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 - 늘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꿈꿨던 17년 파리지앵의 삶의 풍경
이화열 지음 / 에디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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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여행을 꿈꾸지만 모두가 떠날 수 없는 게 여행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삶에서 외적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여행의 경우이고 다른 여행은 얼마든 가능하다. 이 책 또한 파리를 배경으로 쓴 책이지만 단순한 여행서가 아니다. 파리에서 현지인과 결혼해서 17년을 살아온 저자가 아는 사람들의 내용이다. 즉 사람들 속으로 떠난 여행서라고 할 수 있다.  

 파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와서인지 파리에 대한 책만 보면 무작정 읽고 싶다. 그리고는 다시 가고 싶다고 꿈꾼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단연 이 책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파리예찬으로 채워지거나 유명한 장소나 역사는 전혀 없지만 대신 그곳에 사는 사람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여정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이유만으로 즐거운 책이다. 

 물론 문화적, 사회적으로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면도 있지만, 무엇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미 그들만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때 상대를 인정하게 되고 차이를 느끼고 포옹하는 것. 어렵지만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하물며 낯선 도시에서 저자는 어떠했을까. 생각보다 자유분방하고 생각이 열려 있음이 느껴진다. 


 우린 새벽까지 와인을 마셨다. 그들은 잘 먹고 잘 마시는 친구들이다. 우리의 대화에는 궁핍함이 없다. 두 마크에게는 우정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들은 바깥을 향해 열려 있다. 그들은 위대하지도 않고, 위대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부자도 아니며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시간이 있다. 주말에 미술관에 아이를 데리고 가고, 전시에 감동을 받고, 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파리지앵이다.

 프랑스어에는 '봉비벙Bon vivantt'이라는 단어가 다행히 존재한다.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은 항상 나에게 이런 질문을 남긴다.

 

 '그런데 넌 정말 뭘 바라는데?'

 

 

ㅡ 156쪽, 마크와 마크탐탐의 이야기 중에서.
 누군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내게 생각하는 행복은 점점 위의 인용구처럼 마크와 마크탐탐이 말한 것과 비슷해져 간다. 저택이나 잔액이 두둑한 통장보다 지금의 생활에서 만족을 얻고 행복하게 웃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만족과 안주는 다르다. 물론 더 나은 삶을 위해 꿈꾸고 노력하지만, 지금의 삶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환경으로 바뀌어도 만족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괴짜 같아 보이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인생을 수놓는다. 개성적이면서도 평온해 보여서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롭다.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어서 또한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인 폴의 말을 인용해본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배운 교훈은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 최대한으로 사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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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 - 보통의 독자 버지니아 울프의 또 다른 이야기 보통의 독자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인용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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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의『보통의 독자』를 처음 읽었을 때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보통의 독자 게다가 에세이니까 읽기 편하겠지….  그러나 그런 기대는 바로 무너졌다. 그만큼 영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해서 흥미로운 요소였으나 어디까지나 버지니아 울프만의 글이었기에 저자가 생각하는 보통의 독자 수준을 따라가긴 실제로 쉽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글들이 꽤 많아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두 번째 이야기인『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을 만났다. 확실히 전편을 읽어서 이번에는 그녀의 글이 간략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편안해졌다는 뜻이다. 지루하고 평이해 보이는 이야기에서 그녀가 끌어내는 여러 가지를 독자로서 함께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이번 책에서 더욱 흥미를 끄는 부분은 여류작가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페미니스트답게 저자의 기질이 느껴진다고 할까. 

 사실 저자를 인간적이기보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자체보다 문학에 더욱 깊이 빠진듯했지만 읽어갈수록 결국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에 대해 이토록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생생한 이 전달력은 저자의 뛰어난 관찰력뿐 아니라 작품 속 인물 혹은 작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로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이다.  

 영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력은 여전히 탁월했다. 덕분에 따라가느라 고생 좀 했다. 그래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마다 재미있었다. 그나마 영문학에서 가장 많이 읽은 건 셰익스피어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글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묻는 말 같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 같다. 바로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다. 


 정말이지 독서에 대해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는 자신의 본능을 따르라는 것,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라는 것,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 등이다. (415쪽.)

 

 *

 

읽고 있는 책의 저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지 말고 바로 그가 되도록 노력하라. 그의 동료나 공범이 되어라. 만약 처음에 머뭇거리고 미루거나 비판한다면, 책에서 충분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막는 셈이다. (417쪽.)
 이 밖에도 이 소제목의 글 중 유익한 글이나 물음을 주는 글이 많지만 간략하게 몇 개만 인용했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가 생각해보는 부분이겠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그저 읽고 넘어가기에는 마음속 파장이 크다. 특히나 책을 읽고 나서 '읽기의 먼지가 가라앉고, 갈등과 의문이 잦아들기를 기다려라.'(427쪽.) 그 후에는 판사가 되어 우리의 판단을 엄격하게 하자고 말한다. 아주 통쾌한 이야기이다. 책에 제대로 빠져서 읽고 난 후에는 그것으로 끝내지 말고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 책과 만나니 저자의 글 속 묘사가 이해가 되었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나열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하려는 의도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 권의 에세이를 읽으며 느낀 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지는 않지만!(사실 그런 책이 어디 그리 흔하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 확실히 책장에 그냥 쳐박아만 두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물론 먼지를 약간은 뒤집어쓰겠지만 언젠가는 그 먼지를 쓸어내며 펴들고 흥미롭게 읽는 나를 발견하게 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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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몸매의 재탄생
이경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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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면 짧아지는 옷으로 몸매가 드러난다. 대충 가려도 팔뚝과 종아리 살이 보일 정도니 살이 좀 있다 싶으면 다이어트에 관심이 가는 계절이다. 사실 마른 몸을 선호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인지 마른 사람들도 다이어트를 할 정도이며 건강을 위해 하기도 하는 등 다들 각자의 이유로 다이어트는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넘쳐나는 다이어트 책 중에서 적어도 한 권 정도는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다이어트, 몸매의 재탄생』이다.

 

 재작년 여름 동생책장에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독한 것들의 진짜 다이어트」를 읽었다. 체험수기를 보며 얼마나 그들이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동생은 44사이즈를 입을 만큼 늘씬하다. 그런데 44반 사이즈가 넘어갈까 봐 나름의 이유로 여름이면 체중조절에 신경을 쓴다. 내 경우는 임산, 출산 때도 별로 찌지 않다가 모유수유를 끊으면서 살이 쪄서 살을 빼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은 앞부분은 실제 다이어트 체험수기가 실려 있고 후분에는 체형별 특성에 따른 다이어트 운동법, 식이요법 등이 도움을 준다.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할 때 효과가 클 것은 자명하다. 특히 인상적인 건 체형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가 나눈 6가지 비만종류.

 

 1. 여성들의 공통 고민 '하체 비만'

 2. 겉보기만 날씬한 '저근육형 비만'

 3. 오동통이 귀여운 건 아니지 '비만'

 4. 앉아 있으면 억울해 '상체 비만'

 5.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착한 몸매 '과체중'

 6. 내 몸에 맞게 뺀다 '고도 비만'

 저자 또한 고도 비만, 하체 비만, 저근육형 비만, 상체 비만까지 체형이 바뀌는 경험을 실제로 했고 그에 맞게 꾸준히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그래서 이런 책이 나온듯하다. 획일화된 다이어트 방법이 아니라 내게 꼭 맞는 방법을 우선 찾으라고 권한다. 체험수기에 있는 20명 또한 똑같은 방법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공했고 현재도 요요현상 없이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방법을 체크하며 저자가 조언하는 부분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잘못된 다이어트는 살도 빠지지 않고 몸에도 해롭다. 예를 들면 책에 나오듯 고구마는 다이어트 식품의 대표 식품이지만 위장질환이 있다면 좋지 않다. 이 밖에도 요요 현상에 대한 이야기인 감량 몸무게를 1년 이상 유지해야 다이어트 95% 성공이라고 한다. 이를 또 5년 이상 유지한다면 99%이니 역시 다이어트는 길게 보고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

 

 올여름은 그렇다 치고 나도 조금씩 운동도 늘이고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서서히 식습관부터 바꿔야겠다. 식이요법이 꼭 거창한 건 아니다. 세 끼를 제때에 먹고 규칙적인 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기간에 킬로그램을 줄이는 것보다 전체적인 생활방식을 바꾸며 몸과 마음을 조율한다면 어느새 예전보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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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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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손철주의 책은 이번에 처음이다. 그러나 상당히 유명한 저자였다. 미술 칼럼리스트라 이미『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유명한 책도 있었고 게다가 그림과 붓글씨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사실 제목도 마음에 들었지만, 저자의 소갯글을 읽으며 더욱 기대되는 책이었다. '한잔 술이 있으면 썩 잘 노는 사람'이라더니 술 없이도 그림과 한시 등만 보고 읽어도 술술 말이 매끄럽게 흘러넘칠 것만 같은 이였다.  

 사계절로 나눠 그림을 실고 그에 따른 저자의 농익은 글결을 따라가자니 정말이지 재미있었다. 왜 이제야 저자를 알았을까. 그의 다른 책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박학다식함과 그림에 따라 읽어내는 감성과 의미가 남달랐다. 그의 글은 정갈한 녹차보다는 구수한 탁주를 닮았다. 그런데도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유는 때로는 살뜰히 그림을 살피고 또 때로는 호되게 호통치기 때문이다. 유와 무를 동시에 휘두르니 과연 읽을 맛이 난다. 사실 옛 그림만 있었어도 그저 하루에 한 개씩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질 거 같았는데 저자의 글이 어우러져 더욱 깊은 맛이 난다. 

 그림은 대부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개인소장 작품 등은 직접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언제고 시간을 내서 직접 만나면 저자의 글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만의 그림보기가 가장 중요하지만 아직 저자를 따라가려면 멀었다. 정녕 부러운 점이다.  

 편 그림은 윤두서의 <쑥캐기>가 정겨웠다. 선비화가 윤두서는 아랫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자주 그렸다 한다. 다산 정약용이 그의 외증손이라니 어쩐지 더 기억해두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그림은 개인소장이다. 직접 보기는 어렵겠지만 봄이면 생각날 거 같다. 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지란도>와 임희지의 <난초> 또한 멋졌다. 특히 임희지의 난은 촉이 살아 있는 듯하고 독특하다. 난을 많이 친 옛사람들의 난 그림에는 개인의 성품이 담겨서 모두 비슷해 보여도 확실히 다르다. 마지막으로 청화백자 잔받침에 숨은 가르침과 마음도 새롭다. 저자의 말이 또한 일품이다. '청탁은 너절하지 않게, 듣는 이를 웃음 짓게 하라.' (57쪽.)

 여름 편에서는 이한철의 <물 구경>에서 깨달음이 전해진다. 굳이 공자, 노자, 주자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물이 흐르는 것만 보아도 마음이 편해지던 경험을 떠올리며 물에 씻어버릴 것들을 기억해본다. 정선의 <수박 파먹는 쥐>는 풍자화인데 쥐는 간신배와 탐관오리라 하니 예나 지금이나 쥐떼는 끊이질 않는듯하다. 그리고 박제가의 그림 <어락도>도 만날 수 있어서 색다르며 지두화인 윤제홍의 <돌아가는 어부>의 보이지 않는 빗줄기가 시원하다. 옛 그림은 간소한데 가만 들여다보면 참으로 많은 뜻이 들어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가을 편은 주로 달이 소재인데 그 시절에도 달을 보며 느끼는 것은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휘영청한 달과 나무가 아닌 도심 속에서 만나는 달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때만큼의 외로움과 고요함, 따뜻함은 비슷하겠지만 낭만은 어쩐지 실종된 거 같아 아쉽다. 달본지 며칠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겨울 편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표피도>가 단연 압권이었다. 어찌 그렸을까 싶을 정도로 수없이 붓질했을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실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눈빛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그림 또한 놀랍다. 현대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두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또한 예스럽다니. 아, 그런데 이 그림 역시 직접 볼 기회조차 없다.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있기때문이다. 아쉽고 또 아쉽다.

 다정한 우리 옛 그림을 보며 옛 생각도 해보고 다양한 마음이 오고 갔다. 실로 오랜만에 좋은 미술책을 만난 기쁨이 크다. 함께 실린 한시 그리고 저자의 말까지 버릴 게 없었다. 추천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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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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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미술잡지에서 본 그로테스크 특집 지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불쾌함보다는 마치 이상한 세계를 보는듯했다. 그러다 이후 영화 <화장터 인부>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보고 바로 저런 게 미술에서의 그로테스크라고 생각했다. 작품은「천년왕국」중 '쾌락의 정원'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책 겉표지의 그림도 같은 화가의 작품인 「천년왕국」중 '지옥'이다. 

 예술 전반에 걸친 그로테스크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미술과 문학이지만 문학 부분이 훨씬 와 닿는다. 아마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빅토르 위고, 실러, E.T.A 호프만, 포, 카프카를 비롯하여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까지 이어져서 흥미롭다. 특히 애드거 알랜 포는 여름하면 떠오를 정도로 공포와 기괴함으로 대표된다. 셰익스피어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들여다 보면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곧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포처럼 기괴한 느낌이 아니지만 말이다. 

 미술도 달리의 그림 등을 보며 느끼는 우리의 감정 속에는 그로테스크를 설명할만한 것들이 꽤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보며 작품을 해석하며 달리를 이해해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로테스크의 정의를 단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우스꽝스럽고 기괴하다는 말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책에서 줄기차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대부분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감탄할만한 것도 있겠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미적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는 그것이 자유로운 생각의 폭으로 이어지기에 누구에게는 두렵고 소름끼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것이 색다른 느낌이거나 신선하게 느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그로테스크쪽에 약간의 관심이 있다. 뭐라고 할까. 영감을 준다고 할까. 괴이하지만 슬프기도 하고 내가 배워온 사회에서 인정하는 아름다움과 상반될지라도 다른면을 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진정으로 그로테스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이 어디까지인지도 알수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들여다 보니 훨씬 사고의 폭이 깊어질 것 같다. 

 뒷부분의 19세기 그로테스크 부분에서 헤겔의 해석도 흥미롭다.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를 확실하게 구별하고 그로테스크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가 다양한 영역의 부적절한 혼합, 둘째는 무절제이자 왜곡이며 마지막은 특정 요소의 복제라고 했다. 이후 현대의 그로테스크까지 이어지는 설명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이슈가 된 지 몇 년이 된 엽기나 새롭고 흥미로운 요소 중 이에 속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즉, 그로테스크는 소외되거나 혐오하는 대상으로 제한되지 않고 책과 미술작품에서 나와 삶 속에 이미 스며 있었다. 본질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새로움 앞에서 그로테스크 또한 빠질 수 없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의 충격 그 미묘함 사이 어딘가에서 느낄 수 있는 무엇과 맞닿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로테스크가 어떻게 표현되었든 간에 더는 우스꽝스럽고 무시할만한 게 아님을 들려준다. 저자서문이 1957년이라니 그 이후 그로테스크에 대한 정의는 얼마나 발전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잘 집대성해서 쉽게 설명한 책이었다.


예술작품은 '상황'을 초월할 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최후에 예술작품은 '수용된다.' (이 단어는 여기서 일상적인 용법과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수용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의마상의 변형이 가해지건간에 예술작품은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체험될 수 없다.

 

- 296쪽, 결론 : 그로테스크의 본질 중에서. 


 무시무시한 것, 불합리한 것, 몰취미한 것은 곧 무한성을 의미합니다. (…) 왜냐하면 이런 것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한계는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만듭니다. 아름다움, 고상함, 자유, 예술과 열정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여기에 초월적이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곁들여진다는 근거를 들어 이것이 절대적인 것이라 여기지요. (ㅡ중략ㅡ) 인간세계의 것, 아름다운 것, 동물 세계의 것, 뻔뻔스러운 것이 대담하게 뒤섞여 있지 않습니까? 이를 깊이 파고든 후에야 여러분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우리 영혼의 기묘하고 불가해한 감정들로부터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 143쪽, 3장 낭만주의 시대의 그로테스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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