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세이타로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남의 집에 있을 때 더 사이가 좋아보인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가족이라는 거에 대해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기, 한마디로는 말 몬하지... 말하자면 짐 비슷한 기라. 여행할 때 짐. 무거버서 영 몬견디겠다 싶을 때도 있재.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엄꼬. 짐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으이..."(35쪽) 여행의 짐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부터 나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이건 어느 특정한 가족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늘 곁에 있으나 느끼지 못하는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 그런 책이다,하는 지레짐작으로 이미 내 마음은 무거워지기 시작한거다. 가족이란 말속에는 상반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듯 하다.  평화롭다는 의미와 자주 어긋나는 의미, 그렇게 다른 의미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상황속에서 가족이란 말은 공존한다. 나는 어느쪽일까? 서로 이해하고 아껴준다는 말은 이론만큼이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적인 관념이 먼저 앞서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나를 앞세우는 이기심이 먼저인 까닭이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없어서는 안될,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빠진 듯한 그 느낌을 부정할 수 없으니 사람이 살아내는 삶속에는 숱한 모순덩이들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책속의 아버지 세이타로는 유랑극단의 배우다. 옛날에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존재의미가 약하다. 그냥 아버지라는 말로써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성벽을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어한다. 나는 아버지니까! 늘 이렇게 외쳐대고 있을 뿐이다. 실세가 없는 아버지의 권위는 늘 바닥이다. 더구나 경제력이 없는 아버지, 술고래인 아버지는 더더욱... 삶과 전쟁을 치루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머니..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일 뿐이다. 고전적인.. 자신의 존재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자식이 있으므로 자신의 자리는 여기라고 여길 뿐이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날 모두에게 편지를 남긴 채 종적을 감추었다. 막내가 열여덟살이 되고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되어지던 그 때에 어머니는 자신의 길로 갔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보여주지 않지만 나는 단지 그 어머니의 앞길이 지금까지보다는 가치있는 길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 제각각의 길로 간다.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새삼스럽게 늘 그자리에 있어주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가치에 대해 되돌아 생각하게 된다고하여 온전히 그 의미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게다. 그렇기에 다이치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리셋하고 싶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서야 할 스테이지로 나아가고 싶었다.(143쪽)
리셋만 한다면, 자신의 일상은 분명 변한다. 다이치는 그렇게 생각했다.(145쪽)

그렇기에 우리는 살면서 수도없이 리셋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나를 붙들고 있는거라고, 그 상황만 벗어날 수 있다면 뭔가 달라진 삶을 살수도 있을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일탈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왠지 가슴 한쪽이 서늘해온다. 누구나 그런 일탈을 감행한다면 가족이란 의미, 또는 가정이란 의미가 너무 낡아빠진 신발짝 같은 느낌이 들것만 같아서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수는 없을까? 해서 즐거운 일만 하면서 살아갈수는 없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우리의 삶이란 것이 늘 그렇게 좋은 것만 던져주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책속의 아버지 세이타로의 인생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일이 다르다는 것..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명제다. 하고 싶은 것을 쫒다보니 늘 허울뿐인 현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작가는 아버지가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즐거운 일을 하게 해준다. 모두가 떠나가 버리고 막내아들만이 곁에 남아 있을 때 어쩌면 아버지는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떠났지만 그 아버지 곁으로 다시 돌아오는 아들과 딸의 모습, 그리고 대중연극을 통하여 그들의 속내를 비춰주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저 아래 어디쯤에서부터인지 울컥하며 올라오는 무엇이 있었다. 가족이란 의미가 그렇게 쉽게 닳아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이치의 생각처럼 모든 것을 리셋하지 않았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딸 모모요의 여정을 보면서 현실직시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포장되어진 자신의 삶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했던 모모요의 대담성이 한켠으로는 안스럽기도 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자신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348쪽)

책의 표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유머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을 유도하는 것조차도 더 아프게 다가왔던 세이타로 가족의 긴 여정. 학습부진아인 막내아들 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었지만 간지의 그 어설픔이 혹은 간지의 그 순수함이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그 무엇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일 뿐인데 우리는 왜 타인의 시선속에 묶어두려 하는지. 내가 살아내야 할 온전한 나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타인으로 하여금 그것을 평가하게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저 내 몫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그 뿐인 것을... 늘 가까이에서 머물기에, 늘 바라보면 그자리에 있어주는 존재이기에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안일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은 아닐까?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손을 내밀면 만져질 수 있을만큼의 거리에 있기에 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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