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이 책의 광고를 여러 차례 보았다. 파란 하늘과 노란 들판의 표지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주 여행 책이거니 싶었다. 자세히 보지 않은 탓에 ‘제주’와 ‘여행’ 사이에 끼어 있는 ‘걷기’라는 단어를 놓친 것이다.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 여행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제주 걷기 여행>이 잘 팔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광고로 자주 접했던 그 책이었다.

책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두꺼워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표지 위쪽에 투명한 걷는 발 모양의 그림이 있는데 도드라져 있어서, 만져보면 손끝으로 오돌도돌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손이 그 그림에 닿으면 그 느낌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다시 표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책 뒤쪽에는 작은 책이 하나가 붙어 있었다. 책 속에 저자를 도와준 사람으로 나오는 무적전설이란 사람이 쓴 것이었다. 실제로 올레 길을 찾을 때, 가져가면 유용할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가위질 표시대로 잘라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도록 작고 얇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당장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시원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나를 유혹했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기분을 참아 넘기느라 무척 힘들었다. 내년 봄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꼭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가까스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여러 차례 제주를 다녀왔으면서도 참 제주를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자가 직접 책 속에서 말했듯이 차를 타고 몇몇 곳만 들렀다가 가는 여행은 정말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면서 길 가의 작은 풀꽃까지 즐겨야 제대로 그 곳을 다녀갔다는 느낌을 품을 수 있으리라.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제주 올레 길을 한 코스 한 코스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겨있고, 그 뒤로는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녀오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올레 길을 다녀간 사람들이 올레 길을 접하고 느낀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저자의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부분은 무척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다음 부분, 그러니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조금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책 읽는 시간이 길어져버렸다. 제주 올레 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앞부분이 책 전체의 분량으로 봤을 때 대략 삼분의 일 정도 되고, 중간에 산티아고 길을 다녀오는 부분이 또 삼분의 일 정도 되고 뒷부분이 나머지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것 같다. 전체적인 비중 면에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듯한데, 두꺼운 책에 비해 내용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을 재미있게 읽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는 얘기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 그러니까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간 듯하다. 시작점인 1코스를 제외하고 2코스부터 6코스까지는 이어지는데, 1코스만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7코스는 1코스에서 이어져 있었다. 내년에 가족과 함께 찾았을 때, 1코스에서 이어지는 8, 9 코스들도 걸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니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차를 타고 하는 여행의 한계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 차례 느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여행을 가기 때문에 그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 만약 유명한 곳들을 다 돌아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오래 천천히 돌아보려면 걷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올레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 정도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레 길로 해안을 죽 이어갈 수 있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올레길이 산티아고 길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어서 잘 모르지만 제주의 개발열풍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정말 제주를 위한다면 대규모 관광지의 개발보다는 여기 저자가 한 것처럼 의미 있는 일들이 훨씬 더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제주말로 게으름뱅이라는 간세다리가 저자의 별명이란다. 저자는 올레 길에서는 간세다리가 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 자신이 간세다리의 방식으로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고, 올레 길도 개척했으므로 그런 것이리라. 일중독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걷기에 빠져들면서 삶에서도 간세다리가 되었다고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요즘 일중독이 되어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신경을 아이와 아내에게 쏟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에 지쳐 피곤하다보니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나도 간세다리가 되어 삶을 천천히 즐기면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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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8-11-0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섭지코지의 불행... 넘 섭섭하네요. 제주도에 예닐곱번 가보았는데, 저는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가 그곳이었어요.

감은빛 2008-11-03 11:36   좋아요 0 | URL
저도 섭지코지가 제주에서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갔을때 대대적인 공사중이더군요. 다시 가면 실망할 것 같아서 되도록 안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순오기 2008-11-1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여러권 샀는데 다 선물로 나갔고~ 드디어 어제 내 책이 도착했어요.
스무살 큰딸이 세살일 때 시어른들 모시고 갔다 온 제주도, 큰딸이랑 제주올레를 꿈꾸고 있답니다.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감은빛 2008-11-19 13:52   좋아요 0 | URL
와 여러분들께 이 책을 선물하셨나보네요. 선물 받으신 분들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댓글을 늦게 읽었는데, 지금쯤이면 이 책을 어느정도 읽으셨겠군요.
책도 재미있지만, 정말 빨리가서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따님이랑 함께 걸으면 무척 좋을실 것 같네요!
앗! 축하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적립금이 들어와 있어서 깜짝 놀랐었어요.
 

경찰이 보는 바로 앞에서 가만히 있는 시민을 깡패가 두들겨 패도 경찰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냥 모른체하고 시민을 두들겨 팬 그 깡패는 계속해서 다른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여성들에게 성희롱으로 판단되는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욕설을 마구 내뱉는다. 그래서 주위의 시민들이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은 언제 어디서 폭력행위가 일어났느냐고 자신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기냐구? 바로 몇 시간 전에 기륭전자 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기륭 전자 앞에서는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조계사 앞에서 어떤 사람이(솜씨로 보아 전문 칼잡이가 분명한) 가만히 있는 세 명의 시민에게 칼을 휘두르고 이마에 꽂고 도망쳤는데, 경찰은 그가 칼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도 막지 않았으며, 살인 현행범이 사람을 찌르고 도망치는 데도 잡지 않았다.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KBS앞에서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이 부탄가스를 싣고와서 휘두르는 온갖 폭력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 그리고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택에서 그리고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여러차례 경찰의 비호아래 용역깡패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희생당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항상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휘두를때는 주변에 늘 수많은 경찰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대신, 바로 눈 앞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폭행현행범인 깡패들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이 깡패들이 무사히 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었다.

한가지 억울한 사실은 경찰이라는 이름의 불법 폭력집단이 이처럼 폭행현행범이나 살인현행범을 보호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피땀흘려 번 돈으로 꼬박꼬박 내고 있는 세금으로 제 뱃속을 채우고 있는 집단이 바로 이 폭력집단 경찰인 것이다.

이제 몇 시간 전 기륭전자 앞에서 벌어졌던 경찰과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완벽한 호흡으로 이루어진 멋진 범행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다! 최대한 표현을 정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도 모르게 경찰과 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묘사될 수도 있음을 미리 경고한다.

10월 20일 5시 10분쯤
4시경부터 진행하고 있는 집회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기륭 전자 정문앞 골목길로 경찰 1백여명이 몰려들어왔다.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경찰을 막으러 나가고 남성들은 남아 트럭에서 철재 자제(아시바)를 옮겼다. 경찰들이 방패로 밀고 들어오고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커지자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대열 맨 앞으로가서 방패를 막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아내가 일주일만에 독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라서 일찍 퇴근하여 오랫만에 아내와 저녁을 먹고 함께 지낼 생각이었는데, 기륭쪽이 심상치 않다고 꼭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서 차마 모른척할 수가 없어서 왔다. 그래도 적당히 뒤에 있다가 상황봐서 일찍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동안 혼자서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또 직장일도 하면서 너무 피곤했기에 오늘은 좀 일찍 돌아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 아닌가? 월요일부터 너무 무리하면 일주일동안 너무 힘들어지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좀 살살하자고 머리속으로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어느새 맨 앞에서 방패와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지고 여기 저기서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욕설과 욕설이 오가고 어깨와 방패가 부딪쳤다. 한 여성이 방패 사이에 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흥분해버린 내가 방패를 밀어내고 그 여성을 방패 사이에서 꺼냈다. 이 여성은 이미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나는 큰 소리로 사람이 쓰러졌다고 소리치고 뒤쪽으로 끌고 나갔다. 머리속에는 지난 6월 1일 새벽에 바로 내 뒤에서 쓰러져서 실려나간 한 여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느낌에 엄청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경찰 방패와 뒤쪽의 사람들 사이에서 휘둘리고 있을 때, 이 여성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위험하니 뒤로 일단 물러나 있으라고 했지만 이 여성은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내가 그 여성 앞에 서서 방패를 막고 버텼다. 밀고 밀리는 사이에 뒷 열의 전경이 사진을 찍던 한 시민의 카메라를 잡아 챘고 그 사람이 끌려 가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몰렸다. 나는 카메라를 낚아 챈 전경의 손을 잡아서 비틀었고, 내 손을 또 다른 전경이 잡아서 비틀려고 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서로 엉키면서 힘싸움이 이어졌다. 갑자기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목에서 시계가 떨어져 나왔다!



장만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부서진 내 시계


미리 시계를 벗어놓았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산 지 한 달도 채 안된 시계가 망가져 버렸다!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이었는데, 부서진 것이다. 나는 계속 방패를 막고 있었기에 시계를 줍지 못했는데 내 뒤쪽에 있던 여성이 시계를 주워주었다. 그 골목에서 경찰은 수적으로 열세라고 판단했는지 일단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적당히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아시바를 쌓아서 구조물을 만드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철탑? 아니면 망루? 참세상에서는 골리앗이라고 불렀던데, 암튼 아시바를 5단으로 쌓아서 올린 건물 3층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 완성되고 그 위에 김소연 분회장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이상규 위원장이 올라갔다. 인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서 철탑을 완전히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쪽문쪽으로 경찰과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밀고 들어왔다.



골리앗 위에 올라선 이상규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과 김소연 기륭전자 노조 분회장


5시 30분쯤
푸른 옷을 입은 구사대 80여명과 검은 옷을 입은 용역깡패 40여명이 주먹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먼저 몰려 나왔다. 순식간에 여러명의 시민들이 두들겨 맞고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우루루 뒤로 물러나면서 그 틈으로 경찰 100여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철제 구조물 아래에서 다른 사람들과 버티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에게 쫓겨서 기륭전자 앞쪽에서 골목쪽으로 이미 물러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전경들이 우리를 에워싸듯 덤벼들었다. 나는 그래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방패를 막았다. 여성들이 악을 썼고, 욕설이 오갔다. 밀고 밀리다가 갑자기 경찰들이 더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전세는 바뀌었다. 우리는 완전히 뒤로 밀려났다. 나는 잠시 철제 구조물과 전경 사이에 끼어서 고립될 뻔 했으나 다행히 빠져나왔다. 철제 구조물은 완전히 전경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구조물 안쪽에 몇 명의 시민들이 버티고 있었으나 전경들에게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상황을 보니 밖으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과 대치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이 대충 50여명 정도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몇 명쯤 되는 지는 잘 안보여서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전에 집회 참가 인원으로 짐작해 보건대 대략 70여명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완전히 갇혀버린 꼴이었다. 이거 이대로 연행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골리앗을 포위한 전경병력


주위에는 르뽀작가 박수정 선배와 송경동 시인이 있었다. 이 두사람은 부부인데, 둘 다 여기 있으면 아이는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역시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경찰이 포위망을 좁히기 전에 경동선배가 수정선배를 데리고 갔다. 아마도 어떻게든 수정선배를 밖으로 내보낸 듯하다. 돌아온 경동선배는 더 활기차게 남아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비행기 소리와 함께 낮은 고도로 여객기가 하나 지나갔다. 그러고보니 이 동네에는 비행기가 이렇게 낮게 날아서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지난 번 아이와 함께 두어번 기륭에 왔을 때, 아이가 비행기만 보면 손가락질 하며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비행기가 철제 구조물 위를 지나쳐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왠지 우울해져서 몸에서 힘이 빠졌다.

6시 반경
구사대와 깡패들 너머 밖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촛불을 꺼내들었다. 안쪽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열맞춰 앉아서 촛불을 들었다. 나는 문동만 시인 옆에 앉았는데, 용역 깡패들이 정말 힘이 쎄다고 말을 붙여왔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덩치가 큰 거구들이었다. 다들 10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을 듯 했다. 힘이 무지 쎌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그나저나 저 덩어리들은 정말 조폭인 것 같은데, 역시 경찰과 조폭은 한 통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쪽에는 여성 용역들도 있었다. 여성 용역들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 인 듯 한데, 이 쪽도 역시 한 덩치들 하며, 조폭냄새를 살짝 풍기고 있었다. 이 중 몇 명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몇 명은 비웃는 눈빛을 우리에게 던지며 도발하고 있었다.



파란색 잠바를 입은 구사대들(약간 옅은 회색을 입은 이들도 역시 구사대)



잠시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전경들 200여명이 뛰쳐나왔다. 구사대와 깡패들이 원래 있던 쪽문 안쪽으로 돌아가고, 전경들이 그 자리를 넘겨받아서 사수했다. 이거 완전 근무교대도 아니고 사이좋게 서로 자리를 바꾼 경찰과 깡패들이 열심히 욕설을 내뱉았다.

7시
전경들은 바깥쪽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돌진하듯 덤벼들어 대오를 밀어냈다. 이 와중에서 심하게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안쪽에서도 전경병력들이 앉아있던 사람들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여경들이 투입되어 여성들의 주위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전원 연행을 감행하려는 것 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쓰러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철제 구조물 근처에서 였다. 나와 주위의 사람들 몇 명이 벌떡 일어나 상황을 보려고 했으나, 우리를 막고 있던 전경들이 비켜주지 않았다. 나는 강하게 저항하며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서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륭 바깥쪽에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계속 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러나 구급대원들은 전경들에게 막혀 들어오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찌된 상황인지 갑자기 안쪽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막고 있던 전경들 수십여명이 바깥쪽으로 일제히 달려나갔다. 우리는 갑자기 넓은 안쪽 공간에 멍하니 남겨졌다. 철제 구조물을 둘러싼 전경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옆으로 쪽 문쪽에는 아까 빠져나갔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7시 15분경
갑자기 쪽문쪽이 소란스러워져서 다가갔더니 경찰이 보는 바로 코 앞에서 깡패가 한 시민을 때렸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문재훈 선배님이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경찰 지휘관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시민들도 모두 흥분하여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철제 구조물 옆에서 가만히 있던 문재훈 선배님을 근처에 있던 용역깡패가 두들겨 팬 모양이었다. 그 바로 옆에 있던 경찰은 모른척 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경찰 지휘관은 계속 다른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삼류 코메디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참 어이가 없었다.

문재훈 선배님은 안경도 깨지고 신발도 잃어버린데다가 옷도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나도 피가 끓었다. 시민들은 일제히 '경찰이 무슨 깡패들과 한 통속이냐? 너희가 최동렬의 사조직이냐? 개인 소유의 경찰이냐? 그럼 시민들 세금 받아먹지 말고 최동렬이에게 월급 받아 먹어라! 경찰이 돈을 얼마나 먹었으면 바로 코 앞에서 시민을 폭행한 현행범을 잡지 않고 모른 채 할 수 있을까!' 등등 다양한 항의들이 쏟아졌다. 한 시민 욕설을 섞어가며 좀 과격하게 항의을 했는데, 지휘관은 계속 '반말하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라고만 대꾸하고, 옆에 있던 부관인 듯한 경찰이 어딘가로 가더니 채증 경찰관을 데려왔다. 카메라와 플래시를 들이대며 계속 해보라고 협박하는 경찰! 참 이게 무슨 짓인가!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칼라티비의 여기자가 다가오며 상황을 전했다. 쪽문 저쪽에 모여있던 구사대들이 카메라를 의식해 종이박스를 찢은 조각들을 손에 들고 얼굴을 가린 채로 여기자를 향해 욕설을 내뱉았다. 성적 모욕이 포함된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어느 시민이 경찰 지휘관에게 다가가서 이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지금 성희롱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왜 체포하지 않냐고 소리질르며 물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였다. 어깨를 보니 <서울 4 기동대>라고 적혀있었다. 구사대들은 계속 해서 얼굴을 박스를 들어 가린 채, 욕설을 퍼붓고 있었는데, 그 꼴이 또 얼마나 우습던지. 이건 정말 삼류 코메디 녹화장인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나와 주변의 시민들이 얼굴이나 내놓고 욕을 하려면 욕을 하려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 측과 용역측 채증요원들이 열심히 우리 얼굴을 담고 있었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다. 찍을테면 찍으라지!



바로 코 앞에서 폭행 현행범을 눈감아준 서울 4 기동대 현장 지휘관


바깥쪽도 안쪽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나는 문재훈 선배님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어서 병원을 가시라고 설득했다. 선배님은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고 안가겠다고 버텼지만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그래도 병원을 가야한다고 설득하자 마침내 움직이셨다. 문재훈 선배님과 또 한 분의 노동자가 부상으로 병원을 가기 위해 전경들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7시 35분
철제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던 전경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바깥쪽으로 투입되었다. 전경 병력 약 300여명 전원이 바깥쪽 시민들을 밀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경찰이 빠진 자리에 다시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들어왔다. 또다시 자리를 바꾼 것이다.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발맞춰 움직이는 것을 보니 분명히 경찰과 구사대와 깡패들이 한 명의 지휘관에게 명력을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지휘관이 경찰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안쪽에는 경찰 병력이 완전히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용역깡패들의 천국이 되었다. 용역들은 거친 몸짓으로 들어오면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위협하고 시민들을 협박했다. 완전히 제 세상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나이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주었다! 그 모멸감은 참기 어려웠다. 여성 용역 한명이 한 아줌마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으며 비아냥 거렸다. 그 아줌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덤벼들었지만 주위의 시민들이 말렸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내 옆에서는 문동만 선배가 깡패들이랑 욕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동만 선배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나역시 화가 났지만 일단 선배를 말렸다. 문득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라는 노래가 머리속에서 재생되었다. 바로 이 곳이 인간같지 않은 깡패들의 천국이었다!



검은 반팔 옷을 입은 덩어리들이 바로 용역깡패들


경찰은 작정하고 시민들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보령 할인마트' 좌우의 골목길로 분산되어서 시시각각 밀려나고 있었다. 안쪽에 남은 시민들은 대략 삼십여명쯤 되어 보였는데, 오십여명의 용역깡패들과 역시 오십여명의 구사대들에게 포위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 바깥쪽 시민들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밀려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역깡패들은 심심해서 그런지 지들끼리 계속 욕설을 내뱉고 있었는데, 가까이 있는 놈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진보신당에는 분명히 싸이비 교주가 있다!','진보신당이 대체 뭐냐?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었냐?','진보신당은 모두 또라이들이다!' 등등 진보신당을 헐뜯고 있었다. 아마도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는 칼라티비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한 무리의 덩치들이 심심했던지 앉아있던 여학생 두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뭔가 협박을 했음이 틀림없다. 민노당 학생위원회 소속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은 기죽지 않고 맞섰다. 갑자기 한 덩치가 여학생들에게 확 다가서더니 땅에서 피켓 하나를 주워들었는데, 위협하는 척 하면서 장난을 친 것이었다. 놀란 시민들이 일제히 욕설을 퍼부었다. 깡패들은 할말있으면 뒤에서 하지 말고 앞으로 나와서 주먹으로 해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나라는 입과 손가락만 쎈 놈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나. 앞에 나서서는 한마디도 못할 놈들이 뒤에서 입을 나불대는 거랑 손가락으로 자판 두드리는 짓만 졸라 잘 한다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7시 57분
전경들이 갑자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몇 몇 시민들이 머리를 잡힌채 혹은 사지를 들린 채 끌려나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우리는 소리를 질러 분노를 표현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깡패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끌려갔다, 또 누가 끌려갔다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 와중에 송경동 선배가 끌려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지만 욕설을 내뱉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어느 깡패가 전경들이 시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신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저렇게 밀어내도 또 꾸역꾸역 몰려 올거 아냐? 응! 그럼 우린 또 돈 버는 거지 뭐! 하하하!' 돈을 많이 벌어서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또 듣자니 용역깡패들 하루 일당이 25만원이란다. 의외로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었구나. 꾸준히 일만 들어오면 나보다 두세배는 더 많이 버는 직업이었다! 젠장 나도 진작에 깡패짓 좀 하다가 이쪽으로 진출할 걸!

8시 30분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철제 구조물을 아래에서 흔들어댔다. 위에 있던 김소연 분회장이 노성을 지르더니 뛰어내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옆에 있던 이상규 위원장이 재빨리 분회장을 붙잡았지만 이미 두 팔로만 의지한 채 온 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몰려들었고, 위세 등등하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도 이때만은 움찔 놀라서 물러서는 모양이었다. 이상규 위원장과 김소연 분회장이 계속해서 쉰 목소리로 '깡패 새끼들은 물러나라!'고 소릴 질러댔다!

울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둘러보니 주위의 여성분들은 거의 대부분 울고 있었다. 기륭 투쟁의 초기부터 4년 가까운 시간동안 늘 함께 생활하며 취재했던 연정씨도 눈물을 흘리며 수첩에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박혀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계속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보니 이상규 위원장이 김소연 분회장을 끌어올려 간신히 위기를 넘긴 모습이었다. 때마침 민노당 홍희덕 의원이 나타나서 김소연 분회장을 달랬다.

8시 44분
경찰은 트럭으로 대형 매트를 구해와서 철제 구조물 앞 쪽에다 설치했다. 안쪽에서는 칼라티비와 참세상 등 각종 진보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열심히 활동중이었는데, 용역깡패들이 계속 해서 이들을 위협하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진보신당 기자 하나가 여러명의 깡패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기자는 안경이 벗겨져서 땅에 떨어지는 등 물리적 위협을 당하고도 그닥 기죽지 않고 깡패들과 말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배짱이 두둑한 기자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한 깡패가 뒤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몇 몇 기자들을 향해 돌진하여 그들이 밟고 서있던 나무 판을 발로 차고 돌아갔다. 잠시후 이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사람 한명이 조용히 책임자로 보이는 깡패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속삭였다. 꼴을 보아하니 용역측 채증요원이었던 모양이다. 방금 그 깡패가 자기측 채증요원까지 위협하자 이 채증요원이 거기에 대한 항의와 주의를 요청하는 듯 했다. 이 채증요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계속 찍고 있었다.

기륭 정문에서 정면으로 난 골목쪽으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상당히 많이 밀어내서 대략 50여미터를 전진한 모습이었다. 이미 시간은 아홉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무척 지쳐있었다. 차라리 저 바깥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이라도 벌이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이 안에서 깡패들의 모욕을 견디고 있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었다. 깡패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시민들과 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섞여 있었다. 전경들이 밀고 나가면서 넓어진 울타리(?) 안쪽에서 우린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동만 선배가 이러고 있지 말고 밥이라도 먹자고 해서 역시 전경들이 밀고 나간 덕분에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온 식당으로 가서 일단 배를 채웠다. 그러나 밥을 억지로 퍼 넣으면서도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밤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암튼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이젠 새벽까지 장기전으로 이어질 듯 했다.

10시 20분
공중파 3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의 대낮처럼 밝은 후레시가 비추자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쌍욕을 내뱉았다. 마침 MBC 기자를 행해 협박하는 깡패가 있었다. MBC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그 깡패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고성이 오고갔다. KBS나 SBS가 주로 전경병력 뒤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MBC는 시위대쪽에서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느 순간 갑자기 수십여명의 구사대들이 종이박스로 얼굴을 가린채 앞으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대로 들이닥쳐서 방송 카메라 앞으로 쇄도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이들을 찍는동안 갑자기 골목을 봉쇄하고 있던 일부 경찰병력들이 뛰어들어왔다. 동시에 철제 구조물 앞을 막고 있던 용역깡패들이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경찰 병력들이 막아서서 벽을 구축했다. 그 동안 공중파 카메라들은 구사대의 종이박스에 가려져 있었다. 경찰들이 자리를 잡자 이 구사대들드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림같은 움직임이었다. 멋진 작전이었다. 구사대와 깡패와 경찰들의 환상적인 연계작전이 훌륭하게 공중파 카메라들을 속였다.

이후에는 다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양쪽 골목 입구에서는 여전히 들어오려고 애쓰는 시민들과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었고, 안쪽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대로 새벽까지 별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듯 했다. 새벽이 되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돌아간 다음에 경찰이 다시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고, 도저히 여기서 새벽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11시가 넘어가고 집으로 갈 막차가 끊어질 상황에 처할때쯤 일단 집에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목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 과연 열어줄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우리와 함께 있던 어느 스님이 경찰 병력 틈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재빨리 스님의 뒤를 따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이십여명의 시민들이 지친 모습으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오늘은 나도 할만큼 했다고 자위하면서 지하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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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집을 옮겨야하는 문제 때문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와 아내는 계속 바빴고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어린이 집에 가는 것 조차 싫었다. 이런 곳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짜증났다.

원장은 그 일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담임선생님의 태도는 확 바뀌어서 무척 친절해졌지만 나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 주 내가 블로그에 원장의 어처구니 없는 언행을 글로 올리고나서 며칠 후에 아내도 관련해서 글을 하나 올렸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의 부천지역 모임이었다. 여기에는 지금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있는 엄마들도 몇 명 있다고 했다.

글을 올리고 그 글에는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스물 대여섯개 정도. 규모가 크지 않은 커뮤니티에 그 정도 댓글이면 무척 많긴 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단 한사람을 빼고는 모두 원장이 너무 심했고 그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 엄마들은 대부분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긴 경험들이 있고 지금도 맡기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들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기는 했지만 우리 부부가 과민반응을 보였다는 사람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도 원장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언행을 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나도 그 상황에서 원장의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전화에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아이를 볼모로 말도 안되는 협박을 하다니! 그게 어디 원장이 할 짓인가? 먼저 사과를 하고 다음부터 조심하겠다는 재발방지의 약속을 하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할게 아닌가?

사실 당장 새로 보낼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서 원장의 전화를 받을 때 좀 더 따끔하게 말하질 못했다. 그렇지만 원장의 언행이 어떤 점에서 잘못이었는지를 지적하고 그 점을 해명하고 사과하라고 나름 부드럽게 요구했다. 원장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내 요구를 무시했다. 더 심하게 따질 수 있었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다시 따질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내가 그 글을 올리고 며칠이 지나서, 처음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만에 원장이 면담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면담을 요청했는데, 아내는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해서 내 일정을 물었다. 나는 바쁜 일을 제쳐두고 일단 그 면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저녁에 어린이 집을 방문했다. 담임선생님과 원장과 우리 부부가 마주 앉았다. 한동안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에 대한 말을 했다. 원장과 담임은 우리 아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뭐든 다 잘하게 되었다는 식의 말만 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병을 열지 못했는데, 이제는 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마치 아이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했던 것 처럼 말을 했다. 우리는 사실만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이가 잘 못했던 것들을 잘 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대꾸해줬다.

한참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다가 원장이 사실은 인터넷 카페에 올라가 있는 글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거기에 어린이집 원장이나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올렸다고 말했다. 원장은 그 글의 사실여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그 글을 보고 선생님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왜 그 글을 보고 원장이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선생님들이 상처를 받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내가 계속 말을 해서 일단 기다렸다. 아내는 만약 그 글로 인해 선생님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그 글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을 이었다. 그 글은 어린이 집을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힘든 일을 겪으면서 다른 경험이 많은 엄마들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쓴 글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쯤에서 당연히 원장이 사과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잠시 기다려보았으나 원장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계속 그 글이 선생님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삭제해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내는 그 글은 이미 많은 댓글이 달리면서 자신만의 글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삭제할 수 없으며, 이번 상담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을 올리거나 댓글로 경과를 알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가 뭐라고 하든 원장은 제대로 듣지 않는 듯 했고, 모든 원인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 처럼 말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면담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 원장은 끝까지 자신이 해야할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원장이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는 말을 꺼낼 때,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내가 한 마디 했다.

나는 처음에 이 어린이 집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괜찮은 곳이라고 확신하고 아이를 맡겼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유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일과 관련하여 원장의 언행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원장이 했던 말들은 교육자인 어린이 집 원장이 학부모에게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난다고 강조했다. 이건 이제 우리 어린이 집에 아이를 그만 보내라는 얘기지. 더 잘 해보겠다는 의미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원장은 그저 웃으면서 아니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아내가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설명하고 글 올린 것에 대해서도 선생님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사과도 했는데, 왜 원장은 아무런 말이 없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원장이 도리어 자기가 무슨 말을 더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우리에게 했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왜 한 것인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사과를 해야할 것 아닌가라고 했더니 말을 돌려서 자기는 우리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다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올바른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은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내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똑바로 얘기하라고 다그치니까 자신은 교육철학을 갖고 아이를 가르치기 때문에 작은 일로 사과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끝까지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더이상 할 말이 없어서 일단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이번에도 당장 어린이 집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일단은 더 심하게 추궁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무척 기분이 나빴다. 정말이지 하루종일 이 문제 때문에 한 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 원장은 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데, 이런 원장이 가르치는 어린이 집에 어떻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이런 원장 밑에 아이를 맡기고 도저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다시 며칠이 더 지났다. 나는 계속 바빴고, 아내도 여전히 바빴다. 아마 10월 말 쯤 되면 시간이 좀 날 것 같아서 그때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계속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이었다. 밤 늦게까지 일이 있어서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아내가 무척 심란해하면서 나를 붙잡고 얘길 시작했는데,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원장이 나오면서 자신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더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뻔했다. 온라인 카페에 올린 글을 내려달라는 얘기였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려는 아내를 붙잡고서 30분이상 길에 서서 놔주지않고 삭제해달라는 말만 반복했단다. 자기가 무얼 잘못했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이 없었단다. 아이가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게 싫어서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담임이 쪼로로 나와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단다. 그리고 원장이 본격적으로 아내에게 압력을 넣었단다. 선생님들이 그 글을 보면서 계속 상처를 입는다. 아무리 아이에게 잘 대해주려고 해도 이런 상태에서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아내가 그 글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원장은 생각하고 자시고가 없다고 무조건 그 글은 삭제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 글 어디에도 어린이 집 이름은 안 나와있는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냐고 물었더니 다 알 수 있다고 '중동역'을 쓰지 않았냐고 했단다. 우리집에서 중동역 가는 길에 있다고 썼는데, 그 길에 어린이 집이 몇 개인지 아냐고 엄청 많다고 말하니 그래도 다 알 수 있다고 말했단다.

내가 알기로 우리집에서 중동역 가는 길에 어린이 집이 열 개가 넘는다. 대체 어떻게 그 중에 어느 어린이 집인지 알 수 있다는 얘긴가? 나와 아내가 올린 글에는 어떤 사람들이 거기가 대체 어디냐고 그런 곳은 확실히 밝혀야 다른 피해자가 안 생긴다는 댓글을 남긴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암튼 아내는 그렇게 원장의 압력을 받고 갑자기 자기가 처한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눈물이 나왔단다. 처음에는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원장 앞에서 울었다고 한다. 원장은 자기 어런이 집 앞에서 부모가 우니까 주위 시선을 신경쓰느라 어쩔 줄을 몰라했단다. 저녁시간이었고 배도 고프고 힘들고 피곤한 상태에서 30분 이상 서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담임이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원장은 결국 삭제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내지 못해서 더 붙잡으려 했으나 아이가 계속 집에가자고 졸라대니 어쩔 수 없이 보내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에 아내가 아이랑 함께 가는데, 원장이 갑자기 따라오더니 우는 모습까지 보니 자기도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서 '그러면 내가 사과할게'라고 했단다. 그게 무슨 사과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원장 스스로는 사과를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요일 저녁에 아내가 그런 일을 겪어다고 하니 나는 더이상 여기에 아이를 맡길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금요일 하루만이라도 더 보내자고 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이런 원장 밑에는 단 한시간도 더 맡길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가 되었다. 좀 더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행동했어야 했다. 당장 금요일부터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계속 아이를 맡기고 있는 한, 이 원장이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진작에 확고하게 아이를 그만 보내고 무엇이 잘못인지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아무래도 아이의 문제이다보니 좀 더 조심스러웠는데 그래서 더 원장이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나왔을 것이다!

금요일 아침에 전화로 원장에게 통보를 했다. 원장은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몰라서 묻냐고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했더니 갑자기 더이상 말이 없어졌다. 나는 아이의 물건을 찾아갈테니 준비해놓으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갔더니 담임이 기본적인 아이의 물건을 챙겨놓았다. 그런데 칫솔이며 몇몇 물건들이 빠져있었다. 달라고 했더니 한참 후에 다시 갖고 나왔다. 원장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 예전에는 종종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곤 했는데, 올해 새로 들어간 여기 사무실에는 두번째였다. 마침 오후에는 계속 밖에 일이 있었고, 저녁에는 기획회의까지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야외 행사장에 가서 아이랑 놀아주는 틈틈히 할 일을 했다. 저녁에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회의에 참석했다. 아이은 회의하는 동안 얌전히 혼자서 놀았다. 회의가 끝나고 밥먹으러 가서 아이의 밥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부터 아내가 외국으로 출장을 간다. 일주일 후인 다음 월요일에 돌아온다. 일주일동안 아이랑 둘이서만 지낸다.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다. 아이가 엄마없이 얼마나 잘 지낼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괜찮을 것 같다. 두번째기 때문에 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봐야 한다. 이번에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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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1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아이도 부모도...
왜 자신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수 없는 걸까요? 사람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 실수도 할 수 있고, 화가나서 좀 막말로 할 수 있다는 거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힘들겠지만 힘내시고 신중하게 잘 알아보시기를...

감은빛 2008-10-15 17:16   좋아요 0 | URL
저로서도 그 부분이 가장 이해가 안되더군요. 일단 자신의 잘못만 제대로 인정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텐데요. 저는 되도록이면 이 곳에 계속 보내고 싶었지만, 도저히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이가 그만둔 지금에도 그 원장은 전혀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이 없습니다. 어제도 제가 보육료 정산건으로 전화를 했는데, 지나가는 말로라도 자기 잘못에 대한 말은 전혀 없더라구요.

어제부터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여기는 보건부 인증받은 곳이데, 그래서 그런지 훨씬 더 비싸더군요. 예전에는 비싸서 일부러 안 보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좀 비싸도 제대로 된 곳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더라구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오기 2008-10-31 07:11   좋아요 0 | URL
다른 곳에 다니고 있군요. 안정된 곳에서 아이가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어린이집 원장의 황당한 협박

36개월 째에 접어드는 딸아이 엄마입니다. 요즘 고민이 생겨서 좀 길더라도 질문을 올리게 됐습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선배 어머님들 충고 부탁드립니다!

 

얼마전 1년 넘어 다니던 가정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들이 다 이사가거나 해서 갑자기 혼자 남게 되자

원장님께서 다른 원을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다니던 원에 들어왔는데...

가끔 저희 부부가 똑같이 야근하는 날이 있어서 시간연장도 되고 집에서도 멀지 않고,

딱 집에서 중동역 오가는 길에 있다는 점,

그리고 TV를 틀어서 아이들 보육시간을 채우거나 과자등의 먹거리를 안 주시고

지나치게 영어나 특활 등을 강요하지 않아 아이들 부담 안 주는 것 등등

나름대로 저희 부부가 원하는 방향과 잘 맞아서 선택했답니다.

 

그런데 이제 막 두달 지나는 이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과 사건(?)이 생겼습니다.

평소 주로 저녁 7시에서 7시 30분에 데리러 가고, 지금까지 딱 두 번 정도 시간 연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오면서 "뽀로로 텔레비전으로 봤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답니다. 그 얘기를 저도 한번 듣고 아이 아빠도 한번 들었는데 진짜 텔레비전을 봤는지 아니면 그냥 상상으로 하는 말인지, 혹은 책이나 그림을 봤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알길이 없었죠. 다만 차량 운전해주시는 남자 선생님께서 방송을 봤다고 하시는 말씀을 아이 아빠가 얼핏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또 두세번 더 그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정리하는 시간에 본다"라고요.

저희 집은 어쩌다보니 텔레비전이 없는데 그게 차라리 좋겠다 싶어서 굳이 텔레비전 구입을 안 했거든요. 어쨌든 원장님이 처음 입학 상담 때 텔레비전을 절대 안 보여주신다고 하셨기에, 일단 여쭤봐야겠다 싶어 알림장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이 무척 확고하게 그런 일이 절대 없다고 하시더군요. ㅇㅇ가 착각한 것 같다고요.

그래서 아이 아빠가 다시 알림장에 확실하냐고 되묻자, 더욱 강한 말투로 그런 일 없고, 무조건 착각이라고 답을 주셨더라구요.

저희도 그런가보다 했지요. 한 두번 보는 거야 문제는 없지만, 아이는 봤다고 하고 원에서 그렇게 한다 안 한다 저희 부모에게 말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했던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며칠 전엔 아이가 얼굴에 손톱에 찍힌(할퀸?) 자국이 나서 왔고,

저녁에 쉬를 한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려가보니 바지와 팬티가 젖었다가 오히려 마르고 있는 상태더라구요.

그날은 6시 반 쯤 어린이집에서 나왔는데 그것을 발견한 시간은 7시 20분(?)쯤이었습니다.

하필 그날 따라 이틀 째 알림장이 오지 않아서 이틀간 담임 선생님의 전갈이나 아이의 생활을 듣지 못했고

저희도 뭐라고 전갈을 남기지 못했지요.

결국 알림장도 없고, 또 귀가시 원에서 아무 말씀도 못 들었기에

아이 아빠는 원장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남자들 흔히 그러듯 다소 딱딱한 말투긴 하지만

예의를 충분히 차리면서도 그냥 간결하게 "아이 얼굴에 상처가 났는데 누구랑 싸운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바지가 젖었다가 다시 마르는 상태인데 오후에 실수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에게 미처 말을 못해서 바지를 못 갈아입었다고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주실 수 있느냐" 이렇게 묻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알림장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종이에 긴 메모를 써서 담임선생님께 어제 있었던 일을 쓰고 상황에 대해 여쭈기로 했습니다. 메모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는데 원장님이 나와서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어제 아버님이 전화를 했는데 설명하겠다고요. 그러면서

"ㅇㅇ가 남한테 절대 안 지는 성격인건 아시죠? 동생 장난감 뺏어서 그 동생이 화나서 얼굴을 할켰다고 하네요. (중간생략)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면서 이것저것 다 따지시면 너무 힘들어요. 완벽하길 바라시면 안 되죠. 아이들을 일일이 화장실에 따라들어가서 옷 벗겨주고 쉬 뉘어줄 수 없습니다. 그 연령은 스스로 해야 하는 나이고요.  지금도 지난번 텔레비전 문제로 담임선생님이 예민해져 있는데 이렇게 또 자꾸 문제제기를 하시면, 결국 답은 하나에요. ㅇㅇ한테 (이때 제 팔을 세게 확 잡고 벽으로 밀면서) 이렇게 한곳에 붙잡아두고 '넌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여기 있어'라는 말 밖에 못하죠. 그렇게 키우는 게 좋으세요? 그럼 계속 그렇게 하시고요."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순간 무척 기분이 나빴지만, 아이가 눈앞에 있기도 했고 아침 일찍 급하게 출근하는 터라, 또 순간 당황해서 뭐라고 답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해서 일단은 "아이 아빠에게 직접 답을 해주시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너무 안 좋고 대체 제가 그런 답을 들을 만큼, 우리 부부의 질문이 지나친 것이었느냐는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아이가 얼굴에 상처가 나서 왔는데 아무 얘기도 없는 선생님들, 더구나 바지가 젖은 채로 몇 시간 있었다는데 36개월도 안 된 아이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고 옷을 갈아입혀주지도 않고 그냥 귀가시킨 선생님.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 과연 과잉 보호이고 과민반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손톱 상처에 대해 조심을 시켰고 순하지만 소독작용을 하는 약을 발라주더군요. 물론 저녁 때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꼭 말해주며 유감 표시를 하셨구요.

게다가 만약 겨울이었다면, 젖은 바지로 몇 시간 있다가 감기 걸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 이건 제가 직접 한 생각도 아니고, 자식을 둘 키우면서 최근까지 원장으로서 어린이집을 1년 정도 운영했던 제 친구가, 제 고민을 듣고 깜짝 놀라며 한 말입니다. 이 또래 아이들은 약해서 팬티나 양말만 젖어도 감기가 걸릴 수 있다면서 펄쩍 뛰더군요.

 

더 답답한 것은,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원장님이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소위 그 전날 전화에 대한 답변을 했는데

저에게 얘기한 것보다 더 심각한 답변을 했다는 겁니다.

아이 아빠가 "이것저것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작은 일들이 생길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문제를 지적한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감기 걸릴 수도 있었던 문제였다"라고 하자,

원장님이 "그런 작은 일들에 일일이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예요. 아버님, 선생님들도 인간이에요. 신이 아니거든요. 어머님아버님도 실수하시잖아요. 안 그래요? 그리고 그런 일로 감기걸려서 안 된다면, 그럼 이제부터 놀이터도 가면 안 되고 흙도 만지면 안 되겠네요? 흙에 세균 있잖아요, 그쵸?" 이랬다는 겁니다.

아이아빠가 선생님들이 언제나 힘들게 고생하시고 아이를 잘 봐주셔서 안심하고 일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까지 얘기를 하고, 어쨌든 재발방지를 약속해주시고 이번 일에 대해서는 일단 사과를 해주시는 게 정상 아니냐고 두번에 걸쳐 물었는데도, 원장님이 "호호호호! "하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사과는 무슨 사과, 이런 말투였다는 아이아빠의 증언입니다...

 

아이아빠한테서 그 얘기를 듣자 너무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과도한 보호를 요구한 걸까? 아이가 바지랑 속옷이 젖어서 와도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하는 건가? 손톱이 찍혔는데 왜 싸웠는지 누구랑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 아이가 먼저 다른 아이를 괴롭힌 건 아닌지 등등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느데 그냥 묵묵히 그러려니 해야 하는 건가? 텔레비전 시청을 안 한다는 원장님 말씀과 실제가 다른 것 같아도 물어봐서는 안 되는 건가?

아이를 차별하고 한곳에 놔둔 채 아무 것도 못하게 방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그냥 입 다물고 "남의 손"이 해주는 대로 국으로 있어야 하는 건가?

그날 밤 잠든 아이를 보는데, 저는 잠도 안 오고 눈물도 나오고 ..... 정말 원장님 말대로 제가 '신경과민'인가 싶을 정도로 한숨이 나오더군요.

 

다음날, 아침에는 아이 아빠가 그래도 밝게 웃으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제가 데리러 갔습니다.

저녁에 계시는 선생님은 상당히 살가운 편이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늘 제가 고마워하고 있는데요. 그날은 아이 얼굴에 난 상처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그 전날과 전전날에는 계속 저녁반 선생님을 마주치지 못했더랬습니다)

선생님왈, 할퀸 아이가 요즘 스트레스가 있는지 누구든지한테 손을 많이 대고 화와 신경질이 심하다고요. 그래서 ㅇㅇ가 크게 잘못한 게 아니지만 그 동생이 할퀸 거라고요. 이틀이 지나긴 했지만 설명을 들으니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요. 그 설명을 듣기까지 이틀이나 걸려서, 그것도 그런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들어야 했는지, 너무 의아했습니다.

 

일단 그 설명을 듣자 안심은 되었지만, 여전히 알림장은 찾지 못했다고 하고, 담임선생님이 임시로 보낸 알림장에는

"ㅇㅇ한테 쉬 실수를 하면 꼭 말하라고 주의주겠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게 당부를 시켜주세요"라는 말이 써있었습니다.

단지 아이가 말을 안 해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지, 교사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말로 들리는 건, 저의 비뚤어진 마음 때문일까요?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제 친구에게 물으니, 만 3세 아동은 너무 놀이에 몰두하거나 관심이 쏠리는 일이 있으면 자신이 실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잘 구분을 못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말하려가다가도 금방 잊고 새로운 일에 빠져든다는 거지요. 혹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상황에는 일부러 숨기기도 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것을 아이에게 반드시 말하라고 주의를 주겠으며, 말 안 하면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더군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원장님과 담임선생님이 너무나 당당하고 확고하게 말씀을 하시니 이젠 혼란이 옵니다.

 

어머님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이아빠는 곧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원장님이 너무 확고한 태도로, 부모가 너무 과민한 것이고 오히려 아이한테 차별이 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인 만큼 어떻게 여기에 아이를 더 맡길 수 있느냐고.  그 뒤로 저는 한번 더 임시 알림장에 담임선생님께 메모를 써서, 상담을 받고 싶으니 기회를 만들어주십사 썼지만 아직 답은 전혀 없네요. (소풍날이라 알림장은 나가지 않는다는 답만, 저녁반 선생님에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제가 이 시점에서 무언가 더 노력해봐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 어린이집을 옮겨야 하는지 조언해주세요.

두서없는 긴 글 읽으시게 해서 송구스럽니다. 댓글로 많이 충고해주세요. 어떤 의견이든 소중히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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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린이집 원장의 황당한 협박
    from 가보지 못한 길 2008-10-05 01:53 
    지난 8월에 아이의 어린이 집을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 옮긴 이유는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모두 그만두고 우리 아이 한명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집은 올해로 넘어오면서 원장이 바뀌고(작년 원장은 더 큰 어린이집 원장으로 가고, 주임이던 딸이 원장자리를 물려받음) 선생님들이 바뀐 이후에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거 그만두게 되었고 결국 아이의 반에서 혼자 남게 되었다. 새로운 어
 
 
순오기 2008-10-05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이 쓰신 글 다 읽어봤는데요~ 결혼 전 5년간 유치원에서 일했고, 지금도 큰동서와 동생댁이 어린이집을 운영합니다. 서로간에 오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선생님이나 원장님이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의 관계가 개선될 것 같지 않군요. 한번 찍히면 회복하기 어려운게 인간관계지요~ 사립 어린이집이어도 복지부 지원받는 어린이집이 있어요. 먹을거리도 유기농으로 지원하고요~ 힘들겠지만 이제 36개월이라면 어린이집 다녀야 할 기간이 길으니까 다른 곳을 알아보심이 좋을 듯하네요. 부모에게 말로만 안심시키려는 처사는 유아교육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ㅜㅜ

감은빛 2008-10-07 11:5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오해가 없을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서로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오해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되어야하겠지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 입장에서 저와 아내는 언제나 약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되도록 원장이나 선생님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어선택도 조심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이없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복지부 인증 어린이집이 있더라구요. 저희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 중에서 그런 곳이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선 반드시 영어 특강을 들어야 한다고 하네요. 저는 아직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아직 우리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무슨 유행처럼 너도나도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이 상당히 거슬려서요. 새 어린이집을 찾아보는 문제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도움말씀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분이 좀 좋아졌답니다! ^^
 
이번 어린이 집에 대해 아내가 쓴 글


지난 8월에 아이의 어린이 집을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 옮긴 이유는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모두 그만두고 우리 아이 한명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집은 올해로 넘어오면서 원장이 바뀌고(작년 원장은 더 큰 어린이집 원장으로 가고, 주임이던 딸이 원장자리를 물려받음) 선생님들이 바뀐 이후에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거 그만두게 되었고 결국 아이의 반에서 혼자 남게 되었다.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보면서 나는 먹거리 문제를 가장 예민하게 따져보았다. 마침 아내가 집 근처 생협에서 생협에서 찬거리를 주문하는 어린이집 명단을 구할 수 있었다. 몇몇 어린이집들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아이를 보낼수 없었고, 한 곳이 그나마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 곳이 바로 지금 아이를 보내고 있는 어린이집이다. 아내는 집에서 아주 가까운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았는데, 객관적인 조건은 아내가 알아본 곳이 더 좋아보였다. 그래도 나는 생협에서 가끔이라도 찬거리를 주문하는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싶어서 결국 그곳으로 결정했다.

새로운 어린이집은 그 전에 보냈던 곳과는 달리 규모가 큰 곳이었다. 아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특별히 더 많아보이지는 않았다. 예전 어린이집이 규정된 원아 수에 비해 선생님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규모가 큰 만큼 아이에게 더 잘 대해주거나 더 체계적인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보기에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어린이집 운영이 이전에 보냈던 곳에 비해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어쩔수 없으니 큰 문제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더이상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아이도 우리도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위한 기간을 갖고 있었다. 특히 아이로서는 아직 어린 나이에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 동생들, 언니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만나서 나름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는 듯 했다. 우리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건 아이가 스스로 부닥쳐야 할 문제라 아이의 잦은 짜증을 받아주고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에 대한 이야기들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얘기해주는 등의 것들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침에 보내고 저녁에 데려오면 부모로서는 아이가 낮에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다행히 좀 친절하고 성의있는 담임선생님을 만난다면 아침, 저녁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대신 날적이(수첩)에 그날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여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데, 이 날적이의 기록도 여기는 무척 성의없게 대충 적어서 보내왔다.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낮잠잔 시간도 꼬박꼬박 기록하고 식사때 무얼 잘 먹었는지 무얼 잘 안먹으려 하는지 등도 자주 적어주고 대변을 보면 그 시간과 대변의 상태도 상세히 기록해줬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해주지 않았다. 정말 건성으로 큰 틀에서 그날 무슨 일을 했다는 정도로만 적혀있었다.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섭섭한 부분이나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처음에 마음먹었듯이 큰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번 주 월요일에 아이의 수첩이 돌아오지 않았다. 수첩이나 혹은 머리핀이나 모자 등의 물건들이 실수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다음날에는 줄거라 생각했다. 화요일에도 또 수첩이 없었다. 다음날 보낼 때는 꼭 수첩을 찾아달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요일 저녁에 아이와 밥을 먹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의 뺨에 작은 상처가 있었다. 손톱 자국처럼 생긴 상처였다. 아이에게 물었더니 '혀누'라는 친구가 얼굴을 꼬집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그냥 '혀누'가 가만히 있는데 꼬집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작은 상처라서 나중에 씻기고 약을 발라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혀누'라는 친구가 어떤지가 걱정되었다. 우리 아이가 그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수첩은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 상황을 알 수가 없었고, 저녁에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도 그런 언급이 아예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알았다면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약을 발라주었을텐데, 약을 바른 흔적이 전혀 없는 걸 보니 분명히 상처가 났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상처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이런 작은 상처는 얼마든지 날 수 있다! 이런 걸로 어린이집에 따지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상처가 났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에 데려갈 때 얘기하거나 메모지에 적어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참 밥을 먹다가 아이가 '쉬'가 마렵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려갔는데, 옷을 내리는 데, 팬티랑 바지가 조금씩 젖어있었다. 아이에게 지금 못 참고 쉬를 싼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럼 언제 옷에 쉬를 한거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에서 했다고 말한다. 만져보니 바지는 젖었다가 조금 마른 상태이고 팬티는 젖은 상태였는데, 옷에 싼 쉬의 양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선생님이 옷을 안 갈아입혀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화장실에 따라오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에게 그러면 옷이 젖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알려줬다.

여름과 달라서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날이 제법 쌀쌀하다. 젖은 옷을 입고 다니다가 자칫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다.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내보낼 때 꼭 옷차림을 꼼꼼히 점검하고 보내는 모습을 매일 봤었다. 지금은 데리러 갔을 때 놀고있는 아이를 불러서 그냥 내보낸다. 아이가 놀던 옷차림을 한번 살펴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젖은 옷을 그냥 입고 나와도 몰랐던 것이다.

상처가 난 사실을 몰랐던 것과 젖은 옷을 입혀서 보내고도 몰랐던 것, 이 두가지 사실을 알게되니 좀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그 시간에는 어린이집에는 시간연장 아이들을 담당하는 선생님 한 분만 빼고는 다 퇴근하고 아무도 없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 연락처는 따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상황상 원장에게 전화하는 게 좋다고 판단되어 전화를 걸었다. 원장은 어딘가 시끄러운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일단 인사말을 전하고 조심스레 오늘 저녁에 알게된 사실들을 알려주면서 어린이집에서 이 두가지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하고 물었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꼭 알려달라고 했다. 원장은 조금 기분 나쁜 목소리로 사과 한마디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평소와 달리(평소 아침에는 거의 내가 아이를 데려다준다.) 아내가 아이를 데려다 주러 갔는데 원장과 만났단다. 원장이 아내를 붙잡고 아버님이 너무 자주 불평을 하시면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을 했단다. 그러면 아버님이 무서워서 선생들이 아이에게 아무것도 안시키고 그냥 어디 붙들어놓고 꼼짝도 못하게 하기를 원하냐는 식으로 말을 했단다. 아내는 너무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원장이 상식이하의 언행을 했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빠져나오려고만 했단다. 원장은 한사코 아내를 붙잡고 잘 모르시나본데 아이의 교육상 그런 식이면 곤란하다느니,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좀 말려달라느니 하는 말들을 더 했단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당연히 화가 났다. 아니 내가 언제 불평을 했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를 붙들어 꼼짝도 못하게 하기를 바라냐고 했다는 데, 이건 완전히 아이를 볼모로 붙잡고 협박하는 게 아닌가? 원장이 아내에게 여러차례 어머님이 아버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했지만 아내는 끝내 그 부탁을 거절하고 원장님이 교육문제의 전문가로서 아이아빠와 직접 얘기하는게 좋겠다고 말하고 빠져나왔다고 한다. 내가 어제 전화로 꼭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으니 아마 그날 중으로 전화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오후 늦게 전화가 왔다. 원장은 실제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그 말투가 이런 하찮은 일들로 불평하지 말아달라는 말투였다. 사과는 커녕 오히려 그 쪽에서 화를 내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일단 상황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고, 아이랑 다퉜다는 그 '혀누'(우리 아이보다 더 어린 아이라고 했다.)가 어떤지부터 물었다. 혹시 우리 아이가 그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물었더니 원장은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고 그냥 괜찮다고만 얼버무렸다. 그러고는 '아버님 안야가 고집이 센 편이라는 건 아시죠?' 라고 묻는다. 우리 아이니까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말했더니 그래서 지기 싫어하는 편이라 어린 애기랑 다툼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말의 뉘앙스도 상당히 거슬렸지만 일단 넘어갔다. 바지와 팬티가 젖었는데 안 갈아입힌 부분에 대해서도 선생님이 그 많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일이 화장실에 따라갈 수 없고 옷이 젖었는지 어떤지 다 만져볼 수 없다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나는 그런 상황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부모가 데리러 오면 보내기 직전에 한번 옷차림을 살펴봐주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 쌀쌀하지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는데, 만에하나 겨울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이는 금방 감기에 걸렸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원장은 아무 대꾸도 없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담임선생님도 다른 선생님들도 안야

를 다른 아이보다 더 신경써서 잘 보살피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예전에 티비를 보여주는 문제에 대해서 수첩에 적는 등 민감하게 하시면 선생님들이 힘들다고 말한다. 원장이 스스로 그 얘기를 꺼내니 나로서는 더 어이가 없었는데, 처음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고 갔던 날, 아이가 주로 생활하는 교실을 보았는데 한쪽 구석에 티비가 놓여있었다. 나는 티비를 보여주냐고 물었고 원장은 영어특강(돈내고 받는 수업인데 우리 아이는 받지 않는다.)을 할 때 가끔 사용하고 평소에는 절대 안 보여준다고 불시에 찾아와서 검사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데리러 갔는데, 밖에서 듣기에도 티비 소리가 들렸고, 아이가 나오면서 지금 티비 보고 있으니까 다 보고 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옆에서 선생님이 티비는 집에가서 보고 지금 얼른 가자고 타일렀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긴 내가 수첩에 티비를 보여주냐고 물었고, 보여주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수첩에 아이가 티비를 봤다는 말을 했고, 나도 그 앞에 서서 티비 소리를 들었다고 했더니, 저녁에 아이가 생활하는 1층 교실에는 티비가 없으며 가끔 컴퓨터로 동요를 보여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그게 민감하게 불평하는 건가? 아니 처음부터 티비를 절대 안보여준다고 불시에 검사해도 좋다는 말을 한 게 누군데 이제와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건가?

그렇게 얘길 했더니 원장은 할말이 없었는지 또 한번 잠시 침묵하더니 어쨌든 자신과 선생님들이 안야를 잘 보고 있으니까 안심하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직까지 자신에 잘못들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오전에 아내에게 전해들은 말을 하면서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언행이었으니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원장은 부모중에는 그런 부모들도 있다고,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걸 싫어하고 흙 만지는걸 싫어하는 부모도 있다고, 그렇게 과잉 보호를 하길 원하는 부모가 생각나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지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대신 '호호호'하고 웃음이 돌아왔다. 그래서 왜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갖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느냐 물었더니 아버님의 태도가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랬다고 답한다. 내가 다시한번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절대 없고 오히려 나는 우리 아이가 더 활발하게 활동하기를 바란다고 했더니 이번에도 '호호호' 웃으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다.

통화가 무척 길어져서 나도 원장도 좀 짜증이 났다. 나는 끝내 원장이 사과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단 한번도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불평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원장은 이번에도 할말이 없는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더이상 통화를 해봐야 더 나올 것도 없고해서, 대충 전화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원장도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은 다 한 모양인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나는 정말 이 어처구니 없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원장에게 서로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 앞으로 좀 더 잘 해보자고 예의상 말했다.

처음에 전화받을 때부터 아이에게 소홀했던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또 아침에 있었던 부당한 언행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 인간에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옮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어린이집을 바꾼다는게 아이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인간이 되지 못한 원장 밑에 아이를 맡긴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처음에 여기를 보내려고 했을 때 좀 더 자세히 잘 알아보고 보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가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나름 확실히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원장이 저렇게 인간이 덜 된 X(차마 욕설을 쓰고 싶지 않아서....)일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지금 아내도 나도 한창 일 때문에 바쁘다. 한 서너달 전부터 우리는 서로 일주일에 이틀이나 삼일씩 교대로 저녁에 아이를 돌보고 나머지 한 명은 밤 늦게까지 일하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일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기에 어린이집 문제가 불거져 나오니 무척 화가 난다. 이제 다시 또 새로운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얼마나 시간을 뺏길지, 얼마나 힘들지, 아이가 또 적응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을지 등등 걱정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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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 어린이 집에 대해 아내가 쓴 글
    from 가보지 못한 길 2008-10-05 01:54 
    36개월 째에 접어드는 딸아이 엄마입니다. 요즘 고민이 생겨서 좀 길더라도 질문을 올리게 됐습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선배 어머님들 충고 부탁드립니다!   얼마전 1년 넘어 다니던 가정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들이 다 이사가거나 해서 갑자기 혼자 남게 되자 원장님께서 다른 원을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다니던 원에 들어왔는데... 가끔 저희 부부가 똑같이 야근하는 날이 있어서 시간연장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