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을 맴도는 노래
나도 모르게 계속 머리 속에서 무한 반복 자동 재생되는 노래들이 있다. 어느 특정한 시기마다 그런 노래들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또 다른 곡으로 바뀌기도 한다. 잘 아는 노래일 때도 있고, 아예 모르는 노래인데 특정 소절만 반복되기도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제목은 뭔지, 누구 노래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떤 소절만 계속 반복된다면 궁금해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출판사에 다니던 시기였고, 매일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던 시절이었으니 아마 4년쯤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그런 노래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알지도 못하는 노래가 자꾸 머리 속에서 무한 반복되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나중에 이래 저래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당시 나는 알지도 못했던 어느 걸그룹의 노래였고,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 매일 저 노래를 여러번 듣다보니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던 것으로 추정했다.
작년에도 그런 노래가 있었는데, 이 곡은 심지어 가사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단지 "우우~ 우우우우~ 우우" 하는 부분만 기억이 났다. 검색으로 곡을 찾을 수 없었다. 계속 궁금해했는데, 어느날 유튜브 자동재생 덕분에 그 곡을 알아냈다. Camila Cabello 의 [Havana] 였다. 그 노래는 꽤 오랫동안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최근에는 어느 중국 걸그룹의 노래가 또 무한 반복되고 있다. 역시 일하면서 틀어놓은 유튜브 자동재생 덕에 알게 된 노래였다. 다행히 이 곡은 두어번 들은 후 곡이 좋아서 제목과 그룹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SING女團 이란 그룹의 [123木頭人] 란 곡이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321 무토우량 무토우량" 을 반복하는 구절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가사가 궁금해서 앞 부분만 구글 번역을 돌려보았는데, 제목의 무토우량(목두인)은 마치 나무인형처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무뚜뚝한 사람(남자)를 뜻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 곡을 비롯해서 같은 걸그룹의 노래들을 여럿 들어봤는데, 대체로 노래가 좋았다. [청춘의 고백]이란 곡도 좋아서 몇 번 들었는데, 앞서 언급한 저 구절만큼의 중독성 있는 구절이 없는지, 내 머리는 계속 저 부분만 반복 재생하고 있다.
스트레스 이빠이!
1월 초부터 3월 초까지 약 2개월 10일 가량이 제일 힘들고 바쁜 시기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자주 쓰던 말투로 하면 그야말로 스트레스 이빠이 받는 시기다. 작년 사업 평가와 결산 그리고 올해 사업 계획과 예산을 세워야 한다. 작년 2월 말까지는 혼자 일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 했다. 이사회에서 함께 검토하고, 수정 의견을 내서 보완을 하긴 했지만, 모든 실무는 혼자 했다. 작년에 한 명의 활동가가 들어왔지만, 아직 경험 부족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사회에서나 외부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커진다는 걸 느낀다. 눈 높이가 자꾸 높아진다고 해야 할까.
언제부턴가 계속 느끼는 건데, 요즘의 나는 업무 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런저런 연대 단위 회의에서 가끔 마주치는 한 활동가를 보면서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활동가는 나이에 비해 무척 빨리 능력을 인정받은 경우인데, 조직 내부 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그의 업무 능력을 의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정말 일을 꼼꼼하게 잘 한다.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최근 함께 회의를 하면서 지켜본 그는 쉴 새 없이 요점을 정리해서 기록하고, 자신이 발언할 시점에선 놓치지 않고, 근거 사례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해야할 일을 명확하게 정리해서 언제까지 완료할 것을 약속했다.
나도 언젠가 일에 빠져있던 시기에는 우리 조직 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에 나는 정말 일 밖에 몰랐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할일을 머리속에 그리며 화장실에 들어갔고,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도 지나온 일들과 해야할 일들을 정리했다. 일 외에 다른 관심사는 내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 그땐 당연히 성과를 많이 냈던 시기였다. 일에 있어서 누구보다 자신감을 많이 갖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요즘의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조차 일에 잘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연말부터 총회까지 꼼짝없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끝도 없이 문서 작업을 해야 하는 시기에는 자주 생각이 끊기고 그저 '일하기 싫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듯 하다. 물론 이러다가 결국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일을 자판을 두드려 문서 작업을 하는데, 중요한 문서를 이렇게 급하게 하면 꼭 완성도가 떨어지고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는 워크숍 자료를 급하게 작성해서 워크숍을 갔는데, 여기저기 지적을 많이 받았다. 확실히 느낀 건 나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 지적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편집자 출신이 이렇게 밖에 정리를 못 하나?", "글 잘 쓰는 사람이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된 글을 썼나?" 그 자료는 특히 다뤄야 할 내용이 많고, 분량도 많아서 긴 시간 꼼짝도 못하고 거북이 자세로 자판을 두드렸는데, 그러다보니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졌고, 시간에 쫓기다보니 다시 검토할 여유는 없어서 결국 함량 미달의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 억울한 것은 그 방대한 내용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작성해서 가져오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전 같으면 첫 검토에서는 이런저런 오류나 수정사항들을 서로 확인하고, 이를 반영해서 두번째 검토 때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자료를 제출하곤 했는데, 이번엔 첫 검토였음에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내용의 지적을 받으니 조금은 억울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히 나도 이런저런 지적 받기 싫으니, 처음부터 완벽한 자료를 제출하고 싶다. 다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감안을 해줘야 하는데, 정말 해가 갈수록 그런 배려나 격려 보다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우려를 더 많이 듣다보니 힘이 빠진다. 그러면 나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일하기가 싫어지고, 점점 더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건 확실히 악순환의 반복이다.
게다가 내가 편집자 출신이어도 내 글을 잘 쓰는 것과 남의 글을 고치는 건 분명 다른 영역의 일이고, 내 글에 실수가 있을 수도 아니 있을 수 밖에 없는 거다. 또 글 잘쓴다는 평가는 고맙지만, 내가 글 공부를 한 건 이런 보고서나 자료를 잘 만들기 위한 건 아니었다. 내가 쓰길 좋아하고 또 조금은 재주를 익힌 문학적 글쓰기 영역과는 엄연히 글쓰기 방법이 다르고, 이런 류의 글을 쓰길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아, 한때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에 푹 빠져 살았던 시기에는 나 혼자 모든 사업 영역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평가해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지만 어떤 때의 나는 그렇게 혼자서 정리하고 종합해보는 일을 좋아할 때도 있다. 이 바쁜 시기에 그런 기분이 들어 집중해서 일을 빠르고 완벽하게 정리해내면 좋겠지만, 이젠 그런 기분이 잘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피곤하고 힘들다!
게다가 이 바쁜 시기에도 외부 회의나 강의는 끊임없이 계속 생긴다. 이번주에도 이틀 남겨두고 갑자기 강의가 두 개나 잡혔다. 다행히 두 건의 강의 모두 많이 해본 주제여서, 잘 정리해 둔 강의 자료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새로 준비해야 할 강의였다면 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강의 자료는 자신 있는데, 의외로 걱정되는 건 목 상태다. 계속되는 미세먼지로 목이 칼칼하고 아픈데다가 만성 피로로 인해 목소리 자체가 잘 나오지 않는다. 하필이면 오늘 오전과 오후에 하나씩 강의를 해야 하는데, 오전 강의에서 목 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오후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 많이 마시면서 완급 조절을 잘 해야겠다.
다행인 건 강의를 하고 나면 분위기에 따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니, 어쩌면 계속 다운된 기분을 전환할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강의가 되길 바란다.
언제 다 읽으려나?
작년 가을부터 연말까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샀다. 어쩌면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책을 구매하는 행위로 풀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연히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도 산 책은 훑어보기라도 하고 책장에 꽂았을텐데, 이번에는 사놓은 책을 단 한 번 펼쳐보지도 않고, 박스 채로 놔두었다. 물론 책장에 빈 공간이 없어서 꺼내도 어차피 바닥에 쌓아놓을 거라, 차라리 박스를 나중에 풀자는 핑계가 없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열어보지도 않을 책을 왜 샀을까 싶은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알라딘만 들어오면 또 자꾸 사고 싶은 책이 눈에 보인다. 저 쌓아 놓은 박스라도 풀어놓고 새 책을 사야겠지. 언제 그 책들을 다 읽으려나? 과연 다 읽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