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다! 하고 소리내보면 우선 재미있다는 느낌이 다가온다. 아니면 나 어릴적 그토록 열광했었던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되거나... 그 철없던 여학생시절에 <캔디>나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미쳐보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을까? 만화속 남자주인공들은 어쩌면 그리도 멋있던지, 그들이 하는 사랑이란 것은 왜그렇게 안타깝고 슬프기까지한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그 시절을 한번쯤 만화속에 빠져 허우적거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만화는 왠지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만화속으로 들어온 듯도 하고 우리의 시선을 비껴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 <바이바이 베스파> 역시 우리의 시선에서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베스파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던 스쿠터였다. 오토바이보다는 가볍고 자전거보다는 무거운 의미로, 하지만 편리성을 따지자면 스쿠터만한 것도 없을테다. 아마도..  나는 정작 베스파라는 말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모두 겪어내야 했을 성장의 아픔을 말하고 또 보여주고 싶어하는 장면들속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 힘겹게 탈피를 해야하는 청소년들의 외침도 함께 묻어있다. 제 스스로 탈피를 하지 않으면 날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나비처럼 그렇게 가혹한...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게다. 단지 그 기억들을 저 편으로 밀어놓았을 뿐.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이 어른이 된 후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할테니 말이다.

"그래 맞아. 난 신을 안 믿어. 그리고 나를 믿었지. 그런데 이제 더는 내 자신을 못 믿겠어.
내가 욕했던 사람들처럼,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처럼 내가 똑같이 하고 있으니까.
이제 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
"나도 비슷해. 난 내가 관찰자라고 생각했거든.  흐림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65쪽)

한때의 치기처럼 그렇게 난 어른이 되기 싫다고, 어른들처럼 그렇게 세상을 살지는 않을거라고 한번쯤 소리쳐보지 않는 젊음이 있을까? 두 아이의 대화속에서처럼 정말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어른들의 현실이 어쩌면 그들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욕했고 싫어했던 그 현실들이 바로 내 앞으로 다가와 우뚝 선 채로 나를 바라보았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니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앞에 우뚝 서버린 그 현실과 악수를 나누고 타협을 하며 어깨를 나란히 한채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난 끈을 하나 잡고 있었어. 그걸 놓치면 보통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끈이야.
 이걸 놓으면 내 의미가 없어지니까 안간힘을 쓰며 끈을 잡고 있는거야...."
"난 좀 혼란스러울 것 같군. 그렇게 되면 내가 아는 네 특징들이 모두 없어져버리니까.
 어쨌건 앞으로 뭐 할건데? 혹시 어른이 되려는거니?" (146쪽)
어쩌면 이토록 가슴이 아플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만의 색을 버리는 것일까? 자신만의 특징을 버려야만 어른이 될 수 있는것일까? 탈피를 했던 애벌레는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색의 날개를 가짐으로써  좀 더 멀리 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어쩌면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멋진 색의 날개를 달아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모두가 나비가 될 수는 없었듯이... 문득 나는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꿈꾸어왔던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나비가 되어 나는 것처럼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함께 평행을 긋듯이 현실과 꿈도 언제나 마주보며 평행을 긋는다. 마주보는채로 서로에게 웃음도 되고 눈물도 되는 그런....

<바이바이 베스파>를 읽고나니 가슴 한쪽이 싸아해져 온다. 내 잃어버린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작은 스쿠터 하나만 있어도 모든것을 할 수 있다고 느끼며 살았을 내 시간들은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내가 타고 다녔을 그 작은 스쿠터 한대를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의 내 꿈을 생각해본다. 나는 묻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그 시간들이 위안이 될 수 있는가를... 탈피의 아픔과 고통만이 존재했었다고 느끼는 그 시간들이 나에게 다가와 괜찮았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는 것인지... 지극히 보통의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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