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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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소설집의 작품해설에서도 밝혀져 있듯이 프랑스 전래설화 '푸른수염'에 등장하는 '푸른수염'과 그의 여섯 아내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들을 살해하는 엽기행각을 벌이는 '푸른수염' 설화는 작곡가 오펜바흐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는군요.

작가는 이 이야기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동성애자인 재외교포와 결혼한 후 평범한 여성의 일상은 사기결혼이란 굴레 속에서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비극적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을 그려나갑니다.

반면, 리안 감독의 '결혼피로연'은 어느 동성애자의 위장결혼을 매개로 벌어지는 동성애의 문제와 신구세대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널리 알려진 영화지요.

단지 모티브가 같다고, 또 동성애자와의 결혼이라는 상황설정을 이유로 작품 전체를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성란의 작품은 리안 감독의 '결혼피로연'과 몇가지 점에서 크게 구별되거든요.

재외교포 동성연애자라는 설정은 흡사하나 하성란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삶의 비극'과 '남성의 폭력'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여주인공은 외국시민권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동성애자 커플이 동거하지 않는다, 소설의 주요 상징인물인 '푸른수염' - 아내를 폭행 감금하는 엽기적인 인간형 - 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점들을 볼 때,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가 '결혼피로연'을 표절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게이의 위장결혼'은 지금 시점에서는 얼마든지 소설화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이 소설집의 작품 전체를 볼 때도,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성정체성과 남성 폭력에 대한 작가의 탐구력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재의 유사성만 가지고,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운운하는 것은 조금은 위험한 발상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작가 이력이나 작품수준을 볼 때, 이 문제는 보다 신중하게 언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집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작가의 실력이 훨씬 향상되었고, 현실에 대한 감각도 높아졌습니다.

작가라면 창작의 엄정함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소재주의에 함몰되어서 작가의 고유한 의도 및 창의력을 해치는 것은 좀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판단은 독자 개개인이 하는 문제니까요. 다른 분들도 서평을 통해 상호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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