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에덴의 용> 칼 세이건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1978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간 실제로 읽어볼 기회는 없었다. 1990년대 초에 한글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고 하나 번역본을 구할 길이 없었고, 또 30년 전에 쓴 뇌과학 책이라고 하니 미덥지 못하게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몇 주 전 해외 출장을 위해 ‘지상 10킬로미터 상공에서 13시간을 버티게 만들어 줄 책’을 책장에서 찾다가, 몇 달 전 재출간된 <에덴의 용>을 짚게 됐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펼쳐든 책은 네 시간 만에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이 책은 시작이 매우 흥미롭다. 150억년에 이르는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한다면, 9월14일에 지구가 탄생했고, 9월25일에 생명이 탄생했으며, 인간은 12월31일 오후 10시30분 즈음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늙었고 인류는 너무나도 어리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의 우주력 계산은 지난 30년간 과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인용되던 것인데, 처음으로 원전을 읽은 셈이다.
이 책이 나오던 무렵에는 뇌영상기법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해서 뇌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고, 아직 학습과 기억의 정보처리 과정이나, 감정과 욕구의 생물학적 원리, 의식의 기원 등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주장, 그러니까 ‘인간의 뇌와 마음은 빅뱅 이래 시작된 장대한 물질 진화의 산물이며 뇌와 마음이 단일한 원리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인 유래를 가진 다양한 충동과 논리들이 서로 충돌하여 만들어낸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그가 인용하는 폴 매클린의 뇌 삼위일체설은 논리적 비약이 심해 요즘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이론이다. 인간의 뇌를 포유류의 뇌, 파충류의 뇌 식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 알고보니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하나의 기능도 여러 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현대 신경과학자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뇌를 발달시켰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사례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지금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특히 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위험할 수도 있는 수면은 칼 세이건이 어떻게 설명할까 하는 대목이었다. 포식자가 수면을 취하는 틈을 타서 인간도 수면시간을 늘리면서 지능을 발전시키고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잠을 활용했다는 그의 주장은 재미있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그의 아름다운 문장과 책의 구조에 있다 (번역가가 매우 뛰어나서인가?). 이 책을 읽노라면 누구나 인류 최고의 지성이 들려주는 유려한 ‘인간 등정의 발자취’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