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이 책의 광고를 여러 차례 보았다. 파란 하늘과 노란 들판의 표지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주 여행 책이거니 싶었다. 자세히 보지 않은 탓에 ‘제주’와 ‘여행’ 사이에 끼어 있는 ‘걷기’라는 단어를 놓친 것이다.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 여행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제주 걷기 여행>이 잘 팔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광고로 자주 접했던 그 책이었다.

책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두꺼워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표지 위쪽에 투명한 걷는 발 모양의 그림이 있는데 도드라져 있어서, 만져보면 손끝으로 오돌도돌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손이 그 그림에 닿으면 그 느낌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다시 표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책 뒤쪽에는 작은 책이 하나가 붙어 있었다. 책 속에 저자를 도와준 사람으로 나오는 무적전설이란 사람이 쓴 것이었다. 실제로 올레 길을 찾을 때, 가져가면 유용할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가위질 표시대로 잘라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도록 작고 얇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당장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시원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나를 유혹했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기분을 참아 넘기느라 무척 힘들었다. 내년 봄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꼭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가까스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여러 차례 제주를 다녀왔으면서도 참 제주를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자가 직접 책 속에서 말했듯이 차를 타고 몇몇 곳만 들렀다가 가는 여행은 정말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면서 길 가의 작은 풀꽃까지 즐겨야 제대로 그 곳을 다녀갔다는 느낌을 품을 수 있으리라.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제주 올레 길을 한 코스 한 코스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겨있고, 그 뒤로는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녀오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올레 길을 다녀간 사람들이 올레 길을 접하고 느낀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저자의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부분은 무척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다음 부분, 그러니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조금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책 읽는 시간이 길어져버렸다. 제주 올레 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앞부분이 책 전체의 분량으로 봤을 때 대략 삼분의 일 정도 되고, 중간에 산티아고 길을 다녀오는 부분이 또 삼분의 일 정도 되고 뒷부분이 나머지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것 같다. 전체적인 비중 면에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듯한데, 두꺼운 책에 비해 내용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을 재미있게 읽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는 얘기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 그러니까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간 듯하다. 시작점인 1코스를 제외하고 2코스부터 6코스까지는 이어지는데, 1코스만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7코스는 1코스에서 이어져 있었다. 내년에 가족과 함께 찾았을 때, 1코스에서 이어지는 8, 9 코스들도 걸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니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차를 타고 하는 여행의 한계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 차례 느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여행을 가기 때문에 그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 만약 유명한 곳들을 다 돌아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오래 천천히 돌아보려면 걷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올레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 정도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레 길로 해안을 죽 이어갈 수 있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올레길이 산티아고 길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어서 잘 모르지만 제주의 개발열풍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정말 제주를 위한다면 대규모 관광지의 개발보다는 여기 저자가 한 것처럼 의미 있는 일들이 훨씬 더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제주말로 게으름뱅이라는 간세다리가 저자의 별명이란다. 저자는 올레 길에서는 간세다리가 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 자신이 간세다리의 방식으로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고, 올레 길도 개척했으므로 그런 것이리라. 일중독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걷기에 빠져들면서 삶에서도 간세다리가 되었다고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요즘 일중독이 되어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신경을 아이와 아내에게 쏟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에 지쳐 피곤하다보니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나도 간세다리가 되어 삶을 천천히 즐기면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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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8-11-0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섭지코지의 불행... 넘 섭섭하네요. 제주도에 예닐곱번 가보았는데, 저는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가 그곳이었어요.

감은빛 2008-11-03 11:36   좋아요 0 | URL
저도 섭지코지가 제주에서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갔을때 대대적인 공사중이더군요. 다시 가면 실망할 것 같아서 되도록 안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순오기 2008-11-1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여러권 샀는데 다 선물로 나갔고~ 드디어 어제 내 책이 도착했어요.
스무살 큰딸이 세살일 때 시어른들 모시고 갔다 온 제주도, 큰딸이랑 제주올레를 꿈꾸고 있답니다.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감은빛 2008-11-19 13:52   좋아요 0 | URL
와 여러분들께 이 책을 선물하셨나보네요. 선물 받으신 분들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댓글을 늦게 읽었는데, 지금쯤이면 이 책을 어느정도 읽으셨겠군요.
책도 재미있지만, 정말 빨리가서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따님이랑 함께 걸으면 무척 좋을실 것 같네요!
앗! 축하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적립금이 들어와 있어서 깜짝 놀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