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 심층종교에 대한 두 종교학자의 대담
오강남.성해영 지음 / 북성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장면 하나. 지하철 풍경
혼잡한 출근시간이었다. 늘 그렇듯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상태였다.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광고판을 쳐다보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저쪽 칸에서 이쪽 칸으로 건너오신다. 손에는 공손하게 성경책을 받쳐 들고 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확 짜증이 올라왔다. 분명히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설파할 모양새다. 아니나 다를까 뭐라고 하는지 잘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중얼중얼 거리며 열심히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이럴 땐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귀를 막아 버려야 맘이 편한 법인데, 젠장 오늘따라 엠피쓰리를 놓고 나왔다. 할아버지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니 참 구경거리도 이런 구경거리가 따로 없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한 젊은 여성의 무릎을 건드리는 통에, 그 여성이 눈을 뜨고, 짜증 섞인 표정으로 째려봤는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혀를 차면서 자기 얘길 들으라고 한다. 그 여성이 뭐라고 하려다가 그냥 참고 다시 눈을 감아버리자,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학생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말을 붙인다.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뭔가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포기하지 않고, 책을 툭 쳐서 주의를 끈다. 그는 이어폰을 꽂은 상태 그대로 한번 째려보고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준다. 할아버지 다시 혀를 끌끌 찬다.
그런 식으로 앉거나 선 사람들을 계속 건드리면서 다가온 할아버지가 마침내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나를 건드리면 남은 평생을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어느새 술이 깨고, 정신이 번쩍 든 느낌이다.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데, 이 할아버지 나는 건드리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어라! 이거 뭐야! 이러면 재미없는데....... 나만 지나친 게 아니라, 조금 덩치가 큰 아저씨도 그냥 지나친다. 이제 보니 이 할아버지 만만한 여성이나, 어려보이는(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만 건드리는 것이었다. 다시 몇 명의 여성들을 더 건드린 할아버지는 다음 칸으로 넘어가버렸다.
장면 둘. 친한 친구들
어려서부터 주위에 교회에 다니는 친구나 동생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 손에 이끌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게 된 사람들(이런 걸 모태신앙이라고 한다는 얘길 들었다.)이 많았다. 나도 그런 친구들 덕분에 여러 교회를 구경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교회를 자주 놀러가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목사님의 설교나 나를 설득시키려는 어른들의 태도 때문에 더더욱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의심스러운 이야기만 들려주는 곳이 바로 교회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 때였다. 정말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와 독서실에서 밤새 종교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 친구는 내가 교회에 다녀서 주님의 선한 양이 되기를 바랬고, 나는 그 친구가 교회라는 허황된 집단에서 벗어나 참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은 적은 없지만, 친구들을 따라서 교회는 열심히 들락거렸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성경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둘의 대화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마침내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을 맞았을 때, 우리는 서로를 설득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그렇게 친했던 친구가 그날 이후로 멀어졌다.
그 후로도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다. 이상하게 조금 친해지고 나면 교회에 데려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나중에는 교회에 열심히 따라다니곤 했다. 교회에 가서 기타도 치고, 축구도 하고, 연극도 하고, 여학생들도 만났다. 자주 따라가다 보면 세례나 침례를 받기를 강요하는데, 그때쯤 되어서 발길을 끊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친구와의 관계도 끊어지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나를 스쳐갔던 여러 명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장면 셋. 아내와의 대화
지금은 아내와 그런 대화를 일부러라도 잘 안하지만, 초기에는 종교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곤 했다. 처가 식구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야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야 한다. 아내는 기독교를 무척 싫어하고, 정확히 불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불교에 가까운 어떤 신앙을 믿는다. 한때 인도에서 전해져 온 명상을 열심히 했던 영향인 것 같다. 어쨌든 아내는 무언가 믿는다. 나는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다고 본다. 신을 믿지 않으므로 종교라는 것을 가질 수 없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의 지배 수단이라고 본다. 아내와 부딪힌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간단히 서로의 입장만 확인했다면 좋았을 텐데, 고등학교 때 친구와 밤새 토론했던 날 못지않게 열을 올리며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서로 감정이 상할 때까지 자기주장만 우기다가 결론도 내지 못하고 그냥 이야기는 끊겼다.
결론. 깨달음
환경운동을 하면서 큰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늘 종교인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새만금 때는 4대 종단(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의 수경스님, 문규현 신부님 등 큰 스승님들께서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보1배를 했다. 지율 스님은 목숨을 건 단식을 여러 차례 해왔고, 도법스님께서는 ‘생명평화결사단’을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을 걸었다. 평택과 용산에서는 문정현 신부님께서 늘 함께 계셨다. 환경단체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종교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니 오히려 자본과 권력에 결탁하여 지배 구조를 더 견고하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앞장서서 행동하는 큰 스승님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지금도 그 분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이 종교적인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 덕분에 다시 한 번 더 깨달았다. 무교 혹은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큰 편견이자, 근본주의자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종교를 가질 생각은 없지만, 존경할만한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는 종교라는 것에 아예 관심이 없었지만,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몇 가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잘 짚어주었다. 대화 형식이라 술술 잘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읽다 말고 한동안 미뤄두고 있었던 오강남 선생의 <세계 종교 둘러보기>도 마저 읽어야겠다.