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지혜, 오늘에 충실하라 - 시간과 감정을 다스리는 세네카의 53가지 인생 지혜
세네카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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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는 시험을 위해 시대와 철학자의 이름, 그의 사상에 관해 공부했었다. 철학자의 이름만 알 뿐, 그들의 생애를 잘 모르는 까닭에 세네카에 대해 한번 찾아보았다. 세네카는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문학가이자 사상가이며 로마 제국 황제인 네로의 스승이기도 하다. 한자문화권에서 공자의 <논어>가 고전의 표준으로 여겨지듯 라틴어문화권에서는 세네카의 <도덕 편지>와 <대화>가 서양 고전의 표준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지방관으로서 3대 황제를 보좌했던 세네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자가 모두 뛰어난 수사학자였기에 대 세네카, 소 세네카로 불린다고 한다. "오늘을 붙잡아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책표지의 말이 시선을 끌었다. 우리는 늘 말하곤 한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표어처럼 우리 곁을 맴돌 뿐이다. 그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산다면 굳이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았다.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모습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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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을 성실함의 훈장으로 내세우지 마라. 많이 움직였는지가 아니라 필요한 일을 분명한 이유로 완수했는지가 중요하다. 충실한 삶은 일정이 많은 삶이 아니라, 행동과 목적이 어긋나지 않는 삶이다.(-23쪽)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한가한 것보다는 바쁜게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바쁜 일정이라면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속없이 움직이는 것은 그저 시간만 잡아 먹을 뿐이다. 살아보니 가끔은 한가함이 나를 위로해 줄 때도 있다는 걸 알겠다. 지킬 수 있는 말만 하고, 말한 것은 끝까지 책임져라. 많은 말을 해명하는 사람보다 적게 말하고 정확히 행동하는 사람이 더 믿을 만하다.(-37쪽)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행동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할 필요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까닭이다. 행동보다 먼저 말을 앞세우면 우리의 뇌는 그것을 행했다고 여기는 오류를 만들어낸다는 말도 있다. 사람이 어찌 지킬 수 있는 말만 할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것이다. 필요한 것은 마련하되 욕망을 필수로 바꾸지 마라. 없으면 생활이 흔들리는 것과, 있으면 더 즐거운 것을 정확히 나누어라. 충분함은 많이 가질 때보다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할 때 생긴다.(-73쪽)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게 한다. 그저 필요한만큼만 소유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수많은 정보, 수많은 광고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소유한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만큼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일 터다. 바꿀 수 있을 때는 움직이고, 바꿀 수 없게 되었다면 받아들여라. 일어난 일을 좋아할 필요까지 없지만 이미 현실이 된 사실과 끝없이 다투지는 마라.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할 일을 다시 정하면 된다.(-115쪽)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왈가왈부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쏟아진 물은 담을 수 없다. 가장 바보같은 말이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래야 뒤늦은 후회에 흔들리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묵직했다. 쉽게 다가오는 문장들로 쓰여졌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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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는 가장 완벽한 노예가 된다 ㅣ 시대철학 3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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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 말기 로마노프 황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비주의적 수도사이기도 하다. 당시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건강 상태를 호전시키면서 황후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 황후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그의 권력은 시작되었다. 내정 간섭, 고위 관료 임명까지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로 인해 귀족과 정치 엘리트, 일반 대중의 강한 반감을 샀으며, 결국 그는 귀족 집단에 의해 암살당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황제에게 남겼다는 예언이 서늘하다. 만일 당신의 일족 중 누구라도 내 죽음에 연루된다면, 2년 내에 당신의 일족, 가족과 자식들까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러시아 민중들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의 예언처럼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2단계를 거친 러시아 혁명은 제정을 붕괴시키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한 정치적 대변혁이었다. 2월 혁명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로마노프 왕조의 종말을 불러왔고, 10월 혁명은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무장 봉기를 통해 임시 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한 나라가 망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왕권이 약해지거나 법령이 경시되는 정치적 요인도 있고, 사치에 빠지고 백성이 곤궁해지는 경제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붕괴된다는 구조를 갖는다. 위기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누군가 나서서 그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영웅 혹은 구원자가 나타나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위기의 순간에 인간이 얼마나 쉽게 구원자를 자처하는 인물에게 의존하고, 합리적 판단과 시스템을 포기한 채 맹신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음에도 기시감이 드는 건 왜일까? 작금의 우리 현실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책의 소개글에서도 말하고 있다. 불확실성과 혼란이 커지는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타인과 시대가 제시하는 막연한 구원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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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기 보다 그에게 의존하는 주변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목록에서 보이는 글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다. 낡은 상식을 신봉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잡아먹힌다, 타인의 잣대에 의존하는 순간 당신의 목줄은 넘어간다, 얄팍한 자격증명에 목매는 비참한 노예 짓을 멈춰라, 생각하기를 멈춘 군중은 스스로 학살자를 추앙한다 , 정해진 길을 걷는 모범생은 결코 룰을 지배할 수 없다. 1장에서 나열한 목록들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2장의 목록들은 더 아프다. 모든 인간의 밑바닥에는 구원받고 싶은 치명적 결핍이 있다, 논리로 설득하지 말고 가장 깊은 두려움을 쥐고 흔들어라, 상처를 위로하는 척하며 영혼의 주도권을 완벽히 강탈하라, 기적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맹종을 끌어내는 가장 쉬운 마약이다 , 상대가 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도록 판을 철저히 조작하라. 바로 이 점들을 라스푸틴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구원자를 자처하는 악마들이 판을 친다, 적의 가장 치명적인 맹점을 찔러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어라, 권력의 정점에 선 자일수록 불안의 크기는 가장 거대하다, 핑계를 대며 머뭇거리는 자는 언제나 포식자의 쉬운 먹잇감이다. 4장의 목록속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이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일까? 어쩌면 지금을 혼란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남의 정답을 구걸하는 자는 평생 남의 장기말로 소모된다, 거룩한 척하는 위선자들의 껍데기를 벗기고 진짜 욕망을 쥐어라, 누구도 감히 당신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고 심판하지 못하게 하라. 5장의 목록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에필로그를 통해 이렇게 당부한다. 남의 생각에 끌려다니는 노예의 삶을 끝내고 기꺼이 지배자로 군림하라. 思惟 : 대상을 두루 생각하거나 이성적으로 판단·추리하는 작용을 뜻함. 어학사전이 말하고 있는 생각의 의미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이하는가. 세상의 잣대보다 나만의 잣대가 필요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思惟를 외면하는 삶이 불안한 것은 當然之事라는 생각이 든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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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상식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우리는 붙드는가.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따르는 한 우리는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하면 되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면 된다. 상식은 개인의 판단을 집단의 익명성 속으로 녹여준다. 잘못되어도 나 혼자 잘못한 것이 아니고, 실패해도 나 혼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 안온함이 사유를 서서히 마비시킨다. 사유란 결국 홀로 결단하는 일이며, 결단이란 결과를 홀로 껴안는 일이다.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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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부끄러움과, 나를 다루기 쉽게 만드는 부끄러움. 앞의 것은 지키고 뒤의 것은 버리면 된다.(-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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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가에 너무 자주 흔들린다. 타인이 던진 알량한 인정 하나에 존재의 가치를 승격시키고, 얄팍한 비난 한마디에 영혼의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이 감정의 널뛰기 속에서 사유의 두께는 한없이 얇아지고, 결국 남의 잣대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빈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빈껍데기의 얇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위장과 더 많은 해명을 준비하게 되고, 그 준비물이 늘어날수혹 그는 점점 더 남의 시선의 노예가 되어간다.(-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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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조작되는 것이다 ㅣ 시대철학 2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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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이 대중을 억압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장악하는 것은 교육이다. 나치는 '히틀러 유겐트'를 통해 유소년기부터 무비판적인 집단주의와 체제 순응을 뼛속 깊이 세뇌했다. "무리와 다르게 행동하지 마라, 튀지 마라." 획일화의 폭력에 길들여진 자는 불의 앞에서도 끝내 손을 들지 못한다. 순응을 평화로 착각하는 자는 평생 복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157쪽)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도 저런 말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무리와 다르게 행동하지 마라, 튀지 마라." 이 말은 굳이 파시즘을 지목하지 않더라도 위정자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다루기 쉬운 사람들이 많을 수록 편한 까닭이다. 우리는 히틀러를 말하기 전에 그를 만들어 낸 요제프 괴벨스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히틀러를 신으로 만든 최악의 선동꾼, 괴벨스. 그가 히틀러를 신격화 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이용했던 신문물은 라디오였다. 그 작은 물건 하나를 통해 독일인들을 세뇌시켰다. 괴벨스는 가짜 뉴스를 통해 독일인들이 폴란드인들을 증오하게 만들었다. 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독일인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괴벨스는 전쟁에 대한 분노의 화살을 유대인에게 돌렸다. 유대인들의 가슴에 다윗으; 별을 가슴에 차고 다니게 함으로써 독일인들과의 차별성을 만들어냈다. 그가 전쟁 시에 활주로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아우토반이다. 괴벨스는 인문학자였다. 그는 어렸을 때 폐렴을 앓아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병약한 신체를 가졌고, 4세 때 골수염에 걸려 평생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열등감에 시달렸지만 그 신체적 결함이 인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감추기 위한 그의 노력은 실로 대단했다. 연설을 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할 때도, 조명이나 카메라 각도까지 연출하며 최대한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세계인들의 축제를 이용하기도 했다. 성화봉송은 괴벨스가 기획한 세계 최초의 이벤트였으며, <올림피아>라는 제목으로 다큐 영화를 제작하여 독일의 부활을 알리기도 했다. 또한 나치 군복을 따로 제작하여 멋지게 보임으로써 젊은이들의 입대 열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고, 어떻게 하면 대중을 열광하게 만들 수 있는지 훤히 알았다. 대중의 본성과 감성을 다룰 줄 알았다는 말일 터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중 심리의 해부'와 '무자비한 조종술'은 어찌보면 껄끄러울 수도 있는 주제다. 군중은 진리가 아니라 맹신할 우상을 갈망한다, 논리로 설득하려 들지 말고 본능적 두려움을 자극하라,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가장 거대한 무기로 포장하라, 구차하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단지 매혹하고 세뇌하라,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위선적인 강박을 소각하라, 고개 숙여 얻은 평화는 단두대 위에서 끝날 뿐이다, 가상의 적을 악마화하여 나의 권력을 정당화하라, 사소한 침범을 허락하는 순간 영토 전체가 무너진다, 거짓이라도 수천 번 반복하면 마침내 진실이 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실 속에서 처세술이라는 말로 포장되어지는 말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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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본 괴벨스의 모든 기술은, 결국 한 가지를 가르친다. 인간은 조작될 수 있다. 인간은 자주, 깊이,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조작된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조작된다. 인정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손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손에 묻은 누군가의 지문을 발견한다. 발견한 사람은 손을 씻는다. 손을 씻은 사람이 비로소 자기 손으로 글을 쓸 자격을 얻는다. 자격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자격은 씻는 행위 그 자체다. 매일 씻어야 한다. 한 번 씻었다고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매일 새로운 지문을 묻혀온다. 광고가 묻혀오고, 알고리즘이 묻혀오고, 뉴스가 묻혀오고, 사랑하는 사람의 말까지도 묻혀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무사통과시키지 마라. 사랑은 가장 부드러운 대본 작가다. 가장 부드러운 손이 가장 깊은 자국을 남긴다.(- 218쪽 에필로그 중에서)

책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묻는다, 남이 짠 프레임 속에서 조종 당하며 죽어갈 것인가. 그리고 책을 닫으며 저자는 말한다, 타인의 대본을 찢고 내 인생의 지배자로 군림하라. 알고리즘과 가짜 뉴스, 확증 편향이 우리의 판단을 흔들고 있다는 저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도 이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의심은 하지만 그 의심의 깊이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책의 소개글에서 보이는 말이 시선을 끈다. 이 책은 괴벨스의 선동술을 찬양하거나 기술적으로 배우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었을 때 사회가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조작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깨어 있는 비판적 사고라고. 모든 것이 조작된, 혹은 더 심하게 조작되어지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는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 생각을 멈추려고 할 때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근래에 부쩍 이런 주제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보이는 듯 하다. 그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타인의 기준에 끌려 다니는 삶은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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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ㅣ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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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이라는 부제가 시선을 끈다.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숨겨진 지위의 법칙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서열'과 '지위'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이 책은 그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일종의 심리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리처드 탈러의 <행동경제학>이 떠올랐다. 상당히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사람들의 생각이 꽤나 이채로웠던 책이었다. 드발이 관찰했다던 침팬지의 정치학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담배보다 직급이 사람을 죽인다 (사폴스키의 서열 스트레스), 언제부터 남의 눈으로 살게 되었나 (루소의 자기애와 이기심), 인류 최초의 무기는 뒷담화였다 (보엠의 평등의 기원), 무릎 꿇는 법을 가르치자 사회가 태어났다 (순자의 예), 누가 먼저 말을 놓자고 하는가 (브라운과 길먼의 호칭 정치학), 믿으면, 없던 서열도 생긴다 (리지웨이의 지위 구성 이론), 인간이 하는 게임은 셋 뿐이다 (스토의 지배·미덕·성공), 당신의 장례식에서 아무도 이력서를 읽지 않는다 (브룩스의 두 이력서), 게임 밖에서 만난 사람만 남는다 (부버의 나와 너)... 목차를 보면서 시선을 끌었던 주제들이다. 읽으면서 많은 것에 공감하게 된다. 먼저 말을 놓자고 하는 쪽의 서열이 높아진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아마도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위축감이나 억울함은 누구나 한번 쯤은 다 겪어봤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가진 것이 많은 자의 서열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이미 그렇게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과 과시하고 싶은 마음 역시 서열의 기준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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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과 동료들은 심리학 연구의 표본을 조사했다. 널리 인용되는 추산으로는 연구 참가자의 96퍼센트가 세계 인구의 12퍼센트가 사는 나라들에서 나왔다. 서구의western, 교육받은educated, 산업화된indestrialized, 부유한rich, 민주주의democratic 사회. 앞글자를 따면 위어드WEIRD가 된다. 영어로 위어드는 이상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인류의 표준이라 여겨온 사람들이, 알고 보니 인류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개인주의,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 자기를 남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습관. 이런 것들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으로 보이지만 실은 위어드 사회의 특성이다. 우리가 매일 읽는 말들이 있다. 자존감을 높여라. 남의 눈치를 보지 마라. 내 삶의 주인이 되어라. 관계를 끊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 처방들은 어디서 왔는가.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고, 관계를 끊어도 살아남을 수 있고, 무리를 떠나도 굶지 않는 사회의 처방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관계와 평판이 여전히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는 관계가 곧 자원이고, 평판이 곧 기회이며, 무리를 떠나면 실제로 잃는 것이 있다. 그러니 그 처방이 잘 듣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를 탓한다. 나는 왜 남 눈치를 못 버리지.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89쪽,90쪽) 이 글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분노감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저런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 또한 서열의 기준인가. 먼저 연구하고 분석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학설이 깨지는 걸 원치 않는다.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면 일단 어떻게 해서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들이 가진 지위나 서열에서 밀리고 싶지 않은 심리일 것이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를 보면 안다. 그 심리의 안쪽에는 일종의 우월감도 자리했을 터다. 예는 옛 임금이 만들었다고 순자는 썼다. 그러나 그 임금도 사람이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방금 그가 말했다. 그러면 악한 자가 어떻게 선한 것을 만들었는가. 이 반문은 이천 년 넘게 순자를 따라 다녔다. 그러나 그는 <성악편>에서 이미 답해두었다. 성인도 우리와 같았다. 다만 그들은 더 오래 생각했고, 더 오래 배우고 익혔다.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옹기장이처럼, 자기 본성을 재료로 삼아 그 위에 다른 성품을 만들어냈다. 욕망이 충돌하고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 다툼을 끝낼 방법을 궁리했다. 그렇게 빚어낸 질서가 예였다. 우리가 미덕이라 부르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궁리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라면, 다시 만들 수도 있다.(-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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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례식에서 아무도 이력서를 읽지 않는다'는 말은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침팬지의 정치학에서 보듯 힘센 지도자보다는 무리와 어울리는 자가 끝까지 살아 남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말일 터다. '게임 밖에서 만난 사람만 남는다'는 말도 시선을 끈다. 모든 경쟁에서 벗어난,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는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만이 곁에 남는다는 말이다. 진정한 친구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까닭 모를 위축감이나 억울함이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숨은 지위의 규칙을 간파하는 지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그런 까닭으로 24명의 학자들이 탐구한 인간의 지위 욕구와 권력의 원리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몰입도가 괜찮았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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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확대 문화. 이 문화가 반복하는 말은 이렇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자기를 믿으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 광고, 자기계발서, 소셜미디어, 학교의 표어, 부모의 격려. 어디를 봐도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이 언어에는 가기 결함을 다루는 자리가 없다. 자기의 좋은 점을 확대하고, 부족한 점은 격려로 덮는다. 자기를 낮추는 태도는 소극적인 자세로, 자기의 부족을 응시하는 태도는 부정적인 태도로 여겨진다. 그 결과 우리는 자기의 결함을 이야기할 언어를 잃었다. 대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자기 브랜드, 자기 성장, 자기 실현의 언어다. 자기 확대의 언어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자기의 부족을 응시하는 시간이 사라지고, 그 부족을 마주하는 말이 함께 사라진다.(-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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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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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랄맞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통은 사람이나 상황이 매우 난처하거나 거친 상태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지랄'이라는 말은 간질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는 무서운 말이다. 성격이 지랄맞네,라고 말한다면 괴팍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에서 보이는 지랄맞다는 표현이 상당히 과하게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랄맞을 만큼의 용기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책 표지에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라는 말이 보인다. 꼰대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밥줄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권력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세상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운명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책을 열면 보이는 각 장마다 붙여진 소제목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소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꼰대 앞에서 지랄맞으면 한 대 얻어 맞고, 밥줄 앞에서 지랄맞으면 밥줄 끊기고, 권력 앞에서 지랄맞으면 짤리고, '세상아 비켜라 내가 간다'고 아무리 큰소리 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게 현실이다. 알렉산더 대왕 앞에서 “내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주시오”라고 말했다던 디오게네스, “원하지 않는 영광은 기꺼이 절벽으로 밀어버리겠다”고 말했다던 아서 코난 도일, 철심을 박고 누운채고 지내야 했지만 “운명이 가혹하게 굴면 더 당당하게 맞서라”고 말했던 프리다 칼로, 궁형을 당했음에도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에도 나는 붓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마천,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챔피언 벨트를 내놓고 “당신들이 씌운 왕관은 원한다면 언제든 가져가라”고 말했던 무하마드 알리. “남들이 만든 판에서 1등을 하느니, 나만의 판을 짜겠다”던 파블로 피카소의 말...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지랄맞을 용기'의 사례들이다. 규칙을 깰 만큼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사람들, 권위와 세상의 통념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세상의 시선에,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틀에 맞추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일 터다. 하지만 한 갑자를 넘겨 살아보니 알겠다. 세상을 너무 지랄맞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우렁 더우렁 살라는 말이 아니다. 가끔은 모나게 살 필요도 있다. 물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다. '지랄맞음'이 단순한 무례함이나 반항이 아니라고. 내 삶의 주인은 나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에 대해 세상의 눈치를 본다. 세상의 판단에 一喜一悲한다. 자신만의 삶을 추구해야 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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