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보육의 녹색전환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목은 길게 빼고, 먼지가 묻은 안경 렌즈 너머로 흐릿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눈이 침침해서 고개를 든다. 안경을 벗고 침침한 눈을 두 손으로 문지른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전화기는 아내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오늘 일 좀 더하다가 갈게요. 아이들을 부탁해요.’ 오늘은 내가 아이들을 맡기로 약속된 날이다. 난 ‘걱정 말고 일하다 오세요!’라고 답장을 보낸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려면 대략 6시 반이 되기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퇴근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본다. 대략 6시 20분쯤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가방을 챙기고, 지갑과 전화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손목시계를 본다. 어느새 6시 40분. 6시가 넘자마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처리하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더 늦어졌다.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선다. 지하철역까지 바삐 발을 놀린다.
집 근처 지하철 역.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서기 직전 시계를 본다. 7시 20분. 어린이집은 보통 7시 30분까지 아이들을 돌봐준다. 부모가 그 보다 늦으면 선생님의 퇴근시간이 그만큼 더 늦어진다. 지하철역에서 어린이집까지 걸어서 가면 15분 이상 걸린다. 10분 안에 가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 열차가 완전히 멈춰서고, 출입문이 열리면 문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간다. 마치 경보 경기를 하듯 경쟁적으로 복도를 걷는 많은 이들이 좁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주춤한다. 순간적으로 몰려든 사람들로 입구가 붐빈다. 기다릴 여유는 없다. 에스컬레이터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계단을 향한다. 2계단씩 규칙적으로 오른다. 이미 익숙하다. 퇴근시간 조금이라도 일찍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반복하고 있는 계단 오르기다. 에스컬레이터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오르는 사람보다 더 빨리 길고 긴 계단의 끝을 오른다.
7시 31분. 걷다가 뛰기를 반복해서 겨우 작은 아이의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걷는 중간에 미리 전화를 해두었기 때문에 아이는 신발까지 신고 현관근처에서 선생님과 놀고 있다. 인사를 하고 아이를 받아 안고 나선다. 이제 큰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이마의 땀을 쓰윽 닦는다. 뛰는 동안 등줄기에도 땀이 흘렀다.
7살과 2살. 우리 아이들은 불행히도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지 못한다. 작은 아이가 너무 어려서 큰 애가 다니는 곳처럼, 영아전담반이 없는 어린이집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거기는 가장 어린 반이 3세반이다. 해가 바뀌어 큰 애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비로소 작은 아이는 그 어린이집에 갈수 있는 연령이 된다. 가끔 두 아이가 각각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이 얘기를 간결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또 간혹 아직 2돌이 안된 아이가 벌써 어린이집에 가느냐고 놀라서 묻는 분들도 있다. 이 녀석은 채 백일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게 어린 아이를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냈느냐? 아이는 부모가 직접 키우는 게 제일 좋다는 말들이 돌아오기도 한다. 당연한 말씀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우리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혼자 버는 것 보다는 둘이 버는 게 낫다는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아내가 일을 계속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맞벌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사흘을 정해놓고 번갈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본다. 그 외의 시간에는 주로 일을(혹은 일의 연장선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한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에게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간(혹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 다행히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가까이에 계시고,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면 그때부터 고민과 선택은 무척 어려워진다. 2008년 1월 한겨울에 아이를 발가벗겨서 밖에 내쫓았던 충격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심심하면 어린이집의 체벌과 가혹행위가 뉴스나 신문에 오르내린다. 과연 우리는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
큰 애를 키우면서 몇 차례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작은 아이를 맡기면서도 짧은 기간에 벌써 몇 번이나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기면서 모두가 자기 아이 대하듯 무조건 다 잘해주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나듯, 이런 일도 겪고, 저린 일도 겪는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벌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처음 겪은 황당한 일은 2008년 새해를 맞으면서 시작되었다. 큰 애는 발도르프식 교육을 지향하는 영유아전담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1살부터 4살까지 아이들을 받고 있으며, 5살이 되면 졸업을 하고 다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옮겨야 한다. 아이는 2008년이 되면서 4살이 되었고, 이제 1년 후에는 그곳을 졸업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원장이 바뀌었다. 새로운 원장은 예전 원장의 딸이었다. 문제는 원장이 바뀌면서 그때까지 시행되던 ‘시간 연장 보육’이라던가 ‘평가인증 어린이집’으로서의 이점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또 기존에 있던 좋은 선생님들이 예전 원장을 따라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겨가면서, 여기에는 새로운 선생님들이 들어왔는데, 부모와 아이들과 새 원장과 새 선생님들은 서로 적응을 못해 힘들어했다. 결국 여름이 채 가기 전에 아이랑 같은 반에 다니고 있던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을 옮겨버렸다. 아이는 가장 큰 언니반인 4세반에 혼자 남았다.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1살 아래 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갑자기 아이 혼자 남았다는 말에 우리는 정말 깜짝 놀랐고 또 황당했다. 그 상황이 되기 전에 미리 어린이집에서 한마디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졸지에 혼자 남은 아이의 기분은 도대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우린 부랴부랴 새로운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해서 급하게 근처의 다른 곳으로 옮겼다. 역시 급하다보면 뭔가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새로 옮긴 곳은 예전에 있던 곳만큼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었다. 원장도, 선생님들도 모두 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새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지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아이를 데려왔다가 얼굴에 작게 손톱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또 화장실에 데려갔다가 바지와 팬티가 젖었다가 마르고 있는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 일로 원장과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 어린이집에서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겪지 못했던 일들이 자꾸만 생기고 있었다. 작은 물건들, 예를 들어 머리끈이나 머리핀, 양말, 모자 등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또 아이의 하루 생활을 기록해둔 알림장이 며칠씩 연속으로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아이의 얼굴에 상처가 나고, 바지가 젖어서 돌아온 날도 이틀째 알림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려달라고 전화를 했다. 충분히 예의를 갖췄고, 사건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상황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은 기분나빠하면서 전화를 끊었고, 다음날 아이의 성격을 탓하는 것으로 얼굴 상처를 설명하고, 선생님들이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젖은 바지를 설명했다. 그걸로 끝! 더 이상 아무런 사과도 없었고, 재발방지의 약속도 없었다. 아내는 인터넷을 통해 해당지역 엄마들 카페에 글을 올렸다. 아래는 아내가 쓴 글의 일부이다.
아이 아빠는 원장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남자들 흔히 그러듯 다소 딱딱한 말투긴 하지만 예의를 충분히 차리면서도 그냥 간결하게 "아이 얼굴에 상처가 났는데 누구랑 싸운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바지가 젖었다가 다시 마르는 상태인데 오후에 실수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에게 미처 말을 못해서 바지를 못 갈아입었다고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주실 수 있느냐" 이렇게 묻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알림장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종이에 긴 메모를 써서 담임선생님께 어제 있었던 일을 쓰고 상황에 대해 여쭈기로 했습니다. 메모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는데 원장님이 나와서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어제 아버님이 전화를 했는데 설명하겠다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ㅇㅇ가 남한테 절대 안 지는 성격인건 아시죠? 동생 장난감 뺏어서 그 동생이 화나서 얼굴을 할퀴었다고 하네요. (중간생략)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면서 이것저것 다 따지시면 너무 힘들어요. 완벽하길 바라시면 안 되죠. 아이들을 일일이 화장실에 따라 들어가서 옷 벗겨주고 쉬 뉘어줄 수 없습니다. 그 연령은 스스로 해야 하는 나이고요. 지금도 지난번 텔레비전 문제로 담임선생님이 예민해져 있는데 이렇게 또 자꾸 문제제기를 하시면, 결국 답은 하나에요. ㅇㅇ한테 (이때 제 팔을 세게 확 잡고 벽으로 밀면서) 이렇게 한곳에 붙잡아두고 '넌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여기 있어'라는 말 밖에 못하죠. 그렇게 키우는 게 좋으세요? 그럼 계속 그렇게 하시고요."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원장은 이후 이 글을 문제 삼으며 삭제를 요구했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사과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는 과정에도 시간은 계속 지났다. 우리는 너무 바빠서 새로운 어린이집을 알아볼 여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계속 보내지만, 불안했다. 그 과정에서 원장은 또 한 번 아내를 협박하듯이 그 글의 삭제를 요구했고, 더 이상 우리는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만 보내겠다는 통보를 했다.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으므로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일터에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선 옆에 앉혀두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고 놀도록 했다. 외근을 나갈 때는 데리고 나가서, 아이와 함께 거래처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원장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고, 그 글을 삭제 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연락을 몇 차례 해왔지만, 결국 고발하지는 못했다.
이후 큰 애는 두 군데의 어린이집을 더 옮겨 다녔다. 그 과정에서 황당한 일들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가 넘어져서 이빨과 입술을 다치는 사고가 났음에도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심지어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던 어이없는 일(큰애는 이때 잇몸속의 신경이 다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이빨의 색깔이 누렇게 변해버렸다!)이 벌어지기도 했고, 부모와 아이를 돈으로 보고 행해지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들의 문제점들 때문에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작은 애의 경우에는 최근 원장이 바뀐 후 어린이집 건물을 싹 뜯어고치는 공사가 벌어졌다. 아이들은 흙먼지가 날리는 공사 중인 건물에서 하루 종일 생활했다. 원장 말로는 부모들의 동의서를 70%이상 받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곧 공사가 끝나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얘길 해놓고, 2달 동안 공사를 했다. 이번에도 우린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사태를 맞이해서 금방 아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했다. 작은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받아줄 수 있는 어린이집이 근처에 별로 없었다. 작은 아이는 공사기간 내내 콧물을 달고 살았고, 목이 붓고 열이 나서 병원을 오갔다. 단 하루도 안 아프고 지나간 날이 없었다. 정말 지긋지긋한 2달이었다. 이제 공사가 끝나고 연말이 되니 그 원장은 규정상 정해진 진급비의 2배되는 금액을 부모들에게 걷어갔다. 우리는 이렇게 양심이 없는 곳에 더 보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장은 대안이 없지만, 내년 3월이 되면 아이를 보낼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 그때 옮기기로 작정하고 우리는 이 어린이집의 몇몇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보기로 결심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뭐가 되었든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 부딪쳐볼 생각이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한다. 아이를 낳으면 대학 보낼 때까지 교육비가 얼마가 든다고.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두렵다고. 능력이 없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둘째까지 낳았냐는 말도 몇 번 들었다. 하지만 돈이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나는 돈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영유아 보육과 교육문제에서 다시 사람이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가치관과 정책이 바뀌기를 바란다. 녹색당은 생활정치의 영역에서 부모들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도록 보육제도와 사람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우리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돈이 갖고 있는 주도권을 사람이 되찾아오기만 하면 된다. 둘째가 태어나면 출산장려금을 얼마를 주고, 셋째부터는 또 얼마의 혜택을 주는 방식의 정부 지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말만 그럴듯한 정부나 지자체의 저출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실제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엉터리 대책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추구하는 녹색사회로의 전환은 이렇게 가장 기본이 되는 육아와 보육 그리고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당장 여성들에게만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현실부터 바꿔야한다. 제도 개선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리고 녹색당원으로서 열심히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