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세이타로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남의 집에 있을 때 더 사이가 좋아보인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가족이라는 거에 대해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기, 한마디로는 말 몬하지... 말하자면 짐 비슷한 기라. 여행할 때 짐. 무거버서 영 몬견디겠다 싶을 때도 있재.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엄꼬. 짐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으이..."(35쪽) 여행의 짐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부터 나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이건 어느 특정한 가족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늘 곁에 있으나 느끼지 못하는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 그런 책이다,하는 지레짐작으로 이미 내 마음은 무거워지기 시작한거다. 가족이란 말속에는 상반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듯 하다.  평화롭다는 의미와 자주 어긋나는 의미, 그렇게 다른 의미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상황속에서 가족이란 말은 공존한다. 나는 어느쪽일까? 서로 이해하고 아껴준다는 말은 이론만큼이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적인 관념이 먼저 앞서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나를 앞세우는 이기심이 먼저인 까닭이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없어서는 안될,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빠진 듯한 그 느낌을 부정할 수 없으니 사람이 살아내는 삶속에는 숱한 모순덩이들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책속의 아버지 세이타로는 유랑극단의 배우다. 옛날에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존재의미가 약하다. 그냥 아버지라는 말로써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성벽을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어한다. 나는 아버지니까! 늘 이렇게 외쳐대고 있을 뿐이다. 실세가 없는 아버지의 권위는 늘 바닥이다. 더구나 경제력이 없는 아버지, 술고래인 아버지는 더더욱... 삶과 전쟁을 치루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머니..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일 뿐이다. 고전적인.. 자신의 존재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자식이 있으므로 자신의 자리는 여기라고 여길 뿐이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날 모두에게 편지를 남긴 채 종적을 감추었다. 막내가 열여덟살이 되고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되어지던 그 때에 어머니는 자신의 길로 갔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보여주지 않지만 나는 단지 그 어머니의 앞길이 지금까지보다는 가치있는 길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 제각각의 길로 간다.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새삼스럽게 늘 그자리에 있어주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가치에 대해 되돌아 생각하게 된다고하여 온전히 그 의미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게다. 그렇기에 다이치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리셋하고 싶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서야 할 스테이지로 나아가고 싶었다.(143쪽)
리셋만 한다면, 자신의 일상은 분명 변한다. 다이치는 그렇게 생각했다.(145쪽)

그렇기에 우리는 살면서 수도없이 리셋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나를 붙들고 있는거라고, 그 상황만 벗어날 수 있다면 뭔가 달라진 삶을 살수도 있을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일탈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왠지 가슴 한쪽이 서늘해온다. 누구나 그런 일탈을 감행한다면 가족이란 의미, 또는 가정이란 의미가 너무 낡아빠진 신발짝 같은 느낌이 들것만 같아서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수는 없을까? 해서 즐거운 일만 하면서 살아갈수는 없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우리의 삶이란 것이 늘 그렇게 좋은 것만 던져주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책속의 아버지 세이타로의 인생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일이 다르다는 것..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명제다. 하고 싶은 것을 쫒다보니 늘 허울뿐인 현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작가는 아버지가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즐거운 일을 하게 해준다. 모두가 떠나가 버리고 막내아들만이 곁에 남아 있을 때 어쩌면 아버지는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떠났지만 그 아버지 곁으로 다시 돌아오는 아들과 딸의 모습, 그리고 대중연극을 통하여 그들의 속내를 비춰주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저 아래 어디쯤에서부터인지 울컥하며 올라오는 무엇이 있었다. 가족이란 의미가 그렇게 쉽게 닳아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이치의 생각처럼 모든 것을 리셋하지 않았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딸 모모요의 여정을 보면서 현실직시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포장되어진 자신의 삶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했던 모모요의 대담성이 한켠으로는 안스럽기도 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자신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348쪽)

책의 표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유머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을 유도하는 것조차도 더 아프게 다가왔던 세이타로 가족의 긴 여정. 학습부진아인 막내아들 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었지만 간지의 그 어설픔이 혹은 간지의 그 순수함이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그 무엇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일 뿐인데 우리는 왜 타인의 시선속에 묶어두려 하는지. 내가 살아내야 할 온전한 나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타인으로 하여금 그것을 평가하게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저 내 몫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그 뿐인 것을... 늘 가까이에서 머물기에, 늘 바라보면 그자리에 있어주는 존재이기에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안일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은 아닐까?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손을 내밀면 만져질 수 있을만큼의 거리에 있기에 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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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맘때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리도 다시 올 때를 잘 알아 저토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지.. 지난해의 꽃이 아니리라.. 지난해의 향기를 품지 않으리라.. 담장 너머에서부터 시작되어져 담장 너머 세계로까지 표시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목련이 나는 좋다. 그 커다란 꽃송이와 은은한 향이 나는 좋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목련꽃 예찬론자가 된다. 그 자태가 너무 좋아서...

때로는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칠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더욱 더 그리운 꽃.. 그런 날이면 더욱 더 사무치는 꽃.. 닮고 싶은 목련의 생을 나는 아직도 닮지 못했는가 보다.. 삶의 순간들이 내게 좀 더 성숙해지라하고, 삶이 찰나속에서조차 잊으면 안되는 것들이 더 많은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서글픔으로 채색되어지던 하루의 오후시간이 눈물겹다.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도 나는 왜 이리도 아름답지 못한 삶을 살아내는지.... 알 수 없다.. 이 가슴 한켠의 아픔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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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3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비 2008-04-3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찾아주신 발걸음이 잠시 저를 설레이게 했답니다.
시간 나누어 주시고,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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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다! 하고 소리내보면 우선 재미있다는 느낌이 다가온다. 아니면 나 어릴적 그토록 열광했었던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되거나... 그 철없던 여학생시절에 <캔디>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미쳐보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을까? 만화속 남자주인공들은 어쩌면 그리도 멋있던지, 그들이 하는 사랑이란 것은 왜그렇게 안타깝고 슬프기까지한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그 시절을 한번쯤 만화속에 빠져 허우적거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만화는 왠지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만화속으로 들어온 듯도 하고 우리의 시선을 비껴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 <바이바이 베스파> 역시 우리의 시선에서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베스파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던 스쿠터였다. 오토바이보다는 가볍고 자전거보다는 무거운 의미로, 하지만 편리성을 따지자면 스쿠터만한 것도 없을테다. 아마도..  나는 정작 베스파라는 말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모두 겪어내야 했을 성장의 아픔을 말하고 또 보여주고 싶어하는 장면들속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 힘겹게 탈피를 해야하는 청소년들의 외침도 함께 묻어있다. 제 스스로 탈피를 하지 않으면 날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나비처럼 그렇게 가혹한...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게다. 단지 그 기억들을 저 편으로 밀어놓았을 뿐.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이 어른이 된 후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할테니 말이다.

"그래 맞아. 난 신을 안 믿어. 그리고 나를 믿었지. 그런데 이제 더는 내 자신을 못 믿겠어.
내가 욕했던 사람들처럼,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처럼 내가 똑같이 하고 있으니까.
이제 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
"나도 비슷해. 난 내가 관찰자라고 생각했거든.  흐림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65쪽)

한때의 치기처럼 그렇게 난 어른이 되기 싫다고, 어른들처럼 그렇게 세상을 살지는 않을거라고 한번쯤 소리쳐보지 않는 젊음이 있을까? 두 아이의 대화속에서처럼 정말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어른들의 현실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욕했고 싫어했던 그 현실들이 바로 내 앞으로 다가와 우뚝 선 채로 나를 바라보았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니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앞에 우뚝 서버린 그 현실과 악수를 나누고 타협을 하며 어깨를 나란히 한채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난 끈을 하나 잡고 있었어. 그걸 놓치면 보통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끈이야.
 이걸 놓으면 내 의미가 없어지니까 안간힘을 쓰며 끈을 잡고 있는거야...."
"난 좀 혼란스러울 것 같군. 그렇게 되면 내가 아는 네 특징들이 모두 없어져버리니까.
 어쨌건 앞으로 뭐 할건데? 혹시 어른이 되려는거니?" (146쪽)
어쩌면 이토록 가슴이 아플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만의 색을 버리는 것일까? 자신만의 특징을 버려야만 어른이 될 수 있는것일까? 탈피를 했던 애벌레는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색의 날개를 가짐으로써  좀 더 멀리 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어쩌면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멋진 색의 날개를 달아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모두가 나비가 될 수는 없었듯이... 문득 나는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꿈꾸어왔던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나비가 되어 나는 것처럼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함께 평행을 긋듯이 현실과 꿈도 언제나 마주보며 평행을 긋는다. 마주보는채로 서로에게 웃음도 되고 눈물도 되는 그런....

<바이바이 베스파>를 읽고나니 가슴 한쪽이 싸아해져 온다. 내 잃어버린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작은 스쿠터 하나만 있어도 모든것을 할 수 있다고 느끼며 살았을 내 시간들은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내가 타고 다녔을 그 작은 스쿠터 한대를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의 내 꿈을 생각해본다. 나는 묻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그 시간들이 위안이 될 수 있는가를... 탈피의 아픔과 고통만이 존재했었다고 느끼는 그 시간들이 나에게 다가와 괜찮았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는 것인지... 지극히 보통의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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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
이경윤 엮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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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한다면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라해도 성서속의 이야기 몇편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속에서 만나지는 기독교인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어느정도는 강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어린 시절엔 무슨 날만 되면 교회에 가는 것으로 알았고 나름 커뮤니티의 형성을 원하는 나이때에는 나도 열심히 교회문턱을 드나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성경읽기에 도전해 본 적도 있었지만 사실 너무 지루하고 짜증나 얼마못가 때려치기도 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자고 들면 첫째날부터 시작되어지는 몇째날, 몇째날 이란 수식과 누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하는 식의 이야기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당한 이야기들을 이해하기엔 나의 믿음과 몰입이 부족했다. 어린 나이에 목사와 전도사를 찾아다니며 진위를 캐묻곤 하던 당찬 모습의 나를 떠올리며 피식 웃어보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나에게 돌아왔던 답은 그냥 믿어라, 였다.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라는 말은 상당히 어패가 있어 보였고 그 뒤 나는 아마도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놓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성경은 하나의 문학처럼 내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이나 이기적이게 하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종교에 관한 서적들은 참으로 많다. 종교적인 사고에 내게 가장 큰 이슈를 던져주었던 책은 <세명의 사기꾼-스피노자정신지음> 이다. 그 책을 통하여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단하나, 객관적인 시선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속에서도 그런 객관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랬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예수의 모습을 인간적인 면에서 그렸다던 영화. 하지만 그 영화를 만든 멜 깁슨이란 배우역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과 역시 그의 시선속에서도 다분히 신격화시키고 싶어하는 마음을 바라볼 수가 있다. 종교는 필요학이라고 한다. 세상이 힘겹고 험난할 수록 종교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마음 또한 커진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공황이 심해진다는 말일테다. 이 책속에는 성서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구구절절 성서속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하나의 줄기를 만들어 그 줄기를 따라내려오며 성서적 배경을 설명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느정도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에 관한 과학적인, 혹은 역사적,사회적인 배경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 '성서만화경'이란 코너를 빌어 말해주고 있다. 역사도 승리한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성서 역시 뒤에 남는 자들의 몫이었기에 어느정도는 꾸며진 이야기들일 것이란 생각을 버릴수가 없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들 앞에서는 왠지 거부감마져 일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속에서 문자만큼이나 커다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명화들을 바라보는 재미는 정말 쏠쏠하다. 마치 미술관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책속의 내용에 대하여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니 감초가 아니라 어쩌면 동행자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에게는 그림이 주는 이미지가 너무 크게 다가왔음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성경.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집에 예닐곱권씩은 구비해 두고 있다는 성경. 하긴 기독교인이 아닌 나의 책꽂이에도 성경은 두권이나 꽂혀있다. 책장을 펼쳐 작자의 머리말을 읽다보면 베스트셀러라는 의미가 무색해지기도 한다. 책속에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성서외전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끔 보여지는 대목들이었다. 성서의 진위여부를 밝혀낼 수 있다던 성서외경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지만 나는 왠지 그런 책들이 빨리 세상속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게 된다. 그럼으로해서 좀 더 진실된 종교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어떤 형식과 겉치레에 치우지지 않고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믿음이란 의미를 알 게 해줄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욕심으로 타인을 힘겹게 하지 않는...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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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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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의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정말 놀라웠다. 어쩌면 그리도 한사람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미량의 인색함마져 허락하지 않을수가 있는지,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은 일종의 경고성까지... 그랬기에 그의 세번째 작품을 보면서 가슴이 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본 후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보았을 때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던 그 유혹의 끈끈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극히 당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도시의 삶은 정말이지 서럽도록 처절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도 앞의 두 작품과 연결고리가 있을거라고 내심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빗나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속에서 한없이 헤맸다는 것을 또한 인정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주제씨는 중앙호적등기소의 말단직원이다. 그것도 나이가 꽉 찬 혼자사는 남자. 그의 집은 중앙호적 등기소의 건물과 붙어있다. 그의 취미는 유명인들의 기사나 사진을 수집하여 나름대로 그것을 정리해 놓는 것.. 그런데 어느날 유명인들의 자료에 섞여 모르는 여자의 기록이 함께 따라온다. 아주 평범할 것 같은 그 모르는 여자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주제씨. 결국 그 모르는 여자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자신에게 다가올 그 어떤 일들도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되었든 그것을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처음엔 모르는 그 여자의 사망확인을 하지 못한채 그녀의 삶에 접근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기록부에서 '사망'이란 두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곤 당연히 그녀의 죽음에 접근을 하게 되는 주제씨.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가 왜 모르는 여자의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집착해야만 했는가에 대해 너무도 궁금했다. 어쩌면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일탈은 아니었을까? 매일처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출근을 해야 하고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시간이 되면 윗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퇴근을 하는 반복적인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아마도 누구나 다 안고 지내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만 본다면 주제씨의 일탈은 아주 성공적이긴 하다. 하지만 모르는 그녀의 삶의 행적속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존재의식.. 존재의 가치..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그들만의 정체성.. 책의 소개글처럼 그렇게 단지 이름만으로 불려지는 그런 의미가 아닌 그 이름이 안고 있는 진정한 또하나의 의미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씨를 통해 혹여라도 너무 주관적이게 보일수도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한 통찰을 여러명의 제3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시선을 통하여 어느정도의 객관성마져 부여해주고 있음이다.

모르는 여자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주제씨의 발걸음속에는 매순간마다 변해가는 순간적인 감정들, 그리고 상황마다 부딪히는 선택의 기로들, 그것으로 인하여 육체가 겪어야 할 고통들이 동반되어진다. 도둑처럼 아니 도둑이 되어 학교의 창문을 깨는가하면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 독한 감기에 시달리기도 한다. 직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조퇴와 결근을 하기도 하고 때론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앞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한다. 이제는 그만두어야겠다고. 그랬음에도 그는 다시 현재진행형이다. 한 여자의 일생을 따라가고 있는 주제씨의 행로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야 할 삶의 여정이 담겨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너무 어렵다. 모르는 여자의 죽음을 쫓아 공동묘지에서 밤을 새운 주제씨가 안개속에서 만났던 늙은 양치기의 말을 통하여 단지 불리워지는 이름보다 그 이름이 담고 있을 많은 것들을, 진정한 의미들로 기억해야 하고 그리워해야 하는 거라고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눈 먼 자들의 도시>나 <눈 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까지 본 주제 사라마구의 '도시시리즈'(내가 붙인 이름이다)에는 특이하게도 느낌표나 물음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묻고 있다. 굳이 문장부호를 쓰지 않고도 전해질 수 있는 감정효과를 보면 문장이 담고 있는 호소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을 다루고 있는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다시한번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아직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미완의 감정이 내 가슴속에 떠돌고 있음이다. 책속에서 주제씨의 행로를 쫓아오던 시선 하나 (나는 사실 그 시선을 눈치채면서부터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었다), 호적 등기소 소장의 존재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그는 말하고 있다. 그 모르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시 만들라고. 그리고 그녀의 사망진단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여자는 죽게 될거라고.. 그녀의 사망일을 없애버리고 다시 산사람들의 기록속에 섞어놓는다해서 과연 그녀는 다시 산사람이 되는 것일까? 모르긴해도 소장의 말속에 숨겨진 그 깊은 뜻을 찾아 다시한번 책읽기를 해야 할것만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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