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자인 1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 1
김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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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라는 말이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는 말도 있다.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택한다는 뜻이다.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를 가거나 백화점엘 가보면 아무래도 더 멋지게 혹은 더 예쁘게 포장을 하거나 전시를 해 둔 쪽이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가끔은 빈깡통이 요란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생활에서 디자인은 필수요소로 보인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이름이나 제조회사를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자동차의 디자인때문일 것이다. 회사의 얼굴로 등장하는 엠블럼 역시 디자인의 하나인 까닭이다. 그런데 그 많은 제품, 그 많은 디자인 중에서도 스테디셀러로 분류되는 책들처럼 오래도록 하나의 문화인양 자리매김을 한 것들도 많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디자인의 탄생배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다. 일단 흥미로웠다. 디자인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도 재미있게 읽혔던 것은 어쩌면 만화로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안에 담겨있는 지식들은 가벼워보이지 않는다. 지은이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책날개에 이런 말이 보인다. 텍스트를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만화로 재가공하는 데 탁월하기로 정평이 난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겸 저술가다... 그의 책도 여러권 보이는데 역시 모두가 만화로 되어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종류의 지식을 이렇게 만화로 먼저 접하게 되면 아무래도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우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만화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화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자가 가진 의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니 감사한 일이다.

 

코카콜라의 광고를 보면서 돈 안드는 모델을 쓰는데 탁월하다고 한 말에 나도 모르게 오호! 하게 된다.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던 불곰이 생각나 베시시 웃는다) 'I♥뉴욕'과 같은 디자인을 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걸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Chupa Chups 라는 막대사탕을 싸고 있는 그림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래서 찾아보았던 그의 작품세계는 역시 어려워!) 대체적으로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무는 작품이 많았지만 강하게 단 한번만의 등장만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채 사라져버린 작품도 꽤 있는 듯 하다. 책을 읽다가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만큼 오래도록, 혹은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디자인이 있었나? 어쩌면 강한 느낌을 남긴 작품도 있었겠지만 오래가지 않아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고 관심을 갖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일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세기를 넘은 노포조차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만큼이라는데 삼대이상을 이어 온 진정한 노포를 찾는다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먹고 살기에도 힘겨웠다는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모더니즘이니 다다이스트니 아방가르드니 하는 말들이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른다. 물론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이야 알겠지만 그 말이 품고 있는 여러가지의 의미를 이해하는 건 아닌 까닭이다. 책의 말미에 보이는 디자인의 변천사가 시선을 끈다. 자본주의사회라는 건 기업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낸다. 그러자면 생산품이 팔려야 하고 그것을 팔기 위해 마케팅을 한다. 그 과정속에서 디자인도 한몫한다. 그러니 디자인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혹은 수입에 따라 무구한 변천사를 거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이름을 남기려 애쓰기보다 누구나 부담없이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하나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는 디자이너. 일확천금을 꿈꾸기보다 합당한 대가에 감사와 보람을 느끼며 주어진 일이 좋은 성과를 거둘 때마다 기뻐할 줄 아는 디자이너, 남들과 차별되는 멋을 위해 아낌없이 거금을 투척하는 특별한 소수의 취향을 위해 재주를 헌납하기보다 작은 희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절대 다수의 대중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디자이너. 그런 디자이너들이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과 함께 직업의 터전을 꾸리면서 자칫 불순한 의도를 지닌 자의 아방가르드 전략이 생활디자인의 공간을 혼탁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대중과 함께 보편적인 감성으로 상식의 방패를 마련해주기를. (- 274쪽) 물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겠지만 저자의 바램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탓인지 브랜드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보다는 다수의 사람을 위한 것이 좋다. 그저 내가 쓰기에 편하고, 내가 입어서 예쁘고, 내가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은 상당히 이채로웠다. /아이비생각

'Less i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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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 한명회부터 이완용까지 그들이 허락된 이유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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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와 신하의 이해는 다르기에 진정한 충신이란 있을 수 없다. 신하의 이익이 늘어나면 반드시 군주의 이익은 줄어든다." - 한비자 책띠에 보이는 말이다. 찾아보니 법치주의를 주장했던 한비는 저서 한비자에서 '이 세상은 경제적 원인에 의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에 성립된 정책이 반드시 현세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유가나 묵가의 주장과 같은 空論에 흔들리지 말고 시세에 따라 법을 적용하고 관리들을 관리 감독하여 상벌을 시행하고...'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과 같은 침략으로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침략들에는 전조 현상이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포함한 위정자들은 그 전조 현상을 부인하거나 외면하기에만 급급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공익보다는 사익이 앞섰던 까닭이다. 손에 쥐고 있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틈새에서 충신 혹은 간신이 생겨난다. 그렇게 본다면 충신도 간신도 시대가 만드는 셈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간신도, 역적도 시대가 만든다는 말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많이 들어서 각인되다시피 했을지도 모르는 이름들이다. 홍국영, 김자점, 윤원형, 한명회, 김질, 이완용, 임사홍, 유자광, 원균... 그 이름들 뒤에 깔리는 배경을 살펴본다면 역시 여러가지로 불안정한 시대였다. 책의 말처럼 어쩌면 이들은 간신이 아니라 처세술에 능했던 사람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저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간신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강직했거나 혹은 총명하기까지 하여 한때는 인정받았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강직함이나 총명함이 시대와 어울리지 못해 간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갖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마치 처음에는 성군의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폭군의 모습만으로 기억되어지는 연산군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잘한 일은 외면하고 못한 일만 더 크게 들춰내는 것일까? 알다시피 역사는 後代에 의해 쓰여진다. 前代의 치적을 높게 사게되면 당대의 치적이 과소평가될 수도 있기에 위정자들은 앞다퉈 자신이 한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기를 바란다. 앞선자들의 발자취가 선명할수록 그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은 힘들어진다. 昨今의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지는 행태이다보니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공익을 기준으로 역사와 정치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 역사와 정치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의 이기심과 욕망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욕망을 엄격하게 다스리고 오로지 공익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반듯한 사람을 찾아 '국가의 일꾼'으로 삼는 일은 불가능하다.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에서나 가능할 법한 발상이다. (-152쪽) 이 말은 서두에서 말했던 한비자의 글귀처럼이나 시선을 끈다. 이 말에 아니라고 반박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역사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책의 말처럼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이완용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말은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회장을 지냈고, 독립문의 현판까지 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시 친러정책을 보였던 고종에 의해 반러성향을 보였던 독립협회가 해산이 되었고 이때 이완용도 밀려났다. 그가 파직되자 독립협회에서 그를 제명하였고 그런 배신을 겪게 된 이완용은 결국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다. 물론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 잘한 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조선의 왕통이 지켜졌으며 당시의 사회 지배계층들이 그 신분을 유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왜 그들이 간신이 되어야 했는가, 그들이 왜 간신으로 낙인찍혔는가,를 낱낱히 파헤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늘 들어왔던 역사의 단면들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이채롭다. 다소 식상할수도 있겠으나 책장은 잘 넘어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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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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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카가와 요시타카는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토목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세계적 교각으로 평가받는 세토대교등의 설계및 시공의 총책임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고대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역사학의 시각이 아닌 토목건축학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로마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그의 저서로 고대 고마 번영사를 3부작으로 엮은 <수도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 <도로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 <오락과 휴식으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가 있다. 이 책은 그 세권의 책을 한권으로 묶은 게 아닌가 싶다. 옮긴이의 말을 빌면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된 원서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에서의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것이라 하는데 고대 로마의 문명이나 로마인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토록 세심하게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게 쉽진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학이나 토목건축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는 흥미를 끌지 모르겠지만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어 살짝 지루한 맛도 없지않았다.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사 경기는 상당히 자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되어진다. 죽음을 각오한 전차 경주의 스피드와 검투사의 잔혹한 경기 장면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굳이 이 책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영화속에서 우리는 위정자들의 간악함을 볼 수가 있다. <빵과 서커스>라는 책의 제목은 빵은 식량이요, 서커스는 오락을 뜻한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시민들을 위해 내밀 수 있었던 최선의 조치이기도 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왕정으로 시작했다. 공화정과 제정을 거쳐 오현제 시대를 겪다가 나중에는 동서로 분열돼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먼저 멸망했다. 오현제 시대에 현재의 유럽연합 영토보다 더 큰 영토를 갖고 있었다. 제국시대만으로도 500년을 지속했다는 로마는 세계유산으로 남겨진 유물, 유적이 1052건이 된다고 한다. 약 2000년의 세월을 버텨냈다는 말인데 그만큼 로마는 인류문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주자였다. 그토록이나 풍성한 문화를 가졌던 로마의 멸망이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라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빵과 서커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 유웨날리스가 오락을 일삼던 대중을 풍자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로마의 흥망성쇠가 담겨있는 말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튼튼한 성곽도시에서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인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았다. 로마가 번성할 때는 100만명의 사람들이 사는 초과밀 도시였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모여살게 되면 아무래도 불평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내세운 방침이 눈길을 끌었다. 첫째, 화재의 위험에 대비해 석조건물을 지을 것. 둘째, 도시내 교통 혼잡을 없애기 위해 상하수도를 지하화 할 것. 셋째, 고층 주택과 포장도로로 효율성을 높일 것. 넷째, 폐쇄된 공간인만큼 오락거리를 제공할 것. 다섯째, 고도의 건축기술(석재나 콘크리트)로 성곽을 만들 것..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었음에도 현재의 우리 생활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로마의 주민들은 이민족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저항하기 보다는 성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그랬던 것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랬기 때문에 먼 훗날의 우리가 그 시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앞에 언급한 다섯가지의 방침만 보더라도 당시의 문화가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당시의 수도교는 견고했다. 그만큼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있기도 했다. 수도사용료는 기본적으로 무료였지만 개인주택으로 수도관 시설을 끌어들였을 경우에는 사용료를 받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을 위해 도로변에 공동수도를 마련하기도 했고 말이나 가축을 위한 음수장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하수도 시설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상하수도의 처리가 용이했던 고층주택의 1층은 임대료가 높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고층에 살았다. 그들은 폐수와 분뇨를 항아리를 이용해 지하배수로에서 처리해야 했는데 법으로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창 밖으로 투기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스운 생각이겠지만 하이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웬 똥벼락이람! 어찌되었든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로마의 영토가 분할되면서 기술의 전승이 끊기게 되고 로마의 수도 기술은 사라졌다.

 

그 많던 오락과 휴식시설은 결국 기독교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공공욕장도 나체조각상도 기독교가 힘을 얻게 되자 자취를 감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문화는 어찌되었을까? 만신전에서 유일신신전으로 바뀌었으며 종교건축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네로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큰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마침내 313년 공인을 받게 되고 이후 수많은 교회와 성당이 세워졌다. 이탈리아, 터키, 아르메니아, 이집트등..... 전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는 로마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세계유산으로 1052건이나 남아 있다고 하니. 빵과 서커스에서 서커스에 해당하는 오락의 형태로 투기장, 극장, 전차 경주장이 있었다. 휴식시설로는 공공욕장이 있었는데 그것들의 대부분이 정치가들의 인기몰이에 이용되었다는 것은 주목해 볼 만 하다. 상당히 저렴했던 휴식시설의 이용료조차 부족분은 모두 국가가 부담할 정도였으니. 로마가 검투사 경기를 중시한 까닭조차 시민에 대한 통치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정리가 될 것 같다. 고대 로마에는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 그리고 기술자가 있었다. 로마인들은 민족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좋은 문화라면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전파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많은 국가와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실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콘크리트를 발견했으며 로마법에서 서양법률을 가져왔다. 로마의학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등도 그들의 말 라틴어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기록을 토대로 지금의 우리가 반복된 역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愚問을 하게 된다. 만약 로마가 망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愚問은 항상 잘나갔던 역사의 끄트머리에서 시작하는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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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야 -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다이앤 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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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답답하다.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느낌이다. 혹시라도 話者가 지은이라면 속시원하게 뱉어내지 못한 속울음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아파해야 할 것 같다. 해 전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감춰왔던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쓴 첫 소설,이라는 말이 보여서 하는 말이다. 책을 읽는내내 그랬다. 회복하기 위한 글이었다면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아픔을 표현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기에는 뭔가 부족해보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토록 오랜동안을 숨겨두었던 이야기니 한숨에 다 털어낼 수는 없었겠지... 시간을 두고 좀 더 들여다보며 달래야 할 일이겠지만 안타까움이 많이 남았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다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절이 그랬다고는 하나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고주망태가 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엄한 밥상이나 뒤엎고 아내와 자식에게 손찌검을 하고... 엄마는 또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것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야만 했는지... 그래놓고는 모든 댓가를 자식들에게 뒤집어씌웠지. 그 힘겨운 일상은 오롯이 자식들의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끝내는 아픔으로 남았지... 그 아픔이 고스란히 자식들의 울타리안에서 훗날까지 숨쉬며 살아갈 거라는 걸 그때는 생각조차 못했겠지... 그런 삶을 살았으니 이제 내게 보상하라는 듯 자식들의 상처는 외면해버리는 話者의 어머니도 이해가 되고 맏이로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숙명처럼 생각했던 話者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한다. 하지만 이왕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 좀 더 욕심을 부려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없다. 되돌릴 수 없기에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남겨진 무언가를 주섬주섬 줍는다. 주운 것들은 교훈이라 불리고,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들어온 것들은 추억이라 불린다. 주머니에 들어오지도 않고 줍지도 못한 것들은 후회라고 불린다. (-100쪽)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았다. 로야가 무슨 의미였는지를. 로야가 話者의 어린 딸 이름이기도 하지만 페르시아어로 '꿈'이나 '이상'을 뜻한다는 걸.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학창시절이었지만 그녀는 공부를 놓지않았다. 어쩌면 결국 떠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그렇다. 참 잔혹하다. 주인공은 여전한데 배경만 바뀐다. 그러니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닐 거라고 머리를 흔들어도 한 켜 한 켜 쌓였던 세월의 흔적은 지워내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안의 아이와 마주 설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그녀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상처는 무엇인가? 그토록 상처 입은, 나는 누구인가? 책표지의 이 말은 여전히 내게도 크나큰 울림이기에.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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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을 알고 나니 사회생활이 술술 풀렸습니다
함정선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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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놓치고 있던 것들의 정체를 이제야 알게 된다. 책속의 말처럼 맞춤법 하나 틀렸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맞춤법 틀리는 게 법을 어기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맞춤법 하나 틀림으로해서 그 사람의 호감도가 좌우될 수는 있다. 가끔 주변에서 맞춤법을 꼼꼼하게 잘 챙기는 사람을 보게 되면 뭘 그런 걸로? 하기보다는 와아,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거야? 하게 된다. 맞춤법이 틀렸다고 지적해주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렇게 짧은 글을 쓰면서도 나는 국어사전을 찾아 헤맨다. 혹시나 틀렸을까 싶어서가 아니라 이게 맞는거야?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건 띄어쓰기다. 어떤 조사는 붙여야하고 또 어떤 조사는 띄어써야 하는데 너무 자주 헷갈린다.

 

궁금한 마음에 맨 뒤에 있는 부록 '당신의 맞춤법 실력은?'부터 풀어보았다. 점수는? 조금 더 분발합시다! 씁쓸하다. 내가 겨우 이정도였어? 하는 마음에 말 그대로 좀 더 분발하기로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틀린 걸 또 틀린다는 거다. 바보처럼. 책을 읽으면서 일부러 소리내어 읽었다. 다시 잊지 않으려고. 또 틀리지 않게 내 기억속에 붙잡아두려고. '율'과 '률'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하게 된다. 늘 오락가락했던 '왠'과 '웬' 사이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사실 '율'과 '률'은 똑같이 비율을 나타내는 까닭에 항상 자신이 없었다. '율'은 앞의 명사가 모음이거나 받침이 'ㄴ'일 때 쓴다. '왠지'라는 말 외에는 '왠'이 붙지않는다. 다시말해 '왠일이니'가 아니라 '웬일이니'가 맞는 말이다. '오랜'이나 '오랫'이나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오랜만'은 '오래간만'의 준말이고 하나의 단어인 반면, '오랫동안'은 '오래'와 '동안'이 결합해 만들어지면서 사이에 'ㅅ'이 들어간 합성이이다. 그 뜻이 분명하게 다르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정말 더 분발해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겹쳐지던 장면이 있었다. 미디어세상이다. 미디어라는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모든 매체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는 어떤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우리의 말이 변형되고 있다. 옳은 길로 가야한다고 말해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태가 그렇다고만 말할 뿐 마치 그렇게 가야 한다는 듯이 너도나도 모두가 같은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음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런 말들을 만들어내는 세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이정표를 보여줘야 할 매체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언론이 제 갈길을 찾지 못하니 모두가 방황한다. 서글픈 일이다. 언어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 라이프 트랜드를 대변하는 요소라고 보았다던 이 책의 저자는 그 때문에 신조어나 세대 특유의 언어 등에 대해 관심이 컸으나 그렇게 다양한 언어들이 우리말 맞춤법이 망가지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맞춤법 관련 기사를 연재했다고 한다. 한때 소설가를 꿈꿨으나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져 소설 대신 기사를 16년째 쓰고 있다는 저자 함정선에게 응원을 보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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