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의 고백
E.K. 베일리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삭개오가 누군지 알아?' 뜬금없는 물음에도 당연히 안다고 대답하는 옆지기를 보며 모태신앙에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옆지기가 살짝 부러워졌다. 사실 나는 제대로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데다 지금도 성경공부 중이다. 교회를 다니지만, 아직 믿음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일 뿐이다.  

 대학생 때 CCC 동아리에 친구들이 많아서 자주 가서 이런저런 행사에도 참여해보았지만, 그때는 사실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때 친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초반부터 개인적 종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성경의 삭개오 이야기이지만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종교인에게는 더 깊은 깨달음과 구원을 줄 것이며, 비종교인에게도 또한 삶에 대한 깨달음과 또 다른 일종의 구원을 주기 때문이다.  

 책은 매일성경책처럼 얇으며 수채화 그림과 간략한 글로 한 편의 동화와 같다. 삭개오는 로마를 위해 일하는 일꾼 세리이며 부유하다. 세리는 세금을 거두며 폭리를 취했기 때문에 같은 민족에게조차 존경받지 못했다. 키가 작다는 열등감 그리고 존경받지 못하는 부자라는 이유가 삭개오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존경을 떠나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불행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돈에 집착했을 테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의 골이 깊어갔을 삭개오는 변화를 바란다. 그러나 변화는 싶지 않았고 여느 때처럼 세금을 걷으러 길을 나선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 병을 앓는 여인 등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를 지닌 이들에게 세금을 요구하지만, 사정이 여의치않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유시간을 주고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때부터 놀라운 일을 경험하는데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모두 변화가 된 것이다. 눈을 뜨고, 병이 사라지는 등 외면만 변한 게 아니라 내면까지 밝아져 누가 보기에도 행복해 보였다. 그러자 삭개오는 더욱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져서 결국 나무에 오른다. 

 나무에서 내려오라는 예수님의 말에 삭개오는 내려온다. 절망과 교만, 죄의 나무에서. 나무에서 내려오는 행동으로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어서이다. 의미의 다양성에 있어서 실로 그러했다. 짧은 글 긴 여운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성경은 비유의 최고봉이라 했던가. 단어나 글만의 의미를 쫓다 보면 실체를 놓치게 되므로 제대로 된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삭개오의 모습은 동전의 양면처럼 외면과 내면이 두드러지게 비교된다. 물질적 풍요와 마음의 빈곤 속에서 그는 결국 풍요로운 사람이 된다.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톨스토이 단편선>을 읽을 때의 느낌처럼 이 책은 쉽고 재미있으며 교훈을 주었다. 성경의 여러 이야기를 예로 들어 비유적으로 독자에게 들려주어서인듯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강하게 반응이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시 읽을수록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과 마찬가지로 애벌레들이 기를 쓰고 오른 곳의 정상 그리고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오른 뽕나무 위 마지막으로 우리가 막연하게 오르고자 하는 곳에는 과연 행복과 꿈이 존재할까. 머리로는 알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라면 당연히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조용하게 가슴에서 번지는 흐뭇함에 살짝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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