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의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정말 놀라웠다. 어쩌면 그리도 한사람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미량의 인색함마져 허락하지 않을수가 있는지,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은 일종의 경고성까지... 그랬기에 그의 세번째 작품을 보면서 가슴이 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본 후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보았을 때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던 그 유혹의 끈끈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극히 당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도시의 삶은 정말이지 서럽도록 처절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책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도 앞의 두 작품과 연결고리가 있을거라고 내심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빗나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속에서 한없이 헤맸다는 것을 또한 인정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주제씨는 중앙호적등기소의 말단직원이다. 그것도 나이가 꽉 찬 혼자사는 남자. 그의 집은 중앙호적 등기소의 건물과 붙어있다. 그의 취미는 유명인들의 기사나 사진을 수집하여 나름대로 그것을 정리해 놓는 것.. 그런데 어느날 유명인들의 자료에 섞여 모르는 여자의 기록이 함께 따라온다. 아주 평범할 것 같은 그 모르는 여자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주제씨. 결국 그 모르는 여자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자신에게 다가올 그 어떤 일들도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되었든 그것을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처음엔 모르는 그 여자의 사망확인을 하지 못한채 그녀의 삶에 접근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기록부에서 '사망'이란 두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곤 당연히 그녀의 죽음에 접근을 하게 되는 주제씨.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가 왜 모르는 여자의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집착해야만 했는가에 대해 너무도 궁금했다. 어쩌면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일탈은 아니었을까? 매일처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출근을 해야 하고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시간이 되면 윗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퇴근을 하는 반복적인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아마도 누구나 다 안고 지내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만 본다면 주제씨의 일탈은 아주 성공적이긴 하다. 하지만 모르는 그녀의 삶의 행적속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존재의식.. 존재의 가치..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그들만의 정체성.. 책의 소개글처럼 그렇게 단지 이름만으로 불려지는 그런 의미가 아닌 그 이름이 안고 있는 진정한 또하나의 의미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씨를 통해 혹여라도 너무 주관적이게 보일수도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한 통찰을 여러명의 제3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시선을 통하여 어느정도의 객관성마져 부여해주고 있음이다. 모르는 여자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주제씨의 발걸음속에는 매순간마다 변해가는 순간적인 감정들, 그리고 상황마다 부딪히는 선택의 기로들, 그것으로 인하여 육체가 겪어야 할 고통들이 동반되어진다. 도둑처럼 아니 도둑이 되어 학교의 창문을 깨는가하면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 독한 감기에 시달리기도 한다. 직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조퇴와 결근을 하기도 하고 때론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앞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한다. 이제는 그만두어야겠다고. 그랬음에도 그는 다시 현재진행형이다. 한 여자의 일생을 따라가고 있는 주제씨의 행로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야 할 삶의 여정이 담겨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너무 어렵다. 모르는 여자의 죽음을 쫓아 공동묘지에서 밤을 새운 주제씨가 안개속에서 만났던 늙은 양치기의 말을 통하여 단지 불리워지는 이름보다 그 이름이 담고 있을 많은 것들을, 진정한 의미들로 기억해야 하고 그리워해야 하는 거라고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눈 먼 자들의 도시>나 <눈 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까지 본 주제 사라마구의 '도시시리즈'(내가 붙인 이름이다)에는 특이하게도 느낌표나 물음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묻고 있다. 굳이 문장부호를 쓰지 않고도 전해질 수 있는 감정효과를 보면 문장이 담고 있는 호소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을 다루고 있는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다시한번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아직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미완의 감정이 내 가슴속에 떠돌고 있음이다. 책속에서 주제씨의 행로를 쫓아오던 시선 하나 (나는 사실 그 시선을 눈치채면서부터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었다), 호적 등기소 소장의 존재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그는 말하고 있다. 그 모르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시 만들라고. 그리고 그녀의 사망진단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여자는 죽게 될거라고.. 그녀의 사망일을 없애버리고 다시 산사람들의 기록속에 섞어놓는다해서 과연 그녀는 다시 산사람이 되는 것일까? 모르긴해도 소장의 말속에 숨겨진 그 깊은 뜻을 찾아 다시한번 책읽기를 해야 할것만 같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