알고 있으나 행동으로 하지 못한 것들이며 관점을 달리하면 충분히 얻어낼 수 있는 말이다. 

 

*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 

"사람들은 변화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변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네! 즉각적인 거야! 변하겠다고 결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변화는 순간적이네.!" (175-176쪽.)

"우리는 남들은 행동으로 판단하면서, 자신은 의도만으로 판단하는 습관이 있어. 하지만 행동하지 않은 의도는 모욕이네." (176쪽.)

  특히나 두 번째 인용한 글은 가장 와 닿았던 말이다. 자신은 의도만으로 판단하는 못된 습관을 깨야 하겠다. 무엇이든 행동하지 않는 것은 거론할 가치가 없다. 또한,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가 어려운 법이다. 조용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 한 저자답게 힘주어 주장하지 않아도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앤디 앤디루스를 이제부터 기억할 작가로 분류했다.  

 

* 오렌지 비치를 떠나며. 

 이 책을 읽기까지 약간의 고민을 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만 하는 책들 사이에서 줄다리기하기를 얼마 동안 하다가 선택했다. 유명한 저자일 때는 그 고민이 더 커진다. 처음에도 말했듯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과 착한 글을 써서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설교하는 느낌이 들지나 않을까라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은 잘 읽었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판매 부수가 오르는 만큼 사람들은 변화를 꿈꾼다. 저자의 노하우와 강력한 설득이 다소 물린다면 이 책을 만나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겠다. 노인 존스와의 만남이란 결국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탐구와 성찰이 아닐까. 그런 의미를 알려준 책이라 당분간 가까운 곳에 두기로 했다. 올여름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의 오렌지 비치로 떠나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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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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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분야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며 즐기는 열정적인 사람을 볼 때면 자극을 받는다. 내게 미지의 분야 같은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미학적인 디자인과 실용적인 디자인 등 여러모로 생각해 보게 하는 그들의 힘이 좋다. 이 책 역시도 출판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 디렉터가 쓴 책이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저자 홍동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읽으며 디자이너 홍동원뿐 아니라 그의 건전한 철학까지 배운 거 같아 즐거웠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일단 제목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책을 읽기 전에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날아가는 비둘기의 똥구멍을 어찌 알겠는가. 멈춰 있어도 들여다보기 어려운 부분인 것을. 그러나 상상력을 요하는 질문이라면 얼마든 대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름의 생각을 종합해서 말이다.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가면서 제목을 시나브로 잊어버리게 되었다. 디자인의 세계를 만나며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디자인과 연계가 되어 있 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저자 스스로 말했듯 시각적인 글로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삶에 스민 디자인을 의식 없이 지나쳤다면 그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원래도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관심뿐이었다. 그러다 책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며 수많은 창조물 뒤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그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I♥NY 이야기부터 한글, 자개장, 우리의 캐릭터, 달력, 아킨더스 나뭇잎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전문가의 노련한 시선 속에 담긴 그의 철학과 착한 마음이었다. 털털하고 열정으로 뭉친 저자는 모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뛰어들어 탑을 쌓았다. 그 탑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어 읽는 내내 신기했다. 이를테면 탄생 비화를 듣는 느낌이었다.

미신 타파한다고 무당을 동네에서 내몰던 우리가 지금 '해리포터'에 열광하는 것이 우스울 뿐이다. 무당은 부정하면서 마법사에 열광하는 사람들.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 배워도 한참을 잘못 배웠다. (189쪽.) 

 우리의 것에서 가능성을 찾아냈지만 미신 타파와 근대화라는 구실로 사라져 간 것이 많다. 저자는 그것을 아쉬워하며 경계한다. 자개장도 일본에서 이미 디자인화시켰다는데 우리는 오래된 자개장의 보존은커녕 갖고 있는 종류도 미비하다 한다. 우리의 것인데도 말이다. 다른 나라에 밀리고 나서야 정신 차리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의 캐릭터 이야기 때 저자처럼 나도 일본만화를 보며 자랐고 그 캐릭터가 일본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분은 겪은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자본이 풍족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펼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중요한 거 같다. 사실 자본이 지원된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이들이 설 공간이다. 

 디자인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디자이이너로 살아가는 일은 고달프다. 앞부분에서 말한 제목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는 클라이언트 이야기 때 나온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게 창조가 들의 일이라지만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태도나 방식을 보며 어디나 직장생활은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은 우아하다?? 미학적인 디자인(ㅡ사실 심미적인 디자인도 보는 눈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만을 좋아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인 디자인이라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깃든 디자이너의 열정과 철학 등이 아닐까 한다.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생각해 본다면 외적으로 비대칭이거나 우스꽝스럽거나 혹은 단순해도 더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고로 생각하는 만큼 얻어낸다는 사실과 같기 때문이다. 

 홍동원 디자이너의 글은 시원하면서도 즐겁다. 건축가 르꼬르뷔지가 디자인한 의자에 앉으면 붕 뜨는 거 같다고 했던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약간의 기분 좋은 붕 뜸을 느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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