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색 색연필로 완성하는 Real 풍경화
하야시 료타 지음, 김재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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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림도 그렇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더 그려보는 게 훨씬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책을 가까이하고 말았다. 자꾸 그려봐야 한다는데도 뭔가 더 빠르게 이룰수 있는 지름길을 찾고 있는 것일 게다. 그게 아마도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은데 사실 뭐든 그렇다. 자신이 하는만큼 실력이 느는 건 진리다. 그래서 또 반성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의 그림을, 그것도 뭔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보여주는 그림이라면 한번쯤은 더 봐도 될 듯 하다. 물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그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책을 펼치면 저자의 그림이 먼저 반긴다. 그러나 개인적인 느낌으로 볼 때 전체적으로 살짝 불편하다. 어둡고 칙칙한데 음산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비 온 후의 장면이라거나 물과 관련된 장면이라서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가 많다는 일본의 기후조건을 떠올리게 된다. 그거야 어쩔 수 없이 화가만의 작법일수도 있겠고 화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가 그럴수도 있으려니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묘한 힘이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책에서 사용한 그림도구가 색연필 5자루뿐이라는 거다.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흰색이다. 전부 프리즈마컬러라고 나오는데 사진으로 보여지는 것은 48색이다. 저 다섯가지 색상만으로 모든 색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색연필을 쥐는 위치와 쥐는 힘을 조절하면서 색연필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새롭게 다가온다. 색연필은 유성과 수성, 두가지가 있다. 사실 빨강, 파랑, 노랑은 색의 3원색으로 그것들을 섞으면 왠만한 색은 다 만들 수 있다. 파랑, 빨강, 노랑은 유채색이고 검정과 흰색은 무채색이다. 만들 수 있는 색은 무한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정도는 익숙해져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은 오로지 연습량의 차이일 것이다. 흰색을 제외하고 빨강, 파랑, 노랑, 검정이 기본4색이라 하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나무 한그루를 그리며 덧칠하는 순서를 보여준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외에도 입체감 표현하기, 깊이 표현하기, 물 표현하기, 구도잡기등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야외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실전연습용이 보여진다. 저자의 말대로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하세요, 라고 저자가 권하는 작은 꿀팁도 있다. 연필로만 그리다가 색을 입히고 싶은 욕심에 한번 들여다 본 책이었는데 '오래된 문이 있는 풍경'은 저자의 알려주는대로 따라서 한번 그려보고 싶어졌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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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갇힌 소년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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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outsider 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아웃사이더란 말은 너무 흔하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아웃사이더 outsider 라는 말은 평론가 콜린 윌슨이 1956년 같은 이름의 책을 쓴 이래로 널리 쓰이게 됨. 어떤 그룹에 끼지 못하는 사람. 원래는 局外者를 말함. 혹은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나 동화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도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이 말하고 싶어하는 침묵하는 소년은 진정한 아웃사이더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외계층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답답했다. 이야기의 흐름도 너무 더디고 이렇다하게 다가오는 것도 없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한 소녀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 소녀가 바라보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정신지체아에 대한 소녀의 특별한 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럼에도 이 책속의 話者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그 소년에 대한 이야기! 라고. 그 소년의 존재감을 그렇게나 작게 그려놓고는.

 

호기심 많은 여덟 살 소녀 캐티는 다정한 부모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알게 된 제이콥에게 관심을 갖게 되지만 정신지체아인 제이콥은 학교에도 가지 않고 그저 아버지의 농장일을 도우며 살고 있을 뿐이다. 누구도 제이콥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제이콥은 동물과 특별한 교감을 나눈다. 할머니가 된 캐티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침묵에 갇힌 소년'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앞뒤없이 그저 캐티의 기억에 잠깐 등장한다고나 할까? 이 책의 제목이 '침묵에 갇힌 소년'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장애우들에 대한 나의 관심도는 얼마나 될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얼만큼이나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아무런 편견없이 제이콥을 바라보았던 캐티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하고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캐티의 그 열린 마음이.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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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이야기 길 따라 걷는 시간 여행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3
홍인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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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희우루에서 관물헌을 올려다보면 '집희(緝熙)'라는 현판이 보인다. 고종의 글씨라고 한다. 누구는 그저 어린 시절에 쓴 글씨라 하고 누구는 13세, 15세때 쓴 글씨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로 보면 어렸을 때부터 한자를 배우고 익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 글씨를 두고 이러니 저러니 말이 나온다는 건 좀 그렇다. 지난 시절의 한 단면을 이 시대의 시점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봉은사의 ‘판전(板殿)’이라는 현판을 두고 이러니 저러니 말들을 한다기에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라는 시리즈물이라는데 그 전편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어떤 형식으로 쓰여졌을지 어느정도는 짐작하게 된다. 마치 답사지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찾아갔던 곳에서 그와 유사한 것들도 함께 들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랄까? 경기도의 문화유적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자못 진지해진다.

 

여주부터 시작했다. 여주하면 일단 신륵사가 있고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이 있고 명성황후의 생가가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래전 남한강을 따라 폐사지 답사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참 신비로웠었다. 선정비에 깃든 목민관들의 빛과 그림자편을 보면서 답사지에서 보았던 그 많은 碑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적인 이순신장군의 모습에 감동한 군졸과 백성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으니 그것이 '타루비'다. 채 1미터도 안되는 작은 비이지만 그 안에 깃든 마음이야 크기와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墮 떨어질 타, 淚 눈물 루'라는 말이 절로 숙연케한다. 돌에 이름을 새기려 애쓰지 말라 저자를 오가는 사람들의 입이 바로 선정비, 라는 글을 가슴에 새겨둘 이들이 참 많은 세상이다. 文字香 書卷氣 , 책을 많이 읽어 교양이 쌓이면 그의 글씨와 그림에서 문자의 향기가 나고 책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로,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는 말이다. 평생 벼루 열 개의 밑창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만들었다는 추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고 있다.

 

역시 경기도 답사의 정점은 수원인가? 아니 수원이 아니라 정조대왕일게다. 오래전부터 실시해오던 정조대왕행차가 올해는 돼지열병때문에 취소가 되어 아쉬웠다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만큼 성군의 자취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들 가슴에 훈훈함을 전한다. 화성축성 당시의 수많은 일화들, 행행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자 했던 격쟁, 용주사를 통한 효심등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있음이다.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안타까웠다. 나라꽃은 그 민족의 역사성과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을 찌른다. 나는 과연 무궁화를 얼마나 알고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중국의 고전 <산해경>에 군자의 나라 한반도에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훈화초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산해경>은 기원전 3~4세기에 쓰여진 까닭이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한반도에 토종 무궁화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는 징표라는 말에 많이 부끄러웠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읽는내내 즐거웠다. 古則神也.. 오래된 것에는 신령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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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킬 - 이재량 장편소설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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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전세계적으로 4000종의 바퀴벌레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바퀴는 10종 정도라고 한다. 언젠가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때문에 식겁한 적이 있다. 이 놈의 바퀴와 한번도 마주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바퀴벌레와 마주치면 어떻게 내려칠까? 휴지는 어디쯤에 있었지? 생각하면서 그놈과 눈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생각에 빠지면 이미 늦는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잽싸고 빠른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 큰 몸으로 어찌 들어갔을까 싶은 틈새로 기가막히게 숨는다. 이 놈들은 죽을 때 산란관을 배밖으로 쑥 밀어낸다. 그러면 거기서 조그맣고 하얀 새끼들이 좁쌀처럼 바글거리며 기어나온다. 한번 생기기 시작한 바퀴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다. 바퀴와의 전쟁... 이것은 정말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강박증. 더러움을 참지 못하는 강박증. 우리의 주인공 고광남씨의 부친이 그랬다. 더러운 걸 조금도 용납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너무 싫었던 광남씨는 어느 순간 알아버렸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살고 있다는 걸. 그런 탓에 결국 아들을 아내에게 양보하면서까지 이혼을 하고 지방의 오두막으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혼자 깔끔하게 살던 호시절도 잠깐, 오두막 옆에 이층집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이사를 온 날부터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바퀴벌레가 보이기 시작했다. 읍내로 나간 광남씨의 눈에 띈 광고지 한장. '해충 구제 전문회사 (주) 올 킬'...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 결국 서비스를 신청한 광남씨. '올 킬'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과연 바퀴벌레를 없앨 수 있을까?

 

"이놈의 세상은 참 더러운 것투성이다. 나는 그저, 순결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굳이 고광남씨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이 세상에는 더러운 것이 참 많다. 하지만 그 더럽다는 건 온전히 인간의 기준일뿐이다. 참을만 한 것들도 많다. 단지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질 뿐. 순결하게 살고 싶다면 아마 무균실에서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소설이 말하고 싶어하는 건 그런 관점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얽히며 살아가는 걸 빗대어 말하고 있다. 어느정도는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혼자 잘난척, 혼자 깨끗한 척, 혼자 똑똑한 척.... 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이웃집과 함께 협력해서 없애야 한다는 그 말에 이웃집을 찾아갔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광남씨에게 회사가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하겠느냐고 물었고 결국 프리미엄 서비스를 신청한 후 이웃은 집만 빼고 사람도, 물건도 모두 다 사라져버렸다. 하룻밤새에 진짜로 주변의 모든 해충을 다 없애버린 것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3개월 후 신혼부부가 새로 이사를 오고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바퀴벌레로 인해 광남씨의 강박증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렇다. 무엇인가가 없다가 있으면 신경쓰이고 있다가 없으면 허전하다. 그런 까닭으로 광남씨 역시 새로운 이웃이 반갑기도 하면서 은근 염려스럽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웃이 먼저 프리미엄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제 광남씨는 어찌될까?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찾아왔지만 어김없이 바퀴벌레도 함께 찾아왔다!

 

이 소설은 사실 배꼽잡는 이야기다. 그러나 마냥 배꼽잡으며 웃을 수 없다. 강박증에 사로잡힌 어리숙한 광남씨의 행동을 바라보면서도, 웃긴데 웃을 수 없는 해충박멸회사 직원의 말도. 단지 바퀴벌레와의 싸움일뿐인데 읽는 동안 긴박함과 서늘함이 느껴졌다. 문맥의 촘촘함은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작 <노란 잠수함>에서도 맛볼 수 있었던 몰입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 정한 기준의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그 많은 규칙을 만들어냈을까? 어찌보면 인간은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이나 법칙에 치이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사물의 근본적인 이치를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단순하게 살아도 되는 것을 복잡하게 살고자 애를 쓴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의 아량이 필요하다.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물건이 되었든. 올 킬!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해 당신도 신청하고 싶은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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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들
우종영 지음, 한성수 엮음 / 메이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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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무, 나무, 나무... 아무리 여러번 불러봐도 질리지 않는 말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이왕이면 울울창창한 숲속의 나무라면 더 좋겠다고. 죽으면 수목장을 해달라고 말했다가 남편과 한동안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만큼 나무가 좋다. 그러니 이렇게 나무의사를 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무한대로. 한창때는 산에 미쳐서 살았다. 틈만 나면 베낭을 짊어지고 산에 올랐다. 하지만 나의 산행은 정상을 오르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저 오르며 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좋았고, 나무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이 좋았다. 태풍이라도 지나간 후에 내게 보여지던 하늘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림으로 기억속에 자리한다. 그러다가 풀과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작은 식물도감을 베낭속에 넣고 다녔었는데.... 점점 파괴되어져가는 숲을 바라보면 왠지 서글퍼진다. 치유의 안식처가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사람은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야 건강한 법인데... 하면서.

 

통의동 백송이야기를 듣고 이내 숙연해지고 말았다. 오래전 답사길에 그 백송을 보았었다. 나무가 쓰러진 후 분석해보니 1690년쯤 심어진 나무로 밝혀졌다. 놀라운 것은 일제강점기에 백송의 성장이 멈추다시피 했다는 거였다. 나무의 나이테는 환경이 좋으면 간격이 넓고 연한 색을 보이지만 열악한 환경이었다면 간격이 좁고 색이 짙어 나이테만 보고도 그 나무가 살았던 시절을 유추해낼 수 있다고 한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의 나이테 간격이 거의 변동이 없을 만큼 좁고 짙었다고 하니 그 나무가 받았을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었는지 알 수 있다. 문득 해미읍성의 회화나무가 떠올랐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교수목이라고도 불리워진다는 그 나무의 절절한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듯 하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순교자들의 목이 걸릴 때마다 나무는 그 가지를 한껏 움츠렸을 것이다. 그러니 그 나무의 나이테가 어찌 되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세금을 내는 나무도 있다. 진짜다. 그 나무는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준다.

 

지금도 시골마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겠지만 당나무라는 게 있었다. 성황신을 모시는 성황당도 있었다.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신이 성황신이고, 그 마을과 마을사람들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던 곳이 바로 당나무앞이었다. 지금은 배척당하고 외면하는 민속적인 것들은 우리를 자연과 결부시켜 놓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이 책을 통해 昨今의 우리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버릇처럼 늘 하는 말이지만 문명의 발달만이, 과학적인 처사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아파트 사이에 나무 몇그루 심었다고, 개울 흉내를 내었다고 그것이 자연은 아닌 까닭이다.

 

세상에 함부로 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쓸모없이 태어난 존재 역시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이 책에서도 여러번 강조하고 있듯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말하며 타인에게 얼마나 아픈 잣대를 들이대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무에게서 배울 게 어디 한두개뿐일까. 책띠에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는 말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오지않은 것에 대한 걱정이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이다, 라는 말이 스친다. 오늘을 충실하게 산다면 굳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터다. 내려놓고 버려야 채워질 수 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일게다. 그러나 우리는 교과서같은 말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자연을 벗하며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면 아마도 그런 말들이 일상이 되지 않을까? 나무를 심을 때도, 나무를 옮길 때도 나무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하긴 옛날에는 나무를 자를 때도 예를 치렀었다. 이나무, 저나무, 먼나무... 정말 많은 나무의 이름을 불러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진심으로 나무를 대하고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나무에 대해 다시 배운다. 그리고 나무를 더 사랑해야지, 한다. /아이비생각

 

어린 전나무는 다른 큰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1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33쪽)

한여름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가지가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다.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하면 풍성한 꽃도, 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튼실한 열매도 볼 수 없다.

내처 자라기만 하면 하늘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뿌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38쪽)

생존만을 위해 경쟁하는 숲은 죽어간다. 햇볕이 바닥까지 닿지 않으니 온기가 부족해 어린 생명이 싹을 틔울 재간이 없다. 어린 나무와 풀꽃, 그들과 함께하는 작은 곤충들이 살아갈 공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겉으로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그런 숲은 결국 희망이 없는 불임의 땅과 다르지 않다.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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