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8시 30분. '연결된 좌석이 없습니다'는 멘트를 네 차례나 확인한 뒤에 가까스로 예매한 영화, <실미도>. 나는 궁금했다. 북파 간첩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그리고 살인기계의 자의식을 어떻게 그릴까?

실제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영화를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스크린에 담았을까 궁금했던 것인데... 솔직히 말해 기대만 못했다. 그러나, 애초에 감독은 그 이상을 말하고자 애쓰지 않았던 것 같다. 충실한 재현에만, 그리고 그 혹독했던 684부대도 사람사는 곳이라는 '따뜻함'을 전하는데만 족한 듯 했으니까.

내가 실망한 건 너무 간단하게(물 흐르듯이) 684 부대를 말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의미가 이 부대엔 녹아 있다. 정말 건드릴 수 있는게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그리고 그 중에 어떤 것을 '훅'으로 잡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강우석 감독의 '훅'이었다. 난 좀체로 684부대를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으니 그의 해석에 기대겠다는 생각. 

684부대는 군대에 의해서 조직되고 훈련된 정예살인부대다. "하면 된다!"는 슬로건 아래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조직. 그 조직은 '김일성의 목을 딴다'는 목표하에 움직이고, 그것를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 가차없고, 냉정한 곳에서 부대원들은 '살인기계'가 되어간다.

그런데 부대원들은 '죽임'에 대한 고민이 없다. '김일성'은 민족의 철천지 원수인데다, 그를 죽여야 '자유'와 '명예'를 얻을 수 있으니 당연하다. 김일성 죽이자고 훈련받다가 병신되거나 죽는다면, 그건 운이 없는 것이고.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못하다는 말은, 이 영화가 여실히 보여준다. 죽을 뻔한 사람 살려서 훈련시키더니, 끝내는 훈련받은 기술도 써먹지 못하게 부대원들을 사지로 내몬다. 684대원들은 분노가 극에 달해 청와대로 진격한다. 마을버스를 강탈하고,  서울까진 진입했지만 무지막지한 공권력 앞에서 부대원 모두 자폭한다.

자폭한다. 살인기계로 단련된 그들은 극도로 단순명료하다. '죽임' 아니면 '죽음'이다. 다른 방식의 삶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왜 차선을 노리지 않았을까? 영화는 그들의 '자폭'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한계상황에서 자포자기한다? 삶이 죽음보다 고달프기 때문에 죽는다? 684부대가 왜 모두 자폭해야만 했는지 보다 잘 설명했다면, 그들의 절망과 그들의 고통을 보다 더 리얼하게 다루었다면, '외인부대' 같은 영화가 아니라 부대원들의 실존을 다루었다면...

이야기가 되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좀더 사람에게 집중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권'이 말살된 시대를 말하지 말고 그냥 보여주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영화가 사실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냥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었더라면...

크게 모자르지 않게 괜찮게 만든 영화지만 그래서 더 아쉽다. 더 치밀하게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보다 더 심리적으로 그렇게. '외인부대' 처럼 보여져서는 안되는 역사니까. 말할 수 없이 폭력적인 현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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