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스카프 아침이슬 청소년 2
지앙지리 지음, 홍영분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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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혁명에 대해서 굉장히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마오쩌둥의 오류라고 일컬어지는 실패한 혁명. 하지만 문화혁명을 경험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그 시절의 공포와 슬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공산주의와 마오 주석에 대한 충성심이 당연시 되던 시절, 열세 살이었던 지앙지리도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공산 소년소녀단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평범한 소녀였다. 1966년 네 가지 구악(오랜된 악습-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을 깨자는 문화혁명이 시작되고, 지앙지리도 그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지앙지리의 할아버지는 지주계급이었기에, 출신성분이 불순하다는 점이 온 마을에 알려진다. 혁명 전까지 헌신적이고 좋은 분으로 알려진 선생님이 비난받고,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들의 집은 수색을 당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부르조아로 불리며 재산을 빼앗기는 등 하루하루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공포의 연속으로 변해버린다. 언제나 마오 주석에게 충성할 준비가 돼 있던 지앙지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출신성분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심지어는 개조가능한 학생이니 부모와의 연을 끊으면 얼마든지 새출발할 수 있다는 유혹까지 받는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분노와 공포,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고작 열셋, 열다섯인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 아니, 성숙한 어른이라 할지라도 견뎌내기 힘든 하루하루들.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공산주의에 대한 충성만이 중요할 뿐.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권력과 공포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민중들. 하지만 지앙지리는 끝까지 가족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이념보다 더 소중한 걸 지킬 수 있었다.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에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역사물로서도, 소설로서도, 손색 없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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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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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다처제는 허용돼도, 왠지 일처다부제는 미개종족 사이에서 필요에 의해서나 가능할 것 같은,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남편의 바람은 수컷의 본능상 당연한 것이고, 여자의 바람은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가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로 비난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 나는.

이미 결혼한 여자라는 의미를 가진, 그 '아내''결혼했다'고 하는 이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책에서 속시원하고 통쾌한 그 무엇을 기대했다, 사실.

하지만 가벼운 문체와 축구 이야기의 절묘한 결합(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그로 인한 흡인력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주인공들'에게 싫증이 나버렸다. 뭐든 완벽한 아내 인아는 여신이고, 두 남편은 그 여신에게 복종하는 신하 같았다.

작가는 이 소설이 무엇보다도 행복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 서로의 합일점을 찾아서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며 이뤄가는 하모니가 아니라, 두 사람과 다 결혼하고 싶은 인아, 그 인아에게 마지못해 끌려가는 첫번째 남편 덕훈과, 인아의 의견을 잘 따르는 두번째 남편 재경이 내는 불협화음이다. 두 남자와 다 결혼하고 싶은 인아의 생각이 존중돼야 한다면, 한 여자하고만 살고 싶은 덕훈의 생각도 존중돼야 하는 것 아닌가. 일처다부제고 일부다처제고, 집단혼이고 그런 문제를 떠나서 애인을 둬도, 동거를 해도 좋다는 덕훈의 관대함에도 끝까지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인아의 행동은 설득력 없고 억지스럽다.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기존의 틀을 깬 가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속에서 어떤 이해와 타협, 사랑이 만들어지는지, 현 가족제도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처다부제가 뭐가 나쁘냐'는 설득을 끊임없이 당하고 끝난 기분이다.

新 가족이라면,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건 간에.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에게 깊은 신뢰와 사랑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 「가족의 탄생」처럼. 피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서로를 진정으로 보듬고 아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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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가쿠타 미츠요 지음, 최선임 옮김 / 작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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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지질이도 바보같은 연애를 하는 여자, 데루코가 나온다.

 

데루코는

좋아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면,

일을 하는 도중이건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던.

시간 괜찮다며 뛰어나가는 여자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져버려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고, 해고를 당해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여자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초콜릿을,

면접을 포기하고 사다주는 여자다.

 

여자는 대접받는 연애를 해야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데루코는 질리고, 쉬운 여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사랑방식이 바뀔 리 없다는 것,

자신은 그런 식으로밖에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너무도 잘 아니까.

 

마지막까지도 좋아하는 사람 곁에 충실한 강아지처럼이라도

남고싶어서 내키지 않는 소개팅을 하고,

그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랑 잘 되도록 연기하는 데루코.

 

 

데루코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걸까?

다른 대상에게 옮겨가지 못하는,

자신도 어찌할 바 모르는 집착인 뿐일 걸까?

 

하지만.

데루코는 바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하고있는 사랑도.

그다지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랑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지구상 모든 존재가 하나하나 다르듯.

그들이 추구하는 연애도.

그들이 하고있는 사랑도.

다 그 수만큼의 색깔일 테고.

 

무엇보다 사람들마다 사람을 선택하고,

사랑을 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의 방식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지 않는,

그 사람의 약점과 상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데루코의 행동이 사랑이 아닐지라도,

난 그녀의 생각이 마음에 든다.

억지로 연애의 우위에 서려는 여자가 되지 않고,

자기가 좋은 방식대로 마음을 전하는 데루코의 방식.

그것이 설사 병적인 사랑이라할지라도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병적인 거 아닌가)

조금, 응원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마음이 꼭 다나카 씨가 아니라도,

어떤 지점에서 전해지는 남자가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세상엔, 이런 사랑도, 저런 사랑도,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그렇게 있는 것이다.

 

p.s: 전반적으로 밋밋한 감이 많아서, 일본소설 특유의 예쁘고 감성적인 문체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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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7-1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아직 알수 없지만...이라는 노래가 대히트 한적이 있었죠. 작가분이나 님이나 참 어려운 질문을 제목으로 채택하셨네요.ㅎㅎ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7-13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고, 중요하죠.ㅋ
 
쇼펜하우어 인생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최민홍 옮김 / 집문당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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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알려면 쇼펜하우어를 읽어야 한다는 말에, 집어든 이 책은 의외로 굉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간중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쇼펜하우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원래 진실은 잔혹한 것이라 했던가.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고뇌와 불행, 악으로 가득찬 것으로 보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불합리한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고뇌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렇게 해서 고뇌를 없애면 권태가 생긴다. 고뇌와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인 것이다. 발버둥치고 애쓰고 노력해도 허무로 돌아가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바라본 인생이다. 쇼펜하우어는 운명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고통이 없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살라고 말한다. 신기루 같은 환상을 잡으려고 뛰어봐도 잡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오직 한 번뿐인 실재하는 시간, "현재"를 즐겁게 보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세상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신이 있다면, 내가 모르는 어떤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서, 이 세상은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을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었다. 하지만 인도여행에서 세상은 불공평하고 참혹하고, 비합리적인 게 맞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고, 단지 그 불행이란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있음도 알게 되었다. 억울한 게 너무 많았던 나는 적당히 체념하고 적당히 받아들일 줄 알게 되면서 사는 게 많이 편해졌다는 것을 느꼈는데, 어쩌면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인도사람들에게서 배운 것 같기도 하다. :)

여성에 대한 생각이나 고독에 대한 지나친 강조 등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혼란스러운 부분도 많지만,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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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6-26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 씨는 인도를 "못생긴 어머니의 나라"라고 표현했더군요. 인도에 첫발을 내디딜때 느끼던 온갖 부조리들, 가난, 구걸, 사기, 나태.... 근데, 인도라는 나라는 묘하게도 인도를 떠나는 시점에 불현듯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고 그럽니다. 어찌할수 없는 모성과도 같은 마력이 존재하는 나라라더군요.인간 성장의 저변에는 부조리가 어찌할수 없이 존재한다고 하니 그녀의 말도 일면 수긍이 갑니다.
류시화 시인은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시인의 관점에서 부조리는 인도인에게 신이 부여한 하나의 삶의 과정일 뿐이라는군요. 그런 삶의 과정 하나하나에 담긴 신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이 인도인의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다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현재만을 살아가고 자신에게 처한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늘 되어있는 그들이기에 인도는 늘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아, 인도 한번 가고 싶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6-26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생긴 어머니의 나라'라니, 정말 딱 들어맞는 표현이네요. 처음엔 얼굴만 보고 기겁하다가 결국에는 눈물 흘리면서 그 품에 안겨버리게 되지요.
인도여행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이 받은 경험이었어요. 여행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여행 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거든요. 적당히 체념할 줄 알게 되니 욕심도 줄고 그러다보니 편해지고, 사람에게 관대해지고, 자연이 아름답고, 모든 사람들이 다 불쌍하게 보이고... 현재를 즐기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고.^^ 흔히들 욕심을 적게 부리면 인생이 지루할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마음의 평안이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아직은 작은 일에도 부르르-하는 습관이 남아있지만.:):):) 제 아이디도 '애쓰지 않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거랍니다.
잉크냄새 님도 인도 가시면 무척 좋아하실 텐데. 헤헤. 인도는 불러줘야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으니, 응답을 기다려보세요.^^
 

 

#1

이렇게 덧없이 줄달음치는 생존 속에는 고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 즉 무한한 고통도, 영원한 즐거움도, 변치 않는 인상도, 영속되는 즐거움도 그리고 전생애를 일관하는 결심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 녹아서 없어진다. 시간 속에 개재된 분초, 사소한 사물에 깃들여 있는 무수한 원자, 그리고 우리들의 단편적인 하나하나의 행동은 주위의 모든 위대하고 용감한 것을 황폐하게 만드는 치충들이다.

이 세상에는 진지하게 대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 티끌 같은 이 세상에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언제나 계속해서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설혹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상례요, 가령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 소원의 대상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할 따름이다. 즉 우리를 기만하는 것은 희망인 동시에 희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인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다면, 그것은 다만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에게서 먼 데 있는 매력은 우리로 하여금 낙원처럼 그리워하게 하지만 막상 거기 유인되어 가 보면 곧 환상처럼 사라져버린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항상 미래나 과거에 있으며, 현재에는 햇살을 담뿍 받은 허허벌판에서 한 조각 뜬 구름을 쳐다보는 것처럼 앞뒤가 훤히 보이지만, 그 자체는 언제나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2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지나친 환희나 비통에 빠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언제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며, 행불행이나 길흉에 대한 우리들의 판단은 확실치 못하며 일찍이 자기가 한탄한 것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오히려 큰 경사일 수도 있고, 후일에 큰 두통거리가 된 것도 전에는 좋아라고 기뻐한 일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도 이런 견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이제 쓴맛 단맛 다 보았으므로 웬만해서는 즉석에서 여자애모양 눈물을 짜지 않는다. 

 

-쇼펜하우어, 인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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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6-2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님에게 꽂힌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어보니, (저야 쇼펜하우어를 잘 모르지만) 그의 사상은 왠지 허무함을 품고 있는것 같기도 하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6-2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네네- 허무주의이면서 놀랍게도 불교나 명상에서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의욕하기를 포기하는,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를 최고로 삼는 것도 그렇고. 읽긴 다 읽었는데 머릿속은 계-속 복잡하담니다. ㅜ.ㅜ

잉크냄새 2006-06-26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허무라기 보다는 동양적인 사상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보는 것이 맞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