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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는 척하기 - 잡학으로 가까워지는
박정석 지음 / 반석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長く住めば都 나가쿠 스메바 미야코 ” 오래 살면 거기가 고향이라는 말이다.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정들면 고향. 책을 열면 머리말에서 저자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이다. 저자는 재일교포다. 경북 영천에서 출생했으나 1991년 일본 영주권을 취득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자신이 한국인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두 아들을 설득하여 한국의 군대에 다녀오게 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준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일본 아는 척하기' 라는 책의 제목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일본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일까 싶어서. 이 책은 이런 저런 잡학을 통해 일본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세계를 확인하고픈 청년들이 읽어주기를 희망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한일관계는 참 묘하다. 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라고 할 수도 없는 듯 하다. 그냥 저자의 말처럼 지지리도 못산다거나, 아주 못되고 나쁜 이웃을 만나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면 다행일 듯 싶기도 하고.
일본의 국가 명칭은 두 번 탄생했다. 처음에는 倭였고 그 다음이 日本이다. 국가라는 개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에도 막부 시대 국민들은 약 260개 현(藩번)을 국가명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 "お国はどこですか" 라고 묻는다.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이 없고, 주민표와 호적이 없으며, 여권도 없고, 자유로운 인권도 없다는 천황에 대한 이야기가 시선을 끈다. 한마디로 국민으로서의 요소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황실 예산이나 천황가의 거주지가 도쿄돔 경기장 약 25개 규모라고 하니 놀랍다.
일본의 나라 꽃은 사쿠라(벚꽃)다. 그런데 나라 꽃이 두 종류라고 한다. 나머지 하나는 국화다. 사쿠라는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나라 꽃이고, 국화는 귀족인 천황가에게 사랑받는 나라 꽃이라고 한다. 일본 장수기업의 98%이상이 중소기업이라는 말은 내심 부러웠다. 100년 이상된 기업이 한국에는 4개 뿐이지만 일본에는 26,000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디지털과 아나로그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고 어필한다. 백퍼센트 공감이 되는 말이다. 우리도 이제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국을 情의 문화로, 일본을 칼刀의 문화로 비교한 것도 이채롭다. 똑같이 '혈통 중심' 사회였지만 다른 길을 걸었던 두 나라. 일본 사무라이의 生死는 실력으로만 평가받던 사회였다는 말이 흥미롭다. 다르기에 배울 것도 있고 보완적인 관계라는 저자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테레비’, ‘리모콘’, ‘백미러’, '소보로빵', '간지', '가불', '간식', '육교', '유도리', '땡땡이', '수순', '기스', '땡깡'... 알고 쓰든 모르고 쓰든 우리말 속에는 일본식 말이 많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에 앞서 알려주고자 노력하는 힘도 필요한 듯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