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저
김소연 지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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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참 많기도 하다. 그만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말도 될게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많은 명작들을 어찌 단시간내에 다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만약에 정말 그렇게 많은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다면 아마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들을 다 보여줄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일이지만 역시 이 책으로 만날 수 있는 45편의 명작들은 요점만을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음이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까지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랬다. 정말 잘 생각한 책이라고.. 책표지에 써 있던 것처럼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좀처럼 읽지 못한 세계 명작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콕 집어낸 것 처럼 그렇게 시원한 느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난 후 줄거리 정도만 간단하게 이야기 해 줄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물론 짧은 줄거리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만든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았다. 작가에 대한 프로필을 함께 실었으며 그 작가가 활동을 하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설명해 놓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라거나 간단한 일화들도 함께 소개해 주었으며 꼼꼼하게 챙겨주었던 삽화나 사진을 통한 독자의 이해를 배려함도 잊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그 작품으로 인하여 일어났던 사건이라거나  그 작품이 사회적 현상을 불러오게 되는 경위, 혹은 유행처럼 번져갔던 일들을 예로 보여주었던 것에서 나는 상식밖의 상식을 또하나 알게 되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한번은 읽었고 읽었을거라고 생각되어졌던 책들에 대해 재도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작정한 뒤에 내가 선택해야 할  책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책부터 만나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선택단계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던 탓에 일단은 생각나는 책, 그리고 눈에 띄는 책부터 도전해 보기로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도전했던 책들이 이 책을 만든이가 소개해 준 책의 목록에서 겨우 반이나 되었을까? 내심 부끄럽기도 했지만 읽고 싶었던 책에 대한 궁금증이나 이미 읽은 책에 대한 또다른 견해를 대했을 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작가와 그 작품을 함께 묶어 설명해주는 배경지식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저마다의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인도해 주고 있다는 말도 되겠다.

이미 읽었지만 까마득한 날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난 작품이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바로 그 작품이다. 총 4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인국'과 '거인국'이야기만이 아동문학으로 분류되어져 소개되어 왔다는 말은 내가 알고 있었던 <걸리버 여행기>와는 달랐다. 그 두가지 이야기외에 섬나라와 말나라 이야기가 있으며 섬나라이야기를 매개체로 '천공의 성, 라퓨타'가 탄생되었다는 말은 나를 또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또한 말나라 이야기속의 말들이 기르고 있던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의 이름이 야후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웹사이트 야후Yahoo 가 바로 그 야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하니 이 또한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면 죽고 못사는 내가 그냥 지나쳐 갈 수는 없는 일이니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을 꼭 한번은 읽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듯 싶다.  

45편의 작품중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던 작품은 다니엘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이다. 왠지 짧은 줄거리만으로 그 작품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않은 그런 느낌이 들어 도서관에 들르게 되면 꼭 한번을 찾아볼 요량이다.  세계의 명저를 CHAPTER 별로 나누어 놓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책을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핑게로 손을 대지 못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든이의 정성과 뜻이 보여지는 책이기도 하며 단순하게 작품의 줄거리만을 만날 수 있는 책이 아닌 까닭이기도 하다. 책장을 덮으면서  작은 욕심을 부려보자면  오래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짙은 여운을 남겨주었던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를 만날 수 없다는거였다. 물론 이건 나만의 욕심일 뿐이겠지만 왠지모를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폐에 애니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세계에서 가장 예쁘게 디자인 된 화폐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지폐에 어린왕자의 모습이 인쇄되어져 있는 것을 보니, 그만큼 자부심을 느끼며 문학을 사랑할 줄 안다는 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부럽기도 했다. 물론 어린왕자의 아버지 생텍쥐페리의 초상화도 당연히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였다면 어땠을까?  일찌감찌 꿈 깨라고 하지 않을까? 아마 꿈도 못꿀 일이었을 게다. 각설하고 내게는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었다. 이토록 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내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어쩌면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겁없는 스파이였으며 뻔뻔한 스포일러의 역할을 했다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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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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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고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무릎위에 올려놓았던 책을 왠지 다시 만지기가 싫었다는 게 아마도 솔직한 심정이었을게다. < Atonement >라는 영화의 원작을 썼다는 작가의 소개글을 보면서 그 영화에 대해 검색해 보았던, 그리고 영화평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것들로 인하여 벌어지는 일들은 참 많다. 아주 잠깐의 순간때문에 얽혀드는 사연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왠지 한번쯤 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던 영화였기에 이언 매큐언이란 작가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듯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난 느낌은 껄끄럽다. 어쩐지 혼탁한 호러물을 본 듯한 느낌처럼 그렇게 찜찜함을 피할 수가 없다. 책을 옮긴이의 말처럼 그렇게 내면적인 것을 말하고 싶어했던 거라면 작가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 또한 너무 무섭다. 그야말로 살벌하다. 어쩌면 그리도 가감없이 써내려 갈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작은 은유조차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거침없다. 그래서 더 잔인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놓았다거나 어떤 부류에 따라 혹은 시대적이라서...등등등 이런 식으로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편집상태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지라 처음 책을 받아 후루룩 넘기며 살펴보았을 때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느낌이 그리 좋았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더구나 책속 세상의 이야기들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그런 이야기여서 책읽기를 그만 멈추고 싶어졌다.  그쯤에서 작가의 프로필에 다시한번 눈을 돌려보았지만 어떤 작품으로 어떤 상을 받았다는 식의 프로필만 눈에 뜨일 뿐 작가에 대한 나의 예측을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느낌이 어쩌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듯한 첫번째 단편, 그리고 어린시절에 한번쯤은 겪었을지도 모를 호기심에 대한 것들을 능청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두번째 이야기, 세번째, 네번째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느끼기를 바라는 작가의 시선이 마치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나비'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외롭다는거였다. 처절하도록 외로웠을 두 남자의 이야기속에는 보여질 듯 말듯한 무작위적인 사람들의 숨겨진 적의나, 어디에도 마음 둘데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이기심, 그러면서도 어딘가에 안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도없이 되뇌이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인 그러나 사회적인 동물로써의 인간 군상이 그려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제 스스로 벽장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했던 그 남자의 모습이 책장위로 그림처럼 펼쳐져 당혹스럽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생생하게 다가왔던 그 느낌들이 나를 너무 섬뜩하게 만들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내게는 되돌이표를 찍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이야기 묶음이었다. 하지만 옮긴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장어를 풀어주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강가를 산책하는 시셀( 일곱번째 이야기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 나왔던 여자) 처럼, 나도 어쩐지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을 덜어 놓은 기분이 든다고... 어떤 부분을 덜어 놓을 수 있었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 집, 한 공간속에서 함께 살아갔던 쥐 한마리의 존재를 알고나서, 그리고 그 쥐가 점점 통통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공간속의 남자와 여자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되었던 이야기.. 그 쥐를 죽이던 순간 미처 태어나지 못한 채 제 어미의 찢어진 몸통 틈에서 투명하고 작은 발을 꿈틀대며 삶을 향했던 희망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작은 생명들.. 그러나 그 작은 생명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낚시를 통해 잡았던 장어를 다시 강물속에 다시 돌려보냈고 다시 시작되는 사랑을 느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은 은유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너무도 큰 은유의 늪에서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강한 문체에 시달리다보니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은유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이 섬뜩한 문체들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문득 눈을 감은 채 누워있던 여자, 책표지의 그림이 생각났다. 그 여자는 죽은 것일까? 그저 잠을 자고 있을 뿐일까?  그 생생했던 느낌들을 지워볼까하여 장난삼아 책을 옆으로 세워보았더니 그 여자가 일어나 생각이 많은 얼굴로 고뇌에 빠져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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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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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다. 솔직히 정신이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절망과 고통스러움만이 내게 존재했던 것 같다. 어지러움속에서 책장이 넘어가고 다가오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들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이건 뭐지? 도대체 현실속인건지 상상속인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콘도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그 많은 이야기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알 지 못한채 그렇게 500쪽 가까운 책장을 모두 넘겼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라는 남자와 우르슬라 이구아란이란 여자가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황당한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은 다른 세계로의 도피를 꿈꾸게 된다.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황당하기까지 한 도피였다!)  수많은 역경을 딛고, 힘겨운 것들을 쳐내가면서 어느 한곳에 정착..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마을, 곧 그들과 그들의 후세들이 백년동안을 살아내야 했던 그 마을 마콘도를 만들어 그 안에서 그들이 겪어내는 삶의 여정은 너무 혼란스럽기만 하다.

책속 세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환상적인 묘사들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무슨 마술사의 손안에서 비둘기가 나오듯이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오르고, 하늘로 날아올라 승화되어지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나타날때마다 나비를 앞세우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음이다. 이미 죽은 가족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그 유령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현재의 사람들.. 그런가하면 우르슬라는 120년정도를 살았고, 또 한 여자는 (그 여자는 카드로 점을 치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부엔디나 가문의 후세도 낳아준다) 140살을 넘기고서야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것들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야말로 황당함 그 자체였으며 그런 대목이 나올 때마다 너무도 어색하기만 했다. 한편의 신화를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신화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도 없다.

처음에 나는 어떤 원주민들이 서구문명의 발아래 짓밟혀가는 과정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그들나름대로는 잘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가 들어오고 기차가 들어오는 현대적인 문명앞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펼쳐질거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다.  밀려들어온 문명의 물결속에서 그들이 겪어내야 했던 일들, 고용주와 고용인의 싸움,  파업을 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런 일들은 원시적인 삶속에서는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짐작했었던대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어색하게만 다가오는건지... 근친상간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가족사는 정말 비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까봐 늘 노심초사 했던 맨처음의 여인 우르슬라가 염려했던대로 그들의 마지막대에 와서는 결국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의 가문은 멸망한다.  이름부터가 참 어지럽다. 같은 가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을 손자 손녀가 쓰고 또 그 손자 손녀의 이름을 더 먼 후세의 자손들이 다시 쓰고하니 몇 대를 걸쳐가면서도 같은 이름의 반복이다. 차리리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 1세,2세,3세,4세...등으로 불리워졌다면 덜 혼란스러웠을까?  모르지..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저마다 겪어내는 삶의 여정조차도 대물림을 고스란히 하고 있는걸 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도 그 이름을 썼던 사람들과 같은 혹은 비슷한 여정을 가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닮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책속에서 내가 만났던 것은 어떤 희망이나 기대보다는 절망과 좌절, 고통스러움이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멜키아데스라는 집시 예언자(이 집시 예언자는 죽어서도 유령이 되어 그들의 집에서 방한칸을 차지한채 지내고 있다)의 기록을 부엔디나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 해독하는 순간 그 가문의 종말을 보게 되는 결말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결국 예언자가 양피지에 써놓았던 것들은 부엔디나 가문의 일대기였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현존하는 사람과 이미 죽어 유령이 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곳 마콘도.. 그 마콘도가 안고 있었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가장 똑똑하다고 존경받으며 한마을의 지도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가 집시가 전해주던 문명의 도구에 빠져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과학이 없고 종교가 없고 형식이 없었던 세상속에서의 인간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냈었던 것일까?  인간에게 과학과 종교가 그리고 허울뿐인 형식이 자리잡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인간은 과학과 종교와 형식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복잡하다. 매끄럽지 못한 길을 걸어온 듯한 느낌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보다도 나는 사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란 제목과 고전이라는 유혹에 이끌려 이 책을 접하게 되었지만 잘 모르겠다. 내면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인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내가 보아야만 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는지...  저마다 사랑을 갈구하며 가슴속에 바윗덩이만한 고독을 숨긴 채 일세기를 살아내야 했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나 가문의 사람들... 그래도, 어찌되었든 한번 태어난 사람은 저마다 기를 쓰고 살아낼 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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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커 1 - 별을 쫓는 아이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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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하게 매력적인 판타지... 맛있게 맵다는 광고카피가 떠올랐다. 처음 그 광고카피를 들으면서 매우면 매운거지 맛있게 매운건 또 뭐냐고 말했었는데 이 책이 그런 느낌이랄까? 정말 상큼하다. 그러면서도 뭔가 우리가 알 수 없는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음이다. 우리의 현실을 떠난 세계,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황당하기도 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보통의 판타지 소설이라면 이 책은 결코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겪어내야 할 혹은 내가 겪어내고 있는 그런 상황속에서 나와 만나기를 원하고 있는듯이 보여진다.  '별을 쫓는 아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이미 맑고 아름다운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오래전에 내 가슴속에서 노래하던 작은 난장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부족함때문에 깊은 사랑을 보여줄 수 없었던 그 작은 난장이의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란 책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속에서 우리의 주인공 루크가 위안을 찾던 곳으로 선택되어진 오크가 있는 숲의 배경은 파스텔톤 물감으로 그려진 수채화처럼 다가왔으니 말이다.  막내 난장이가 백설공주를 위하여 몸짓으로 표현했던 그 사랑의 아름다움이 그 숲을 배경으로 다시 떠오른 것만 보아도 너무나 서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나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아빠를 잃은 소년 루크는 그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채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세계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결코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선택되어진 삶의 여정은 막힘없이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어느새 불량학생으로, 문제아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지면서 그와 함께 했던 아이들의 협박은 오히려 루크에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계기가 되어준 듯 하다.  아빠를 잃고 또한 새로운 사랑을 찾아낸 엄마를 다시 잃게 될까봐 두려웠던 루크의 마음속에 찾아와 주었던 그 작은 별하나... 그것은 자신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향한 집착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늘 함께 있어주는 듯한 아빠의 존재감은 어쩌면 루크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꿈이요 이상이었을거란 생각을 한다.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그 모든 바램들이 그 존재감속에 함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인생은 어떤 곡조에 지나지 않을지도, 차이코프스키의 곡 제목처럼 한낱 짧은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 잠에서 깨어나 보면 우리가 여태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 - "우리 삶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 상처를 받는 걸까요?" (78- 79쪽)  살면서 어찌 상처없이 살 수 있을까?  내게로 향하는 모든 것들과 부딪히고 싸우며 살아내야 할 그 삶의 여정속에서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  성장소설이란 말속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들이 내포되어져 있는 것 같다. 성장하기 위해서 겪어야만 하는 모든 아픔들이 그 속에 녹아 있으며, 성숙해지기 위한 발판으로써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모든 인내가 그 안에 들어있음이다.  어쩌면 리틀부인과 발리의 사연이 루크의 성장판을 두드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피아노의 선율을 통해 잠재되어져 있던 사랑과 따스함을 함께 공유했었던 발리와 루크의 관계 역시도 까칠하기만 했었던 리틀부인과의 관계와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아니 타인으로 인해 생겨났던 상처였기에 그토록 감추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를 리틀부인의 서글픈 자기애를 바라보며 나는 왠지 가슴이 답답했다. 자신의 틀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리는 어리석음을 행하는 것이 어찌 리틀부인뿐일까.. 

만약에 나에게도 루크에게 있었던 그 신비로움이 찾아와 준다면 루크처럼 남을 돕기 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신이 갖고 있었던 작은 능력으로 인하여 타인의 삶속에 사랑과 희망을 키워주었던 루크.. 타인을 위하기보다는 내 안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싶어했었던 루크의 내면속에는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나도 눈이 멀었는지도 몰라. 눈이 멀고 머리도 혼란스러운 데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나의 인생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어쩌면 나도 발리처럼 남을 잘 믿는 사람이 되어, 누군가 나를 인생길의 어느 지점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야 하는지도 몰라.(228쪽)  엄마와 로저 아저씨가 자신을 위하여 그토록 갈망하던 사랑을 포기했던 그 순간까지도 루크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빠의 죽음으로 인하여 느껴야 했던 그 상실감을 자신으로 인하여 받아들여야만 했을 그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없었던 마음 자체가 루크는 두려웠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해피엔딩이다. 우리의 삶 또한 해피엔딩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루크와 같은 별하나를 새겨두고서 그 별을 쫓아가는 순간을 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별은 루크에게 있어 아빠였으며 엄마였고 과거였으며 미래이기도 했다. 사랑이기도 했고 아픔이기도 했다.  삶의 여정에서 겪어야 할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난장이의 소리없는 사랑의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이었지만 백설공주의 아니 이미 늙어버려 백설왕비가 되어버린 한 여인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그 노래가... 루크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피아노의 선율로 표현되어졌던  그 따스함과 사랑이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서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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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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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란 말이 있다. 유명인이나 자신이 존경해 마지 않았던 사람이 죽게 되면 그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살을 하게 된다는... 글쎄, 사실 난 그런류의 생각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 차이가 있음으로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감정도 다르겠지만 내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듣게 되면 나도 모르게 영화 한편이 떠오르곤 한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역시 사랑을 담았던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그 노래가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자살이 늘어가기 시작해 사회라는 거대한 무리가 흔들리는... 영화를 보면서 뭐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노래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금을 울린다느니, 감동을 했다느니 하는 말들이 그냥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꿈결같았던 학창시절에 도서관을 찾으면 왜 이리도 이해할 수 없는 고전을 찾아 헤맸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겠으나 이 책 역시도 이미 그시절에 나의 손을 거쳐 갔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의 기억속에서 그다지 커다란 공간을 차지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죄와 벌, 폭풍의 언덕, 목걸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 등등등... 생각나는 고전들은 많지만 유독 이 책의 내용은 그다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한번 꼭 읽어보리라 생각하면서도 쉽게 다가서지 못했었는데 책을 읽고나서 나는 다시 또 생각하게 된다.  좀 더 세월이 지난 후에 읽어볼 걸 그랬다고... 그렇다고 내가 다시 고전읽기에 도전한 마음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절실한 그리고 아주 지독한 짝사랑이 불러왔던 고통, 그 고통으로 인하여 주인공이 받아들여만 했던 아픔의 순간들, 결코 승화되어질 수 없었던 집착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만 보여지던 그 사랑의 행로.. 그처럼 지독한 사랑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해보았을까?  사랑을 하면 이 세상의 크기가 오직 그사람만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의 크기로 보여진다는 말이니 온통 상대방 생각뿐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질 수 없는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욕심과 집착을 키워가며 끝내는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끝내버린 그의 사랑을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가 않다. 그것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자신의 집착에 불과했을 뿐이다.  

사랑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단지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변할 뿐이다. 헤어지면서도 행복을 빌어주었던 사랑법과 너 같은 사람 다시 만나 너도 나처럼 당해보라는 식의 사랑법은 확실히 다르다. 그다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편지 곳곳에서 묻어나던 베르테르의 현실적 감각이 느껴질 때마다 자살로 맺음을 해야했던 그의 모순을 보게 된다. 꽤나 현실적인 듯 하면서도 이상에 자신을 맡겨버린 무책임함도 그의 자살을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는 싫다.

이 책처럼 편지글 형식의 책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편지글 형식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조금은 답답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게다. 공감할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 아직은 내가 그 사랑이란 것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 편지를 받았다던 친구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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