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ked: 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 (Mass Market Paperback) - 뮤지컬 「위키드」 원작 Wicked Years Series 1
그레고리 매과이어 지음 / Harper Collins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올해 초 뉴욕 여행 때 브로드웨이의 최근 몇년 최고 인기작인 <위키드> 공연을 보려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지 못하고 아쉬움을 달래려고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뮤지컬 버전이 과연 원작만큼 훌륭할까...싶을만큼 즐겁고 멋진 독서 체험이 되었다. 

이 소설은 L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의 전편(prequel)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캔자스에서 돌퐁을 타고 날아온 도로시가 우연히 사악한 동쪽 마녀를 깔아뭉개 죽이고 착한 북쪽 마녀 글린다의 조언으로 에메랄드시티의 지배자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 집에 돌아가게 해주는 조건으로 서쪽 마녀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아 모험을 떠나는게 오즈 이야기이다. (L 프랭크 바움은 이 Wizard of Oz말고도 오즈 시리즈를 열댓권을 썼다.) Wicked는 그 막강하고 무시무시한 서쪽 마녀(Wicked Witch of the West)인 엘파바의 일생을 그린 팬터지이다.  

신앙싱 깊은 목사 프렉스와 먼치킨랜드의 지배자 Thropp가문의 후계자인 멜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피부가 온통 녹색인 아기 엘파바(Elphaba는 오즈의 작가 L Frank Baum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종교에 미친 아버지와 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기의 주부 어머니에게 거의 기대할 것이 없는 환경 속에서 엘파바는 그나마 상식적인 유모의 보살핌으로 가까스로 자라나게 된다.

성년이 된 엘파바는 대학도시 Shiz에 와서 공부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친구들의 따돌림, 남과 다름에 대한 아픈 자각은 계속되지만.......훌륭한 스승을 만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친구들과 연구와 토론에 매진하며 빛나는 청춘의 나날을 보낸다.  

한편 스승이자 멘터인 천재적 과학자 딜라먼드와의 만남과 그의 죽음은 엘파바 필생의 테마였던 Animal의 권리 보호 운동으로 이어진다.

animal과 구분되는 Animal은 동물이되 의식과 언어를 갖고 있는 동물을 말한다. 딜라먼드 박사는 goat가 아닌 Goat, 그러니까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염소이다. 오즈 나라에서는 애초에 바움이 제시한 먼치킨, 질리킨, 빈쿠스, 쿼들링 네 종족  외에 이렇듯 말하는 동물, Aminal이 한데 섞여 살아간다.  딜라먼드 박사처럼 Animal들은 인간 사회에 섞여서 사회생활과 자아실현을 하며 살아왔으나 기구를 타고 날아온 마법사 오즈가 권력을 쥔 후, 이 Animal에게 박해를 가하기 시작한다. 마치 미국 남북전쟁 직후의 흑인에 대한 segregation이나 나치의 유대인 핍박처럼... 

이처럼 옥죄어오는 정치적 환경 속에서 탁월한 생물학자인 딜라먼드 박사는 "의식"의 본질 내지는 뿌리를 규명해내는........그리하여 Animal에 대한 차별을 무력화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있는 이론을 완성해나가고.....(머과이어가 과학과 철학계의 첨예한 궁극의 논쟁거리이자 나의 개인적 관심사인 "의식" 문제를 가볍게나마 끌어들인 것은.........ㅎㅎㅎ 나에게는 마치 개인적 호소처럼 여겨졌다.) 우뤼의 엘파바가 조수로서 실험을 돕고 자료를 찾고 친구들의 협조를 조직해낸다.....아...아름다운 날들이여.......한편 글린다, 보크 등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도 이 부분에서 각기 개성있는 엘파바의 학창시절 친구들로 등장한다.

그러나 오즈의 사주를 받은 교장 모러블 부인에 의해 딜라먼드가 죽게 되고 그 사건은 엘파바를 반체제 운동가이자 궁극적으로 "마녀"로 이끄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의 방아쇠가 된다. 

무대는 쉬즈를 떠나 에머랄드 시티로 옮겨지고........반정부 지하 운동가로 활동하던 엘파바는 우연히 다시 만난 빈쿠스의 왕자 파이예로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이것은 황량한 엘파바의 일생 중 짧은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오르고 금새 스러져간 "여자로서의 삶"이었다.  

모리블에게 복수하려던 테러 기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연인 파이예로마저 잃고서  수도원에 들어가 10년 세월을 보내던 엘파바는 Liir라는 소년을 데리고서쪽으로 향하는 대상의 무리에 끼어 파이에로의 집을 찾아간다. 빈쿠스의 성에 살고 있는 파이에로의 가족들은 얼떨결에 엘파바를 맞아들이고 엘파바는 성에 은둔하며 마법에 몰두하며 차츰...차츰...마녀와 같은 이미지로 변해간다..........
그리고 물론 마지막에 도로시 일당이 나타나 차츰 지리멸렬해지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 뒷부분은 뭐랄까...<오즈의 마법사>라는 틀에서 시작한 인물과 에피소드들을 출발선에서 멀리멀리 나아가 고유의 독자적인 삶을 살게 하다가 마무리 부분에 이르러 재빨리 불러들여 수습하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한마디로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 하지만 그것도 이해할만 하다. 애초에 이것은 원작의 틀을 벗어나지 않되 최대한 독창적인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게임과도 같은 시도였다고 볼 수 있고, 이만하면 그 원작으로부터의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을 아슬아슬 적절히 잘 맞추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어린이를 위한 동화의 행간에 있는 어른들의 세계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었으리라. 물론...이런 패러디 우화의 ABC와도 같이...선악을 비틀고 뒤집어 새롭고 허를 찌르는 해석을 내놓는 것도 (예컨대 사악한 서쪽 마녀와 동쪽 마녀는 사실상 반체제 인사였으며 정치선전과 역사왜곡의 희생물이다...이런...) 이 소설의 중요한 존재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 반한 이유는........좀 더 미묘하고 좀 더 세부적인 측면에 있는 듯 하다. 

일단 저자의 글솜씨가 눈부시다.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것과 같이...고풍스러운 과거의 시공간을 묘사하는 문체 역시 어딘가 옛스럽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책의 첫머리에...엘파바가 태어날 무렵의 프렉스와 멜리나(엘파바 부모)의 이야기는...마치 데자뷰와도 같이 어린시절 나에게 충격과 매혹을 선사했던 작품...너대니얼 호손의 "Young Goodman Brown"을 연상시켰다. (절망적이도록 쓸쓸하고 황량한 배경, 무지하고 잔인하고 가차없는 주변인물들, 강렬한 악의 상징 Time Dragon, 목사인 남편과 악덕의 유혹에 굴복하는 아내...) 나는....이런...어딘가 그로테스크하고 섬뜩한 아름다움..............에 이끌리는듯 하다. (히에르니무스 보쉬나 고야의 그림처럼...)

그밖에....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공감과 애증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입체적이고 현실감 넘치는 인물들, 이야기의 구비구비마다 크고 작은 놀라움을 마련해둔 독창적인 상상력.............모두 훌륭하다.  

내게는............마법처럼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