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이건 내가 1년쯤 전 어느 분의 블로그에 남긴 댓글이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전 두 아이를 키우는 34살 주부입니다.
저도 몇년 전부터 내내 이 책들 생각이 났었고..
요즘들어 부쩍 이 책들이 떠올라서
헌책방을 뒤져볼까..우리나라에는 헌책 도서관같은거 없나...
적극 알아보려고 하던 차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 곳으로 왔습니다.
노랗고 커다란 판형의 이 전집...
정말 주옥같은 동화들이었죠?
전 즐거운 무우민네(구글에서 이 제목으로 검색한 끝에 여기로 왔답니다.)와 사
자와 마녀(C. S. Lewis의 작품이죠? 시공주니어인가에서 요즘 번역본이 나왔을
거예요 "나니아 시리즈"로...전 이 7권을 원서로 가지고 있어요. 아직 다 안읽었지
만) 요술에 걸린 학교...그리고 얼마전에는 잠들기 전에 요술장이 아가씨인가요?
마녀 놀이를 하는 두 소녀 이야기...그 이야기가 떠오르구요..마치 오래 사랑하다
떠난 사람들의 혼령처럼 이 책의 이야기들이 저에게 들러붙어 자꾸만 자꾸만 저
를 부르는 느낌이랍니다......
하루키의 1971년의 핀볼인가...그런 소설 읽어보셨어요?
한때 죽어라고 들이파던 핀볼머신이 어디론가 팔려간 후 몇년이 흐르고나서..
그 핀볼머신을 찾아 마구 헤메던 주인공...
제 심정이 그래요...
이 책들은 너무나 너무나 오래되어서...
어디에선가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생각에 더욱 슬프지만요...
저도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일 용의도 있구요...
아니면 단 한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요...
그런 곳이 없을까요?
서로 정보 나누도록 하죠...
제 메일은 jwl1205@yahoo.co.kr입니다.
행복하세요."
어느 분이 이 전집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원글에 올리셨고 마침 인터넷(구글)에서 이 책의 흔적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던 내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그 곳에 남긴 글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이 여나믄명 있었다. 모두 댓글에 이 전집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과 그리움과 사랑을 토로했다. 몇몇은 눈에 눈물을 주렁주렁 달고.....
그 후 또 몇달이 지나서 어느 분에게 메일을 받았다. 그 분은 인터넷에서 찾은 이 책의 전집 목록을 전해주었다. 전집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사자와마녀 / 클라이브스테이블루이스 저 / 박화목 역
2. 바닷가의축제 / 코넬스웰크스호이스 저 / 김요섭 역
3. 요술장이아가씨 / 카니그즈버어그 저 / 이화진 역
4. 귀염동이막내 / 에디드운네르스타드 저 / 석용원 역
5. 유쾌한호우머 / 로버트맥클로스키 저 / 조풍연 역
6. 외토리소녀 / 헤르타폰게프하르트 저 / 송원희 역
7. 개와다섯아이 / 르네레쟈니 저 / 김영일 역
8. 돼지임금님 / 로버어트데이비스 저 / 유경환 역
9. 거인의바위굴 / 비에룬롱겐 / 장수철 역
10. 앵무새와니콜라 / 클레어비숍 / 이주훈 역
11. 라디스의모험 / 산체스실바 저 / 장선영 역
12. 유리구두 / 엘리너파아존 저 / 신지식 역
13. 요술에걸린학교 / 루드소오여 저 / 박목월 역
14. 즐거운무우민네 / 토우베얀슨 저 / 이원수 역
15. 강아지이달고 / 르네기요 저 / 권영자 역
16. 소년탐정칼레 /아스트리린드그렌 저 / 최요안
17. 두로테 / 에리히케스트너 저 / 이병찬
18. 플로렌티네와비둘기/ 제임스크뤼스 저 / 윤석준
19. 셋방살이요정 / 메어리노오튼 저 / 이영희 역
20. 오렌지꽃피는나라 / 워얼터브룩스 저 / 이규직 역
이 중 상당수...특히 두드러지게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 몇 권은 요즘 최신판으로 복간되어 번역서가 나왔지만....나는 그저...내가 어릴때 읽었던 그 대로의 모습으로 이 책들을 만나보고 싶다. A4 정도의 커다란 판형...좀 누렇고...반질반질하다기보다는 약간 거칠+부들한 종이의 촉감....부드러운 색조의 삽화......
1971년의 핀볼에서 주인공이 헤메고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리워하던 핀볼머신을 만나 그토록 소원하던 게임을 하듯...
언젠가...어느 도서관 구석...혹은 너그러운 수집가나 소장가의 서재에서...이 책들을 그냥 한번 읽어보고 싶다. 어쩌면...다시 만날 그 책은 실망을 안겨줄 지 모른다. (초딩시절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던 캔디 만화를 중딩인가 고딩때 다시 보면서 그림의 허접함에 충격을 느꼈던 것처럼...)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을 만나보고 싶다.
그런데...그 누구도 이 책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는걸 보면...마음이 불안하다. 오래 전에 마지막 한권까지 폐지공장에서 사라져버린걸까? 한줌 먼지로 흩어져버린걸까? 그걸 생각하면 먹먹한 슬픔이 밀려든다.
내가 이 책을 찾아낸다면 당연히 나처럼 찾아헤매는 분들에게 연락을 드릴 것이다. 다 같이 빙 둘러앉아 테이블 위에 이 책을 올려놓고 한권씩 돌려 읽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금자씨에서 복수를 마친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피빛 케잌을 나누어 먹듯...) 아마도 입술에는 미소를...눈가에는 눈물을 주렁주렁 달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