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제목이 길기도 하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어느 날 임꺽정에게 꽂혔다. 헤어나기 어려울 만큼. 그 안에서 발견한 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사한 제목과 유쾌한 책표지를 보며 책을 받자마자 책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을 읽지 못했지만 많은 대하 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책이란 소리는 들었다. 역시 소문만 듣는 거보다는 직접 마주쳐야 알 수 있다. 저자가 인용한 구절만 읽어도 어찌나 구수한지 이건 거저 나온 글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을 잘 살려낸 정겨움이 팍팍 와 닿아 임꺽정을 꼭 읽어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한마디로 고미숙과 찰떡궁합을 이룰 수밖에 없는 작품이란 게 결론이었다. 그야말로 둘(임꺽정과 고미숙)은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임꺽정은 어떠한가? 일단, 임꺽정은 의적이란 공식을 깔끔하게 지려 밝아달라고 하신다. 마음에 울분은 있었지만, 의적으로 활약하는 임꺽정이 아니라 백수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기죽지 않는 사나이였다. 게다가 청석골의 칠두령들은 하나같이 죄다 백수였다. 그러나 모두 달인이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지식이란 쓸모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이란 과연 그러한지 자문하게 한다. 좋은 학교에 가고자 몇십 년을 공부하고 이후는 직장에 들어가 그 생활을 유지하고자 또 죽도록 공부한다. 그러나 이들의 공부란 그저 쓸모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하고 싶으면 한다. 하나에 꽂히면 득도할 때까지 줄기차게 하는데 억지로가 아니라 즐기며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 공부는 곧 놀이로 연결된다. 그래서 저자뿐 아니라 독자도 부러울 수밖에 없다. 놀면서 당당하며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우는 삶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건 나의 꿈이기도 하다. 평생 공부하며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뭐 딱히 위대한 학자가 되려는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살면서 배우고 싶은 건 늘어만 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칠두령처럼 몰입하지 못한 거 같아 정신 좀 차려야겠다. 아차 하다 이렇게 삶이 끝날지 모르니 경계해야 함이다.  

마이너란 단지 추방당한 자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이너란 낡은 습속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할 수 있어야 한다. (56쪽, 경제 편.)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난 마이너의 재해석뿐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백수에게 위안을 주니 용기백배이다. 그래서 이 책은 모두에게 읽으라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하고픈 책이었다. 게다가 고미숙의 입담은 또 어떻고. 상당히 재미있어서 바로 옆에서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7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해주는데 하나같이 흥미롭다. 

 조선조 마을공동체의 경제 구조 파악부터 배움의 즐거움, 우정, 사랑, 여성, 사상, 조직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적랄하고 거침없는 때로는 바보 같으며 원초적이기까지 한 칠두령을 통해 시원해지기까지 했다. 구태의연하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감동했다. 눈물 나는 감동이 아니라 이렇게 해석하는 고미숙의 이야기에 통했기 때문이리라.  

 책을 통해 저자가 환기시키려 했던 것을 주워담으며 또 다른 숙제들이 생겼다. 임꺽정도 읽어야겠고, 저자의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큰 소득은 백수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살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앞뒤 재지 말고 무조건 뛰어들어 행동하라는 격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물론 난 1년 차 가정주부지만 언제나 바쁘다. 백수가 더 바쁘다는 말이 맞다.  

 환상과 실제는 구별해야 하나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취할 부분은 열렬히 취하는 바이다. 과연 미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이 유쾌한 고전읽기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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