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 인문여행 시리즈 17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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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을 주제로 한 책을 오랜만에 보는 듯 하다. 책을 펼쳐보면서 내심 쾌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궁을 찾아가게 되면 전체적인 풍경이나 전각의 형상 위주로 보게 된다. 또한 그 전각의 역할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답사여행이 문화의 한 흐름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흥준 前문화재청장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사실 그 책의 시리즈를 보면서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건 인정해야만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대로 마음먹고 보지 않는 한 문양을 통해 한국의 미학을 느낀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각각의 문양이 철저히 유교적인 조선의 문화를 품고 있는 까닭이다. 유교적인 문화라는 게 상당히 관념적인 말로 다가올 때가 많다. 단순히 우리에게 남겨진 몇가지의 풍습과 전통이라는 틀만으로 유교를 말하고 이해한다는 게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5대궁궐 중 한 곳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울러 각각의 전각에 대한 설명을 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웃으며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 때 편액의 글씨와 주련에 빠져 전각의 윗쪽만 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좋지 않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했던 문양들이 늘 안타까웠는데 이 책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문양들을 이미지로나마 보게 되니 반갑고 기쁘다. 전통문양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동물문이나 식물문, 문자문을 많이 볼 수 있다. 거기에 색으로 아름다움을 꾸며내는 단청까지 더하면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儉而不陋華而不侈검이불루화이불치'라는 말처럼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문양의 종류나 단청의 종류까지 모두 외워가며 살펴보기는 어렵겠지만 자주 볼 수 있는 문양에 담긴 의미를 안다면 답사에서의 즐거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보면 동물문에 벽사의 의미를 담았고, 식물문을 통해 자손의 번영을 담았으며, 문자문을 통해 장수와 그 가정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이 책에서 많은 예로 들어주는 문양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이나 십장생굴뚝, 교태전의 뒷뜰에 자리한 아미산의 굴뚝일 듯 하다. 갈 기회가 있다면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혹은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궁궐이나 유적지를 방문한다.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안고 있는 곳이라면 아무래도 한번 더 보게 될 것이다. 현대인의 시점에 맞춰 만들어진 스토리텔링보다는 당시에 그곳에서 살았을 사람들의 생활을 한번 더 그려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그 순간 머리속에는 드라마의 장면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다양한 문양들을 보게 되어 너무 좋았다. 마침 다시 복원되었다는 향원정을 보고 싶었는데 시간을 내서라도 이 책속에서 소개해준 문양들의 목록을 적어 꼼꼼하게 한번 더 봐야지 다짐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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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선물하는 따뜻한 밥상 - 혼밥족, 1인 가구를 위한 건강 레시피
방영아 지음 / 아이리치코리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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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에서 밝혔듯이 혼밥족, 1인 가구를 위한 건강 레시피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책소개글을 살펴보면 '건강과 미용, 품격과 실용을 겸비한 혼밥 비법서' 라는 말이 보인다.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서 꼭 필요한 주제가 아닌가 싶어 눈길이 가기도 했지만 요리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보니 이 책을 보면서 뭔가 배울 수 있을거란 생각이 먼저였다. 사실 요리에는 자신이 없다. 그러니 반찬이라고 해봐야 맨날 먹는 게 그게 그거다. 기본반찬 서너 가지에 찌게나 국종류만 바뀔 뿐이다. 물론 계절에 맞는 반찬도 어지간하면 챙긴다. 건강을 지켜주면서도 품격과 실용을 겸비했다고 하니 기대감이 높았다. 식단 구성법, 기본양념, 식재료 보관법, 맛내기 비법등이 이 책속에 담겨 있다. 30년 가까이 주부로 살면서 한번도 해 먹어보지 못한 요리도 많았다. 한식에만 치우치지 않고 가볍게 해 먹을 수 있는 일식과 양식도 함께 어울어져 있다. 제때에 밥을 챙겨먹는다는 것도 어려운 바쁜 생활속에서 이렇게 우아하게 한끼를 먹을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진 일이다. 혼자 살면서도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는 여유가 모두에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리에 자신이 없는 까닭에 백종원의 레시피를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다. 그가 하는 요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가 하는 요리가 보통의 밥상에 올라가는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게다가 마치 식탁에 앉아있는 주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고 있는 것처럼 레시피를 만들어주니 편하게 다가온다. 계량컵이니 계량스푼이니 하는 말보다 아빠 밥숟갈로 하나, 종이컵 반만큼의 분량이라는 식의 말이 가깝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우리집 냉장고를 들여다본 것처럼 냉장고속에 있던 재료들을 모두 끌어내 하나의 요리로 뚝딱 변신시켜주는 마술도 은근 재미있어서 곧잘 따라하게 된다. 어떤 음식이 되었든 냉장고를 채워놓기 보다는 그때그때 조금씩 해먹는 게 낫다. 어떤 음식이든 즐겁고 맛있게 잘 먹으면 그게 다 몸에 좋은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책속에 소개된 요리를 해 먹으면 그야말로 선물같은 느낌이 들 듯 하다.


책속에 나와 있는 요리의 종류를 크게 ①몸을 맑고 가볍게 만드는 디톡스 혼밥, ②지친 나에게 선물하는 에너지 혼밥, ③친구와 함께 먹는 일품 초대요리, ④냉장고 속 흔한 재료 & 간편 식재료로 만드는 스피디 혼밥, ⑤두고 먹기 좋은 저장식과 활용 요리, ⑥매일 먹어도 맛있는 혼밥 반찬 으로 나누어주니 보기에도 편하다. 그 중에서도 혼밥 반찬에 시선이 갔다. 오랜만에 들깨즙 무나물도 한번 해 먹어봐야지, 좋아하는 꼬막 채소비빔밥도 꼭 먹어야지, 한다. 감자탕을 이리 간편하게 해 먹을수도 있겠구나 싶어 목록에 적어 놓는다. 콩조림이나 견과류를 넣은 멸치볶음, 우엉이나 연근조림, 진미채볶음, 메추리알조림, 오이짠지무침등은 기본 반찬으로 쟁여두면 괜찮은 것들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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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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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속의 내용을 훑어보기 전에 가장 먼저 틀릴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고자 했던 저자의 추측을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행태를 바꿔놓긴 하겠으나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르르 모여서 놀아보자는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 이유때문에 대부분의 큰 도시에서는 이 병의 '종식'을 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의 행태를 많이 바꿔놓았다고는 하지만 이제까지 해왔던 사회적인 형태를 모두 바꿀 수는 없다. 재택근무가 많아지는 추세라고는 하나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거리두기의 필요성으로 인해 도시를 떠나 시외에서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이미 나와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했던 나는 마스크를 일상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일상적으로 착용한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까닭이다. 요즘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하나같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코로나만 끝나봐라!" 와아, 이러다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전쟁이라도 터지는 거 아니야? 라고 우스개소리로 반문하곤 한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까지 자유주의가 아닌 자유방임주의를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묻게 된다. 책임과 의무는 외면한채 권리만을 내세운 사회적인 형태를 지금의 우리가 아니면 누가 만들었을까 싶어서.


옮긴이의 말에서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인 저자가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저자는 이미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단지 그 문제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불러 오게 된 근원적인 것을 더 크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항상 그렇다. 눈앞의 문제만 어떻게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해결법을 찾는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듯이 그 문제를 불러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한 그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와 함께 생활속으로 파고든다. 지금 페스트가 종식되었는가? 에이즈가 종식되었는가? 우리가 역사속에서 겪어왔던 수많은 역병들이 첨단과학시대라는 작금의 시대에도 어디선가 부활의 날만을 꿈꾸며 엿보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저자는 과거의 전염병이나 전쟁을 소재로 재난과 재앙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또한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재난을 완벽하게 예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팬데믹뿐 아니라 지질학적 참사(지진)에서부터 지정학적 참사(전쟁), 또 생물학적 참사(팬데믹)에서부터 기술적 참사(핵발전소 사고)등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재앙들을 모두 다루고 있으며 재난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더더구나 20세기 후반기부터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재난을 예측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하고 있다.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역병과 거짓말과 오해를 전염시키는 정보의 역병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가 커지며 상업적 통합이 강화될수록 팬데믹이 나타날 가능성도 증가한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말처럼 역사동역학이나 환경주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수많은 통계수치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네트워크의 시스템에 관한 논리가 공감대를 불러온다. ①누구도 섬은 아니다, ②깃털색이 같은 새들은 한데 모인다, ③약한 유대는 강력하다(밀도), ④전파와 확산의 정도는 구조가 결정한다, ⑤네트워크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 ⑥네크워크들은 네트워크를 맺는다... SNS라 불리워지는 우리의 네트워크 형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선 여섯가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유행성질병과 네트워크가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는 말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붐비는 정도가 심할수록 더 많은 이에게 옮긴다는 말에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생물들은 인간끼리의 네트워크, 또 인간이 동물들과 공유하는 네트워크가 허용하는 내에서 감염시킬 수 있으며 엄청난 예방약이나 치료제 역시 인간의 여러 네크워크에 따라 제약을 받는다는 말은 기억해둘 만 하다. 이미 우리의 현실속에서도 보여지는 모습인 까닭이다. 현미경을 통한 인간의 의학이 두발짝 앞으로 나가면 인간집단은 최소한 한발짝씩 후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 역시 쉽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진실의 기근정신의 역병을 이미 충분히 창궐시킨 상태에서 어쩌면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더 건강하고 강력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놀랍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기형적인 상태들이 오히려 더 나아질 수도 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울러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그다지 큰 위력을 갖고 있지 않을거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마치 무슨 새로운 세계가 열릴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언론이나 경제학자들의 수많은 이야기는 코로나19를 통해 그들이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또하나의 세계가 아닐까 의심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세계는 수많은 전염병을 견디며 왔다. 페스트, 황열병, 천연두, 콜레라, 에볼라, 말라리아, 지카바이러스, 스페인독감,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이 모두가 공중보건 관료조직과 무수한 가짜 뉴스로 인한 대중의 움직임이 더 나쁜 결과를 불러왔을 뿐이라는 말은 새삼스럽다. 이번 사태 코로나19를 가장 모범적으로 막아낸 국가로 한국과 대만을 꼽는다고 한다. 사스와 메르스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일지도 모르겠으나 위계구조가 잘 짜여진 상태에서 가능했다는 말은 왠지 씁쓸하게 느껴진다. 진실의 기근과 정신의 역병을 이미 창궐시킨 상태라는 말을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한다. 전염병의 근원지로 중국이 앞서가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나 어쩌면 우리를 더 바짝 긴장하게 만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시대는 전염병보다도 더 무서운 환경적인 재앙이 화두로 올라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연적인 재앙만큼 무서운 것도 없는 듯 하다. 환경과 기후로 인해 발생될 재앙 역시 이미 우리에게는 늘 들려오는 그렇고 그런 소리로 그 무게를 잃어가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나무가 벌목되어지고 아마존과 같은 숲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후로 우리에게 찾아올 재앙의 근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재앙이다.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이 정치라는 말속에 함축되어져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인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인간은 깊은 '합리화'의 수렁에 빠져있다. 자신에게 불리했던 기억은 모두 지워버린다는 얘기다. 아무리 선진화된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해도, 최첨단 기술을 갖고 있다해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재난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DOOM의 사전적 의미는 죽음, 파멸, (피할 수 없는) 비운 혹은 불행한 운명[결말]을 맞게 하다.. 라는 뜻이다. 앞으로 인간에게 어떠한 재난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같이 불행한 결말이란 말을 끝에 붙인다. 이 책을 통해 인류역사속에 존재했던 수많은 재난과 재앙을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재난과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우리 앞을 통과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왜일까? 조금은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아이비생각


니얼퍼거슨은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21세기 최고의 경제사학자라고 소개되어져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일반적인 행태(-42쪽)

①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②상상력이 결핍되어 있다.

③마지막 전쟁이나 위기와 싸우려는 경향이 있다.

④위협을 과소평가한다.

⑤행동하는데 있어 꾸물거리는가 하면 결코 오지 않을 확실성 따위를 한없이 기다린다.

★현실의 인간이 쉽게 빠져버리는 인지적 함정들(-125쪽)

①가용성 편향 (기억에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정보에 기초하여 결정을 내린다)

②사후과잉 확신 편향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야 그 사건의 발생 확률을 더 크게 잡는다)

③귀납의 문제 (충분치 못한 정보를 갖고서 일반 법칙들을 정식화하게 만든다)

④논리곱 오류 (10%의 확률을 가진 일곱 가지 사건들의 확률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⑤확증 편향 (가설이 있을 경우 반박보다는 확증해줄 증거를 찾는 경향이 있다)

⑥감정 편향 (선입견에 의한 가치판단)

⑦범위의 무시 (피해의 규모와 희생의 크기가 다른 이유다)

⑧검증에 대한 지나친 과신 (신뢰구간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최선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과 융합시킨다)

⑨방관자의 무관심 (책임 방기)

⑩오염 효과(실체 처한 문제보다 전혀 무관한 정보에 의사결정이 영향을 받는다)

"불일치성이 나타나면 심리적 불편함"이 생기며, 따라서 [인지]부조화가 존재할 경우 (...) [그것에서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개인은 그 부조화를 줄이고 일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된다. 게다가 "부조화가 나타나는 상황에 부닥친 개인은 그 부조화를 줄이려 할 뿐아니라 그것을 더욱 증대시킬 듯한 상황 및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기 마련이다.(-126. 미국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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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로 읽는 세계사 - 25가지 과일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역사
윤덕노 지음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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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가지 과일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역사, 라는 부제만 봐도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과일은 아마도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식품일 것이다. 우리집에도 과일 귀신이 한 명 있다. 사람은 때에 맞는 과일을 먹어줘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 세상에 제철 과일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너무 좋아진 세상이다보니 제철이 아닌데도 수퍼에 가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과일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책의 소개글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역사라는 게 그리 거창하게만 논할 것도 아니다. 이렇게 과일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던 역사의 흐름도 꽤나 이채로웠다. 과일을 이야기하다보면 한창 산을 즐겨찾던 오래전, 산의 나들목을 지키던 할머니의 과일 바구니에 들어있던 한국 바나나가 생각난다. 바로 으름이다. 으름을 그때 처음 보았다. 하도 신기해서 사먹어봤는데 솔직히 맛은 별로였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씨는 또 왜그렇게나 많은지... 그도 그럴 것이 야생상태에서 자란 과일은 우리의 입에 길들여진 맛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과일들은 대부분 개량종이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맛을 개량시킨 것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야생상태에서 바로 먹는 과일은 그렇게 달콤하거나 새콤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마도 먹을거리가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이유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색다른 식품이다보니 먹어 본 사람들에 의해 이곳저곳으로 전해졌고, 많이 재배되었으며, 재배된만큼 개량되었다. 좀 더 맛있게.


얼마전에 읽었던 마이클 폴란의 책 <욕망하는 식물>을 다시한번 들여다보았다. 어찌보면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좀 더 깊이 새겨두기 위해 인간의 손을 빌려 더 나은 것으로 진화되어진 것이 과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강원도 영월로 부모님을 찾아뵙곤 했던 때가 있었다. 집앞에 고욤나무 한그루와 자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고욤나무를 통해 감을 먹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엄마가 알려주셨었다. 고욤나무는 재배품종의 접붙이용 나무로 이용되는 까닭이다. 단감을 엄청 좋아해서 한번 찾아보니 일본의 재배품종이라고 나온다. 유럽에서도 감을 'かき카키'라고 부른다는데 일본에서 전해진 까닭이라 한다. 그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과일의 원산지가 대부분 아시아를 원산지로 두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나나, 오렌지, 키위같은 과일의 원산지가 아시아라는 건 정말 의외였다. 당연히 열대지방의 과일일거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여름에 즐겨먹는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다. 사막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처럼 먹었던 것이 수박이라 한다. 과일로 만든 식료품도 꽤나 많다. 빵에 발라먹는 잼도 과일의 종류만큼이나 많다. 절임요리의 대표격인 장아찌도 과일로 만들면 맛있다. 참외장아찌와 감장아찌의 맛은 지금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요즘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고 많이 먹는 블루베리가 인디언의 양식이었으며, 처음에는 독초로 인식이 되었다가 나중에야 제대로 진가를 발휘하게 된 토마토,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망고가 부처의 전설을 안고 있는 까닭에 깨달음과 축복의 과일로 자리를 잡았으며, 고대의 포도는 국부의 원천이었다는등 25가지의 과일이 안고 있는 역사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여 어디까지 전해졌는지, 어떤 과정으로 인해 개량종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쓰임새는 또 어떠했는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이다. 귤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옛날에는 임금이 총애의 표시로 내린 보물이었다는 귤. 추운 겨울날 따스한 방안에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귤을 까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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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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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제는 '젠더'다. 잘은 몰라도 얼마전까지 '페미니즘'에 관한 주제가 사회를 떠돌았다. 어느날 갑자기 '미투'의 현상은 한 도시의 시장을 재선거로 선출하게 만들면서 느슨해진 느낌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성폭행범'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해자'도 아니다. 한걸음 물러서서 그 주제를 바라보고 있는 독자가 주인공이다. 다 읽고나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책의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은유적인 스포라면 눈치채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이니 '젠더'니 하는 말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대놓고 니편내편을 가르고, 대놓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 죽여야 한다는 식으로 마이크를 들이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개성'이나 '정체성' 따위는 '방관자'로써 보는 이들을 꽤나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읽을수록 몰입도가 강해진다. 흥미로웠고 이채로웠다.

'gender'는 사회학적인 성을 말한다. 젠더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섹스가 생물학적인 의미를 지녔다면 젠더는 사회학적인 성을 말한다고 한다. 젠더라는 말속에는 대등한 남녀관계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생물학적 의미의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 다르게 젠더는 사회적인 성을 지칭한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더 짙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고 변화의 물결은 온다. 다만 그 물결의 흐름이 빠르고 느리다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 사회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에 따라 그 흐름은 분명 다를 것이다. 또한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외면하면서 기존의 문화에 길들여진채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거부나 외면은 세상의 빈정거림을 받는다. 그리고 혹독한 시련을 감내하게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이 옳은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방면으로 설득시킬 수 있을 때 그 변화는 물결을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자칫 잘못하면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거센 파도를 읽으켰던 '미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 혹은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타인의 시선은 왠지 모르게 우리를 움추리게 하는 마력을 지니기도 한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김지성, 이민주, 나채리로 요약된다. 지성은 문학평론가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평론가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고 책이나 칼럼을 쓰기도 하며 방송인으로써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민주는 출판계에서 알아주는 젊은 시인이다. 게다가 그녀의 외모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느날의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어진 채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던 지성은 자신의 옆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던 여자를 보고 놀란다. 그 여자가 나채리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자신은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데 여자는 알몸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렇게 시작된 지성과 채리의 동거는 한달정도 지속되는데 그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성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되고 만다.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민주가 '미투'에 투고를 하며 자살을 해 버린 것이다. 지성은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강간범이라고? 내가 살인자라고?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지성의 삶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이제부터 지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내용의 글을 읽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오직 섹스를 위한 존재의 의미밖에 없는 것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은 남성에게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재하지 못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어서 오래도록 몸에 새겨진 것들은 쉽게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인다. 세상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라스트 듀얼>이 오버랩된다. 강간이라는 사건으로 여자는 자신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과는 다르게 두 남자(그 여자가 유부녀였으므로!)는 그 사건으로 자신들의 명예와 가문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실화였는데 아마도 그 사건은 그 후의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수많은 '미투'를 바라보았던 타인들의 시선에 관해, 그리고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에 관해, 또하나의 성인 '間性'에 대해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으나 흡입력있는 문체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아이비생각

혹 이것은 이들이 벌이는 축제일까. SNS라는 최신 소통기구를 이용한 저들만의 여가문화일까. 저들은 환호하며 저들만의 놀이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나만 그 코드를 못 알아보고 가관이라 코웃음 치는 걸까. 사회학자, 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소설가, 시인, 출판사 대표, 화가, 시민운동가, 건축가, 교수, 판사, 변호사, 의사, 전직 국회의원...... 그들이 벌이는 키보드배틀의 판은 어린아이들의 놀이판과 다름없었다. 아이들은 적어도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가. SNS라는 놀이터에서 노는 인간들은 그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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