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분인지 아십니까?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울울섭섭 했답니다. 다시는 이 집으로 들어올 일은 없겠구나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미어지던지. 저는 이상하게 장소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입니다. 결국 사람은 그 사람의 내용성은, 장소에 구애를 받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런 사람이 한꺼번에 늘상 다니던 길과 건물을 포기하려 들 땐 어쩐지 마음이 안 좋단 거지요.

5층까지 오르느라 다소 헉헉댔던 이 계단. 베란다에서 보면 그렇게 풍경이 좋았던 '샘터가든' 정원. 집앞에 있어서 야밤에도 야식 걱정은 할 필요 없었던 패밀리마트(게다가 TTL은 늘 할인까지 해주어 여느 슈퍼 부럽지 않았다), 주인집에서 써붙이곤 하던 작고 앙증맞은 택배 메모 '502호 택배 있음'. 이 모든 것들이 마술처럼 동시에 사라지는 것. 그것이 살던 집을 떠날 때 겪는 마음 아픔이다.

꼬딱지 만큼 작고 보잘것없는(샤워 부스같은 것도 없었잖아) 원룸이었지만, 거기는 빌린 집이나마 내 집이었다. 그래서 뭘 하든 마음이 편했고 따스했고 좋았다. 집안도 좋았지만, 가게가 즐비한 길목들, 겨울 동안 곧잘 이용하던 동방사우나^^(후후... 언젠가 쓰겠지만, 나는 목욕과 책읽기를 '아오이'만큼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찜질방이 나의 사정권 안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한 번 가면 징하게 오래 있다가 오곤 해서.. 찜질방에서 아작낸--제본이 약하면 열을 견디지 못하고 책이 해체되기 때문--책도 적지 않다), 군것질거리가 즐비했던 시장통 골목 등등 수많은 상점과도 결별한다. 나는 이상하게 자본주의적이라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좋아한다. 쏙 들어가 커피 한 잔이라도 시켜먹고 싶은 까페가 있다면 금상첨화고. 그런 면에서 내가 살던 동네는 나에게 딱 안성맞춤이었는데.

이렇게 사랑했던 공간을 떠나보니까, 내가 그곳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겠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지금 이사온 건대 앞에서도 나만의 가게를 발견하고 까페를 찾아내고, 즐겨갈 만한 호프집을 발견하리라. 이전 동네 만큼 감각적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덜 촌스럽고 덜 상업적인 곳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 더구나, 여긴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재래시장이 바로 코 앞이지 않던가! (호호~^^ 벌써 역발산 찜질방--맞다. 옛날 프로 레슬러 역발산이 운영하는 곳이다--도 다녀왔다. 그렇게 호화로운 시설은 아니었지만 이용할 만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으로 이사오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건, '동부여성발전센터' 때문. 여기서 공부하고 심리상담도 받고, 운동도 하면서 아주 요긴하게 이용할 계획이다. 이 집에서는 한강공원도 가까워서 여름이면 자연학습체험장을 산책하면서 가벼운 마라톤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곧 좋아질 동네이기 때문에 '건대 앞'에 이사온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나는 아직 젊고, 그렇기 때문에 기회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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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2-2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 7월에 3년동안 살던 원룸에서 지금의 투룸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말이 3년이지 정말이지 긴 세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나와 살다가 집에 들어가서 한 1년 정도 뭉게다가 다시 나와서 살았기 때문에 그 원룸은 좀 특별했었습니다. 하루만에 집을 보고 그날 당장 이사를 했던 원룸. 서울에서 살림살이를 다 친구 주고 내려와 버려서 제가 그 집에 들어갈때는 달랑 이불한채랑 책, 옷가지 등이 전부였었습니다. 하다못해 숫가락 몽댕이 하나도 없었으니...그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살림을 사 모았지요
그런 집에서 이사를 가려고 하니까 참 이상하더라구요. 저는 1층이라서 여름이면 문을 휑하니 열어놓고(집 옆에 바로 경찰서가 있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참 좋은 점이었네요) 참외 갂아 먹으면서 낙서도 하고, 빨래 해서는 탁탁 털어 방에 널기도 하고(원룸이라 베란다가 없어서 늘 빨래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무튼 이사를 가던날 눈은 멀쩡하지만 마음은 축축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마술처럼 동시에 사라지는 것. 그것이 살던 집을 떠날 때 겪는 마음 아픔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