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오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1.
에너지 음료 2개(1+1 구매)를 마시면 42시간 동안 잠을 안자고도 버틸 수 있다.

2.
37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에너지 음료 2개의 효능도 떨어지는데, 이때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다시 멀쩡해진다.

3.
42시간 잠을 자지 않고, 에너지 음료 2개를 마시고, 정종과 맥주를 여러잔 마시면 취한다.

4.
잠을 잘자고, 에너지 음료를 마시지 않고, 정종과 맥주를 여러잔 마셔도 취한다.

5.
술에 취한 다음 날엔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분이 이 쓸데없는 글이 좋다고 댓글을 남겼다. 나는 이글의 어떤 점이 좋은지 궁금하다고 댓글을 달았고, 한참 후에 그 분이 다시 아래와 같은 답을 달았다.

 

하하. 에너지 음료와 술 권하는 뭔가에게 건조하고 담담하게 투정하는 듯해 짠하면서도 마지막 짧은 '봄'이 좋네요.

 

그야말로 멋진 해석이다.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고, 이런 쓸데없는 글에는 과분한 해석이다. 어쨌거나 결론은 에너지 음료 2개면 42시간 동안 버틸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부여

 

오늘 점심은 내장탕을 먹으러 갔다. 맛있는 집을 가기 위해 차로 이동했는데, 얼마전 들어온 신입 편집자가 내 옆에 앉았다. 운전자 포함 5명이라 우린 서로 붙어 앉을 수 밖에 없었는데, 내가 앉자마자 신입은 코에 손을 대며 "팀장님, 이거 술 냄새예요?" 라고 물었다. 아, 나한테서 술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나나보다. 나는 순순히 "네."라고 답했고, 신입은 "대체 얼마나 드신거예요?" 라고 다시 물었다. "글쎄요. 세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많이 먹었어요." 나는 되도록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며 답했다. 그리고 신입은 계속 안주는 뭘 먹었냐, 누구랑 마셨냐, 몇 시까지 마셨냐 등을 물었다. 이 여자가 민망하게 왜 자꾸 캐묻나 싶었지만, 건성으로라도 답은 해줬다.

 

내장탕을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차에는 또 신입이 내 옆에 붙어 앉았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한테 나는 이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참 정겨운 느낌이예요!" 아내는 술 냄새와 담배 냄새를 질색하는데, 이 친구는 정겹다니. 이런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싶었다. 그런데 얘길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술과 담배를 즐기셔서 항상 그 냄새를 맡고 자랐다고 한다. 같이 살 때는 늘 그 냄새를 맡는 것이 싫었는데, 이제 떨어져 살다보니 그 냄새를 맡으면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그래서 정겨운 느낌이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술 냄새, 담배 냄새에서 아버지를 떠올린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에 어떤,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테면 'Never gonna falling love again'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어떤 장면, 구체적인 장소와 사람과 분위기와 행동들을 떠올린다거나, 오래된 등산화를 신으면 몇년 몇월 몇시쯤 어느 산을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나 연상은 당시의 기분을 그대로 불러온다. 한편 당시의 기분과 상관없이 그저 그리운 느낌만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당시에는 화가 났거나 슬펐다해도 지금 떠올릴 때에는 그저 그리울 뿐일 때가 가끔 있다.

 

하필 술 냄새와 담배 냄새로 기억되는 아버지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친구에게는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나를 무엇으로 기억하고 떠올리게 될지 궁금하다.

 

 

요즘은 소설 보다 역사책이 더 땡긴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근현대사 책에 자꾸 손이 가고, 눈이 간다. 오늘 살펴본 책은 요거! 조만간 주문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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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11-2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빠 담배 냄새가 좋았는 걸요. 울 언니들은 질색했지만. 아빠의 담배냄새와 까슬한 턱수염 촉감이 아직도 기억나요. 생신이라고'솔'담배를 선물했다고 초등학교 2학년 일기장에는 적혀있더라고요. ^^ 뭐 좋은 거라고. ㅋ 어린 맘에 아빠가 젤 좋아하는거라고 선물해드렸나봐요.

그런 아버지가 이제 안 계시니, 참.. 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여기서 괜히 아버지 타령을.. ^^

감은빛 2013-11-25 18:47   좋아요 0 | URL
담배 냄새는 대개 좋아하지 않던데요.
특히 여성분들은 더욱.

'솔',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저는 담배를 선물한 적은 없지만,
담배 심부름, 술 심부름은 참 많이 했어요.
그때 '솔'을 자주 사러다녔어요.

담배를 선물 받은 아버님께서 북극곰님을 참 예뻐해주셨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 기억되시겠어요.

2013-11-21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13-11-2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고 제 옷에 나는 냄새 킁킁 맡아보니 섬유유연제 냄새와 스킨 냄새만 나네요. 저만의 냄새는 별로 없는 듯. 개발 좀 해야겠는걸요? ^^

감은빛 2013-11-25 18:49   좋아요 0 | URL
대개 스킨이나 향수 냄새가 자신만의 향기가 되는 것 같아요.
저야말로 얼굴에 뭘 바르는 걸 귀찮아해서,
저만의 냄새가 없는 듯 해요.

마녀고양이 2013-11-2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는 에너지 음료 한잔 마시고 그날은 어찌 버티는데,
땅겨쓴 에너지로 인해 이후 이틀은 잠만 자댑니다... 에너지 음료, 오, 싫어... ^^

감은빛 2013-11-25 18:50   좋아요 0 | URL
대개 에너지 음료로 밤을 새고나면 다음날엔 죽을 것처럼 피곤하더라구요.
저도 한 이틀 푹 잠만 잤으면 좋겠어요.
요즘 잠이 참 모자라네요!

페크pek0501 2013-11-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에 남긴 글,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놓은 것이 재밌네요.

"5. 술에 취한 다음 날엔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 저는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쓸데없는 글을 쓸 때가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기로 했어요.
쓸데없는 글이 어떤 이에겐 쓸데없지 않은 글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쓸데있는 글이
어떤 이에겐 쓸데없는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래서는 아니고...
쓸데없는 글도 가끔은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제 표현대로 말하면 영양가 없는 글도 필요한 게
우리 인생이다, 뭐 이런 거죠. 아... 이것도 쓸데없는 댓글이 되려나요...ㅋ

감은빛 2013-11-26 13:36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

술에 취한 다음 날엔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취하지 않아도 쓸데없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건 굳이 밝히지 않았네요.

페크님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세요.
저 역시 늘 쓸데없는 글을 쓰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쓸모 있는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댓글, 제게는 아주 좋은 글인걸요.
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락방 2013-11-2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떤' 남자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는 무척 좋아했던 적이 있어요. 아찔하게 섹시한 느낌을 줬었거든요. 대부분의 남자들로부터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요. 이게, 그 사람만의 고유한 체취와 담배냄새가 섞여 더 멋진 향을 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 것 같아요. 하핫

감은빛 2013-11-27 14:06   좋아요 0 | URL
누구나 고유한 체취가 있죠.
특히 냄새에 민감한 여성분들은 그런 걸 잘 느끼시는 듯.
아찔하게 섹시한 느낌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네요. ^^

yamoo 2013-11-2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하를 막론하고 술냄새와 담배냄새는 역겨워하는 1인입니당~

그나저나 1번 내용이 사실인가욤? 사실이라면 도저하고픈 1인..ㅋㅋ

아, 근데 쓸데 없는 글이란게 뭔가요?? 알라딘 서재에서 쓸데없는 글은 별로 못봤는데~ㅎ

감은빛 2013-11-27 14:09   좋아요 0 | URL
술 냄새, 담배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모처럼 외투를 꺼내입은 날,
마침 갑작스레 회식이 잡혀 밤 늦게까지 술집에 머물렀다면,
그 외투엔 술 냄새, 담배 냄새, 고기 냄새를 비롯한 온갖 음식 냄새가 배였겠죠.
이런 때는 다음 날 아침에 그 옷을 입을 수 없더라구요.

1번은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사람마다 효능과 부작용이 다를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글은 1~5번 페이스북에 쓴 글을 말한 거구요.
평소에도 쓸데없이 끄적끄적하는 글들을 말하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