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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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석이란 이름이 낯설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 중 읽어본 것은 한 개뿐이었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였는데 인터넷으로 보며 대단히 인상깊었던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현실에서 둘리의 오마주를 슬프게 그릴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모습에서 이런 만화라면 자주 읽어보고 싶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차 최근 6월광주항쟁을 다루었다는 말을 듣고 꼭 읽어야겠다고 눈여겨 두다 드디어 읽게 되었다.   

 원래 이 책은 교육의 용도로 만들었으나 여러 곳으로 퍼져 내용을 보완하여 출판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되었으니 나도 덕을 본 셈이다. 만화로 읽는 최규석의 6월민주항쟁과 우리의 정치, 민주주의 등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게 하는 최고의 교재 아닌 교재였다.  

 1987년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는 떠오르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유신헌법이란 말을 하셨었다. 어디 가서 이런 말 하면 안된다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퍽 심각했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대부분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선생님의 행동에 우리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런 시대였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은 대학생 때 처음 데모를 겪었을 때였다. 학교로 갑자기 날아오는 체루탄 속에서 망연자실 서 있었다. 원피스를 입고 멍하니 서 있다가 살려면 뛰라는 외침에 사태를 파악하고 무조건 앞으로 달렸다. 나보다 더 빠른 (지랄)탄이 바로 옆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경악할 지경이었다. 이후 데모에 참여하며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데모와 데모를 해야만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왜 이래야만 할까 서부터 민주항쟁에 대한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았다. 당시 최규석의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어쩌면 더 쉽고 명쾌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전처럼 두꺼운 책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우니까 말이다.  

 수많은 이들이 흘린 피로 이루어진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서 공감했다. 다수결이면 무조건 민주주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소수의 외침에도 귀 기울일 때보다 정당하게 모두가 원하는 사회를 이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니 국민이 참여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아예 귀를 닫아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그랬었다. 얼마 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부터 정치에 관심을 다시 두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시기에 만화가 최규석의 <100도씨>가 나온 건 어쩌면 필연일지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저자 역시도 민주항쟁에 대해 잘 몰라서 처음에는 주저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며 이 책이 탄생했다. 직접 겪지 않은 세대지만 이제는 모두가 6월민주항쟁을 기억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민주주의가 100도씨로 끊어 오르는 그날까지 모두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눈감고 귀 닫던 그 시절에도 두려움 없이 권리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누리는 혜택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정치 탓만 하지 말 것이며 이럴수록 관심을 두고 행동하면 더 나아질 것이다. 무지하거나 무관심해서 당하는 부당한 의무는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100도씨로 끓어오를 때까지 모두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조금의 관심이어도 충분할 것이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

 

(92-93쪽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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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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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제목이 길기도 하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어느 날 임꺽정에게 꽂혔다. 헤어나기 어려울 만큼. 그 안에서 발견한 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사한 제목과 유쾌한 책표지를 보며 책을 받자마자 책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을 읽지 못했지만 많은 대하 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책이란 소리는 들었다. 역시 소문만 듣는 거보다는 직접 마주쳐야 알 수 있다. 저자가 인용한 구절만 읽어도 어찌나 구수한지 이건 거저 나온 글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을 잘 살려낸 정겨움이 팍팍 와 닿아 임꺽정을 꼭 읽어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한마디로 고미숙과 찰떡궁합을 이룰 수밖에 없는 작품이란 게 결론이었다. 그야말로 둘(임꺽정과 고미숙)은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임꺽정은 어떠한가? 일단, 임꺽정은 의적이란 공식을 깔끔하게 지려 밝아달라고 하신다. 마음에 울분은 있었지만, 의적으로 활약하는 임꺽정이 아니라 백수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기죽지 않는 사나이였다. 게다가 청석골의 칠두령들은 하나같이 죄다 백수였다. 그러나 모두 달인이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지식이란 쓸모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이란 과연 그러한지 자문하게 한다. 좋은 학교에 가고자 몇십 년을 공부하고 이후는 직장에 들어가 그 생활을 유지하고자 또 죽도록 공부한다. 그러나 이들의 공부란 그저 쓸모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하고 싶으면 한다. 하나에 꽂히면 득도할 때까지 줄기차게 하는데 억지로가 아니라 즐기며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 공부는 곧 놀이로 연결된다. 그래서 저자뿐 아니라 독자도 부러울 수밖에 없다. 놀면서 당당하며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우는 삶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건 나의 꿈이기도 하다. 평생 공부하며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뭐 딱히 위대한 학자가 되려는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살면서 배우고 싶은 건 늘어만 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칠두령처럼 몰입하지 못한 거 같아 정신 좀 차려야겠다. 아차 하다 이렇게 삶이 끝날지 모르니 경계해야 함이다.  

마이너란 단지 추방당한 자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이너란 낡은 습속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할 수 있어야 한다. (56쪽, 경제 편.)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난 마이너의 재해석뿐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백수에게 위안을 주니 용기백배이다. 그래서 이 책은 모두에게 읽으라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하고픈 책이었다. 게다가 고미숙의 입담은 또 어떻고. 상당히 재미있어서 바로 옆에서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7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해주는데 하나같이 흥미롭다. 

 조선조 마을공동체의 경제 구조 파악부터 배움의 즐거움, 우정, 사랑, 여성, 사상, 조직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적랄하고 거침없는 때로는 바보 같으며 원초적이기까지 한 칠두령을 통해 시원해지기까지 했다. 구태의연하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감동했다. 눈물 나는 감동이 아니라 이렇게 해석하는 고미숙의 이야기에 통했기 때문이리라.  

 책을 통해 저자가 환기시키려 했던 것을 주워담으며 또 다른 숙제들이 생겼다. 임꺽정도 읽어야겠고, 저자의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큰 소득은 백수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살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앞뒤 재지 말고 무조건 뛰어들어 행동하라는 격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물론 난 1년 차 가정주부지만 언제나 바쁘다. 백수가 더 바쁘다는 말이 맞다.  

 환상과 실제는 구별해야 하나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취할 부분은 열렬히 취하는 바이다. 과연 미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이 유쾌한 고전읽기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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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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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션>은 여러 작가의 단편모음이다. 그러나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그것도 너무도 극명하게 말이다. 우선 이름만 들어도 흥미진진한데 닉 혼비, 조너선 사프란 포어, 닐 게이먼 등을 포함한 독특한 작가들의 행렬이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작가마다 일러스트도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다. 개성 있는 글에 그림도 모두 달라서 한마디로 이 책을 정의하기가 정말이지 어렵다.  

 단편을 좋아하는 내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처음 단편을 접할 때는 무언가 끝맺음을 기대하는 심리에 부응하지 못하는 작품도 만났으며 그야말로 풍자적이거나 환상적인 작품도 만나 왔다. 이후 단편을 만날 때는 기대보다는 즐거움이 앞섰는데 사실 이 책은 기대가 앞섰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는데 책장을 덮고 나도 사실 괜찮았다. 물론 서문을 쓴 레모니 스니켓에 이어 모든 단편 그리고 마지막 옮긴이의 글까지 어쩌면 그리들 제각각인지 모르겠다. 개성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닉 혼비의 <작은 나라>로 시작하는데 얼마나 작으면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는 챔피나라는 곳이다. 이곳은 축구경기를 하려면 나라대 나래로밖에 할 수 없다. 축구인원을 다 모아도 한 팀밖에 결성할 수 없는데다 동네처럼 작아도 나라이므로 다른 나라에 친선경기를 신청해도 결국 나라대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축구를 싫어하는 소년인데 어찌하다 축구팀에 참가하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특이하지 않아도 발상이 재미있다. 체스 경우의 수를 축구에 대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체스를 두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물론 이론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 픽션과 논픽션처럼.  

 다음은 내게는 다소 생소한 작가인 조지 손더스의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 편인데 여전히 재미있다. 한 번쯤 주위에서 만나 보았을(ㅡ혹은 자신일 수도 있겠다.) 소심한 사람의 심리반응이 결국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도 결코 밉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미 강박증 수준을 넘은 사람이지만 외적인 흥미로움 안에 비유적 내용이 들어있다.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양파처럼 한 꺼풀 벗기면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풍자적이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단편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독자의 마음이기 때문이며 작가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켈리 링크의 <괴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캠프장에 보내진 아이들만의 세계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괴물 혹은 동심의 세계에서 만나는 괴물 이야기 속에도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 있었다. 또래에서 겪는 일들이 하나의 헤프닝만이 아닌 이유이다. 그밖에 <시무어의 마지막 소원>, <그림블>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으면서도 외로움이 느껴진다. 

 닐 게이먼의 <태양새>는 지루한 내용인가 싶더니 이내 독특하고 환상적인 단편으로 탈바꿈한다. 이렇듯 어떻게 보면 정신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달리 보면 이 책은 종이로만 엮은 책이 아니다. 바삭한 비스킷으로 만든 책장도 있고, 손에 묻어나는 초콜릿 책장이나 연기냄새가 나는 책장도 있겠다. 다만, 주의할 것은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거창하지 않은 소곤소곤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수다들이 때로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는 걸 우리는 경험상 안다. 그러니 모두 픽션의 세계에 빠져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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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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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어느새 200권을 넘는가 싶더니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 벌써 214권이다. 제법 두툼한 책을 부여잡고 읽기 전에 습관처럼 제목과 표지를 훑어보았다. 날이 선 느낌의 제목과 사색에 잠긴 사람. 이 사람이 에드워드 뷰러인가. 그를 모르지만, 책을 덮고 나자 작품 속에 녹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진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작가 서머싯 몸은 이 책에서 작중화자로 분한다. 소설이 아닌듯하지만 결국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중심인물이기 보다 그들을 엮어주는 이야기꾼이다. 작가인 그의 주변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태를 꾸밈없고 순수하게 보여준다. 엘리엇, 래리, 이사벨, 그레이, 소피, 수잔을 통해 다양한 삶의 관점을 지켜보자니 지루할 틈 없이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그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 래리에게 관심이 갔다.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비행기 조종사로 전쟁(세계 1차대전)에 참여하지만 돌아오고 나서 많은 부분이 변해버린다. 약혼자 이사벨은 래리를 사랑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래리의 세계는 이제 전쟁 전후로 크게 나뉘었으며 내면으로 자꾸만 깊이 들어간다. 성공이 보장된 화려한 삶과 직업을 버리고 자신만의 물음의 답을 찾고자 파리로 건너가고 이후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다. 이사벨과 그레이, 소피는 모두 친구지만 이들의 삶은 너무도 다르다. 래리는 소위 말하는 현실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고 좋게 말하면 여행이지만 실상 길에서의 삶을 선택한다. 마지 조지 오웰의 자전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처럼 노숙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수행자였다.  

 몽상가처럼 보이는 래리, 화려한 삶과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원하는 이사벨과 그레이, 감수성 예민한 시를 쓰던 소녀에서 만신창이로 전락한 소피. 그리고 이사벨의 삼촌인 엘리엇은 품위유지와 사교계를 주축으로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수잔은 래리와 재미있는 인연으로 얽힌 사람인데 어려운 환경에서 살기 위해 무엇이든 행했고 이후 꿈을 이룬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이들은 모두 친구, 가족 등으로 씨실과 날실처럼 겹쳐지고 나뉘기도 한다.  

 거기에 세계 1차대전 후의 상황, 미국의 경제발전 도약, 유럽의 화려한 파티와 사교문화와 예술 등이 배경이라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하다. (이미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는 긴 여정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특히나 래리와 이사벨의 극명한 대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안주하려는 자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길을 나선 자. 래리는 전쟁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은 당시의 혼란기를 사는 사람들 모두의 공통점이었다. 무언가 잃어버린듯한 공허함을 채우고자 혼란과 방황의 경계에서 선택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구원만이 아닌 그 시대를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진정으로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뿐입니다. 정답은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만, 구원의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서머싯 몸이 70세 전후로 출판한 <면도날>은 노장 작가의 원숙한 시선이 가득 묻어난다. 찐득찐득하게 무더운 여름 한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이 책도 목록에 넣어두면 좋을 거 같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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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고백
E.K. 베일리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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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개오가 누군지 알아?' 뜬금없는 물음에도 당연히 안다고 대답하는 옆지기를 보며 모태신앙에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옆지기가 살짝 부러워졌다. 사실 나는 제대로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데다 지금도 성경공부 중이다.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 믿음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일 뿐이다.  

 대학생 때 CCC 동아리에 친구들이 많아서 자주 가서 이런저런 행사에도 참여해보았지만, 그때는 사실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때 친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초반부터 개인적 종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성경의 삭개오 이야기이지만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종교인에게는 더 깊은 깨달음과 구원을 줄 것이며, 비종교인에게도 또한 삶에 대한 깨달음과 또 다른 일종의 구원을 주기 때문이다.  

 책은 매일성경책처럼 얇으며 수채화 그림과 간략한 글로 한 편의 동화와 같다. 삭개오는 로마를 위해 일하는 일꾼 세리이며 부유하다. 세리는 세금을 거두며 폭리를 취했기 때문에 같은 민족에게조차 존경받지 못했다. 키가 작다는 열등감 그리고 존경받지 못하는 부자라는 이유가 삭개오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존경을 떠나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불행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돈에 집착했을 테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의 골이 깊어갔을 삭개오는 변화를 바란다. 그러나 변화는 싶지 않았고 여느 때처럼 세금을 걷으러 길을 나선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 병을 앓는 여인 등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를 지닌 이들에게 세금을 요구하지만, 사정이 여의치않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유시간을 주고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때부터 놀라운 일을 경험하는데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모두 변화가 된 것이다. 눈을 뜨고, 병이 사라지는 등 외면만 변한 게 아니라 내면까지 밝아져 누가 보기에도 행복해 보였다. 그러자 삭개오는 더욱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져서 결국 나무에 오른다. 

 나무에서 내려오라는 예수님의 말에 삭개오는 내려온다. 절망과 교만, 죄의 나무에서. 나무에서 내려오는 행동으로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어서이다. 의미의 다양성에 있어서 실로 그러했다. 짧은 글 긴 여운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성경은 비유의 최고봉이라 했던가. 단어나 글만의 의미를 쫓다 보면 실체를 놓치게 되므로 제대로 된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삭개오의 모습은 동전의 양면처럼 외면과 내면이 두드러지게 비교된다. 물질적 풍요와 마음의 빈곤 속에서 그는 결국 풍요로운 사람이 된다.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톨스토이 단편선>을 읽을 때의 느낌처럼 이 책은 쉽고 재미있으며 교훈을 주었다. 성경의 여러 이야기를 예로 들어 비유적으로 독자에게 들려주어서인듯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강하게 반응이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시 읽을수록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과 마찬가지로 애벌레들이 기를 쓰고 오른 곳의 정상 그리고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오른 뽕나무 위 마지막으로 우리가 막연하게 오르고자 하는 곳에는 과연 행복과 꿈이 존재할까. 머리로는 알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라면 당연히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조용하게 가슴에서 번지는 흐뭇함에 살짝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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