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사업을 하다가 사이가 틀어졌다는 얘기는 흔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친구'란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관계가 아닌데, 함께 사업을 하며 이윤을 추구하다 보면, 여지껏 '친밀한 관계'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또다른 모습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 모습은 내가 친구로서만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일 확률이 높다. "내가 알던 누구누구가 아니야"라면서 배신감을 느끼기 쉬운 것이다.
오늘은 아주 사소한 일로 이중적 관계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자주 가는 개인카페가 있는데, 동네에 있고 워낙 자주 가다 보니 사장 언니와도 굉장히 친해져서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동네친구이기도 하고 자주 가는 가게의 주인과 손님이기도 한 관계.
언니가 쉬는 날엔 다른 단골들과 맥주를 얻어마시기도 하고, 뷔페에 같이 가기도 한다. 단골들이 모여 있으면 언니는 커피 한두 잔 정도는 서비스로 주는 편이고, 우리도 가게 안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신경을 써주는 편이다. 언니가 바빠서 손이 모자랄 땐 다른 손님에게 화장실을 안내해주거나,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해준다거나.
오늘은 테이크아웃을 해서 좀 걷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왔다. 뒷산에라도 가서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 산에 가기엔 좀 무리인 듯 싶었고, 동네 산책 정도라면 괜찮을 비라서. 나름 할 일을 정해놓은 터라 마음이 조금 바빴는데, 가게 안에 단체손님이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릴 듯 싶어 앉아서 기다렸다. 이상하게 기다리기 시작하면 시간은 더디 간다.
나는 상대나 주변상황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언제 주문을 받으려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내 차례가 올 기미가 안 보인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듣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도 안 되고 주문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단체 손님에게 음료가 나가고도 두 팀 정도 주문이 더 밀려 있었는데, 음료 네 잔 정도야 금방 끝나려니 하는 사이, 세 명의 테이크아웃 손님 들어왔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례에 민감한 편이다. 아무리 바쁜 상황이라도 내가 먼저 왔는데 뒷사람이 먼저 서비스를 누리는 꼴을 못 본다. 그런데 언니가 "**씨, 좀만 기다려줘요" 하더니 나보다 나중에 온 사람들의 주문을 먼저 받는 게 아닌가.
만약 오늘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었거나 카페에서 먹고 갈 생각이었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일이, 오늘은 내 심보를 건드렸다. 그런데 "제가 먼저 왔는데요"라고 이의를 제기하기에는 너무도 친한 사이인 것이다. 언니는 단골이고 그만큼 잘해주는 손님이니 이해해주겠거니 생각했을 테지만, 나는 친한 건 친한 거고 오늘은 나도 음료 빨리 받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딜레마다. 애매한 관계다. 손님으로서의 권리만 주장하기엔 언니가 마음을 써준 일들이 참 많고, 그냥 참고 넘어가자니 나 또한 돈을 내고 음료를 먹는 손님인 거다.
나는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라 '안 좋은 표정'을 보이기 싫어서 나중에 온다고 하고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찬찬히 생각해본다. 그래봤자 오 분 정도를 못 참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유가 단지 '뒷사람에게 먼저 음료를 주었기 때문일까'
음, 사실 나는 내가 '한가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불편했던 것 같다. 자주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니 언니 입장에서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나는, 어제 면접에서 한참 자존심을 구긴 후에 '뭐라고 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데 현실은 따라와주지 않는 이 불편함 속에서, 괜히 '내가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니까 뒷사람 주문 먼저 받는 거 아냐?' 하고 마음속에서 시비를 걸었던 거다.
늘 원인은 내 마음이다. 괜한 사람에게 시비 걸고 마음만 잔뜩 상해 씩씩거리느니 당분간은 집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