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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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라는 말이 왠지 섬뜩하다. '이제는 정보통신 기기들이 사람 간의 접촉을 가로막는다. 이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훨씬 적어졌다. 그 결과 유례없이 불행하다는 것은 데이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빌 맥키번이 지은 '폴터FALTER'에서 나왔던 말이다. 현재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세대를 'i세대'라 부른다는데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특성이라 할 만한 것들 즉 인간성, 정의, 관용, 공공 정신등은 대부분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들이라 한다. 서글프게도 정보통신 기기들과 가까워지는 대가로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외면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각종 미디어의 옹호자들은 회의론자들을 향해 '기계 파괴주의자들'이라 하고 회의론자들은 옹호자들을 '속물'이라 비웃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어진다. 기기가 당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즐거움을 주고 있다면 어떤 즐거움인지. 당신의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인지 아니면 그저 한순간에 지나가버려 기억조차 희미해져버리는 피상적인 즐거움인지를. 나 자신은 기계파괴주의자도 아니고 속물도 아니다. 기기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최신제품일수록 그것에 대한 믿음의 수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게 솔직한 표현이다. 인터넷을 통해 빠름을 얻었지만 우리의 삶은 빠른것만을 원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걸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정보속에서 내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과연 얼만큼이나 될까?


인간은 이미 만들어졌거나 이미 있어왔던 일들에 관한 것들로 비어있는 뇌를 채우며 자란다.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특별히 새로운 것을 배우지는 않는다. 그저 앞선 이들의 행적만을 따라갈 뿐이다. 어찌보면 세뇌라고도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배웠던 모든 것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조금씩 변형되어 왔을 뿐이다. 그런데 昨今의 시대에는 그 정보들을 한데 모아놓고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인터넷이란 괴물을 통해서. 물론 일의 효율성을 말할 때 빨라졌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의존하다보니 자신의 정체성마져 잃어가고 있는 듯 보여진다. 현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산만함이나 정서적 불안, 분노조절장애, 주의력 결핍과 같은 사례들은 모두 인터넷이 우리에게 주는 폐해다.


"인간의 뇌 세포는 사용할수록 말 그대로 더 커지고 발전하며, 사용하지 않으면 줄어들거나 사라져버린다" (-50쪽) 영국의 생물학자 존 재커리 영의 말이다. 이 책에서는 새로운 것들에 의해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자나 지도, 시계, 인쇄기, 측음기들과 같은 새로운 기기들에 의해 인류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거기에 따른 인간의 뇌는 또 어떻게 적응해왔는가에 대해. 인터넷은 우리의 뇌를 피곤하게 한다. '정보의 과부하'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도 우리의 몫인 것이다. 책속의 말처럼 직접 아는 지식과 찾을 수 있는 지식의 차이는 엄청나다. 빠름을 추구하는 인터넷 덕분에 사람들은 책조차도 스캔하듯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책읽기는 인간에게 자신에게 돌아갈 마지막 수단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분한 사색의 시간을 인터넷은 주지 못한다. 아무리 디지털문화나 과학을 맹신한다해도 아나로그문화가 주는 마음의 느긋함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현시대의 우리는 구글이나 인터넷 기업들의 배만 불리워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끝없이 우리의 귀에 속삭인다. 좀 더 빨리, 좀 더 많은 것을 너의 것으로 만들어보라고. 그들은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의 관심조차 없다. 모든 기술은 인간 의지의 표현이다. 도구를 통해 우리는 힘을 키우고 자연, 시간, 거리는 물론 타인등 주변환경을 통제하기를 원한다.(-84쪽) 발명가들이나 그 발명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저 실용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발생되는 영향이나 윤리적인 측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무서운 진실이다.


이 책의 목차만 훓어봐도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인터넷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뇌가 혹사당하면 산만해진다, 인터넷은 당신의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인터넷이 우리를 망각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가장 인간적인 것들과 맞바꾼 기술, 신경 시스템과 컴퓨터는 닮아서 더 위험하다, 컴퓨터가 뇌의 능력을 감소시킨다, 당신은 프로그램되어 있다,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문장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주제들이다. 이 책의 원제 'The Shallows' 얄팍한, 얕은, 피상적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뇌가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말이다. 인터넷이란 괴물로 인해 변해가는 당신의 뇌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 운명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인식 그리고 우리의 정신 활동과 지적인 추구, 특히 "지혜를 요구하는 업무를 컴퓨터에 위임하는 것을 거부할 용기"(-333쪽)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팬데믹이전부터 우리는 이미 자가격리상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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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터 - 휴먼 게임의 위기, 기후 변화와 레버리지
빌 맥키번 지음, 홍성완 옮김 / 생각이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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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매년 900만 명이 오염으로 죽는다. 최악의 경우는 중국인 3분의 1이 스모그로 사망하고 203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1억명의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 (-33쪽) 에덴동산의 사과, 바벨탑, 이카로스 같은 이야기가 우스꽝스럽다고? 그렇지 않다. 인간의 한계를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더 우습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오만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 한계를 넘고 넘어 파멸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생대의 마지막 여섯번째 시기였다는 페름기(Permian Age) 말기에 급속한 온난화가 와서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되었다고 한다. 대기속에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증가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의 온난화와는 완전 다르다. 그 시기의 온난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음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다시한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지구의 온난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사라져가고 있는 섬이, 나라가 있다는 뉴스는 여러번 듣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라는 오명 아래 인류를 편안케해준다는 변명으로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은 돈이라는 힘을 가진 소수만을 위한 명제인데도.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그 아래 잠겨있던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가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있으며 선택적 벌목과 열대우림의 황폐화 역시 인산화탄소의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조차도 그저 단순한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미 들끓고 있는 지구를 바꾸려는 시도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더욱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를 바꾸기전에 더 많은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 혹은 지구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산화탄소는 곡물의 영양분을 감소시키고 벌이 의존하는 식물의 꽃가루에서 단백질의 함량을 감소시켰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또한 기온의 상승은 해충의 번식을 빨라지게 하고 있다. (그런 현상을 우리가 이미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학자들은 말한다. 해수면 상승은 시리아 전쟁난민 위기보다 더한 기후 난민세대를 만들어낼 거라고. 우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살아왔다. 말 그대로 그 문제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 지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99쪽)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자연다큐에서 보았던 모든 풍경들은 아마도 멀지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다고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빙하는 지금도 녹아내리고 있다. 이 책에 실려있는 한편의 시를 옮겨본다. 빙하학자와 함께 동행했던 그린란드 출신의 여성시인이 썼다는 이 시를 읽고도 아무런 느낌을 전해받을 수 없다면 지구의 미래는 이미 없다고 봐야한다.

똑같은 짐승들이/ 이제 결정을 하네/ 누가 살고/ 누가 죽어야만 하는지.../ 우리가 요구하는 건 세상이/ SUV,에어컨, 상품화된 편의시설 너머로 보는 것/ 기름으로 뒤덮인 꿈, 믿을 수 없네/ 그런 내일이 결코 오지 않기를/

당신들의 집도 내 집처럼 되겠지/ 지켜보지. 마이애미, 뉴욕,/ 상하이, 암스테르담, 런던,/ 리우데자네이루, 그리고 오사카가/ 물에 빠져 숨 쉬려 애쓰는 것을.../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69쪽)


기술발전이 유토피아를 가져올 거라고 믿는 이들이 인간 의미의 상실을 겁내지 않는 이유 한 가지는 애초 이들이 인간에게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259쪽) 화석연료?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 같은 지하자원을 이용하는 연료를 말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물질이라고도 한다. 화석연료산업에 속하는 100개의 회사가 지구전체의 배출가스 70%를 차지한다는데 그들은 이미 이산화탄소의 과다배출로 인한 이상기후가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부정하려든다는 것이다. 그들은 돈이 많다. 그 많은 돈을 이용해 정치와 입법체계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또 그들끼리 뭉쳐 조직을 이루어 여러가지 규제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정에서 미국을 탈퇴시킨 것도 그들의 전략중 하나였다면 믿겠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해내는 미국이었기에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인간게놈, 즉 유전자변형에 관한 주제도 다루고 있다. 이미 오래전 올더스 헉스리가 소설에서 그리고 있었던 <멋진 신세계>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고. 또한 AI에 대한 경고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배경이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고. 휴먼게임! 우리는 어째서, 무엇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이토록이나 위험한 게임을 즐기고 있는가? 소수에 의해 다수가 멸종의 길로 가고 있는 현상황을 이대로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스티븐 호킹박가는 말했다고 한다. 지구가 너무도 많은 영역에서 위협받고 있어 긍정적으로 되기가 어렵다고. 그러니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소수를 위해 살지말고 다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힘있는 소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수의 연대의식이라고 한다. 인간연대의 또다른 이름이 사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옥스퍼드의 줄리안 사불레서쿠교수는 민주국가들이 스스로 기후 변화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들 대부분이 과도한 소비지향적 생활방식을 상당히 제한하는 사안을 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런 희생을 기꺼이 하겠다는 징후도 없다. 게다가 이방인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은 전 세계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막는다.(-297쪽) 사불레서쿠교수가 말한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의 말이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지구 온난화가 지구를 파괴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전자를 바꿔 인간을 더 이타적이고 공공재를 위해 기꺼이 더 희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 책의 제목 Falter의 뜻을 해석해보면 '흔들리다, 불안정해지다' 라고 나온다. 이미 읽은 <휴먼스킬>도 그렇고, 얼마전에 읽었던 <육식의 종말>에서조차 인간의 탐욕스러운 욕망과 놓지못하는 소비지향적 삶의방식이 인류를 불평등과 몰락의 길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昨今에 이런 책이 많이 보인다는 것은 이미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이 지구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너무 바닥에 팽개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세상이다. /아이비생각


별을 백만개는 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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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서가명강 시리즈 12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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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라는 부제를 보면서 가장 먼저 책띠에서 밝히는 저자의 이력을 읽어보았다.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이면서 역사학과 고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 보인다. 그 말처럼 제대로 된 한국사를 알고자 한다면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직도 식민사관에 젖어있다는 것을. 우리의 교육현실이 얼마나 편협적인가를. 책을 읽으면서 공감의 순간도 많았다. 단순히 유물과 유적의 발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유물과 유적이 거기까지 걸어왔던 모든 길을 알아낸다는 건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우리의 역사, 더구나 중국과 일본에 맞서야 하는 우리의 역사가 가야 할 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고대사에 관한 문헌이나 자료가 부족한 까닭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대사가 왜곡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땅속에 숨어 있던 유물과 유적의 발견 덕분이라고 한다. 또한 땅속의 유물들은 우리가 잘못알고 있던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중국이 광개토태왕비를 볼 수 없게 막았겠는가! 최고이자 최악의 발굴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무령왕릉의 발굴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발굴현장의 모습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거리중 하나이다.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는 우리의 역사에 한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중의 하나였다. '삼국유사'에 의해 미륵사를 세운 것은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라고 알고 있었지만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미륵사 창건주가 백제의 사택왕후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유물과 유적의 발굴은 큰 의미를 가진다는 말일 터다. 더구나 유물과 유적의 발굴은 그 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음이다.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유물과 유적의 발굴을 통해 한국의 고대사를 바라보며, 무덤과 인골을 통해 고대인에게 말을 걸어 그들의 존재가치와 그들이 꿈꾸었던 사후세계에 대해 연구를 한다. 수도유적을 통해 삼국의 고대사를 되짚어 나가기도 하며, 초원길이나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얽힌 한국 고대사의 흔적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각 장의 틈새에 부록처럼 'Q/A 묻고 답하기' 코너를 넣어 일반인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음직한 말에 대해 답변을 해 주기도 한다. 단순히 유물과 유적의 발굴 순간이나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조금은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유물과 유적의 발굴이 얼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령왕릉을 발굴했던 교수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몇 년이 걸렸더라도 나무 뿌리를 하나씩 들춰내며 발굴을 했어야 했다고, 단지 하룻밤만에 끝내버린 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였다고.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거기에 모두의 관심과 지원 또한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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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킬 - 인공 지능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기술
크리스털 림 랭.그레고르 림 랭 지음, 박선령 옮김 / 니들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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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사회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요즘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라고 외쳤던 지구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이제 각자 도생의 길로 접어든 듯 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각자 도생의 길이 이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한가지만 잘해서는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멀티테스킹의 시대라는 말이다. 멀티테스킹은 한마디로 말해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은근슬쩍 우리의 삶속에서 마치 이전에도 있었던 듯 자리잡고 앉아있는 현상이 엄청 많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속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다는 말일 뿐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해간다는 말을 수도없이 들어왔다. 도대체 인간적인 감성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이 책의 부제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휴먼스킬은 '인공 지능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기술'을 뜻한다고.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고 많은 사람이 걱정아닌 걱정을 한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을 찾으라는 말도 많이 들린다. 과학이 좋다고, 편한게 좋다고, 빠른 게 좋다고 그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뛰어왔으면서 이제와서 미래를 걱정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와버린 세상을 한탄하기보다는 그런 세상을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진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인간의 감성만큼은 기계가 따라올 수 없다고. 학창시절에 종종 I.Q 검사를 했었다. 지능지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E.Q가 높아야 한다고 하더니 S.Q 와 M.Q 가 높아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감성지수, 사회지수, 도덕지수가 높아야 힘들고 고된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일 터다. 그러더니 이제는 인성을 뜻하는 P.Q지수가 높아야 한다고 한다. 결국 인간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일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휴먼스킬은 다섯가지다. 집중과 마음챙김, 자기 인식, 공감, 복잡한 의사소통, 적응 회복력이다. 집중과 마음챙김은 한마디로 말해 '주의력 근육'을 강화하는 일종의 정신수양이다. 멍때리기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 TV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하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혀를 찼었지만 이 책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집중과 마음챙김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밥을 먹을 때는 오로지 밥먹는 데만 집중을 하고, 놀 때는 오로지 노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친구를 만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꿈같은 말이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어느 하나에 집중한다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은 뭐가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도 저자는 말한다. E.Q 즉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 유리하다고. 몇 개만 예를 든다면 CEO, 사회복지사, M&A 전문가, PR 또는 마케팅 책임자등이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일은 기계가 하지만 인간이 기계와 공생할 수 있는 바텐더나 의료인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다. 노인 요양 보호사나 여행 가이드, 위기 핫라인 자원 봉사자등이 거론되고 있다. 사실 기계라고해서 만능은 아니다. 과학이 능사는 아니듯이. 그만큼 인간의 손길과 마음이 필요한 직업은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일 터다. 뜻이 있는 선진국의 몇 몇 그룹에서는 이미 그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위기감을 얼만큼이나 느끼고 있을지...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마치 아나로그 시대가 아예 없었다는 듯이. 그러나 단언컨데 디지털 시대는 많은 사람의 몰락을 가져올 게 뻔하다. 이 책의 서두에서도 말하고 있다. 디지털문화로 인해 우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해. 아마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정리해 본다.

미래세계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대상은 뱀이나 호랑이, 전염병이 아니라, 흔히 4D라고 하는 주의 산만, 관계 단절, 다양성 부족, 끊임없는 행위다.

주의 산만 : 대중들의 심각한 주의 산만 위기가 정점에 도달한 지금, 우리는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나의 시간과 관심을 오롯이 홀로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깜빡이는 불빛 몇 개와 더블탭을 대가로 귀중한 시간과 관심을 남에게 내줄 것인가? (-47쪽)

관계 단절 : 실제적인 관계가 꾸준히 디지털 관계로 대체되고 외로움과 우울함이 고조되는 초연결시대에 사는 우리는 선택이 불가피하다. 내 몸과 마음, 정신이 필요로 하는 직접적인 개입과 관계를 우선시 할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 내용물과 그에 수반되는 해로운 결과를 받아들일 것인가? (-50쪽)

다양성 부족 :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새로운 세계와 협력하면서 집단 내 사고방식, 문화적 고정관념,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며 다양한 관점을 취하고, 공통의 가치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밀접하게 연결 될 것인가? 아니면 현상유지라는 미명 뒤에 숨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글 것인가? (-54쪽)

끊임없는 행위 :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단순히 뭔가를 하는 '인간 행위자'가 되었다. 정신상태 또한 지금보다 더 어수선했던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는가? 지루하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한 건 언제인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식힐 대상이나 오락거리를 찾지 않은지는 또 얼마나 되었는가? (-55쪽)

우리의 감정적인 삶은 날씨와 비슷하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날씨처럼 변화무쌍하여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말일 것이다. 현대인들이 진짜로 중요한 것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불안감, 외로움, 단절감, 우울증 그리고 주변에 대한 배려 부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말도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 증세를 겪어보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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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완성 글씨 연습장 - 악필 교정에서 바른 손글씨까지
박재은 지음 / 경향BP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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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두 마음이다. 이 나이에 글씨 쓸 일이 뭐 그리 많다고, 하다가도 또박또박 잘 쓴 글씨를 보면 또 마음이 바뀐다. 글씨체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는데 어쨌거나 글씨를 잘 쓴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주 글씨를 못쓰는 편은 아니다. 써놓고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글씨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글씨를 잘 쓰고 싶은 건 욕심일까?


언제부터인지 손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노트북으로 글쓰는 게 편해지기 시작했다. 글씨를 쓸 때 꾹꾹 눌러쓰는 타입이다보니 몇 줄 쓰고나면 연필 쥔 손이 뻐근하다. 그렇지만 역시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게 훨씬 안정적이다. 일단 글씨를 쓰다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가끔 틀린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기도 하면서. 그렇지않다고 생각했는데 글씨 쓰는 걸 보면 성격이 급한 편인가? 한다. 빠르게 쓰다보니 거의 흘림체에 가깝다. 게다가 왼쪽 줄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안쪽으로 치우치고, 오른쪽 끝은 이상하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글쓰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오랜동안을 그렇게 써와서 버릇처럼 되어버렸는지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옛날에는 펜글씨 교본이라고 있었다. 글씨 좀 써보겠다고 그 책으로 연습도 해 보았었지만 내 글씨는 여전히 그 수준이다. 그러니 이렇게 글씨 연습하는 책에 꽂히는 거다.


책을 펼치면서 와, 했다. 올망졸망 예쁜 글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개인적으로 흘림체나 필기체보다는 정자체에 관심이 많다보니 글씨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사각사각체, 동글이체, 또박또박체, 이름도 이쁘다. 이런! 일단 연필과 노트를 챙겨 글씨 쓰기를 시작한다. 책에서 하라는대로 따라 써보지만 역시 쉽지 않다. 한 술에 배부를수 없다. 다시 써 본다. 또 써 본다. 역시 많은 연습이 필요할 듯. 꾸준함도 필수다. 개성있는 글씨체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정자체에 매달리기로 한다. 붓펜으로 쓰는 몽글체도 욕심나지만 연필로 또박또박체와 볼펜으로 쓰는 동글이체를 연습중이다. 3주면 예쁜 글씨가 나올까? 그랬으면 좋겠다.

필기 노트를 잘 보지 않게 된다고 강의내용을 책에다, 그것도 좁은 행간에 글씨를 쓰다보니 악필이 되어버린 아들녀석에게도 한번 이 책을 권해봐야겠다. 이건 뭐지? 발로 쓴거냐? 뭐 이런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할테니 말이다. 인사 잘해서 손해볼 일 없듯 글씨 잘 써서 손해볼 일도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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