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집을 옮겨야하는 문제 때문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와 아내는 계속 바빴고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어린이 집에 가는 것 조차 싫었다. 이런 곳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짜증났다.
원장은 그 일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담임선생님의 태도는 확 바뀌어서 무척 친절해졌지만 나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 주 내가 블로그에 원장의 어처구니 없는 언행을 글로 올리고나서 며칠 후에 아내도 관련해서 글을 하나 올렸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의 부천지역 모임이었다. 여기에는 지금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있는 엄마들도 몇 명 있다고 했다.
글을 올리고 그 글에는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스물 대여섯개 정도. 규모가 크지 않은 커뮤니티에 그 정도 댓글이면 무척 많긴 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단 한사람을 빼고는 모두 원장이 너무 심했고 그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 엄마들은 대부분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긴 경험들이 있고 지금도 맡기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들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기는 했지만 우리 부부가 과민반응을 보였다는 사람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도 원장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언행을 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나도 그 상황에서 원장의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전화에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아이를 볼모로 말도 안되는 협박을 하다니! 그게 어디 원장이 할 짓인가? 먼저 사과를 하고 다음부터 조심하겠다는 재발방지의 약속을 하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할게 아닌가?
사실 당장 새로 보낼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서 원장의 전화를 받을 때 좀 더 따끔하게 말하질 못했다. 그렇지만 원장의 언행이 어떤 점에서 잘못이었는지를 지적하고 그 점을 해명하고 사과하라고 나름 부드럽게 요구했다. 원장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내 요구를 무시했다. 더 심하게 따질 수 있었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다시 따질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내가 그 글을 올리고 며칠이 지나서, 처음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만에 원장이 면담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면담을 요청했는데, 아내는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해서 내 일정을 물었다. 나는 바쁜 일을 제쳐두고 일단 그 면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저녁에 어린이 집을 방문했다. 담임선생님과 원장과 우리 부부가 마주 앉았다. 한동안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에 대한 말을 했다. 원장과 담임은 우리 아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뭐든 다 잘하게 되었다는 식의 말만 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병을 열지 못했는데, 이제는 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마치 아이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했던 것 처럼 말을 했다. 우리는 사실만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이가 잘 못했던 것들을 잘 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대꾸해줬다.
한참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다가 원장이 사실은 인터넷 카페에 올라가 있는 글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거기에 어린이집 원장이나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올렸다고 말했다. 원장은 그 글의 사실여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그 글을 보고 선생님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왜 그 글을 보고 원장이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선생님들이 상처를 받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내가 계속 말을 해서 일단 기다렸다. 아내는 만약 그 글로 인해 선생님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그 글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을 이었다. 그 글은 어린이 집을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힘든 일을 겪으면서 다른 경험이 많은 엄마들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쓴 글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쯤에서 당연히 원장이 사과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잠시 기다려보았으나 원장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계속 그 글이 선생님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삭제해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내는 그 글은 이미 많은 댓글이 달리면서 자신만의 글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삭제할 수 없으며, 이번 상담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을 올리거나 댓글로 경과를 알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가 뭐라고 하든 원장은 제대로 듣지 않는 듯 했고, 모든 원인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 처럼 말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면담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 원장은 끝까지 자신이 해야할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원장이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는 말을 꺼낼 때,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내가 한 마디 했다.
나는 처음에 이 어린이 집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괜찮은 곳이라고 확신하고 아이를 맡겼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유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일과 관련하여 원장의 언행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원장이 했던 말들은 교육자인 어린이 집 원장이 학부모에게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난다고 강조했다. 이건 이제 우리 어린이 집에 아이를 그만 보내라는 얘기지. 더 잘 해보겠다는 의미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원장은 그저 웃으면서 아니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아내가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설명하고 글 올린 것에 대해서도 선생님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사과도 했는데, 왜 원장은 아무런 말이 없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원장이 도리어 자기가 무슨 말을 더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우리에게 했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왜 한 것인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사과를 해야할 것 아닌가라고 했더니 말을 돌려서 자기는 우리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다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올바른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은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내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똑바로 얘기하라고 다그치니까 자신은 교육철학을 갖고 아이를 가르치기 때문에 작은 일로 사과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끝까지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더이상 할 말이 없어서 일단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이번에도 당장 어린이 집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일단은 더 심하게 추궁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무척 기분이 나빴다. 정말이지 하루종일 이 문제 때문에 한 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 원장은 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데, 이런 원장이 가르치는 어린이 집에 어떻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이런 원장 밑에 아이를 맡기고 도저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다시 며칠이 더 지났다. 나는 계속 바빴고, 아내도 여전히 바빴다. 아마 10월 말 쯤 되면 시간이 좀 날 것 같아서 그때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계속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이었다. 밤 늦게까지 일이 있어서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아내가 무척 심란해하면서 나를 붙잡고 얘길 시작했는데,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원장이 나오면서 자신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더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뻔했다. 온라인 카페에 올린 글을 내려달라는 얘기였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려는 아내를 붙잡고서 30분이상 길에 서서 놔주지않고 삭제해달라는 말만 반복했단다. 자기가 무얼 잘못했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이 없었단다. 아이가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게 싫어서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담임이 쪼로로 나와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단다. 그리고 원장이 본격적으로 아내에게 압력을 넣었단다. 선생님들이 그 글을 보면서 계속 상처를 입는다. 아무리 아이에게 잘 대해주려고 해도 이런 상태에서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아내가 그 글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원장은 생각하고 자시고가 없다고 무조건 그 글은 삭제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 글 어디에도 어린이 집 이름은 안 나와있는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냐고 물었더니 다 알 수 있다고 '중동역'을 쓰지 않았냐고 했단다. 우리집에서 중동역 가는 길에 있다고 썼는데, 그 길에 어린이 집이 몇 개인지 아냐고 엄청 많다고 말하니 그래도 다 알 수 있다고 말했단다.
내가 알기로 우리집에서 중동역 가는 길에 어린이 집이 열 개가 넘는다. 대체 어떻게 그 중에 어느 어린이 집인지 알 수 있다는 얘긴가? 나와 아내가 올린 글에는 어떤 사람들이 거기가 대체 어디냐고 그런 곳은 확실히 밝혀야 다른 피해자가 안 생긴다는 댓글을 남긴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암튼 아내는 그렇게 원장의 압력을 받고 갑자기 자기가 처한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눈물이 나왔단다. 처음에는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원장 앞에서 울었다고 한다. 원장은 자기 어런이 집 앞에서 부모가 우니까 주위 시선을 신경쓰느라 어쩔 줄을 몰라했단다. 저녁시간이었고 배도 고프고 힘들고 피곤한 상태에서 30분 이상 서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담임이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원장은 결국 삭제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내지 못해서 더 붙잡으려 했으나 아이가 계속 집에가자고 졸라대니 어쩔 수 없이 보내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에 아내가 아이랑 함께 가는데, 원장이 갑자기 따라오더니 우는 모습까지 보니 자기도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서 '그러면 내가 사과할게'라고 했단다. 그게 무슨 사과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원장 스스로는 사과를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요일 저녁에 아내가 그런 일을 겪어다고 하니 나는 더이상 여기에 아이를 맡길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금요일 하루만이라도 더 보내자고 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이런 원장 밑에는 단 한시간도 더 맡길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가 되었다. 좀 더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행동했어야 했다. 당장 금요일부터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계속 아이를 맡기고 있는 한, 이 원장이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진작에 확고하게 아이를 그만 보내고 무엇이 잘못인지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아무래도 아이의 문제이다보니 좀 더 조심스러웠는데 그래서 더 원장이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나왔을 것이다!
금요일 아침에 전화로 원장에게 통보를 했다. 원장은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몰라서 묻냐고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했더니 갑자기 더이상 말이 없어졌다. 나는 아이의 물건을 찾아갈테니 준비해놓으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갔더니 담임이 기본적인 아이의 물건을 챙겨놓았다. 그런데 칫솔이며 몇몇 물건들이 빠져있었다. 달라고 했더니 한참 후에 다시 갖고 나왔다. 원장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 예전에는 종종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곤 했는데, 올해 새로 들어간 여기 사무실에는 두번째였다. 마침 오후에는 계속 밖에 일이 있었고, 저녁에는 기획회의까지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야외 행사장에 가서 아이랑 놀아주는 틈틈히 할 일을 했다. 저녁에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회의에 참석했다. 아이은 회의하는 동안 얌전히 혼자서 놀았다. 회의가 끝나고 밥먹으러 가서 아이의 밥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부터 아내가 외국으로 출장을 간다. 일주일 후인 다음 월요일에 돌아온다. 일주일동안 아이랑 둘이서만 지낸다.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다. 아이가 엄마없이 얼마나 잘 지낼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괜찮을 것 같다. 두번째기 때문에 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새로운 어린이 집을 찾아봐야 한다. 이번에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