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나쁜 습성이 있는데, 남에게서 빌린 책을 거진 3~4개월씩 묵혔다가 좀 죄스런 마음이 들면 꺼내 읽는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한 5개월 묵혔다가(처음 2개월은 회사 컴퓨터 위에서, 다음 1개월은 책 박스에 담겨서, 마지막으로 집으로 옮겨와 2개월을 폭 삭혔다) 새해도 되었는데 그만 읽고 돌려주자는 심산으로 제10권을 짚어들게 되었다.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오오.. 나는 자기합리화에 강한 '염소자리'가 아니어요. ㅠ.ㅠ)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한 권 읽으면 말 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다음 호를 이어서 읽을 수가 없다. 일종의 경건한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천재 유교수가 더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마음을 식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을 식히지 않고서는 천재 유교수를 볼 수 없다는, 이 괴변으로 나는 1권부터 10권까지 읽는데 거의 4개월을 보냈다. 그동안 만화책 주인에게는 단 9권만 돌려준 채. 아직 7권의 책을 돌려주지 못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천재 유교수를 빌려준 이는 나에게 책을 가져오라는 독촉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이가 얼마나 천재 유교수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낱권마다 빳빳한 투명포장지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것이 그 증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런데도, 가슴에 철갑을 두른 것인지 나는 여태 만화책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고, 그이는 아직까지도 책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나는 그이가 언제 '책 좀 줘요' 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이럴 거면, 첨부터 유교수를 사서 보는 것이었는데 어쩌다가 빚진 채무자 심정으로 천재 유교수와 이 책을 빌려준 그이를 대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유교수에 대한 예의를 차리느라 감격 먹은 심장을 달래야 하는 이 '천연덕스러움'은 어찌하면 좋을지.

연휴기간에 분발하여 남은 7권 중에서 다섯 권을 읽었으니... 조금만 가슴을 식혔다가... 얼른 마저 읽어야겠다. 지금 책을 빌려준 이에게 어떤 보상을 해야할까 생각하는 중이다. 나의 이 '만만디' 체질은 어쩔 수 없으니... 간식거리라도 안기며 애교를 떠는 수밖에. (시간이 지날수록 새 만화책을 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든다. 아... 양심의 소리에 따르자니, 지갑이 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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